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zeX) {Rate=this.width/sizeX;if(Rate>0) {this.width=sizeX;this.height=this.height/Rate;}}">
La Vie En Rose
해변으로 밀려 드는 파도와 같이... 가슴 깊이 밀려 드는 떨림이 강한 그녀의 노래... 불과 47세의 나이에 세상을 등진... 불과 147 cm 키의 세계적인 발라드풍 프랑스 여가수 "에디뜨 피아프(Edith Piaf)"의
삶을 보여 주는 영화입니다.
에디트 피아프(Édith Piaf) )는 1950년대 프랑스의 대중적 국민가수였으며 그의 노래는
지금도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남아 있습니다. 절망에서 희망을 노래한 그녀의 노래는 그 시대의 삶을 투영하였고... 그녀의 떨리는 목소리는 듣는 모든 이의 가슴을 떨리게 만들었습니다.
그의 노래가 세계인의 가슴을 울리기까지... 그녀가 살아 온 인생이 마감될 때까지... 이 영화는 그녀의 일생을 세세히 보여 줍니다.
영화는 시간의 순서를 벗어나 현재에서 과거로 과거에서 현재로 뒤죽박죽입니다. 영화 장면은 마치 종이 접기식으로 시작과 끝이 접혀 나옵니다. 그러나 노래를 사랑하며 치열한 삶을 살다간 한 정렬적인 여인을 조명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감독의 치밀한 구성은 관객들에게 그 진의를 완벽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가을이 다가오고 있는 즈음... 이 영화를 통해 그녀가 남기고 간 사랑을 다시 한번 기억에 올려 봅니다. 그리고 에디뜨 피아프의 인생이 녹아 뼈까지 스며드는 노래를 한번 들어 보시지요.
영화소개는 그녀가 살아 온 시간의 순서대로 하겠습니다. ..................
에디트의 본명은 Édith Giovanna Gassion... 프랑스 파리의 Belleville에서 1915년 12월 19일에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프랑스 사람이었으며... 그의 아버지 쪽은 French-Italian 이었으며 할머니는 프랑스인이었다. 에디트의 아버지 Louis는 유랑곡예사였다.
sizeX) {Rate=this.width/sizeX;if(Rate>0) {this.width=sizeX;this.height=this.height/Rate;}}">
sizeX) {Rate=this.width/sizeX;if(Rate>0) {this.width=sizeX;this.height=this.height/Rate;}}">
세계 제 1차대전 때 군대에 나가야 하는 아버지는 에디트를 할머니에게 데려간다.
sizeX) {Rate=this.width/sizeX;if(Rate>0) {this.width=sizeX;this.height=this.height/Rate;}}">
에디트는 3살 때 각막염에 걸려 실명의 위기에 있었다. 그러나 할머니의 정성과 성녀 테레사의 은덕으로 7살에 기적적으로 실명에서 벗어 난다.
sizeX) {Rate=this.width/sizeX;if(Rate>0) {this.width=sizeX;this.height=this.height/Rate;}}">
sizeX) {Rate=this.width/sizeX;if(Rate>0) {this.width=sizeX;this.height=this.height/Rate;}}">
1929년 14살 때 거리곡예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프랑스 전역을 돌아 다닌다. 그때 그녀가 처음으로 대중 앞에서 부른 노래는 ‘라 마르세예즈’ 였다.
sizeX) {Rate=this.width/sizeX;if(Rate>0) {this.width=sizeX;this.height=this.height/Rate;}}">
sizeX) {Rate=this.width/sizeX;if(Rate>0) {this.width=sizeX;this.height=this.height/Rate;}}">
sizeX) {Rate=this.width/sizeX;if(Rate>0) {this.width=sizeX;this.height=this.height/Rate;}}">
이렇게 그녀 앞에 닥칠 험한 인생의 파도를 강한 투지로 헤쳐 나감을 암시한다. 곧 그녀는 아버지와 결별하고 파리의 한 호텔에 머물며 거리 가수로 그녀의 길을 간다.
그녀는 16세 때 Louis Dupont 과 사랑 하고 아이를 낳는다. 그녀는 그의 어머니 일생과 같이 거리가수로 살아가면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어려워
종종 아이를 두고 나갔다. 그래서 남편 듀퐁이 주로 키웠으나 딸아이 Marcelle 은 수막염으로 2살에 죽고 만다. 그리고 그녀의 다음 남자친구는 부랑아 Albert 였다. 그녀를 매춘으로 부터 보호해 주고 노래하고 받은 돈을 일부 나누는 친구였다.
1935년 20살의 에디트는 nightclub 을 하는 Louis Leplée 눈에 뜨이게 되어
샹제리제거리의 클럽 Le Gerny 에서 노래를 하게 된다.
sizeX) {Rate=this.width/sizeX;if(Rate>0) {this.width=sizeX;this.height=this.height/Rate;}}">
sizeX) {Rate=this.width/sizeX;if(Rate>0) {this.width=sizeX;this.height=this.height/Rate;}}">
sizeX) {Rate=this.width/sizeX;if(Rate>0) {this.width=sizeX;this.height=this.height/Rate;}}">
그는 그녀에게 'MOME 피아프' 라는 예명을 지어준다. 작은 참새란 뜻의 피아프, Leplée 는 그녀에게 무대의 기본매너를 가르쳤고 그녀를 위하여 사회저명인사를
소개 했으며 2개의 레코드를 제작 출판하게 된다.
sizeX) {Rate=this.width/sizeX;if(Rate>0) {this.width=sizeX;this.height=this.height/Rate;}}">
1936년 4월 6일 Leplée 는 조폭에게 살해되고... 에디트는 그 사건의 혐의자로 연류되나 나중에 무혐의로 석방된다.
sizeX) {Rate=this.width/sizeX;if(Rate>0) {this.width=sizeX;this.height=this.height/Rate;}}">
sizeX) {Rate=this.width/sizeX;if(Rate>0) {this.width=sizeX;this.height=this.height/Rate;}}">
그녀는 이미지를 회복을 위해 Raymond Asso 와 함께 한다. 그는 그녀의 예명을 에디트 피아프(Édith Piaf)로 바꾸고, 올바른 발성법을 훈련시킨다.
예술적 감각과 매너를 교육 시키고 후에 그녀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검은 드레스를 입게 한다.
그리고 동료 Monnot로 하여금 피아프가 거리에서 노래 부르던 시절을 암시하는 곡을
만들도록 했다.
sizeX) {Rate=this.width/sizeX;if(Rate>0) {this.width=sizeX;this.height=this.height/Rate;}}">
sizeX) {Rate=this.width/sizeX;if(Rate>0) {this.width=sizeX;this.height=this.height/Rate;}}">
1940년, 그녀는 '장 콕토'와 함께 영화에 출연하는 등 사회 유명인사들과 교류를 갖기 시작한다. 1944년 에디트 피아프 는 우리가 잘 아는 "이브 몽땅" 을 발굴하여 파리 뿐 아니라
세계적 가수가 되도록 후원을 아끼지 않는다.
sizeX) {Rate=this.width/sizeX;if(Rate>0) {this.width=sizeX;this.height=this.height/Rate;}}">
sizeX) {Rate=this.width/sizeX;if(Rate>0) {this.width=sizeX;this.height=this.height/Rate;}}">
그녀는 날로 명성이 올라, 프랑스에서 유명한 가수가 되었다. 세계제 2차대전이 끝나자 그녀는 점차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게 되었고, 유럽, 미국 그리고
남미를 순회공연하였다.
sizeX) {Rate=this.width/sizeX;if(Rate>0) {this.width=sizeX;this.height=this.height/Rate;}}">
sizeX) {Rate=this.width/sizeX;if(Rate>0) {this.width=sizeX;this.height=this.height/Rate;}}">
1950년, 미국공연에서 처음에는 그리 좋은 평판을 얻지 못하였다. 그러나 점차 눈에 띄게 되어 Ed Sullivan Show 에 8번, 카네기 홀에서 두 차례의 공연을
성공적으로 갖게 되었다.(1956 and 1957).
sizeX) {Rate=this.width/sizeX;if(Rate>0) {this.width=sizeX;this.height=this.height/Rate;}}">
sizeX) {Rate=this.width/sizeX;if(Rate>0) {this.width=sizeX;this.height=this.height/Rate;}}">
에디트 피아프는 가수인 Jacques Pills, 와 1952년 결혼했으나 1956년에 이혼했다. 1962년 그녀는 나중에 배우 및 가수가 된, 그녀 보다 20살이 어린 그리스인
헤어 디자이너 Théo Sarapo 와 결혼한다.
그녀는 일찌기 사고를 당해 진통제와 술에 젖어 지내게 된다. 그것은 1951년, 프랑스 Charles Aznavour에서 교통사고를 당했으며,
팔과 갈빗대 2대가 부러졌고.... 불의의 교통사고로 그녀는 매일 10 차례가 넘는 진통제를 맞게 된다. 그 일로 몰핀 과 술에 젖게 되었고 이의 중독에서 벗어 나려고 무진 애를 쓴다. 그 후 2번의 심한 교통사고가 상황을 더욱 악화 시켰으며 남편 Jacques Pills 는
그녀를 재활원에 입원 시켰으나 효과가 없었다.
sizeX) {Rate=this.width/sizeX;if(Rate>0) {this.width=sizeX;this.height=this.height/Rate;}}">
sizeX) {Rate=this.width/sizeX;if(Rate>0) {this.width=sizeX;this.height=this.height/Rate;}}">
피아프의 전설적인 명성을 얻게한 Paris Olympia 는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공연장이며, 그곳에서 1955년에서 1962년까지 매년 콘서트를 열었다. 5번의 콘서트(1955, 1956, 1958, 1961, 1962) 공연은 녹음 되었고 CD로 만들어졌으나
판매되지는 않았다.
1962년 에디트 피아프는 '올림피아' 에서 마지막 공연에서 "Non, je ne regrette rien
(후회하지 않아요)"를 불렀다. 1963년 4월, 피아프가 녹음한 마지막 노래는 "L'homme de Berlin"이었다.
피아프는 1963년 10월 10일 간암으로 세상을 뜬다. 그의 절친한 친구 '장 콕토'도 우연하게 그와 같은 날 세상을 떴다.
그녀는 Père Lachaise Cemetery, in Paris에 묻혔다. 그녀의 장례식에는 수십만명의 애도객이 추모했으며, 2차대전 이후 파리의
장례식으로서는 최대의 운집객들이었다고 전한다. Paris에는 피아프 박물관이 있다. 2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Musée Edith Piaf. 주소는 5 rue Crespin du Gast.
sizeX) {Rate=this.width/sizeX;if(Rate>0) {this.width=sizeX;this.height=this.height/Rate;}}">
이 영화는 그녀의 일대기를 그렸으며... La Môme(아이란 뜻, 영어제목은 La Vie En Rose)는 2007년 6월에 개봉하였다. 제목: La Vie En Rose, 장미 빛 인생, La Môme (France) 감독: Olivier Dahan, 출품: Berlin Film Festival, 2007년 2월 주연: Marion Cotillard 아카데미상 Academy Award for Best Actress (Oscar), as Piaf.
그녀가 남긴 주요곡으로는 "라비앙로즈"(1946) "Hymne à l'amour"(사랑의 찬가 1949), 번안 "If You Love Me (Really Love Me)" "Milord" (신사 1959), "Non, je ne regrette rien" (아니오 전혀 후회하지 않아요 1960)등이 있다. .............
그녀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연인은 권투선수 "막셀 세르당"이었다. Jacques Pills, 와 1952년 결혼하기전, 그와는 미국 공연차 체류하고 있는 동안 만나게 되었다. 막셀은 프랑스의 전설적 권투선수였으며, 그 당시 미들급 세계 챔피온이었던...
세 아이들 둔 유부남이었다.
sizeX) {Rate=this.width/sizeX;if(Rate>0) {this.width=sizeX;this.height=this.height/Rate;}}">
sizeX) {Rate=this.width/sizeX;if(Rate>0) {this.width=sizeX;this.height=this.height/Rate;}}">
sizeX) {Rate=this.width/sizeX;if(Rate>0) {this.width=sizeX;this.height=this.height/Rate;}}">
sizeX) {Rate=this.width/sizeX;if(Rate>0) {this.width=sizeX;this.height=this.height/Rate;}}">
sizeX) {Rate=this.width/sizeX;if(Rate>0) {this.width=sizeX;this.height=this.height/Rate;}}">
그녀는 그에게 자신의 모든 사랑을 걸었으며 그녀의 사랑은 신문 머릿기사를 장식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1949년 10월, 프랑스에서 뉴욬에 있던 그녀를 만나러 오다가 Paris 발 New York 행 Air France
비행기 추락사고로 그만 세상을 뜨고 만다.
sizeX) {Rate=this.width/sizeX;if(Rate>0) {this.width=sizeX;this.height=this.height/Rate;}}">
얼마나 사랑했던가는 사랑한 사람의 상실 같이 극심한 충격은 없다. 마르셀의 비행기가 지상으로 곤두박질 쳤을 때 그녀는 비극적 사랑의 무게를 온몸으로
짊어지게 된다. Edith Piaf의 's 대표적인 노래 "Hymne à l'amour"(사랑의 찬가 1949), 번안
"If You Love Me (Really Love Me)"이 그것이다. 현실에서는 소설과 같은 비극이지만 영원의 세계에서는 더욱 아름다운 노래로 태어나게 된다.
세계제 1차 2차대전 모두를 거치는 동안 누구나 그랬듯이 그녀의 인생은 기구했다. 거리 가수였고 술과 마약과 매춘을 벗어 나지 못한 어머니... 거리 곡예사였던 아버지... 가난과 술과 마약과 매춘을 벗어 나기 위해 몸부림 치지만... 노래를 부르는 그의 몸부림 자체로 삶은 아름답고 순수하다.
이 영화는 암울한 시대를 이야기 하며... 아울러 에디트 피아프의 비극적인 삶을 이야기한다.
절망스러운 환경에서 절세의 목소리로 희망을 잃지 않은 에디트 피아프... 그 시대 프랑스의 많은 영혼들은, 절망을 딛고 일어서는 그녀의 목소리를 통해 많은
위로를 받았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가 자신의 생을 마감하기 전 떠올린 사람은 그녀의 아버지였다. 별 볼일 없었던 거리 곡예사였던 그녀의 아버지. 죽기 전 그녀는 아버지가 선물한 인형을 떠올리며 그를 위해 기도를 한다.
sizeX) {Rate=this.width/sizeX;if(Rate>0) {this.width=sizeX;this.height=this.height/Rate;}}">
그리고 그녀는 마지막 무대에 선다. 무대 위에서, 노래 안에서 산화하고 싶다는 그녀의 마지막 노래는 ‘후회하지 않아
(non, je regrette rien)'로 완성된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서... 그녀의 마지막 노래는 이렇게 입을 맞춘다.
"Non, je ne regrette rien" (아니오 전혀 후회하지 않아요)
# 아냐, 후회는 없어 # 아니, 아무 후회 없을거야 # 지금껏 받은 친절도 # 애달팠던 슬픔도 # 모두 잊어버렸어
# 아냐, 후회는 없어 # 아니, 아무 후회 없을거야 # 하룻동안 왕이었던 사랑은 # 사라졌네 # 길을 잃었네 # 지난날과 함께 # 지옥에 떨어졌네
# 또 내가 가진 기억들을 # 더이상 갈망하지 않네 #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 모두 # 불 속에 던져버렸네
# 지난 사랑은 털어버렸네 # 그동안 참아왔던 상심과 함께 # 좋은 날을 위해 털어버렸네 # 이름 모를 곳에서 # 시작하는 것 처럼
# 아냐, 후회는 없어 # 아니, 아무 후회 없을거야 # 지금껏 받은 친절도 # 애달팠던 슬픔도 # 모두 잊어버렸어
# 아니, 아무 후회 없을거야 # 나의 인생과 # 환희를 위하여 # 오늘 # 그대와 함께 시작되었네
.................
끝으로... 해변에 앉아 뜨개질 하던 에디트 피아프와 어느 한 기자가 인터뷰한 내용을 올립니다.
sizeX) {Rate=this.width/sizeX;if(Rate>0) {this.width=sizeX;this.height=this.height/Rate;}}">
(중략) 현명한 삶을 사는 것에 동의하세요? 이미 그렇게 살았는걸 가장 믿을만한 친구는요? 진정한 친구는 다 믿을만하지 노래를 못하시게되면... 더이상 살 수 없겠지 죽음이 두려우세요? 외로움보다는 덜 무서워 기도를 하세요? 그럼, 난 사랑을 믿거든 일을 하시면서 가장 좋았던 기억은요? 매번 무대 커튼이 올라갈 때 여자로서 가장 좋은 기억은요? 첫 키스 밤을 좋아하세요? 그래, 많은 불빛과 함께라면 새벽은요? 피아노와 친구들이 있으면 좋지 저녁은요? 그게 우리에겐 새벽이거든 여성들에게 조언을 주신다면 무슨 말씀을 하시겠어요?
사랑 젊은 여성들에게는요? 사랑 어린이들에게는요? 사랑 (하략)
에디트 피아프의 실제 모습입니다.
흐르는 음악은
"라비앙로즈"(1946)와
"Non, je ne regrette rien" (아니오 전혀 후회하지 않아요 1960) 입니다..
|
첫댓글 이쁜이님 덕분에 에디트 피아프의 열정적인 모습과 노래까지 감사드려요.
홍후님 에디트 피아프가 매력있지요?
기회가 되면 일부러 감상해 보겠습니다. 그녀의 애닲은 삶을요
천천히 감상해 보셔요 ^8^
학창시절 누군지도 모르고 샹숑가수라 좋아했던 기억있어요
네...저도 그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