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50년대 세대
"이건 음악 다운 받을 수 있고
MP3 기능되고요.
그리고 디카 되고요.
이건 MP3하고 디카만 되고요."
열 댓개의 휴대폰을 늘어놓고 창구의 아가씨는
휴대폰 모델의 기능을 설명하기 바빴다.
후훗...
휴대폰이 크게 필요 없을 것 같아 며칠 전
해지할 생각으로 이동 통신 회사 지점 갔다가
우수 고객인데 해지하면 너무 아깝다며
만약에 새 휴대폰으로 교환할 경우 상당한 금액을
지원 받을 수 있다며 새 휴대폰으로 교환할 것을
유도하는 창구 아가씨의 열띤 설명이었다.
하지만 창구의 아가씨의 열띤 설명에도 불구하고
나도 이젠 늙어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조그만 휴대폰에 그 조그만 자판에
뭐 그렇게 많은 기능이 탑재되어 있단 말인가.
씁쓸한 웃음과 함께 나이 먹어감이
어쩔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기야 컴퓨터를 대한지 4년이 다 되어 가지만
컴퓨터를 생각하고 인터넷을 생각해도
나처럼 그것들을 원시적으로 이용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스위시니 애플릿이니 태그니 현란할 정도로
기법이 많아도 그저 겨우 문자로
내 생각을 담을 수 있을 정도뿐...
그렇다고 해서 내 자신을 기계치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른 웬만한 전자 제품을 그랬듯이 6년 전,
휴대폰을 처음 받았을 때에도 불과 한시간도 안돼
휴대폰의 기능-문자 송수신. 음성 송수신. 단축키 저장 등등...-을
다 파악한 나였으니까...
현란한 정도로 잡다한 기능이 탑재된 요즘 휴대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때의 휴대폰도 당시로서는 상당히 복잡해
우스게 소리로 걸려오는 전화만 받는다는 말이 있었다.
하지만 역시 기능이 단순한 제품에 마음이 가는 것이
어쩔 수 없는 내 고백인가 보다.
요란하게 기능 설명을 하는 아가씨를 뒤로하고
돌아서는 나를 보면 말이다.
후훗...
아마 모르긴 몰라도 앞으로도 휴대폰을 비롯해
인간에게 쥐어지는 것은 더욱 더 컴팩트화 될 것이고
기능은 더욱 더 만화경 같이 될 것이다.
그러한 세상을 살아나가려면 새 물건을 구입할 때마다
돋보기를 쓰고 깨알같은 사용 설명서를 이리 저리 뒤척하며
머리를 갸웃뚱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세상은 그렇게 눈이 핑핑 돌 정도로 변할 것이고,
나는 이렇게 점점 요즘 세상을 이해 못하고
서서히 세상에서 밀려나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후훗...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요즘 세상을
놀라울 정도의 정보 흡수력으로 대응하는
요즘 젊은이들이 일견 부럽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결코 조금 일찍 태어나 겪는 어려움에 불만은 없다.
1957년 생.
나는 내가 태어난 1950대를 사랑한다.
그것도 지독히...
가끔 곰곰이 생각해 보고는 하지만 1950년대에 태어난 것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행복한 일인지 모른다.
돌이켜 생각하면 한국의 1950년대 생은
유사이래(有史以來) 인류사(人類史)적으로 살펴보아도
인류가 출현한 이후 가장 행복한 인류 집단이라고 생각한다.
행복이란 물론 개인간의 편차는 있겠지만...
1950대 생이 행복하다는 것에 뭐 그리 거창하게
의미를 부여하느냐고 하겠지만 이제부터 하나하나
나의 설명을 음미해 보면 고개를 끄덕이리라 믿는다.
우선 50년대 생 대부분은 그 참혹한 한국 전쟁 이후에 태어났다.
지금도 그 참혹한 상혼과 상처는 우리 민족 곳곳에
아픔으로 남아있지만, 50년대 이전에 세대는
그 참혹한 전쟁을 온몸으로 겪어야했던 세대였다는 걸
생각한다면 전란을 겪은 윗 세대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전란을 겪지 않았다는 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거기에다 구 한말(韓末)로부터 일제(日帝) 강점기
그리고 해방 후 격변기에 격렬한 좌우익의
사상 갈등으로 인한 혼란기.
이처럼 50년대 생은 50년대 출생인들의 탄생 시점 목전(目前)까지
근 한 세기의 걸쳐 이어져 왔던 시련과 아픔
그리고 혼란을 겪지 않아도 되었던 세대였다.
그리고 여기에다 한가지를 더 덧 부친다면
인류사(人類史)적으로 50년대 생이야말로
유사이래(有史以來) 가장 적절하고 인간적인
과학의 혜택의 수혜자(受惠者)라는 점이다.
돌이켜 보면 우리 인간에게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십 세기에 걸쳐 수많은 도전과 시련과
그리고 좌절의 시간이었다.
원인 규명을 하지 못해 수많은 질병에
자유롭지 못한 탓에 안타깝게도 소중한 생명을
덧없이 운명에 맡겨야했으며 방한(防寒)이나 방풍(防風)을
할 수 있는 질 좋은 섬유가 개발되기 이전
혹독한 추위에 또 그렇게 생명의 위협을 받아야 했다.
불과 1세기 전만 해도 대중적인 신발이었던
짚신을 생각하면 혹한(酷寒)에 발의 건강은
또 어떠했을까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거기에다 풍수해. 폭설과 같은 자연 재앙은 또 어떠했을까.
요즘도 기상 이변으로 인한 예기치 못할 자연 재해가
그 심각성을 더해가고 있지만 그 옛날 아무런 대비책도
마련하지 못하고 맡는 풍수해. 폭설과 같은
자연 재앙은 또 어떠했을까.
물론 우리 스스로가 지구를 오염시켜 가져온
자연 재앙은 우리 후손을 위해서라도 반듯이
극복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반듯이 극복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해수(海水)를 이용한 소수 에너지.
상온(常溫)에서 핵 용합 분열 기술.
번개가 가지고 있는 엄청난 양의 전기 에너지의 축전(蓄電) 기술....
끊임없는 연구로 개발할 수 있는
무공해 대체 에너지는 얼마든지 있다고 본다.
그럼 이쯤해서 여러분들은 반문할 것이다.
지금까지 말한 혜택을 비단 50년대 생만 누리는 것이냐고...
지금까지 말한 혜택은 60년대 이후에
세대들도 모두가 누리고 있는 것 아니냐고...
그리고 앞으로 젊은 세대는 더 눈부신 문명의 혜택을 받을 건데
왜 유독 50년대 생만을 지목해 인류가 출현한 이후
가장 행복한 인류 집단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냐고...
이 글이 여기서 끝난다면 그러한 반문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50년대 생들이 진짜 행복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역사적 사실이 또 있다.
그건 바로 50년대만이 향유했던 정서적 풍요다.
그 이전의 세대나 그 이후에 세대는
전혀 경험할 수 없는 정서적 풍요.
아시다시피 50년대 생은 1960년대 70년대를
유년기 청소년기 그리고 청년기로 살아왔다.
전란. 한국 전쟁은 피한 세대라고는 하지만 모든 것이
부족한 시절을 살아온 50년대 생들이다.
그렇게 부족한 시절에 유년기 청소년기
그리고 청년기를 살아왔지만 수많은 가능성을 가진 세대였다.
기억하실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소위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이라고 불리어 졌던
경제 성장의 초기 시절.
사람들은 서서히 어떤 희망에 대한 가능성을 갖게 됐고
그리고 자신감을 갖는 모습을 어린 50년대 세대는 보고 자랐고
그들이 청년이 되었을 때는 본격적으로 제 궤도에 오른
경제 성장은 엄청난 인력난을 가져왔고 자신이 원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직업을 선택할 수 50년대 세대였다.
실제로 그 당시 한창 인력난이 심할 땐
대학 재학생들을 상대로 대기업들의
입도선매(立稻先賣)가 성행하고는 했었다.
후훗...
어차피 꺼내려는 이야기였지만 어째 이야기 순서가
뒤바뀐 것 같다는 느낌이 들지만,
어쨌든 50년대 세대는 많은 것이 부족한 세상을 살아온 세대이다.
돌이켜 보건대 하지만 한국의 50년대 세대는
참으로 아름다운 정서적 풍요를 갖을 수 있었다.
하늘을 찌를 듯 즐비하게 서 있는 새로 구획된 아파트촌이나
오래된 동네에 숨이 막히게 다닥다닥 붙어있는 연립이나
다가구나 다세대 주택의 요즘 동네 형태에 비해
그것이 한옥(韓屋)이든 양옥(洋屋)이든 낮은 처마를
나란히 마주하는 정말 인간적인 정서를
흠뻑 느낄 수 있는 동네 형태에서 50년대 세대는 자랐고,
천 수백만대의 자동차가 도로를 거리를 메꾸고
골몰을 메꿔 사람의 보행조차 힘든 요즘에 비해
골목이나 거리는 물론이고 웬만한 이면(裏面) 도로까지
차량들의 주행이 거의 없어 시야가 확 트인 길을
여유 있게 걸을 수 있는 세상을 50년대 세대는 살아왔다.
또 지금처럼 하다 못해 마을 버스까지
거미줄처럼 깔려있는 대중 교통도 모자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승용차를 갖고 있기에
단 100m를 걷지 않는 오늘 우리 현실에 비해
전철 한두 역 정도는 걸어다녔던 시절을
50년대 세대는 살아온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한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부족한 시절을 살아온 세대지만
50년대는 그 부족함 속에서 갖을 수 있는 정서적 풍요를 향유했다.
빡빡하다 못해 숨이 막힐 정도로 개발된 지금의 도시보다는
조금은 덜 세련되고 조금은 더 불편한 도시였지만
거기서 조금은 넉넉한 정신적 여유를 얻을 수 있었다.
또 50년대와 한 시절을 같이 했던 절대 독재라고
할 수 있는 군사 정권이라는 긴 터널과 같은 어두움 속에서
자신의 양심과 자유의 참 가치에 대해 진정 고민해야하는
진정 자유와 정의 그리고 인간 가치 본질에 고뇌하고
자유 민주주의를 고뇌했던 정신적인 풍요를 향유했던 세대였다.
50년대 세대는...
후훗...
그런 점에서 지금까지 수준의 문명의 혜택도
50년대 세대에게는 축복이다.
그럴 것이다.
앞으로 과학적 문명은 더욱 더 발전할 것이다.
하지만 빠르게 발전하는 과학 문명의 역기능이
지금도 나타나고 있지만 앞으로 과학이 발전하면 할수록
더욱 심해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진공관식 라디오. 아침마다 태엽을 감아 손목에 찼던 손목 시계.
TR 라디오. 커다란 가구를 연상케 하는 전축과 TV....
과학 문명이 발전하면 할수록 점점
따뜻한 인간적인 유대감이 그 색을 잃어 가는
아픈 세태를 지켜보면서 50년대 세대가 향유할 수 있었던
조금은 부족하고 불편했지만 인간의 따뜻한 손길이
함께 할 수 있기에 좋았던 지난날 과학 문명이 그래서 그립다.
후훗...
이제 축복 받은 50년대 세대의 이야기는 다 했다.
이상과 같은 내 이야기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지는 모른다.
하지만 나더러 누가
"만약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어디에 태어나고 싶냐?"고 물으면
주저 없이 1957년생 이곳 한국에 다시 태어날 거라고 말할 것이다.
그때는 조금 더 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건강한 몸으로...
作: 江熙
04.08.13.09.34.
♬ Summer Love / Giovanni Marra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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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세상에 적응을 못해서가 아니고 진정한 삶의 정서가 그 세대가 살아온 길에 많이 묻어 있음을 축복으로 압니다.... 어른들은 말씀하시죠... 그때가 좋았다고.... 모처럼의 좋은글.. 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건강하세요...
너무나 공감가는 글이네요...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