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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난 때에 찬송해야 할 이유(시124:1~8) 찬송 ; 493장
본 시편 말씀은 다윗이 극심한 위경에서 구원 받은 후 돌이켜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고 또 찬송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환난 가운데서도 찬송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1.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도우시기 때문입니다(1~5).
오늘 시편 저자인 다윗은 하나님께서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여 주신 것을 회상하며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 편이 되어 주셨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택한 백성들의 편에 서서 역사하십니다. 때로는 택한 백성들을 바로 세우고자 이방을 들어서 징계의 도구로 쓰시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결국은 그 모든 것은 택한 백성이 잘되게 하기 위해서 그 어려움을 예비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돕는 자 중에 계시는 것을 믿고 감사하며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비록 우리가 비천하고 부족한 가운데 처해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도우시는 것을 생각하며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원수를 능가하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해 찬양합니다.
본문 6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우리를 저희 이에 주어 씹히지 않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아멘.
원수들은 다윗의 생명을 노렸습니다. 그것도 이방으로 도피한 처소까지 따라다니며 생명을 해칠 기회만 엿보고 틈만 생기면 공격해 오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지켜주셨기 때문에 다윗은 그의 생명을 보존할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당신의 백성을 원수에게 내어주지 않으십니다.
다니엘이 사자 굴에 들어갔으나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셨습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으나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셨습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의심치 말아야 합니다. 원수의 그 어떤 힘도 여호와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 앞에는 무기력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능력으로 원수들이 능히 이기지 못하도록 지켜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늘 찬송할 수 있어야 합니다.
3. 영혼을 죄에서 해방시키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므로 찬송해야 합니다.
본문 7~8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우리 혼이 새가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남 같이 되었나니 올무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도다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 아멘.
여기서 “새가 올무에서 벗어났다.”고 하는 것은 자유와 해방을 의미합니다. 올무에 얽힌 짐승이 죽음 직전에서 풀린 것과 같은 해방을 우리가 받은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엡2:1절 말씀처럼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처지를 불쌍히 여기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확실한 구원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아무리 원수가 공격하고 넘어뜨리려고 한다고 할지라도 그 무엇도 우리를 영원히 무너뜨릴 수는 없습니다. 애굽과 같은 세상에서 해방되었고, 죄악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진리로 자유를 얻은 것입니다. 이 축복을 호흡이 멈출 때까지 찬송하고 증거 해야 합니다. 우리의 암은 생애가 복음 증거와 그 은혜를 찬송하는 생애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아멘.
여호를 의뢰하는 자의 복 (시125:1~5)
본 시편의 말씀은 하나님의 영원하고 특별하신 보호(1~3), 선인과 악인의 극히 대조되는 운명(4~5)에 대해서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선인이란? 도덕적 무흠자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생명적 관계를 맺고 있는 자를 가리킵니다.
내용을 보면 현재와 미래까지 있을 하나님의 은혜로운 보호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흔히 세상은 고해로 비유되는데, 이는 항상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요동하는 세상에도 요동치 않는 사람이 있음을 본문은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입니다.
1.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는 요동하는 세상에서도 요동치 않게 해 주십니다(1~2).
시인은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의 안전을 “시온 산이 요동하지 않음”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구속의 은총으로 말미암은 성도의 구원이 변동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시온 산이 든든하게 흔들림이 없는 것처럼 성도의 구원은 요동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하심은 후회하심이 없습니다. 물론 구원받은 성도라고 할지라도 연약한 인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험한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약간은 흔들리고 타락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가 영원히 타락하여 지옥에 떨어지는 법은 없습니다.
2.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는 영원히 망할 죄는 짓지 못하게 하십니다.
본문 3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악인의 권세가 의인의 업에 미치지 못하리니 이는 의인으로 죄악에 손을 대지 않게 함이로다.” 아멘.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에게는 악인의 권세가 미치지 못하도록 보호해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보호하심으로 죄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는 것입니다. 구원 받은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징계는 받을 수는 있어도 지옥에 떨어질 정도로 심각한 지경에 이르지는 않도록 하나님께서 지키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요일5:16~18절 말씀에서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3.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본문 4~5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여호와여 선인에게와 마음이 정직한 자에게 선을 행하소서 자기의 굽은 길로 치우치는 자를 여호와께서 죄악을 짓는 자와 함께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스라엘에게는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멘.
여기서 “선인”이나 “정직한 자”는 하나님 앞에서 거짓되지 않고, 신실하게 여호와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의를 행하시고 정직한 자에게 선을 행하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의인의 편에 서서 유익하게 역사하십니다. 의인이 고난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항상 의인을 향하여 일하십니다(롬8:28).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해롭게 하려고 팔았으나 하나님은 오히려 그것을 통하여 합력하여 선을 이루셨습니다. 창50:19~21절 말씀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언약 위에 세워진 신분입니다. 따라서 그 무엇도 무효화시킬 수 없습니다. 변개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어떤 사탄의 세력이 다가온다 할지라도 우리의 구원과 신분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여호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는 자에게는 세상에서 계속 승리케 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뢰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며 기쁨으로 신앙생활 해야 합니다. 아멘.
구원받은 성도의 기쁨(시126:1~6) 찬송 ; 205장
본 시편의 말씀은 작자미상으로서 바벨론 포로생활을 청산하고 언약의 땅 가나안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 자의 기쁨을 감격적으로 표현해 주고 있는 기쁨의 시입니다.
1. 성도에게는 사탄의 손에서 해방된 기쁨이 있습니다.
본문 1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아멘.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된 것은 믿기 어려운 놀라운 사건입니다. 바벨론은 당시 근동지역을 제압하고 위세 당당하게 뻗어 나가던 제국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바벨론이 바사제국이 등장함으로 무너졌고 이스라엘은 바사의 포로로 또 전락되고 말았습니다. 바벨론이 멸망당했어도 이스라엘의 포로생활에는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바사 왕 고레스의 칙령으로 포로에서 기적적으로 해방됩니다.
우리 성도는 죄의 종 되었던 자리에서 해방 받은 사람들입니다. 롬8:2절 말씀에 보면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죄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실로 우리의 공로 없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축복입니다. 그래서 이 구원에 대한 감사와 기쁨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복인 것입니다.
2. 성도의 구원은 하나님의 큰일(大事)인 것입니다.
본문 2~3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열방 중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아멘.
여기 “여호와께서 대사를 행하셨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에서 기적적으로 해방시키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성도가 죄에서 해방되고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는 일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사건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우리 인생에게 놀라운 일을 성취시켜 주신 것입니다. 눅4:18~19절 말씀에 보면 “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3.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성도의 사명이요, 보람이요, 참 기쁨입니다(4~6).
주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에게 어마어마한 구원의 문을 열어 놓았건만 이 복된 소식을 몰라서 죽어가는 인생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일을 위하여 우리를 먼저 부르셨습니다. 마28:19~20절 말씀에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을 증거 할 것을 말씀하시면서 그리하면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함께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사명은 사탄의 포로가 되어서 신음하면서 지옥으로 가고 있는 많은 불신자들을 건져내는 것입니다(4절). 이 복음 전도와 예수 생명을 증거하는 사역을 위하여 때로는 눈물을 흘리며 가게 될지라도 결국은 기쁨으로 그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역을 위하여 힘들고 고달픈 세월이 지나간다고 할지라도 그 모든 고통과 눈물이 결국은 하늘의 상급과 축복으로 변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이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아멘.
축복의 근원이 되신 하나님 (시127:1~5) 찬송 ; 495장
본 시편 말씀은 일종의 교훈시로서 하나님은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심을 교훈하고 있습니다(삼상2:6~10). 하나님만이 축복의 근원임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여호와께서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허사로 끝나고 맙니다.
본문 1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아멘.
집이나 교회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워주시지 않으시면 모두 헛된 일입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성전건축에 대한 열망이 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허락하여 주시지 않음으로 이일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은 그의 아들 솔로몬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몰론 왕으로서 백성들을 강제로 동원하고 재료를 준비하여 지을 수도 있었겠지만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이 일도 불가능한 것입니다.
잠16:1절 말씀에 보면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고 하였고, 잠16:33절 말씀에서는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께 구해야 하고, 무엇이 이루어지면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2. 여호와께서 지켜주시지 않으시면 나라를 지키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본문 1절 말씀에 보면 “......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나라를 세우시기도 하고, 나라를 위해 왕을 세우시기도 하시고, 나라의 경영을 계획하기도 하십니다. 그러므로 나라를 지키는데 있어서 여호와 하나님의 힘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부국강병이란 오지 여호와 하나님을 의뢰하는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신앙이 헤이해질 때 여지없이 이방을 들어서 이방의 말발굽아래 짓밟으셨습니다. 가정이나 개인, 나라도 하나님이 지키시지 않으시면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성도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고 가르친 것입니다(딤전2:1~3). 그럴 때에 그 나라를 지켜주실 것이며 나라를 사랑하는 백성의 뜻이 온전하게 실현될 것입니다.
3. 여호와께서 지켜주시지 않으면 많은 노력과 땀과 수고가 헛됩니다.
본문 2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아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번영이 보장될 수 없습니다. 그 부지런함과 땀이 허사로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의 성공여부가 사람에게 있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물론 악인의 형통함이 의외로 간혹 있습니다. 지옥 갈 사람은 아무리 악해도 부자가 될 수 있고 매사가 잘 될 수도 있습니다(시73:1~19). 그러나 그것을 잘된 것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악인의 형통함은 일시적이고 세상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4. 여호와 하나님이 지켜주시면 후손이 강성합니다(3~5).
자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런데 이 자녀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잘 키우면 그 후손이 강성해져서 성문에서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않게 되는 복을 누립니다. 이렇게 신앙 안에서 자녀를 양육한 부모는 그 선한 대가를 자녀들로부터 받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자녀는 전통의 화살이 잘못 겨냥된 화살과 같습니다. 그래서 그 자녀들은 오히려 부모의 가슴에 그 화살을 쏘고 상처를 줍니다. 이렇게 주의 말씀가운데 양육된 자녀는 노년의 부모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께 지음 받은 존재로서 하루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며 살아가는 지혜를 받아야 하겠습니다. 아멘.
건실한 가정(시128:1~6) 찬송 ; 305장
가정은 신성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완성된 천국을 바라보면서 먼저 가정 천국을 이루어야 합니다. 일본의 내촌감삼은 말하기를 “가정은 행복을 저축하는 곳이요 채굴하는 곳은 아니다. 얻기 위하여 이루어진 가정은 무너질 것이요 주기 위하여 이루어진 가정만이 행복한 가정이다.”라고 했습니다. 오늘의 가정 문제는 자식을 버리는 일, 부모님을 버리는 일, 이혼율의 급증으로 인한 가정의 파탄으로 사회의 많은 문제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1. 건강한 가정의 비결.
건강한 가정의 비결은 먼저 영적인 면이 좋아야 합니다. 본문 1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아멘. 히브리말에 “경외”라는 말은 “키베트”라고 하는데 이 말은 사람의 내장 중 “간”을 말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말이 “경외”라는 말입니다.
신명기 28장 1절 이하에 보면 복을 받는 비결이 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면 자녀, 직업, 세계의 민족 중에 뛰어나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울 때 그 집은 견고하다고 말씀합니다(시127:1).
마태복음 19장 6절 이하의 말씀에서도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찾아와서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네게 있는 재물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를 따르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부자 청년은 재물의 노예가 되어 있어서 예수님의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재물을 움켜쥐고 멸망의 길로 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고넬료의 가정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던 것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압니다.
2. 건강한 가정의 삶의 결과.
본문 2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아멘.
일을 할 수 있는 건강을 하나님께서 주셔야 합니다. 그러나 일하는 것 못지 않게 그 일의 성과가 있어야 합니다. 즉 수고의 열매가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땀 흘려 열심히 수고하고 노력했는데 그 일의 열매가 하나도 없다고 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수고한 대로 먹는 자는 참으로 행복한 자입니다.
잠언 31장 1절 이하의 말씀에 보면 행복한 가정의 삶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르무엘 왕의 어머니가 그의 아들을 향해서 주신 말씀인데 그 말씀을 보면 노동을 사랑하고, 가정의 일을 잘 살피고, 자녀들을 잘 양육하고, 재산을 늘리고, 남편을 내조하는데 힘을 쏟고, 덕을 세우며, 칭찬을 받을 때 그 가정은 복되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따라 사는 행복한 가정은 자식이 감람나무 같다고 하였습니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다고 하였습니다. 평생의 예루살렘의 복을 누리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4절 말씀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본문 1절 말씀을 다시 한 번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아멘. 이 말씀을 여러분 믿습니까? 예. 이러한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며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여러분의 각 가정이 말씀에 의한 삶을 생활화함으로 행복이 넘치는 삶을 영위해 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