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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작성한 진술서 인데요,,, 이정도면 괜찮은지 부족한부분이 있는지 잠깐만 봐주세요...
죄송합니다....
저는 1993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해 가을에 20살이란
어린나이에 지금의 신랑을 만나 결혼을 하였습니다.
일찍시작을 하고 그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새 가정을
꾸렸습니다..결혼초에는 신랑이 회사를 다니며 벌어다주는
월급으로 한푼한푼 모으면서 두명의 아이들과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결혼4년후,1997년에는 드디어 인천에
24평(분양가6600만원)아파트도 분양받고 11월에 입주하게 되었습니다.그러나 아파트 입주후,기쁨은 잠시 98년초
우리나라는 IMF라는 경제 위기가 닥치며,그 위기는
저의 가정에도 불어왔습니다. 그 당시 1500만원을 대한주택보증회사를 통해 대출받은 저는 15%이자에서 37%라는
너무도 높은이자에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결국 저희는 입주 8개월만에 전세를 주고 작은집으로 옮기면서 대출을 갚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IMF여파로 신라이 다니던 회사는
결국 부도가 나며, 하루아침에 실직이 되었습니다.
이곳저곳을 알아보았지만,쉽게 새로운 직장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여러날을 고심한끝에 집을 팔고 보증금을 줄여서
가게를 시작하기로 하였습니다.마침,작은아주머니도
실직을 하신터라 가게를 함께 얻어 나눠서 쓰기로 했습니다.
1999년 행신동에 부푼꿈을 안고 7평 짜리 사진관을 시작하였습니다. 한푼한푼이 아쉬웠기에 아이들도 놀이방조차도 보내지 못하고,5살과18개월아이와 함께 저희 4식구는 사진관으로 출근했습니다..저희 부부는 하루2~3사간만 잠을자며,낮에는 영업을하고 밤에는 전단지를 돌리며,명절도 없이 사진관에 매달려서 보냈습니다. 그리고 2000년부터
그 노력 덕분인지,저의 사진관은 소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저희 사진관은 흑자경영이 되었고,
다시 열심히 한푼한푼 모았습니다.
2000년 그러던중 상가재계약시점이 되면서 가게를 비워달라는 통보 받게 되었습니다. 형님과 가게를 나눠쓴 이유였습니다.어쩔수 없이 저희는 가게를 비워야 했고,가게 보증금이 부족했던 저희는 여런군데를 알아보던 중에 신용보증기금에서 창업자금을 대출해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그래서 저희는
국민은행과 신용보증기금을 통해 3000만원을 2000년6월에
창업자금을 대출받았습니다.
대출을 통해 임대보증금을 마련하 저희는 국민은행건물에
상가임대를 (3000만원-월60만원)영업하게 되었습니다.
사진관을 새로이 오픈하면서 부족한 금액은 소액대출과
카드를 이용하기 시작했습니다.
2년정도를 열심히 일한터라, 카드발급과 대출은 어렵지 않게 이용할수 있었습니다.친정오빠의 보증으로 2000년6월 국민은행 마이너스통장도 거래하게 되었습니다.카드발급을 했지만 이 당시에는 거래는 국민은행과 엘지카드만을 중심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그후 더욱 노력하면서 대출금도 차곡차곡 갚고 한푼한푼 열심히 모으면서 살았습니다.덕분에 국민은행마이너스대출은
2001년재연장시에는 340만원을갚고 친정오빠의보증도 해결하며 저의 신용만으로 연장하였습니다.
2001년6월에 상가 월세를 올려달라는 통보를 받고,
보증금3000만원에 월88만원으로 상가 재계약이 이뤄지면서
저희는 더욱 허리띠를 졸라맸습니다.남들이 휴가다닐때
홍보를 다니고 남들이 좋은 것을 먹을때도 저희는 아이들이 건겅하게 크는 것으로 배불러야 했습니다.
그러던중에 부동산을 하시던 저희형님께서 집값도 많이
하락했고 금리도 아주 낮으니 월세살지 말고 집을 매수하라는 제의를 받았습니다.당시 저희는 보증금1700만원에 월50만원 월세를 살고 있었습니다.2001년 12월에 저희는 하나은행에 9800만원대출을 받아서 1억1500만원의 집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이때까지는 사진관도 그럭저럭 운영이 되고 있는터라
아무문제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2002년에 다시한번 나라에 경제 위기가 불어오기 시작하면서 소비심리는 위축되고, 주위에는 사진관도 여러곳이생겨나면서 운영이 급속도로 나빠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국민카드와엘지카드만을 사용하던 저는 카드사용을 어쩔수 없이 늘리게 되었고,사진관 운영을 메꾸게 되었습니다.
그러던중,가게세는 130만원으로 올리게 되었고,먹고사는 문제가 아닌 가게세를 내기위해 가게영업을 하게되었습니다.그래도 열심히 노력하면서 조금씩의 부채와 카드이자,
대출이자를 상환하면서 지냈습니다.
그러나 2002년여름부터는 상황은 더욱 악화되면서
소비심리도 완전히 바닥을 치고,사진관운영은 카드현금써비스가 아니면 이자조차 충당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카드써비스를 받아서 가세세를 내야 했고,이자를 내야 습니다.
한도를 최대한 이용하여 국민카드에서 엘지카드로,엘지카드가 결제가 되면 다기 한미카드로,작게는 100만원부터 300만까지현금써비스를 이용해서 카드결제를 돌려막기 시작했습니다.현재의 부채는 거의가 현금써비스를 이용하며 생긴 부채였습니다.상황이 안좋을땐 카드가 아주좋은 유혹이였습니다.
1개로 시작된 카드는 이자에 이자를 갚으며 가게세를 충당하며 어느새 6~7개가 되어서 소위 카드돌리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쓴돈은 없으면서 금방 카드빚은 2,3천만원이 되었습니다.
이자가 너무 무섭더군요,이카드 연체 안되려다 저 카드로 메꾸고,결국은 신랑카드도 함께 돌려 막기를 시작했습니다.
정말 너무도 힘든나날이 연속이었습니다.이용할 수 있는 카드란카드는 전부사용하게 되었고 최대한 대출도 알아봐야 했습니다.
롯데캐피탈과현대캐피탈을 이용해서 카드대출500여만원을받고,카드값을 결제하기위해 카드를 사용해야했고 또 카드값을 결제하기 위해 대출을 이용해야 했습니다.게다가,
한건물에 있던 국민은행마저 주택은행과의 합병으로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2003년
이미 아이들 교육같은 것은 포기를 해야했고,학원비가 없어서
작은아이는 유치원 대신 초등학교조기입학을시켜야만 했습니다. 그러던중에 가게세에 너무 부담을 느끼던 저희는 가게를 옮겨야 한다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사진관도 적자운영이되면서
더 이상은 운영자체가 힘들어지고,사용하지는 않아도 늘어가는 카드빚과 대출이자에 저희는 결국 신랑은 다시 일자리를 알아보게 되었고,. 다행히 보증금은 신용보증기금에 질권설정이 되있는터라 가게를 움직이는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2003년 7월에 운영하던 사진관은 접고
행신동 근처에 미용실을저는 결혼전에 취득한 미용면허증으로 미용실을 오픈하게 되었습니다.다시금 일어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또 한번 노력했습니다.저의 신랑은 채소노점을 하면서 간신히 생계를 도와주었고,저는 저대로 열심히 미용실을 운영하면서 생계를 이었습니다.
그러나 저희가 버는돈보다는 카드이자가 더욱 많았습니다.
눈두덩이처럼 늘어난 수천만원의 카드부채는 더 이상 감당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면서 친정동생카드까지 이용하여서 1500만원이란돈도 차용하게 되었습니다. 그 또한 카드결제를 사용하기 위해
빌리게 되었고,계속고리에 고리를 물면서 카드부채는 좀처럼 줄지 않았습니다. 결국,,
2003년 12월말에 저희부부는 신용불량이 되어버렸습니다.
갚다갚다 지친 저희는 차라리 워크아웃을 통해 빚을 탕감 받기로 했습니다. 울기도 많이 울고 지나간 4년이 참 후회도 되고,사회가 이렇게 어려워진것에 대해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 돈이 쪼들리다 보니 신랑과의 불화도 잦아지고,
이혼위기까지 몰렸습니다.하지만,누구의 잘못도 아니기에
서로를 용서하고 더욱 열심히 살기로 맘먹고,하나씩하나씩 정리하기로 했습니다.우선 집을 팔고 작은곳으로 이사하기로 하였습니다. 집을 팔아서 동생에게 차용한 1500만원을 변제하기로 하였습니다.저희로인해 동생을 힘들게 할순 없었습니다.
시세보다 저렴하게 거래하려했지만 겨울이라서 매매는 좀처럼 쉽지않았습니다. 그러던중에 동생은 어차피 싸게 팔거면
자기가 구입하겠다고해서 1억2천만원에 매매하였습니다.
2004년2월5일동생카드부채1500만원변제하였고
그중9800만원은 하나은행에 변제하였고,남은금액700만원은 저희집을 얻는 보증금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저희는
나머지카드부채는 열심히갚기로 하고 2004년 2월11일에 신용회복위원회에 신청을 하고,지원확정을 기다리기로 하였습니다.시간은 흐르고 2004년4월 지원확정을 통보 받았습니다.
너무도 기쁜마음에 5월에는 교육을 받으며 이제 다시 시작이다짐에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2004년4월 미용실손님의 소개로 아모레 카운셀러라는 부업또한 접하게 되었습니다. 단지 가계에 보탬이 된다는소리에
바로 시작을 하게되었고,화장픔을 팔고 남은 이익을 월급받는 조건이었습니다. 작은 돈이라도 벌수있다는 이야기에 기쁜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그러나 5개월이 지나자 제게 남은건 300만원이 좀 안되는 아모레 부채였습니다.월100만원매출에
급여가 30만원나오는데 100만원 매출이 안되면 결국 미리 매출을 맞춰야하고 그러면서 매입이 안되면서 280만원이란 부채를 생기고 말았습니다.하루에 적은돈이라도 입금시키려고 보니 미용실은미용실대로 화장품은 화장품대로 영업이 엉망이었습니다. 다단계아니 다단계속에 들어가서 결국 부채만 만든 경우였습니다.설상가상으로
지원학정 통보를 받은후,저희는 어쩌구니없는 소식을 접했습니다.동생이 매매한주택을 신용보증기금에서 가처분신청을 한 것 입니다.동생은 난리가 났고,저희또한 신용보증기금으로 계속 항의를 했습니다.그러나 시기적으로 제가 집을 판 시기와 신용회복신청으로의 시기가 비슷했다며 고의적으로 명의를 바꿨다는 말도안되는 이유로 무시 되더군요..그런돈있음 부채나 갚아야죠..
그때도 저는 신용보증기금대출로받은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그러나 이중장치를 한다며,신용보증기금은 저희를 괴롭혔습니다. 가처분금지신청에대한 의의신청또한 큰 돈이 드는 이유여서 저희는 일단 대출 만료 기간까지 기다리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신용회복위원회의 도움을 받아서 카드부채를 월50만원씩 상환할수 있었습니다. 미용실은 그리 잘되는 편은 아니었지만 열심히 일하면서 생활비에 아이들 교육비에,
이자에 지낼수 있었습니다.아모레화장품도 될 수있음 조금이라도 갚아나가고 있었습니다. 벌어서 이것저것 결제를 가게세는 조금씩밀리게 되었지만,다행히주인은 이해를 해 주셨읍니다. 밀린 가게세와 신용보증기금을 통해 받은대출은 다시 신용회복위원회에 재조정하기로 결심하고 열심히 워크아웃에 상환하고 있었습니다.가처분금지도 해결될수있다는 믿음도 있었습니다.
2005년6월,저는 신용보증기금에대한 대출도 워크아웃에 추가조정신청을 했습니다.미용실을 비우면 돈벌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게 되므로 어떻게든 미용실을 유지하려 했습니다.
그 당시 저의 수입으로 남편의 부채와 월세,저의부채를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조정신청 후,,
날벼락같은 소식이 접해졌습니다.2005년8월 결국 신용보증기금에서는 동생집을 강제경매신청 하였고,동생은 저 때문에
전재산을 날릴 위기에 처했습니다.여기저기알아보았지만,
방법은 없었고,그 당시 동생은 결혼 날짜를 잡은터라 충격은 더해갔습니다. 저를 도와주려다가 일이 꼬여 버렸고,
아직 대출기한도 남은 신용보증기금도 이해가 안되었습니다.
저도 최대한 갚으려고 노력도 했거 워크아웃에 신청되면 정말 끝까지 최선을 다해 갚아나가려고 했으나.신용보증기금은
기회조차 주질 않았습니다.
경매로 넘어간 동생집을 대신해서 저와신랑은 동생에게 돈을 갚을 수밖에 없었습니다.그나마 동생이 사정을 생각해 주어서
한달에 50만원씩 이년동안 갚으라고 하며,나머지금액은
탕감해주기로 하였습니다.2005년9월
결국 다시 워크아웃은 실효가 되었고,가게는 가게대로
신용보증기금에서 해지하면서 나머지부채또한 12월경매를 통해 차감하였습니다.결국 사업장,집,,모조리 가져간 후,
원금 340만원 남았다고 이야기 하더군요.그리고 이자700만원남았다고,,,정말 씁씁했읍니다,앞으로 어떻게 살라구 하는건지,,,
그와중에도 돈을 상환하다가 못하니 여기저기서 추심도 들어오고, 롯데카드에서는 유체동산압류까지진행하고 그러면서 저희는 친정에서 기거하게 되었습니다.아모레에서는 지급명령보내고,,
2006년11월현재
동생돈을 조금이나마 열심히 갚기위해 저와 신랑은
온갖 노점장사를 하며,생활비와 돈을 갚았습니다.
현재는 신랑이 벌어오는 120만원의 급여와 제가 아르바이트를 간간히해서버는 50만원의 수입으로 저의5식구가 지내고 있습니다.더 이상 늘어나는 부채를 감당하기에 너무 커서
결국 파산신고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왜 사람들이 빚 때문에 결국 목숨을 잃는지도 이해가 넌무도 되었습니다. 식구들에게도 너무 면목없고...친정의 도움으로지금은 친정에서 기거하고 지내고 있습니다.
저의결혼13년안 저의사랑하는 가족밖에는 없습니다.제가가족을 지킬수있도록
판사님께서 도와주세요,,,열심히 살겠습니다.
첫댓글 법률까페로 방문하시면 진술서 작성요령을 설명해 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