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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존여비(男尊女卑)
남자는 높고 귀하게 여기고, 여자는 낮고 천하게 여긴다는 뜻으로, 사회적 지위나 권리에 있어 남자를 여자보다 존중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男 : 사내 남(田/2)
尊 : 높을 존(寸/9)
女 : 계집 녀(女/0)
卑 : 낮을 비(十/6)
(상대어)
여존남비(女尊男卑)
남자는 높고 귀하게 여기고, 여자는 낮고 천하게 여기는 태도와 사상이나 그와 같은 사회 관습을 이르는 말이다.
열자(列子) 천서편(天瑞篇)에 있는 이야기이다.
공자(孔子)가 태산(泰山)에서 노닐다가 영계기(榮啟期)가 성(郕)땅의 들을 지나는 것을 보았다. 그는 남루한 갖옷에 새끼로 허리를 두르고는 거문고를 연주(演奏)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공자(孔子)가 묻기를 “선생께서 즐거워하는 까닭이 무엇입니까?”하니, 영계기(榮啟期)는 이렇게 대답(對答)하였다.
“나는 즐거움이 매우 많습니다. 하늘이 만물(萬物)을 나게 함에 오직 사람만을 귀(貴)하게 하였는데 나는 사람이 될 수 있었으니, 그것이 첫번째 즐거움입니다. 남녀(男女)의 구별은 남자(男子)는 높고 여자(女子)는 낮게 여기는데 나는 이미 남자(男子)의 몸을 얻었으니, 그것이 두번째 즐거움입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강보(襁褓)에 쌓인 채 해와 달을 못보고 죽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이미 아흔 살이니, 그것이 세번째 즐거움입니다. 가난한 것은 선비에게 늘 있는 일이요, 죽는 것은 인생(人生)의 끝입니다. 평범(平凡)한 상태(狀態)에서 처하다 죽음을 얻는 것이니 마땅히 무슨 근심(謹審)이 있겠습니까?”
공자(孔子)가 이 말을 듣고 말하기를, “좋은 말이다. 능히 스스로 깨달아 여유를 지닌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은(殷)나라의 주왕(紂王)은 요부(妖婦) 달기(妲己)에게 푹 빠져 지냈다. 달기(妲己)의 말이라면 무조건 다 들어 줬다.달기(妲己)라는 색(色)에는 주(酒)가 따르게 마련이다. 허구한 날 주색(酒色)을 즐기느라 바쁘다 보니 나라가 제대로 돌아갈 리 만무했다.
주연(酒宴)을 베풀면서 어진 신하(臣下)들을 멀리하고 일족(一族)들마저 돌보지 않았다. 예정(豫程)된 절차(節次)처럼 전국(全國)에서 반란(叛亂)이 잇따랐다. 이같은 혼란을 틈 탄 주(周)나라 무왕(武王)은 은(殷)나라의 주왕(紂王)을 쳤다. 병사(兵士) 3000명을 이끌고 은(殷)나라로 진군(進軍)했다.
그리고 외쳤다. 암탉은 새벽에 울지 않는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亡)하는 법(法)이다. 주왕(紂王)을 치는 대의명분(大義名分)으로 鷄之晨 惟家之索을 거론(擧論)한 것이다. 암탉이 곧 달기(妲己)임은 不問可知(불문가지)다. 鷄는 無晨, 새벽에 울지 않아야 마땅하다는 주장이다.
암탉의 서러움은 속담(俗談)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여자(女子)와 소인(小人)은 가까이 하지 마라.
여자(女子)가 말이 많으면 과부(寡婦)가 된다.
여자(女子)가 너무 알면 팔자가 세다.
여자(女子)와 북어는 사흘 걸러 때려야 한다.
암탉의 슬픔은 중국(中國)과 우리나라에 국한(局限)하지 않는다.
일본(日本)의 아내들은 남편(男便)을 주인(主人)이라 불렀다. 서가(西歐) 신사도(紳士道)의 이면(裏面)에는 물질적 존재(物質的 存在).소유물(所有物).재산(財産)으로서의 여성(女性)이 자리잡고 있다. 여자(女子)는 남자(男子)의 재물(財物)이므로 보호(保護)해야 한다는 발상(發想)의 산물(産物)이 바로 젠틀멘 코드일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鷄之晨 惟家之索을 강변(强辯)하면 시대 착오적인 공공(公共)의 적(敵)으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鷄之晨을 탓하던 중국의 수탉들도 간 데 없다. 어느덧 암탉에게 뺨을 맞아도 그러려니, 익숙해졌다. 또한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남성이 여성의 눈치를 보는 시대다.
작금의 암탉 상위시대(上位時代)는 역경(易經)이 일찌감치 내다봤다.
택산함(澤山咸) 괘(卦)는 여자가 위에 있고 남자가 아래에 있다는 의미다. 지천태(地天泰)도 마찬가지다. 여자가 위에서 아래로 힘을 쓰고 남자가 아래서 위로 힘을 써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주역(周易)이 암탉더러 독주(獨走)하라고 권하는 것은 아니다. 암탉과 수탉이 생물학적 성별(性別) 본분에 충실하게 화합해야 만사형통이라는 造化翁의 진리를 환기(喚起)하고 있을 따름이다.
⏹ 남존여비(男尊女卑)
일반적(一般的)으로 남자(男子)의 권리(權利)가 강하고 남성(男性)이 중심(中心)이 되는 사회(社會)에서 볼 수 있다. 남녀(男女)가 각기 능력(能力)과 특질(特質)에 따라 일하고 필요(必要)에 따라 분배(分配)를 받으며 생명(生命)을 유지(有志)하던 원시(原始)공산시대(空山時代)에는 남녀(男女)의 생리적(生理的) 특징(特徵)이나 자연적(自然的) 분업(分業)은 당연지사(當然之事)로 인정(認定)되어 그것이 귀천(貴賤)의 조건(條件)으로서 생각되는 일은 없었다.
그 후 사유재산제(私有財産制)가 발달(發達)함에 따라 남녀(男女)의 경제적(經濟的) 지위(地位)의 차이(差異)가 가부장제(家父長制)를 낳게 하고, 사회(社會)의 계급적(階級的) 분열(分裂)에 의한 남존여비(男尊女卑) 풍습(風習)이 생겼다.
19세기 영국의 사회학자 H.스펜서는 남존여비사상(男尊女卑思想)을 남성(男性)의 완력(腕力) 탓으로 돌리고, 폭력(暴力)이 지배(地排)하는 사회(社會)는 야만인(野蠻人)의 사회(社會)라 하여 야만사회(野蠻社會)에서 문명사회(文明社會)로 발전(發展)함에 따라 여성(女性)의 지위(地位)가 높아지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19~20세기에 미개(未開)로부터 문명(文明)으로의 여러 단계(段階)에 걸친 인류(人類)의 사회(社會) 발전과정(發展過程)에 관한 연구(硏究)가 계속되면서 남성(男性) 중심(中心)의 사회적(社會的) 습관(習慣)은 완력(腕力)에 의한 것이 아니고 경제적(經濟的).사회적(社會的)인 원인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事實)이 널리 인정(認定)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근세(近世)에 와서는 종전(從前)에 여성(女性)의 예종(隸從)을 강요(强要)하는 방향(方向)으로 작용(作用)하던 경제적(經濟的) 역량(力量)이 산업혁명(産業革命)의 진행(進行)과 더불어 여성(女性)에게 유리(有利)하게 작용(作用)하고, 또 그러한 사회(社會)진화(進化)의 방향(方向)을 과학적(科學的)으로 연구(硏究)하여 의식적(意識的)으로 추진(推進)함으로써 남존여비(男尊女卑)에서 남녀평등(男女平等)으로 변천(變踐)하게 되었다.
수천년 전부터 인간(人間)을 지배한 종교(宗敎)나 도덕(道德)이 모두 남존여비(男尊女卑)사상(思想)이 지배하던 시대(時代)에 성립(成立)되었기 때문에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思想)은 그대로 전통적(傳統的) 사상(思想)을 이루었으나, 이제는 종교(宗敎) 자체가 남존여비(男尊女卑)를 배격(排擊)하고 일부일처(一夫一妻)를 제창(提唱)하게 되었다.
19세기에 일어난 노동운동(勞動運動)과 여성운동(女性運動)은 서로 제휴(提携)하여 여성(女性)의 교육(敎育).직업(職業).참정권(參政權)을 위하여 싸웠으며,두 차례의 세계대전(世界大戰)을 통하여 남녀(男女)평등사상(平等思想)은 후진(後進) 여러 나라에도 급속히 파급(波及)되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世界大戰) 후(後)에는 유엔 헌장(憲章)을 통해 성(性)에 의한 차별(差別)의 철폐(撤廢)를 규정(規定)함으로써 남존여비(男尊女卑)사상(思想)을 과거(過去)의 유물(遺物)로 매장(埋葬)한 국제적(國際的) 원칙(原則)이 확립(確立)되었다.
⏹ 남존여비(男尊女卑)
남성의 권리나 지위 등을 여성보다 우위에 두고 여성을 업신여기던 사상. 부계(父系)를 중심으로 한 가족제의 확립과 더불어 시작된 것으로, 조선시대의 유교적 도덕사상이 더욱 이를 고정화하였다.
여자는 결혼하여도 호적에 자기 친가(親家)의 성(姓)만 적었을 뿐 이름은 없었으며, 관부(官府)에서 호적을 편성할 때에도 여자는 누락되는 일이 많았다. 여자는 일생 아무런 법적,사회적 보장도 없이 삼종지도(三從之道)를 지켜야 된다는 열녀,효부를 지향하는 교육 결과,아버지,남편,아들에게 만 의존하며 살 수밖에 없었다.
또,남자 중심으로 된 일방적인 이혼 조건인 칠거지악(七去之惡)을 보더라도 여자는 오직 남자의 예속적인 존재에 불과하였다. 남편이나 아들이 벼슬에 오르면 외명부(外命婦)의 조례에 의하여 여자에게도 봉작(封爵)을 주기는 하였으나 이것도 여자에게 사회적인 인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다만 자기 남편이나 아들의 지위로 해서 받는 형식적 영예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친가에서도 여아(女兒)의 이름을 적는 일이 없었고, 결혼한 뒤에 자기 남편의 이름이 적힐 뿐이었다. 그리고 여자는 원칙적으로 죽은 남편의 재산에 대한 상속권도 없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는 여자란 남자의 혈통을 이어주기 위한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유교의 남존여비사상은 전통 사회에서 한국 여성의 생애를 지배한 근본개념이었다. 더욱이 조선시대의 여성은 경제적 독립이 인정되지 않았으므로 남성에게 예속적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또한 열등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조선 여성의 성 윤리는 한마디로 순종과 정절이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나라 여자 이름에 순(順)과 정(貞)자를 많이 쓰는 것도 그 좋은 보기이다. 종속의 관념은 합리화되어 친화의 덕으로 해석되었다.
어쨌든 조선 여성의 생활 중에 가장 필요한 것은 정렬(貞烈)이었다. 남의 집 남자와 말할 때도 문을 닫고 방 안에서 대답하여야 하고, 문을 열고 말하면 행동이 음흉한 여자라 하여 비난을 받았다. 부득이 외출할 경우에는 해가 진 뒤 오후 8시부터 10시 사이에 다녀오고, 그것도 쓰개치마를 쓰거나 가마를 타고 출입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조선시대 말까지 부녀자는 일생동안 내방에 갇혀 살며 그의 인격을 인정받지 못했으니,벌써 네살만 되면 어머니 등에 업혀서도 전의를 쓰고야 문 밖을 나갔고, 남녀칠세부동석이라 하여 일곱살만 되면 본격적인 내외의 법을 지켜야 했다. 그리하여 내외가 지나쳐서 심지어는 남편이 자기 형제간의 처(형수.제수)나 처형,처제에게까지도 내외를 하게 되었다.
이런 남존여비 사상이 우리나라에 정확히 언제부터 있었는지를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최근에 이루어진 친족 및 상속 분야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우리 나라에서 부계친족제도가 강화되고 남존여비사상이 깊게 뿌리를 내린 것은 17세기 중반 이후라고 한다. 왜 이 시기에 이런 변화가 일어났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초기만 해도 딸은 상속에서 차별대우를 받지 않았을 뿐 아니라 부모의 제사를 지내기도 하였다. 이 밖에도 딸은 이름을 갖는 등 조선시대 후기의 철저한 남존여비 관습과는 다른 양태를 보였다.
이와 같은 역사적인 변천이 밝혀진 것은 최근의 일이지만, 학자들 간에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견해이다. 최근에 이르러 여자의 법적인 지위에는 혁명적인 변동이 있게 되어, 오늘날의 민법(民法)상 여성의 지위는 우리 헌법이 보장한 대로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관점에서 남자와 평등한 지위에 놓여 있지만, 아직도 관습적으로는 이런 풍조가 남아 있다.
▶️ 男(사내 남)은 ❶회의문자로 侽(남)의 본자(本字)이다. 田(전; 논밭)과 力(력; 농기구)의 합자(合字)이다. 논이나 밭을 가는 사람, 남자를 이르는 말이다. ❷회의문자로 男자는 ‘남자’나 ‘아들’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男자는 田(밭 전)자와 力(힘 력)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力자는 밭을 가는 쟁기를 그린 것으로 ‘힘’이나 ‘힘쓰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쟁기’를 그린 力자에 田자가 결합한 男자는 밭과 쟁기를 함께 그린 것이다. 노동력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했던 고대의 농사일은 모두 남성의 몫이었다. 男자는 그러한 인식이 반영된 글자로 힘을 들여 농사를 짓던 사람인 ‘남자’를 뜻하고 있다. 그래서 男(남)은 (1)어떤 명사(名詞)의 앞에 쓰이어 사내 남자(男子)라는 뜻을 나타내는 말 (2)어떤 명사(名詞) 뒤에 쓰이어 사내 남자(男子)라는 뜻을 나타내는 말 (3)남작(男爵) 등의 뜻으로 ①사내 ②아들 ③남자(男子) ④남작(男爵: 작위의 이름) ⑤남복(男服)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사내 랑(郞),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여자 녀(女), 아가씨 유(妞), 예쁜 여자 년(姩), 예쁠 왜(娃), 여자 랑(娘), 예쁜 여자 오(娪), 여자 원(媛), 아리따울 교(嬌), 여자 애(嬡), 아가씨 양(孃)이다. 용례로는 아내의 배우자로 혼인하여 사는 남자를 그 아내를 기준으로 일컫는 말을 남편(男便), 남성으로 태어난 사람 또는 한 여자의 남편이나 애인을 이르는 말을 남자(男子), 오라비와 누이를 남매(男妹), 아기를 직접 낳을 수 없는 성性에 속하는 사람을 남성(男性), 사내 아이를 일컫는 말을 남아(男兒), 남자의 성기를 남근(男根), 음경을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을 남경(男莖), 사내 끼리 성교하듯이 하는 짓을 남색(男色), 열다섯 살이 넘은 사내로 젊은 남자를 남정(男丁), 아버지 쪽의 핏줄 계통을 남계(男系), 여자가 남자처럼 차림을 남장(男裝), 사내 얼굴과 같이 생긴 여자의 얼굴을 남상(男相), 맏아들을 일컫는 말을 장남(長男), 둘째 아들을 일컫는 말을 차남(次男), 사내 아이를 일컫는 말을 동남(童男), 아내의 남자 형제를 처남(妻男), 아름답게 생긴 남자를 미남(美男), 나이가 젊고 기운이 좋은 남자를 정남(丁男), 보기 흉한 남자나 못생긴 남자를 추남(醜男), 아들을 낳음을 득남(得男), 남자와 여자와 늙은이와 젊은이 곧 모든 사람을 일컫는 말을 남녀노소(男女老少), 남자와 여자와는 분별이 있다는 말을 남녀유별(男女有別), 남자는 짐을 등에 지고 여자는 짐을 머리에 인다는 뜻으로 가난한 사람이나 재난을 당한 사람들이 살 곳을 찾아 이리저리 떠돌아 다니는 것을 이르는 말을 남부여대(男負女戴), 음양설에 왼쪽이 양이고 오른쪽은 음이라 하여 남자는 왼쪽이 중하고 여자는 오른쪽이 중하다는 말을 남좌여우(男左女右), 남자는 높고 귀하게 여기고 여자는 낮고 천하게 여긴다는 뜻으로 사회적 지위나 권리에 있어 남자를 여자보다 존중한다는 말을 남존여비(男尊女卑), 남자의 얼굴이 썩 뛰어나게 잘 생김 또는 그러한 사람을 이르는 말을 남중일색(男中一色), 남자가 앞에 나서서 서두르고 여자는 따라만 한다는 말을 남창여수(男唱女隨), 남녀가 좋아한다는 뜻으로 부부가 화락함을 이르는 말을 남흔여열(男欣女悅), 갑이라는 남자와 을이라는 여자라는 뜻으로 신분이나 이름이 알려지지 아니한 그저 평범한 사람들을 이르는 말을 갑남을녀(甲男乙女), 예전부터 우리나라에서 남쪽 지방은 남자가 잘나고 북쪽 지방은 여자가 곱다는 뜻으로 일러 내려오는 말을 남남북녀(南男北女), 아들을 많이 두면 여러 가지로 두려움과 근심 걱정이 많다는 말을 다남다구(多男多懼), 착한 남자와 착한 여자라는 뜻으로 불교에 귀의한 남녀 또는 신심이 깊은 사람들을 이르는 말을 선남선녀(善男善女) 등에 쓰인다.
▶️ 尊(높을 존, 술 그릇 준)은 ❶회의문자로 樽(준)과 통자(通字)이다. 술병(酋)을 손(寸)에 공손히 받들고 바친다는 데서 존경의 뜻을 나타내어 '높이다'를 뜻한다. 술을 신에게 바치다, 삼가 섬기다, 존경함을 나타낸다. ❷회의문자로 尊자는 ‘높다’나 ‘공경하다’, ‘우러러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尊자는 酋(묵은 술 추)자와 寸(마디 촌)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酋자는 잘 익은 술의 향기가 퍼져나가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좋은 술’이라는 뜻이 있다. 갑골문에 나온 尊자를 보면 양손에 술병을 공손히 받치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높은 분에게 공손히 술을 따르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尊자는 이러한 모습을 통해 ‘공경하다’라는 뜻을 표현한 글자이다. 그래서 尊(존, 준)은 (1)제사(祭祀) 지낼 때 술이나 명수(明水) 등을 담기 위하여 만든 구리 그릇 충항아리같이 되었는데, 그 모양에 따라 희준(犧尊), 상준(象尊), 저준(箸尊), 호준(壺尊), 대준(大尊) 등이 있음 (2)예전에 쓰던, 질로 된 술잔 등의 뜻으로 ①높다 ②높이다 ③공경(恭敬)하다 ④우러러보다 ⑤중(重)히 여기다 ⑥소중(所重)히 생각하다 ⑦따르다, 좇다 ⑧(어떤 경향으로) 향하다 ⑨어른 ⑩높은 사람 ⑪관리(官吏), 벼슬아치 ⑫술통(술을 담아 두는 큰 통) 그리고 ⓐ술 그릇(준) ⓑ술통(술을 담아 두는 큰 통)(준) ⓒ술 단지(목이 짧고 배가 부른 작은 항아리)(준) ⓓ술잔(준)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윗 상(上), 높을 항(亢), 높을 탁(卓), 높을 교(喬), 높을 준(埈),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래 하(下), 낮을 저(低), 낮을 비(卑)이다. 용례로는 높이고 중히 여김을 존중(尊重), 존중히 여겨 공경함을 존경(尊敬), 존경하여 높여 부르는 명칭을 존칭(尊稱), 부모 및 그와 같은 항렬 이상의 혈족을 존속(尊屬), 높고 엄숙함을 존엄(尊嚴), 높이 받들어 대접하는 것을 존대(尊待), 같은 또래의 친구 사이에서 상대자를 높여 부르는 말을 존형(尊兄), 높고 귀함을 존귀(尊貴), 상대편을 높여서 그의 이름을 이르는 말을 존함(尊銜), 지위가 높은 사람의 아버지를 높여 이르는 말을 존공(尊公), 상대방을 높여 그의 부모를 이르는 말을 존당(尊堂), 존경하고 숭배함을 존숭(尊崇), 지위가 높고 세력이 왕성함을 존성(尊盛), 남을 높여서 그의 의견을 이르는 말을 존의(尊意), 상대방을 높이어 겸손하게 함을 존손(尊巽), 부모의 항렬 이상에 해당하는 항렬을 존항(尊行), 학문과 덕행이 뛰어난 부처의 제자를 높여 이르는 말을 존자(尊者), 아버지의 친우가 될 만한 나이 정도의 웃어른을 높여서 이르는 말을 존집(尊執), 글에서 부인네들이 시어머니를 높여 이르는 말을 존고(尊姑), 늙은 어머니를 높여 이르는 말을 존온(尊媼), 부인네들이 시아버지를 높여 이르는 말을 존구(尊舅), 스스로 자기를 높임을 자존(自尊), 남의 아버지를 높이어 이르는 말을 가존(家尊), 혼자만 존귀함을 독존(獨尊), 지위가 매우 높음을 극존(極尊), 세상 사람이 모두 존경할 만한 사람을 달존(達尊), 더 할 수 없이 존귀함을 지존(至尊), 친속 중의 존귀한 사람을 속존(屬尊), 제자는 스승을 존경하고 스승은 제자를 사랑한다는 뜻을 나타내는 말을 존사애제(尊師愛弟), 지위의 높고 낮음과 신분의 귀하고 천함을 이르는 말을 존비귀천(尊卑貴賤), 이 세상에 나보다 존귀한 사람은 없다는 말 또는 자기만 잘 났다고 자부하는 독선적인 태도를 비유한 말을 유아독존(唯我獨尊), 남자는 높고 귀하게 여기고 여자는 낮고 천하게 여긴다는 뜻으로 사회적 지위나 권리에 있어 남자를 여자보다 존중한다는 말을 남존여비(男尊女卑), 여자는 존귀하고 남자는 천하게 여긴다는 뜻으로 사회적 지위나 권리에 있어 여자를 남자보다 존중한다는 말을 여존남비(女尊男卑), 망령되이 자기만 잘났다고 뽐내며 남을 업신여김을 이르는 말을 망자존대(妄自尊大), 스승이 엄하면 자연히 가르치는 道도 존엄해짐을 이르는 말을 사엄도존(師嚴道尊) 등에 쓰인다.
▶️ 女(계집 녀/여)는 ❶상형문자로 여자가 손을 앞으로 모으고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모양을 본뜬 글자로 계집, 여자를 뜻한다. 보통 연약한 여성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 생각되고 있다. 그러나 옛날엔 여자나 남자나 모두 人(인)과 같은 모양으로 쓰고 또 女(녀)라는 자형으로 써도 그것은 남녀의 여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신을 섬기는 경건한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❷상형문자로 女자는 ‘여자’나 ‘딸’, ‘처녀’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女자는 결혼하지 않은 처녀라는 뜻으로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포괄적인 의미에서 ‘여성’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女자의 갑골문을 보면 무릎을 꿇고 단아하게 손을 모으고 있는 여자가 그려져 있었다. 女자는 단아한 여성의 자태를 그린 것으로 부수로 쓰일 때는 여자와 관계된 의미를 전달한다. 다만 女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부정적인 의미를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가부장적이었던 고대 중국 사회에서 남성 중심의 사고방식이 문자형성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女(녀/여)는 ①여자 ②딸, 처녀 ③너 ④작고 연약한 것의 비유 ⑤별의 이름 ⑥시집보내다 ⑦짝짓다 짝지어 주다 ⑧섬기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사내 남(侽), 아들 자(子), 사내 랑/낭(郎), 어머니 모(母), 사내 남(男), 사내 랑/낭(郒)이다. 용례로는 아기를 직접 낳을 수 있는 성에 속하는 사람을 여성(女性), 결혼한 여자를 높여 이르는 말을 여사(女史), 여성인 사람을 여자(女子), 남에게 자기 딸을 이르는 말을 여식(女息), 호걸스러운 여자를 여걸(女傑), 사위나 딸의 남편을 여서(女壻), 여자 직공을 여공(女工), 여자와의 성적 관계를 여색(女色), 여성으로 태어난 딸 자식을 여아(女兒), 어른이 된 여자를 여인(女人), 여자가 지켜야 할 떳떳하고 옳은 도리를 여덕(女德), 여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여도(女道), 여자가 잘 따르는 복을 여복(女福), 아내는 반드시 남편의 뜻을 좇아야 한다는 말을 여필종부(女必從夫), 호협한 기상이 있는 여자를 일컫는 말을 여중호걸(女中豪傑), 여자는 존귀하고 남자는 천하게 여긴다는 뜻으로 사회적 지위나 권리에 있어 여자를 남자보다 존중하는 일을 이르는 말을 여존남비(女尊男卑), 아침 이슬과 같이 덧없는 많은 백성을 일컫는 말을 여로창생(女露蒼生), 여자는 정조를 굳게 지키고 행실을 단정하게 해야 한다는 말을 여모정렬(女慕貞烈), 여자는 무슨 생각에 잠기기를 잘한다는 말을 여자선회(女子善懷), 여자가 먼저 나서서 서두르고 남자는 따라만 한다는 말을 여창남수(女唱男隨), 갑이라는 남자와 을이라는 여자라는 뜻으로 신분이나 이름이 알려지지 아니한 그저 평범한 사람들을 이르는 말을 갑남을녀(甲男乙女), 예전부터 우리나라에서 남쪽 지방은 남자가 잘나고 북쪽 지방은 여자가 곱다는 뜻으로 일러 내려오는 말을 남남북녀(南男北女), 남자는 짐을 등에 지고 여자는 짐을 머리에 인다는 뜻으로 가난한 사람이나 재난을 당한 사람들이 살 곳을 찾아 이리저리 떠돌아 다니는 것을 이르는 말을 남부여대(男負女戴), 남자는 높고 귀하게 여기고 여자는 낮고 천하게 여긴다는 뜻으로 사회적 지위나 권리에 있어 남자를 여자보다 존중하는 일을 일컫는 말을 남존여비(男尊女卑), 마음씨가 고요하고 맑은 여자 또는 마음씨가 얌전하고 자태가 아름다운 여자를 일컫는 말을 요조숙녀(窈窕淑女), 남의 여자를 쫓다 제 아내를 잃는다는 뜻으로 지나친 욕심을 부리다 자신이 지닌 소중한 것을 잃게 되는 경우를 비유하는 말을 추녀실처(追女失妻), 하늘이 낸 열녀란 뜻으로 절개가 굳은 여인을 일컫는 말을 출천열녀(出天烈女) 등에 쓰인다.
▶️ 卑(낮을 비)는 ❶회의문자로 痺(비)와 통자(通字)이다. 왼 손(十, 십)에 어떤 물건을 들고 있는 모양으로, 중국에선 왼손을 천하게 여겨, 그것은 신분이 천한 사람이 하는 일이므로 전(轉)하여 천하다의 뜻이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卑자는 ‘낮다’나 ‘천하다’, ‘비루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卑자는 이외에도 다양한 뜻이 있는데, 대부분이 신분이 낮다는 것을 뜻한다. 卑자의 갑골문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갑골문에 나온 卑자를 보면 又(또 우)자와 田(밭 전)자가 결합해 있었다. 이것은 큰 부채를 들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이렇게 큰 부채는 시종이 주인을 모실 때 사용하던 것이다. 그래서 卑자는 부채를 들고 있는 시종의 신분이 낮다하여 ‘낮다’나 ‘천하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卑(비)는 ①낮다 ②왜소하다 ③낮추다 ④겸손하게 대하다 ⑤천하다 ⑥천하게 여기다 ⑦비루하다(鄙陋; 행동이나 성질이 너절하고 더럽다) ⑧저속하다(低俗; 품위가 낮고 속되다) ⑨쇠하다 ⑩가깝다 ⑪~으로 하여금 ~하게 하다 ⑫낮은 곳, 낮은 데 ⑬신분, 지위 등이 낮은 사람 ⑭현(縣)의 이름 ⑮나라의 이름 ⑯부끄러워하는 모양 ⑰힘쓰는 모양 ⑱하여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래 하(下),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윗 상(上), 높을 존(尊), 높을 고(高)이다. 용례로는 비열하고 겁이 많음을 비겁(卑怯), 성품이나 하는 짓이 천하고 용렬함을 비열(卑劣), 낮고 천한 풍속을 비속(卑俗), 땅이 낮음이나 지위가 낮음 또는 스스로를 낮춤을 비하(卑下), 비겁하여 용기가 없고 품성이 천함을 비굴(卑屈), 지체가 낮고 천함을 비천(卑賤), 흔히 보고 들을 수 있을 만큼 알기 쉽고 실생활에 가까움을 비근(卑近), 보잘것없이 작음을 비소(卑小), 점잖지 못하고 천한 말을 비어(卑語), 항렬이 낮은 사람과 나이가 어린 사람을 비유(卑幼), 자기 의견의 겸칭을 비견(卑見), 비천함과 고귀함을 비고(卑高), 낮은 벼슬아치 또는 관리가 자기를 낮추어 일컫는 말을 비관(卑官), 자기 가문의 낮춤말을 비문(卑門), 비루한 행위를 비행(卑行), 지체가 낮고 천함을 비미(卑微), 격이 낮고 박함을 비박(卑薄), 땅바닥이 낮고 습기가 많음을 비습(卑濕), 낮추어 일컬음을 비칭(卑稱), 높은 곳에 올라가려면 낮은 곳에서부터 오른다는 뜻으로 일을 하는데는 반드시 차례를 밟아야 한다는 말을 등고자비(登高自卑), 남자는 높고 귀하게 여기고 여자는 낮고 천하게 여긴다는 뜻으로 사회적 지위나 권리에 있어 남자를 여자보다 존중한다는 말을 남존여비(男尊女卑), 눈은 높으나 손은 낮음이란 뜻으로 눈은 높으나 실력은 따라서 미치지 못함 또는 이상만 높고 실천이 따르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안고수비(眼高手卑), 관리는 높고 귀하며 백성은 낮고 천하다는 사고 방식을 이르는 말을 관존민비(官尊民卑), 하늘은 높아도 능히 낮은 곳의 일을 모두 알아 듣는다는 말을 천고청비(天高廳卑), 스스로 자기를 낮춤을 일컫는 말을 자가비하(自家卑下), 낮은 지위에 있으면서 윗사람의 정치를 이렇다 저렇다 비평한다는 말을 위비언고(位卑言高)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