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칸영화제에서 영예의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한국의 대중음악 K-팝은 여러 나라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기생충]과 최근의 K-팝이 공유하는 특성을 알아보자. 이것은 이 문화 상품들을 이해하는 열쇠이기도 하다.
'기생충': 블랙코미디에서 스릴러를 거쳐 판타지로
[기생충]은 블랙코미디로 시작한다. 봉준호 감독 특유의 사회 비판적 코미디가 관객을 웃게 한다. 그렇게 쓴웃음을 몇 번 짓다 보면 영화는 갑자기 스릴러가 된다.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참담한 삶이 거대한 아가리를 벌린 괴물처럼 스크린에 툭 던져진다. 이 충격적 상태를 배경으로 갈등이 발생하지만 그럭저럭 봉합된다.
영화가 끝난 후에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이 봉합과 관련해서 애초에 어떤 합리적 해결을 기대할 수 있었을까. 영화는 다소 무리해 보이는 해결을 보여준다. 갑작스런 살인과 살인자의 성공적 도주. 여기서 영화 마지막 부분에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세간의 평이 입지를 가진다. 가장 많이 제기된 것은 ‘살인의 필연성 부족’이라는 평이다.
이 비평에 나름대로 변호 논리를 구성해보았다. 첫째, 영화는 앞부분에서부터 차곡차곡 그 필연성의 장치들을 쌓아놓았다. 파악하지 못한 이들이 문제(!)다. 사업하다 망한 이들의 상태와 심정을 모르는 이들은 부르주아이거나 눈썰미가 없는 사람이다.
두 번째 변호 논리에 따르면 살인과 도주, 살아남은 자의 의지 표명 등은 어쩌면 꿈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스릴러 부분에서 이미 죽은 주인공이 꾸는 꿈일 수 있다. 아니면 심하게 머리를 다친 주인공의 망상이거나. 여기서 영화가 판타지로 이행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 판타지는 [해리포터]와 다르고 [반지의 제왕]과도 다르다. 1991년 작 [퐁네프의 연인들]을 기억하는가? 이 프랑스 영화의 해피엔딩이 이상했다는 평이 있었다. 이에 부응해 그 해피엔딩이 현실의 이야기가 아니라 센강에 투신해 죽은 연인들의 처연한 판타지였다는 해석이 있었다.
[기생충]의 마지막 부분이 판타지라면, 그것은 [퐁네프의 연인들]에서 원형으로 제시되었던 종류의 판타지다. 계급 간 갈등에 주목해왔던 리얼리스트 봉준호의 디스토피아일까? 현실에서는 이제 더는 그 갈등을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어쨌든 이 영화는 한 가지 장르에 속하지 않는다. 영화의 흐름은 한 장르에서 다른 장르로 이행한다. 각 장르에서 이후의 이야기를 위한 포석들이 제시된다. 그걸 인지하는 이들과 인지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 포석들이 영화적 서사의 연속성과 인과성을 보장한다. 시나리오에 이야기의 연속성과 인과성이 아예 없는 막장 드라마를 우리는 낮게 평가한다.
융복합 시대가 도래했고 [기생충]은 장르 융복합의 훌륭한 사례로 등극했다. 최근의 TV 드라마를 봐도 융복합이 대세임을 알 수 있다. 그냥 로맨스보다는 (로맨스와 스릴러의 융합인) 로맨스릴러가 인기다. 하나의 이야기가 만화와 드라마, 영화로 쓰인 (원소스멀티유즈로서의) [치즈인더트랩]이 대표적인 로맨스릴러다.
로코, 즉 로맨틱 코미디는 로맨스와 코미디가 결합한 장르로, 이미 역사가 깊다. 블랙코미디도 코미디라는 단일 품목이 아니다. 스릴러가 신비해지면 미스터리 스릴러가 된다. 여기에 사회적 문제를 파헤치면 [붉은 달 푸른 해] 같은 문제작이 만들어진다.
역사적 미싱링크, 즉 역사가들이 밝혀내지 못한 사건에 작가가 상상력을 동원할 수 있다. 판타지 사극 혹은 팩션 사극이다. 팩션이란 팩트(fact, 사실)와 픽션(fiction, 가공된 이야기)을 결합한다. 이 개념이 있어서 이성계와 이방원, 정도전을 다룬 수많은 드라마는 [육룡이 나르샤] 같은 판타지 사극으로 거듭날 수 있었으며, 인류가 국가를 막 만들어나가던 선사시대 말의 이야기는 [아스달 연대기]로 작품화되었다.
작가와 감독이 새로운 상상력의 터전이 될 여러 현실적 소재에 깊은 지식으로 무장해야 하는 시대다. 없는 상상력을 짜내느라 광기를 보였던 전통적 예술가의 모습에, 공부하는 학자와 비슷한 모습이 결합되는 과정이랄까. 예술가의 자아에 학자적 성향이 덧붙어 마음속 시너지 효과를 내야 하는 시대다.
음악도 융복합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음악을 융복합하는 방식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최근 K-팝의 여러 노래를 살펴보자. 한 곡 안에 여러 장르를 시계열적으로 제시하는 이 방식은 [기생충]의 전개방식과 비슷하다. 대중음악에는 여러 장르가 있다.
예를 들어 소녀시대의 [I Got A Boy]는 힙합, 랩, 일렉트로닉 댄스(EDM), 발라드, 팝, 록 등 무려 9개 장르를 결합한 노래다. 빅뱅의 [Bae Bae], NCT127의 [Cherry Boom], BTS의 [MIC Drop], 트와이스의 [One More Time] 등은 서로 다른 장르들의 향연으로, 최근 10여 년 동안의 K-팝 주류를 대표한다.
[기생충]과 달리, K-팝의 여러 노래에는 상술한 포석들 혹은 이행의 연속성과 인과성이 없다. 어쩌면 막장 드라마와 성격이 같을 수도 있다. 드라마와 달리, 융복합적 노래를 막장으로, 즉 불편하게 듣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노래의 세계가 자유로워서일까.
융복합 장르, 융복합 상품 K-팝
▎융복합 시대가 도래했고 [기생충]은 장르 융복합의 훌륭한 사례로 등극했다.
벌써 오래전에 나온 노래들이다. 2013년 발매된 [I Got A Boy]는 유튜브 조회수가 무려 2억 회가 넘는다. 같은 해 결성되어 현재 세계를 호령하는 BTS, 즉 방탄소년단의 성공은 더 대단하다. 방탄의 성공은 음악 장르들 간의 융복합을 넘어섰다. 음악이 융복합적인 것이 될 수 있는 두 번째 방식이다.
오늘날 지구인들이 방탄의 성공에 도움 주는 방식들은 예전보다 훨씬 다양해졌다. 음반 구매, 포털을 포함한 음원 시장에서의 음원 구매, 콘서트 표 구매, 유튜브 조회, 캐릭터 상품 구매, 그들과의 SNS 소통, 그들이 출연한 CF 보기 등.
방탄이 팬들에게 제공하는 것을 노래로 한정해서도 안 된다. 강력하며 화려한 춤, 여러 상황을 표현하며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가사, 잘 만들어진 뮤직비디오 등은 말할 것도 없고, 방탄의 소년들이 좋아하는 모든 것, 이를테면 음식, 옷, 음악과 사진, 명소 등과 관련된 정보들이 SNS를 통해 팬들에게 제공된다.
방탄소년단의 리더 RM은 “우리는 종합선물세트(Gift Box)”라고 말한다. 방탄소년단은 다양한 상품을 다양하게 공급하는 다양한 활동을 아우르는 명칭인 셈이다.
생각해보면, 팝의 전설 비틀스도 융합적이었다. 그들은 마초적 남성들을 만족시키는 강력한 노래들과 소녀 취향의 부드러운 노래들을 모두 소화했다. 소프트 록과 하드 록을 모두 노래했으며, 귀족적이며 스마트한 분위기와 퇴폐적이며 반항적인 풍모를 모두 표현했다.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비틀스와 고전적 비틀스는 하나였다.
마약을 하며 물의를 일으켰지만 정치에 관심을 보이는 바른 생활 사나이들이기도 했다. 다만 어떤 한 곡에서 이런 대조적 측면들을 모두 결합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삶이 융합적이었다는 것이지, 그들의 노래 하나하나가 융합적이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융합만이 정답은 아니다.
비틀스가 활동하기 시작했던 1960년대부터 팝의 여러 장르는 계속 분화해왔다. 트랩(trap)이라는 장르가 있다. 2010년대에 대세가 된, 힙합의 하위 장르다. 트랩의 출현은 장르 분화가 지금도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다. 융복합이 있으면, 분화도 계속된다. 새로운 길이 열리는 분화의 중요성을 부인할 수 없다.
융복합으로 성공한 한국의 대중예술가들은 이런 분화 작업, 파헤치기 작업을 못 한 이들이다. 융복합이 화려하다면, 분화의 길을 묵묵히 가는 이들의 삶은 진지하다. 이들이 어쩌면 진정한 전문가가 아닐까. 융복합은 여러 부품 산업을 한데 아우르는, 완성차 업체와 그 경영자를 떠올리게 한다.
분화는 그런 거대한 산업을 구성하는 요소들 중 하나를 끈질기게 책임지는 장인을 떠올리게 한다. 장인은 거대 산업의 경영자를 때로는 꼼짝 못 하게 하며, 깊은 존경을 받는다. 그는 수백 년 전통을 잇고자 끈질기게 노력의 길을 간다. 융합과 분화, 어느 것 하나 불필요한 것이 없다.
김진호 국립안동대학교 음악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