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닉 여행3 - 소피아 성당에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니케아 공의회를 회상하다!
6월 4일 이스탄불 예니카프 Yenikap 부두에서 09시 45분에 출발한 고속 페리를 타고는
마르마라해 Marmara Deniz 를 건너 11시에 아시아의 얄로바 Yalova 에 내려
도로에서 돌무쉬 dolmuş 를 세워 타고 1시간만인 12시 15분에 이즈닉 Iznik 에 도착합니다.
오토가르까지 가지 않고 아타튀르크 거리에 내려 가로수가 우거진 엣스런 도로를 따라...
니케아 성벽 Iznik Suru 서쪽문인 굘문 Gol Kapisi 을 지나 아스카니오스 호숫가 에
도착해 호수를 구경하며 1차 십자군 전쟁시 치열했던 니케아성 공방전을 회상해 봅니다.
이 도시 이즈닉 성벽 Iznik Suru 은 도시 옛 도시 니케아 를 둘러싼 비잔틴 시대의
성벽으로 호숫가로 난 서쪽 성문 굘문 Gol Kapisi 은 폐허
상태이지만 동쪽에 레프케 문 Lekke Kapisi 은 상태가 아주 좋다고 합니다.
호수를 뒤로하고 클르츠 아르슬란 거리를 되짚어 돌아와 도시의 중심인 네거리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북문인 이스탄불문 Istanbul Kapisi 을
찾아가는데 조금전에 우리가 얄로바항에서 돌무쉬를 타고 올때 들어왔던 문입니다.
여기 이스탄불 문 Istanbul Kapisi 의 아치 위에 오르면 바깥쪽에 수도원과 남쪽
에니쉐히르문으로 이어지는 성벽이 잘 보이며.... 로마시대
야외극장터도 보인다지만 시간이 없어 마음이 급하니 오르지 못하고 되돌아 섭니다.
되돌아 오다가 아타튀르크 거리에서 골목 안쪽에 자리한 이즈닉 박물관 Iznik
Muzesi 을 보는데 14세기말 무라트 1세가 어머니인 닐뤼메르를 기리기
위해 지은 이마레트로 가난한 이에게 음식을 제공하던 구빈원 이라고 합니다.
어머니인 닐뤼메르 는 원래 비잔틴 제국 황녀 였다는데 투르크의 세력이
날로 강성해지다 보니 아마도 정략결혼 을 한 모양인데...
박물관에는 로마, 비잔틴 대리석과 이즈닉 도자기 등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그 옆에는 1,332년에 건축된 진하즈 외즈백 자미 보다 160년 늦게 지어지기는
했지만 훨씬 더 아름답다고 알려진 예쉴자미 이슬람 사원 이 있습니다.
사원에 부속된 미나레는 낮고 굵으며 기운차고 다채로운 색채의 대리석 기둥과 미나레의
타코이즈 블루 빛의 타일 등이 볼만하다는 에쉴 자미 Yesil Camii 를 구경합니다.
터키에서 가장 유명한 이즈닉 타일 은 오스만 사라이(궁전)와 자미(사원)를 장식했던 타일로
이스탄불에 블루 모스크 로 불리는 술탄 아흐멧 사원 이 바로 이 도시 이즈닉 타일 로
장식했으나 고령토가 고갈되면서 도자기 생산이 큐타햐 로 옮겨간후 이즈닉은 쇠퇴했습니다.
하지만 1,993년 재단이 성립되어 16세기 기술 그대로 청금석의 감청색, 터키석의 청색,
산호의 붉은색, 에메랄드의 녹색을 석영 타일과 도자기로 복원 하는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때문에 이 도시 이즈닉의 십자로 대로와 이어지는 골목을 기웃
거리면서 도자기를 생산하는 공방 과 가게들을 구경합니다.
네거리에 도착해 아야 소피아 성당 Ayasofya Kilisesi 을 보니 교회는 천수백년 이라는
오랜 세월이 흘렀으면서도 제모습을 유지하고 있는게 신기한데 무료이지만 문패는
Ayasofya Cammii 라고 적혀 있으니 그럼 교회가 아니라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 라는 말인데?
여기 아야 소피아 성당은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소집한 1차 니케아 공의회 와 3차 공의회가
개최된 곳으로 훗날 셀주크와 오스만 투르크 시대에 이슬람 사원 자미 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교회 흔적 이 보이니 회칠을 걷어내니 안쪽에 기독교의 프레스코
벽화 가 나타나고 회랑 사이에도 많은 "성화" 가 보이는데 이맘 도 친절합니다!
제1차 니케아 공의회 는 325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 가 소집하였으니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는 아리우스파를 이단 으로 단죄하여 분열된 교회를 통일시키게 됩니다.
참석자는 318명으로 공의회에서는 2편의 신경(信經) 중에 아리우스파에
속하는 니코메디아의 에우세비오가 제출한 것은 폐기됩니다.
아타나시우스파가 승리해 팔레스티나 공동체의 세례신경 을 기초로 해서 “니케아신경” 이
공표되었으며 4명의 아리우스 파가 파문에 처해져 유형당했고 그외 부활제 의
시기, 이단자에 대한 세례 문제와, 서품(敍品) 의 장애, 속죄 및 사제제도를 제정하였습니다.
아리우스 파의 중심인 알렉산드리아 교회 사제 아리우스 는 "성자" 는 모든
피조물과 같이 창조 되었으며 최초요 그리고 가장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신이 그에게 세상을 구원하도록 선택 한 것이니 예수 그리스도는 신의 은총을 입어
하느님의 양자 로 선택받은 것으로 "종속적인 개념" 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아리우스는 패배해 유배되었지만 이후에도 아리우스파는 동로마 황제의 신임 을 얻었으니
아리우스를 논박하고 알렉산드리아 주교가 된 아타나시우스는 5차례나 추방 되어
17년간 유배되는데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삼위일체설은 완전한 승리 를 거둡니다.
삼위일체설 은 그리스도를 성육신한 하나님의 로고스 로 보아 아버지인 하나님과
아들인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은 동질 이니 본질은 한 신이라는 교리입니다.
이집트 에서는 헬리오폴리스 창세 신화에서 창조신 아톤과 태양신 라 그리고 우주의 창조
법칙인 여신 마트 가 하나의 인격 즉“삼위일체”를 이룬다는 내용이 이미 있었습니다.
두번째 니케아 공의회는 787년 열린 제7차 공의회로 황후 이레네 2세가 총대주교 타라시우스
를 부추겼는데 성화상 숭배, 남녀공주 수도원의 금지 등 20개조가 의결 되었습니다.
하지만 "성화상" 에 관한 교리는 서유럽에서 오해를 불러일으켜 승인이 보류되니
이콘 숭배 에 대해 서방 교회는 우상숭배의 부활로 비난 합니다.
오랜 회상에서 깨어나 아야 소피아 성당을 나오니 바로 인접하여 넓은 뜰이 딸린
주황색 건물이 보이니 이즈닉 부르사 라는 표지판을 세웠는데.........
아마도 터키 목욕탕인 무라트 2세 하맘 Murat Hamami 이 아닌가 합니다?
이제 동쪽에 자리한 성벽 레프케문 Lekke Kapisi 을 구경하고 오토가르 로 갑니다.
이즈닉 오토가르에서 돌무쉬 를 타고는 오스만 투르크의 초기
수도인 부르사 를 보고 해안가에 무단야 항구 로 가서
페리 를 타고는 이스탄불 에니카프 부두 로 돌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