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호지(水滸誌)
혼돈의 시대를 이끌다
1권 일탈하는 군상 (43)
제 8장 야승과 산도둑
산채로 돌아간 이충(李忠)은 노지심과 장원 주인 유태공을 취의청(聚義廳, 산채 같은 데서 두령들이 모여 앉는 자리)으로 안내했다.
세 사람이 자리를 잡고 앉자 이충(李忠)이 주통을 불러냈다.
불려 나온 주통(周通)은 노지심을 보자 아직도 분이 안 풀리는지 이충에게 퉁명스레 쏘아붙였다.
"형님은 내 원수는 갚아 주지 않고 되레 저놈을 산채로 끌어들였구려. 왜 큰 두령 자리라도 내주실 작정이오?"
이충(李忠)이 빙긋 웃으며 주통을 달래듯 말했다.
"아우는 이 스님이 누군지 아나?“
"만약 저 사람이 누군 줄 알았다면 내가 그렇게 얻어맞지는 않았을 거요!"
주통(周通)이 여전히 뒤틀린 목소리로 대꾸했다.
이충(李忠)이 한층 소리 높여 웃으며 말했다.
"저 스님이 바로 내가 늘 말하던 그 분일세. 주먹 세 대로 진관서를 때려죽인 노달(魯達) 형님 말이네."
그제야 주통(周通)은 모가지를 움츠리며 노지심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었다.
노지심(魯智深)이 점잖게 답례하며 말했다.
"몇 대 쥐어박힌 일을 너무 언짢게 생각하지 마시오. 나도 알지 못해 한 짓이오."
그리주 주통(周通)이 자리 잡고 앉기를 기다려 유태공의 일을 꺼냈다.
"주씨 성 쓰는 형제, 내 말을 잘 들어 주시오. 형제는 모르지만 저 어르신에게는 자식이라고는 그 딸 하나뿐이오.
늙도록 어버이를 모시는 일이며 제사를 받드는 일이 모두 그 딸에게 달린 거요.
만약 형제가 그녀를 데려가면 저 어르신네의 집안은 그걸로 없어진단 말이오...."
주통(周通)은 유태공의 딸 이야기가 나오자 다시 눈길이 실쭉해졌다.
그걸 본 노지심(魯智深)이 한층 간곡히 당부했다.
"비록 저 어르신네가 허락했다 해도 그것은 형제가 두려워서이지 마음속으로 원해서가 아니오. 그러니 이제 내 말을 듣고 그 혼사는 잊어버리시오.
따로 좋은 아내감을 찾아보는 게 좋을 듯 싶소. 자, 여기 청혼할 때 보낸 금과 비단을 도로 가져왔소. 이 정도로 마음을 푸는 게 어떻겠소?"
"알겠습니다. 형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이제 다시는 그 집 문턱을 밟지 않겠습니다.“
주통(周通)이 마지못한 듯 그렇게 대답했다.
그게 못 미더웠던지 노지심(魯智深)이 한 번 더 그 말에 쐐기를 박았다.
"대장부가 한번 일을 정했으면 뒤집거나 후회하지 않는 법이오."
그러자 주통(周通)은 화살을 꺾어 맹세하며 다시는 유태공을 괴롭히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일이 그렇게 잘 풀리자 유태공(劉太公)은 기뻐해 마지않았다.
가져온 금덩이와 비단을 내놓고 열 번 스무 번 절한 뒤에 자신의 마을로 내려갔다.
이충(李忠)과 주통(周通)은 노지심을 위해 소와 말을 잡고 크게 잔치를 열었다.
그리고 그 뒤에도 며칠이나 노지심을 안내해 도화산 앞뒤를 구경시켜 주었다.
도화산은 과연 도둑이 들기에 알맞은 산세였다.
사방이 험한 산으로 막혀 한 갈래 길만 막으면 아무도 들어올 수가 없어 보였다.
"정말로 좋은 산세로군!“
노지심(魯智深)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으나 거기 머무르고 싶지는 않았다.
이충(李忠)과 주통(周通)은 노지심과 속셈이 달랐다.
노지심의 힘이 탐났던지 그가 떠나려 하자 자기들과 함께 머물기를 권했다.
"나는 이미 출가한 사람인데 어떻게 도둑의 무리에 끼어들겠나.“
노지심(魯智深)은 그렇게 거절하며 산을 내려갈 것만 고집했다.
이충(李忠)과 주통(周通)도 하는 수 없다 싶었던지 잡아 두기를 단념했다.
"형님께서 머물고 싶지 않으시다니 하는 수 없군요. 그렇지만 가시더라도 내일 가시도록 하십시오.
저희가 산을 내려가 형님께서 노자로 쓸 것을 털어 오겠습니다.“
그렇게 하루를 더 붙들었다.
노지심(魯智深)도 그것까지는 마다할 수 없어 그들의 말을 따랐다.
다음 날이 되었다.
이충(李忠)과 주통(周通)은 다시 양과 돼지를 잡아 길 떠나는 노지심을 위로하는 잔치를 차렸다.
금은으로 만든 그릇들을 탁자 위에 벌여 놓고 한창 흥이 나 부어라 마셔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졸개 하나가 달려와 알렸다.
"산 아래 수레 두 대와 사람 여남은 명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주통(周通)은 졸개 몇만 남겨 노지심을 접대하게 하고 자신들은 나머지 모든 졸개와 함께 산을 내려갔다.
"형님, 여기서 몇 잔만 더 하고 계십시오. 저희들은 잠시 내려가 형님의 노자나 좀 마련해 오겠습니다."
둘은 떠나면서 꼭 맡겨 놓은 물건을 찾으러 가듯 노지심에게 그렇게 말했다.
노지심(魯智深)은 좋은 낯으로 그들을 보냈으나 기분은 결코 그렇지가 못했다.
'이 두 녀석이 너무 짜구나. 여기 이렇게 금은을 놓아두고 지나가는 사람을 털어 내 노자를 마련하겠다니....... 내가 그 녀석들을 놀라게 해 버르장머리를 고쳐 줘야겠다.'
속으로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남아 있는 졸개 몇을 가까이 불러 술을 먹이기 시작했다.
졸개들이 멋모르고 좋아하며 넙죽넙죽 술을 받았다.
노지심(魯智深)은 그들이 취하기를 기다릴 것도 없이 한 주먹씩 안겨 잠재우고 마대 하나를 찾아냈다.
그 마대에다 탁자 위의 금은 그릇을 모조리 쓸어 담은 노지심(魯智深)은 계도와 선장을 끌고 산채를 빠져 나왔다.
노지심(魯智深)이 산 뒤쪽으로 올라가 내려다보니 산세가 너무 험해 내려갈 방도가 없었다.
'전에 여기 왔을 때는 어떻게 뚫고 나갈 길이 있을 것 같더니 그게 아니구나.
산 앞으로 나가다가는 돌아오는 것들과 맞닥뜨리게 될 테구.... 할 수 없지, 이쪽 풀 넝쿨이 우거진 곳으로 뛰어 내리자.'
노지심(魯智深)은 그렇게 방책을 세우고 먼저 언덕 아래로 계도와 선장, 금은 그릇이 든 자루 등을 내던진 뒤 자신도 훌쩍 몸을 날렸다.
다행히도 노지심(魯智深)은 이렇다 할 상처 없이 산 밑으로 내려올 수 있었다.
이에 먼저 계곡 바닥에 내던져져 흩어져 있던 계도와 선장, 금은 그릇이 담긴 자루 따위를 챙겨 들고 길을 찾아 내달렸다.
한편 산을 내려간 이충(李忠)과 주통(周通)은 졸개가 알려 온 두 대의 수레를 덮쳤다.
그러나 수레 주위를 따르는 사람들도 모두 무기를 갖추고 있어 결코 만만하지는 않았다.
"이놈들, 돈과 재물은 여기다 놓고 가거라!“
이충(李忠)이 창을 비껴들고 그렇게 으름장을 놓자 수레를 지키는 사람들 중에 하나가 말없이 큰 칼을 휘두르며 나와 이충에게 덤볐다.
두 사람이 치고받기를 여남은 차례나 하도록 승부가 나지 않는 게 상대도 여간내기가 아닌 듯했다.
시간을 끌어 봤자 이로울 게 없다고 생각한 주통(周通)은 머릿수로 내려 누를 작정을 했다.
데려간 졸개들을 모조리 휘몰아 밀고 드니 마침내 수레를 지키던 사람들도 견뎌내지를 못했다.
몇명은 창칼에 찔려 죽고 나머지는 그대로 달아나고 말았다.
그들 뒤로 재물 실린 수레 두 대가 고스란히 남겨졌음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 다음에 계속.......
출처 : 수호지 - 이문열 편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