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胡人 漫散이 동(東) 混同江에도 있고, 서(西) 萬里長城에도 있다 [1편]
2023년 09월 06일
○ 오늘의 주제(主題)는, 조선(朝鮮) 초기(初期) 명(明)나라와 다툼을 벌였다던 “만산군(漫散軍)”에 대한 여러 사서(史書) 또는 사료(史料)를 가지고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역사통설(歷史通說)【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친일사관親日史觀)】에서, 만산군(漫散軍)에 대한 설명(說明)을 보면 :
(1) 만산군(漫散軍) [위키실록사전] : 동의어(同義語) / 만산군(漫散軍)=도군(逃軍)=만산군인(漫散軍人)=만산군민(漫山軍民) : 《고려말 홍건적에게 포로로 끌려가서 명나라 동녕위(東寧衛)의 군정(軍丁)으로 편입되었다가 정난(靖難)의 역(役) 때 조선으로 도망쳐 나온 고려인이다. 만산군(漫散軍)은, 명(明)의 요동도사(遼東都司)가 관할하는 동녕위(東寧衛) 소속 고려인들이었다. 이들은 요동의 몽골 세력 호발도(胡拔都)가 1382년【고려 우왕 2】에 고려에 내침하였을 때 포로로 끌려가 요양 지역에 거주하다가 명의 동녕위에 편입되었다. 그중에는 조선에서 도망쳐 스스로 군역에 편입된 자도 있었다.
동녕위 소속 고려인들은 홍무(洪武) 연간(1368∼1398년)에 30,000여 명이었으나, 영락 시기가 되면 만산군만 40,000명에 달하였다. 당시의 요동 인구 가운데 고려인은 대략 30%를 차지할 정도의 규모였다. 그들의 거주지 분포는 서쪽으로 요양(遼陽), 동쪽으로 개주(開州), 남쪽으로 해주(海州)와 개주(蓋州)였다.》고 설명(說明)하고 있다.
(2) 「‘고전번역원’의 DB ‘주(註)’ 및 한자 사전」에서 설명(說明)하는 것을 보면 :
➀ 만산군(漫散軍) : 도망하여 온 군사. 【태종실록(太宗實錄)】
➁ 만산군(漫散軍) : 명(明)나라 요양(遼陽)지방에서 도망쳐 조선으로 나온 옛 고려의 동북면(東北面) 인민. 우왕(禑王) 때 호발도(胡拔都)에 의해 납치당하여 명(明)의 동녕위(東寧衛) 군정으로 편입되었다가 건문제(建文帝) 연간에 고국인 조선으로 대거 도망하여 왔음. 【태종실록(太宗實錄)】
➂ 만산군(漫散軍) : 중국 명(明)나라에서 도망쳐 나온 옛 고려의 동북면(東北面) 인민(人民) 가운데 소환된 사람들을 가리킴. 고려 우왕(禑王) 때에 호발도(胡拔都)가 칩입하여 명나라 요양(遼陽) 지방에 끌려갔던 고려인과 여진인인데, 동녕위(東寧衛)의 군정으로 편입되었다가 건문제(建文帝)와 영락제(永樂帝)가 제위(帝位) 다툼을 벌이는 난세(亂勢)를 틈타 고국인 조선으로 대거 도망하여 왔음. 【예종실록(睿宗實錄)】
➃ 만산군여(漫散軍餘) : ‘명(明)나라에서 도망쳐 조선으로 나온 옛 고려(高麗)의 인민(人民) 가운데 아직 소환되지 않은 나머지 사람들’ 고려 우왕(禑王) 때 호발도(胡拔都)의 침입으로 명(明)나라 요양(遼陽) 지방에 끌려갔던 고려인과 여진인인데, 혁제 연간【革製年間 : 建文帝】에 조선으로 도망쳐 왔으나, 명(明)의 요구에 의해 수차에 걸쳐 소환되고 남은 사람들을 말함.
➄ 만산군(漫散軍) : 고려 말 홍건적에게 포로로 끌려가서 명나라 동녕위(東寧衛)의 군정(軍丁)으로 편입되었다가 정난(靖難)의 역(役) 때 조선으로 도망쳐 나온 고려인.
➅ 만산군(漫散軍)[네이버한자사전] : 병역이나 부역을 피하여 흩어져 달아난 군정.
《朝鮮太宗實錄 5, 3年2月丁卯 : 取漫散軍所買馬, 王迷失帖言, 今天下已一家, 何以取漫散軍之馬乎. 館伴對曰, 天下一家, 何以推漫散軍乎. 迷失帖乃笑……遣參知議政府事黃居正于京師, 進解送漫散軍人奏本也. : 도망온 군사가 산 말[馬]을 취(取)하니, 왕미실첩이 말하기를, “지금 천하가 이미 한 집[一家]이 되었는데, 어째서 도망온 군사의 말을 취하는가?” 하매, 관반(館伴)이 대답하기를, “천하가 한 집이 되었는데, 왜 도망온 군사는 추쇄하는가?” 하니, 미칠첩이 웃었다. 이무(李茂)가 임금께 아뢰니, 임금이 빙긋이 웃으며 말하였다. “도망온 군사를 무얼 반드시 낱낱이 다 줄 필요가 있겠는가? 이름을 기록한 자만 주라.”》라고 하였으며,
《朝鮮睿宗實錄 6, 元年 6月辛巳》 : 前此本國平安之民, 逃賦役者, 流入於彼, 東自開州, 西至遼河, 南至于海, 盖州聚落相望, 不知幾千萬人. 永樂年間漫散軍, 凡四萬餘人, 近年遼東戶口, 東寧衞居十之三. 若無長墻, 則野人出沒, 誠可慮也.(漫散軍) : 이보다 앞서 본국 평안도(平安道)의 백성 가운데 부역(賦役)에서 도망한 자가 저곳에 흘러 들어갔으니, 동쪽으로는 개주(開州)로부터 서쪽으로는 요하(遼河)에 이르고 남쪽으로는 바다에 이르러, 대개 고을의 취락(聚落)이 서로 바라보이는데, 몇천만 명이나 되는지 알지 못합니다. 영락(永樂) 연간에 만산군(漫散軍)은 모두 4만여 인이었는데, 근년(近年)에 요동(遼東)의 호구(戶口) 가운데 동녕위(東寧衛)에 십분의 삼이 살고 있습니다. 만약 장장(長墻)이 없다면 야인(野人)이 출몰(出沒)할 것이니 진실로 염려스러운 일입니다》라고 하였다.
➆ 만산군(漫散軍) [위키실록사전] : 만산군(漫散軍)·도군(逃軍)·만산군인(漫散軍人)·만산군민(漫山軍民) : 고려말 홍건적에게 포로로 끌려가서 명나라 동녕위(東寧衛)의 군정(軍丁)으로 편입되었다가 정난(靖難)의 역(役) 때 조선으로 도망쳐 나온 고려인.
만산군은 명의 요동도사(遼東都司)가 관할하는 동녕위(東寧衛) 소속 고려인들이었다. 이들은 요동의 몽골 세력 호발도(胡拔都)가 1382년(고려 우왕 2)에 고려에 내침하였을 때 포로로 끌려가 요양 지역에 거주하다가 명의 동녕위에 편입되었다. 그중에는 조선에서 도망쳐 스스로 군역에 편입된 자도 있었다.
동녕위 소속 고려인들은 홍무(洪武) 연간(1368∼1398년)에 30,000여 명이었으나, 영락 시기가 되면 만산군만 40,000명에 달하였다. 당시의 요동 인구 가운데 고려인은 대략 30%를 차지할 정도의 규모였다. 그들의 거주지 분포는 서쪽으로 요양(遼陽), 동쪽으로 개주(開州), 남쪽으로 해주(海州)와 개주(蓋州)였다.
➤ 위의 글 ‘➀∼➆’ 에서 설명(說明)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만산군(漫散軍)”의 실체(實體)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만산군(漫散軍)이란?
➊ 첫 번째는, 「고려(高麗) 말 홍건적(紅巾賊)에게 포로(捕虜)로 끌려가서 명(明)나라 동녕위(東寧衛)의 군정(軍丁)으로 편입(編入)되었다가 정난(靖難)의 역(役) 때 조선(朝鮮)으로 도망쳐 나온 고려인(高麗人)」을 말하는 것이고, 【홍건적(紅巾賊)은 : 1.359년 12월에 침공하였으나 1,360년 2월 패퇴(敗退), 1,361년 10월에 2차 침공(侵攻)이 있었으나 1,362년 1월에 패퇴(敗退) : 더불어 AD 1,362년 1월 18일 새벽, 고려(高麗)의 2십여만 병력은, 홍건적(紅巾賊)을 공격, 이 전투에서 수장(首長) 사류와 관선생을 비롯한 10만여 명이 사살되고, 원(元)나라 황제(皇帝)가 지니던 전국옥새(戰國玉璽)를 비롯한 무수한 전리품을 챙겼다고 전해지는데, 홍건적(紅巾賊)의 한반도(韓半島) 고려(高麗) 침공(侵攻)은, 이해불가(理解不可)한 불가사의(不可思議)의 미스터리(mystery)다.】
➋ 두 번째는, 「요동의 몽골 세력 호발도(胡拔都)가 1382년【고려 우왕 2】에 고려에 내침하였을 때 포로로 끌려가 요양 지역에 거주하다가 명의 동녕위에 편입되었다. 그중에는 조선에서 도망쳐 스스로 군역에 편입된 자들도 포함되었다.」라고 말하며,
분명한 것은 ‘호발도(胡拔都)’는 여진족(女眞族)이었다는 사실이며, 『[胡拔都] [한국고전용어사전] : 여진(女眞) 추장. 처음에는 독자적으로 그 세력권을 넓히기 위해 활동하였으나 후에 명(明)나라에 항복하여 명나라의 세력을 업고 고려(高麗) 우왕 8년(1382)과 동왕 9년(1383)에 동북면(東北面)에 대거 침입하였는데, 이성계에게 격퇴당하였다.』고 하였다.
➌ 세 번째는, 「병역이나 부역을 피하여 흩어져 달아난 군정」이라고 설명(說明)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역사통설(歷史通說)” 논자(論者)들의 설명(說明)에서 “만산군(漫散軍)”에 대한 정확(正確)한 뜻이 뭐냐? 하는 거다.
➨ 홍건적(紅巾賊)에게 포로(捕虜)로 잡혀갔던 고려인(高麗人)인가?
➨ 호발도(胡拔都) 침입(侵入)【禑王 二, 1,382】때에 포로(捕虜)로 끌려간 고려인(高麗人)인가?
➨ 고려(高麗)에서 병역(兵役)이나 부역(赴役)을 피하여 흩어져 달아난 군정(軍丁)인가?
이 모두를 몽땅 두리뭉실 적당(適當)한 명칭(名稱)으로 불렸다는 것인가? 도대체 뭔가? 알 수 없는 일이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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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태종실록(太宗實錄) 13년 7월 19일 丙申 [1413년 명 영락(永樂) 11년] : 최이·연사종·김승주·이종무·조비형·윤곤·마천목 등을 외방의 군 책임자로 보내다 [出處 : 原文, 飜譯 : 고전번역원 DB]
《丙申 / 以崔迤爲西北面都巡問使兼平壤府尹, 延嗣宗東北面都巡問使兼永興府尹, 金承霔西北面兵馬都節制使兼判安州牧事, 李從茂東北面兵馬都節制使兼判吉州牧事, 曹備衡 尙州 晋州道, 尹坤 雞林 安東道, 馬天牧 全羅道, 曹恰 豐海道, 朴矩 江原道, 皆爲兵馬都節制使。 : 최이(崔迤)를 서북면도순문사(西北面都巡問使) 겸 평양부윤(平壤府尹)으로, 연사종(延嗣宗)을 동북면 도순문사겸영흥 부윤(永興府尹)으로, 김승주(金承霔)를 서북면병마도절제사겸판안주목사(判安州牧事)로, 이종무(李從茂)를 동북면병마도절제사 겸 판길주목사(判吉州牧事)로 삼고, 조비형(曹備衡)을 상주도(尙州道)· 진주도(晉州道)에, 윤곤(尹坤)을 계림도(雞林道)· 안동도(安東道)에, 마천목(馬天牧)을 전라도에, 조흡(曹恰)을 풍해도(豊海道)에, 박구(朴矩)를 강원도(江原道)에 모두 병마도절제사로 삼았다.
河崙、趙英茂、李天祐、李叔蕃等進言曰 : 하윤(河崙)·조영무(趙英茂)·이천우(李天祐)·이숙번(李叔蕃) 등이 진언(進言)하여, 帝固無心於我矣。若胡人漫散, 則東有混同江, 西有萬里長城, 故必南奔於我矣, 無備可乎? : 제(帝)가 진실로 우리에게 마음이 없다고 한다. 만약 호인(胡人)의 만산(漫散)이 동쪽으로 혼동강(混同江)에도 있고, 서쪽으로 만리장성(萬里長城)에도 있는 까닭으로 반드시 남쪽으로 우리에게로 도망할 것인데 방비하지 않아도 좋겠습니까? 하고 아뢰니, 上曰 : 是則然矣。予聞古有契丹、紅軍, 本非指我, 卒見其禍。 若以此圖之, 則可也, 不必曲生疑也。 且我以誠事大, 何疑之有! 武備, 有國之常, 宜遣武臣于外也. 故有是命。: 임금이 말하였다. : 이는 옳은 말이다. 내가 들으니 옛날 거란(契丹)과 홍군(紅軍)이 있었을 때 본래 우리나라를 지목하지는 않았으나, 마침내 그 화를 입었다. 만약 이것을 도모한다면 옳은 일이며, 반드시 곡해(曲解)하여 의심할 것도 없다. 또 내가 정성으로 사대하는데 무슨 의심할 것이 있겠는가! 무비(武備)는 나라의 상사(常事)이니 마땅히 무신(武臣)을 외방에 보내야 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명령이 있었다.》하였다.
➊ 위의 ‘태종실록(太宗實錄)에서 말하는 바에 따르면’ : “만산군(漫散軍)”이란 : 『고려(高麗) 말, 홍건적(紅巾賊)에게 포로(捕虜)로 끌려가서 명(明)나라 동녕위(東寧衛)의 군정(軍丁)으로 편입(編入)되었다가 정난(靖難)의 역(役) 때 조선(朝鮮)으로 도망쳐 나온 고려인(高麗人)』이라고 하였으니, ‘조선인(朝鮮人)’이 아닌 ‘고려인(高麗人)’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위의 태종실록(太宗實錄)에서 말하는 “호인(胡人)이 바로 고려인(高麗人)”이라는 말일까? 분명(分明)하게 기록(記錄)하기를 “호인만산(胡人漫散)”이라고 하였다.
➋ 또 이르길 “호인(胡人) 만산(漫散)”이 “동(東)쪽으로 혼동강(混同江)에도 있고, 서(西)쪽으로 만리장성(萬里長城)에도 있다”라고 하였다. [若胡人漫散, 則東有混同江, 西有萬里長城]
이 말에 따르면 : “만산(漫散)은 호인(胡人)이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고려인(高麗人)이나 조선인(朝鮮人)은 호인(胡人)이다”라는 말과 같다
물론(勿論) 다른 방향(方向)으로 발상전환(發想轉換)이 필요(必要)해 보인다.
➌ 즉(卽) “고려(高麗) 땅에서 살아가는 호인(胡人)”과 “조선(朝鮮) 땅에서 살아가는 호인(胡人)들을 말한다.”라고 보는 것이다.
이들이 홍건적(紅巾賊)에게 잡혀가고, 호발도(胡拔都)가 침공(侵攻)하였을 때, 호인(胡人)들이 호발도(胡拔都)에게 협력(協力), 호발도(胡拔都)에 붙은 자(者)들이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만산(漫散) 호인(胡人)” 또는 “호인(胡人) 만산(漫散)”이라는 말은, 이해(理解)될 수 있다.
“호인만산(胡人漫散)”
○ 위에 등장하는 『胡人』에 대해 그 정확(正確)한 실체(實體)를 찾아보자.
➊ 우선(于先) “네이버 한자사전”에서 “胡”를 검색(檢索)해보면 :
되호 / 오랑캐 이름 호 / 수염 호 【부수 ⺼ [肉] (육달월, 4획) / 모양 자 古(옛 고) + ⺼(육달월 월)】: 『오랑캐의 이름, 수염, 구레나룻(귀밑에서 턱까지 잇따라 난 수염), 턱 밑 살』의 뜻을 가졌다고 하였다.
이를 형상적(形相的)으로 보면 : 『황인종(黃人種)과는 달리 턱살이 큰, 구레나룻이 많은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인, 옛 몽고인(蒙古人)과 서방(西方) 종족(種族)들을 말하는 것이다. 즉(卽) 코가 높고 크고, 풍채(風采)가 크고, 구레나룻이 많은 색목인(色目人)』을 지칭(指稱)하는 말이다.
➋ 홍자옥편(弘字玉篇) : 『胡』: ‘蒙古地方 民族 胡’라고 하였다.
호원(胡元) : 원나라를 북호(北胡)라고 해서 비하(卑下)하는 말,
호인(胡人) : 북방(北方) 또는 서방(西方)의 이민족(異民族),
호진(胡塵) : 북(北)쪽 사막(沙漠)에서 일어나는 황진(黃塵),
호풍(胡風) : 북(北)쪽 오랑캐 땅에서 부는 바람을 뜻한다.
호가(胡笳), 호궁(胡弓), 호금(胡琴), 호마(虎麻), 호마(胡馬), 호마의북풍(胡馬依北風), 호종(胡種), 호초(胡椒) 등 ‘호(胡)’와 관련(關聯)된 말은, 모두 “본래(本來)의 만주(滿洲), 북방(北方), 서방(西方) 땅에서 일어나는 현상(現狀)이나 산출(産出)되는 토산물(土産物), 인종(人種) 등과 관련(關聯)되는 것들이다.
곧 “호(胡)”란 “한반도(韓半島) 북방지대(北方地帶) 또는 동북아(東北亞) 땅과는 전혀 관계(關係)가 없다.” “호(胡)”는 중원(中原) 대륙(大陸)의 서(西)쪽과 서북방(西北方) 사막지대(沙漠地帶)에서 살던 흉노(匈奴) 및 그 ‘서방(西方)=서역(西域)’ 땅에 살고 있었던 이민족(異民族)들을 지칭(指稱)하는 말이다.
➌ [維基百科,自由的百科全書] : 『胡』 : 《統稱 “胡人”:漢族對中原地區北部和西部的少數民族的統稱,例如五胡十六國,五胡指的是匈奴、鮮卑、羌、氐、羯五個民族。》이라고 하였다. 즉(卽),
오늘날의 중국(中國)에서도 “호(胡)”는, 중원(中原) 땅을 중심(中心)으로 그 북방지대(北方地帶)와 서방지대(西方地帶) 민족(民族)에 대한 호칭(呼稱)이었다는 것이다.
즉(卽) 『오늘날의 만주(滿洲) 땅인 요녕성(遼寧省)·길림성(吉林省)·흑룡강성(黑龍江省) 땅과는 전혀 관계(關係)가 없다』고 설명(說明)하고 있다. 예를 들면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에서의 흉노(匈奴), 선비(鮮卑), 강(羌), 저(氐), 갈(羯)등의 종족(種族)을 지칭(指稱)한다고 말하는데, 이는 곧 서방종족(西方種族)들이다.
따라서 한반도(韓半島) 또는 그 북방지대(北方地帶)인 현(現) 만주(滿洲) 땅과는 전혀 관련(關聯)이 없는 종족(種族)이자 부족(部族)들이다.
※ 우리말 중에서 “호로자식(胡虜子息)”【표준어 : 호래자식, 후레자식 : 이는 호로자식(胡虜子息)이 전음(轉音)된 것이다】이라는 말이 있다. 병자호란(丙子胡亂) 때의 공녀(貢女) 또는 포로(捕虜)로 끌려갔던 여인(女人)들이 교섭(交涉) 끝에 돌아왔는데, 조선(朝鮮)에서는 이들을 지칭하여 “환향녀(還鄕女)”라고 불렀고, 특히 이 여인(女人)들이 출생(出生)한 아이들에게 “호로자식(胡虜子息)”이라고 불렀다고 하였다. 또한 이때 청(淸)에 빌붙어 부역(附逆) 매국노(賣國奴)가 된 자(者)들에게는 “호로자식, 호로새끼”라고 불렀다고 전해진다.
오늘날의 ‘중국(中國)’에서도 “호(胡)”는, 중원(中原) 땅을 중심(中心)으로 그 북방지대(北方地帶)와 서방지대(西方地帶) 이민족(異民族)에 대한 호칭(呼稱)이었다는 것이다.
곧 이들 ‘환향녀(還鄕女)’들은, 오늘날의 동북삼성(東北三省) 땅으로 끌려갔던 것이 아니라, ‘막북(漠北)과 서북방(西北方), 서방지대(西方地帶)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것이다. ‘호(胡)’는 동북아(東北亞) 땅에는 존재(存在)하지 않는 종족(種族)이기 때문이다.
➍ 통전(通典)[唐, 杜佑] 西戎 “烏孫” 편의 주석(註釋)을 살펴보면 : ‘호인(胡人)’에 대한 아주 자세(仔細)한 설명(說明)을 기록(記錄)해 놓았다. 즉(卽), 이르기를 :
《烏孫於西域諸戎其形最異.今之胡人,青眼赤髭鬢,狀類彌猴者,本其種也 : 오손(烏孫)은 서역(西域)의 여러 오랑캐(戎) 중에서도 그 형상(形相)이 가장 기이(奇異)하다. 지금의 호인(胡人)인데, 청안(靑眼 : 푸른 눈동자)과 콧수염(髭)과 귀밑털(鬢)이 붉은색이며, 형상(용모)이 원숭이(獼猴 : 미후) 종류와 같은데, 그 종(種)은 본래 그러하다》라고 하였다.
곧 호인(胡人)은, 서융(西戎)【서방종족(西方種族)】들 중에서도 가장 기이(奇異)한 형상(形象)을 하고 있는데, 「눈동자(眼)는 푸르고(靑), 콧수염과 귀밑털이 붉고, 원숭이처럼 많은 털로 얼굴이 덮여 있는 그런 면모(面貌)를 가지고 있다」라고 하였다.
곧 색목인(色目人)들을 칭하는 말이다. 『본래(本來)의 몽고족(蒙古族)과 똑같은 형상(形象)이다.』 이렇게 시대(時代)를 뛰어넘은 기록(記錄)에서, 같은 내용(內容)을 말하고 있다는 것은, 같은 종족(種族)들을 말하는 것이다.
➎ 연행록(燕行錄) : 薊山紀程 5권, 附錄 山川 조(條)를 보면 :
연행기사(燕行記事)【이갑(李坤) : 영조 13년(1737)-정조19년(1795) 6월 4일】 : 《몽고인(蒙古人)은 청인(淸人)과는 아주 다르게 생겼다.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눈이 푸르며, 수염이 붉다.》고 하였다. 즉(卽) “호인(胡人)”과 똑같은 면모(面貌)와 형상(形象)을 말해주고 있다.
➏ 연행록(燕行錄) : 燕途紀行 上【麟坪大君 ; 이요(李㴭)】에서 이르기를 :
《孟冬。余扈今上孝廟潛邸時.曁昭顯.從淸人獵於建州之牛毛嶺. : 10월에, 나는 금상(今上) 【효종(孝宗)이 잠저(潛邸)에 있을 때】과 소현세자【昭顯世子 : 인조(仁祖)의 장남(長男)】를 호종(扈從), 청인(淸人)을 좇아 건주(建州) 우모령(牛毛嶺)에서 사냥(獵)을 했다. 嶺卽渡遼時吾東營將金應河死節地. : 이 고개(嶺)는 곧 요동(遼東)을 건너갈 때, 우리나라 영장(營將) 김응하(金應河)가 절사(節死)한 곳이다. 陰山大獵.縱云壯觀.露宿霜雪.驅馳氷路.喫盡苦狀.還到瀋陽。: 음산(陰山)에서 하는 큰 사냥이 비록 장관이라고는 하나, 서리와 눈 위에서 노숙(露宿)하며 얼음길을 달려 다니노라니 고생이 심하였다.》라고 하였다.
➨ 즉(卽), 「건주(建州) 우모령(牛毛嶺)은 음산(陰山)에 있다」라는 뜻이다. 반도(半島) 북방(北方) 땅과는 전혀 관계없는 “일만(一萬) 리 서(西)쪽 땅”의 이야기다. 【원전(原典)에서 이르기를 : “음산(陰山)은 천산(天山)”이라고 하였다.】
일록(日錄) 서(序) : 《粤惟丁丑之兵.邦運不幸.乘輿去邠.江都淪沒.萬姓魚肉. : 생각하면, 정축년[1637, 인조 15] 병란(兵亂) 때는 나라의 운수가 불행해서 임금이 수레를 타고 도성을 떠났으며, 강도【江都 강화(江華)】까지 함락되어 모든 백성은 어육(魚肉)이 되었다. 于是時也.余奉今上.久在虜陣.宗社安危。間不容髮。: 이때에 나는 금상(今上)을 모시고 오랫동안 오랑캐의 진영(陣營)에 있었는데, 종묘사직의 안위(安危)는 숨 쉴 사이도 없이 다급했었다. 及夫南漢議和.靑丘賴安.而今上曁昭顯世子.竟未免沙磧之行. : 남한산성에서 화친이 맺어짐에 이르러는 우리나라가 편안할 수 있었으나, 금상과 소현세자(昭顯世子)는 마침내 청나라 사막(沙漠)에 가는 것을 면치 못했다. 余獨扈駕還都.北望遼山.只切飮泣之情 : 나는 홀로 임금을 모시고 서울로 돌아와서 북쪽으로 요산(遼山)을 바라보니, 오직 눈물 흘리는 정이 간절할 뿐이었다.》라고 하였다.
➨ 이는 곧 당시(當時)의 “후금(後金)의 건주(建州)는 사막지대(沙漠地帶)를 통과(通過)해야 갈 수 있었다”는 뜻이다. 사막지대(沙漠地帶)는 하란산맥(賀蘭山脈) 서(西)쪽으로부터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까지에 걸쳐 형성(形成)되어 있다는 것을 알면 “후금(後金)”이 어디에서 시원(始源)하는 지도 미뤄 짐작(斟酌)할 수 있다.
➐ 성호사설(星湖僿說) 제8권 / 인사문(人事門) 차한일기(車漢日記) : 《賊身長十尺目長而深赤髮鬖鬍如海毛垂肩此恐是契丹所征黃頭室韋也 : 적은 신장(身長)이 10척(尺)이나 되며 눈은 길고 깊으며, 털은 붉고 수염은 헝클어져 마치 해초(海草)가 어깨에 늘어진 것 같으니, 이는 아마도 거란(契丹)이 정벌했던 황두실위(黃頭室韋)인 듯하다.》라고 하였는데, 바로 “호인(胡人)”의 형상(形象)을 그대로 설명해 주고 있다.
이러한 인종(人種)은, 오늘날의 아랄해[Aral, 海] 서방(西方) 땅에 있는 인종(人種)들이다. 바로 ‘코카서스인[Caucasian]’이다. 이러한 이들이 바로 고전(古典) 원전(原典)에서 말하는 호인(胡人)들이다.
○ “호인(胡人)”이란 : ‘서방종족(西方種族) 및 북호(北胡)’를 말하는 것으로, 한반도(韓半島)의 북방지대(北方地帶)와는 전혀 관계없는 종족(種族)이자, 부족(部族)들이다.
그런데도 조선사(朝鮮史)에서 “호인(胡人)”들이 나오는 것은, 『조선왕조(朝鮮王朝)가 한반도(韓半島) 땅이 아닌, 대륙(大陸)의 요충지(要衝地) 땅에 있었다』 는 증거(證據)다.
○ 우리나라 말 중에서 구전(口傳)되는 호(胡)와 관계되는 많은 단어(單語)와 이야기들은 모두가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 옛 몽고(蒙古)와 서방(西方)으로부터 전래(傳來)된 것들이다.
청(淸)은, 후금(後金)으로 여진족(女眞族)이다, 이들을 가리켜 “호(胡)”라고 했으며, 옛 몽고인(蒙古人)들을 가리켜 호(胡)라고 했으며, 서방(西方) 종족(種族)들을 가리켜 ‘호(胡)’라고 하였다.
어느 날 갑자기 이러한 “호(胡)”가 한반도(韓半島) 북방지대(北方地帶)에 자리 잡게 된다. 이건 20세기(世紀)로부터 출발(出發)하는 실증사학(實證史學)을 빙자(憑藉)한 폭력(暴力)이다. 곧 실증사학(實證史學)을 빙자(憑藉)한 제국주의(帝國主義) 사학자(史學者)들에 의해 “1 만리(萬里) 서(西)쪽 땅”의 이야기가 한반도(韓半島)와 그 북방지대(北方地帶)로 옮겨져 조작(造作)되어버린 것이다.
○ “호(胡) 또는 호인(胡人)”이란 : 철목진(鐵木眞)【‘孛兒只斤 鐵木眞】을 포함한 본래(本來)의 몽고족(蒙古族) 【이들은 오늘날의 외몽골 땅과는 전혀 관계없는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와 동구라파(東歐羅巴) 종족(種族)이다.】과 서방(西方)의 융(戎)【되놈, 오랑캐, 서방종족(西方種族)】들을 말하는 것이다.
오늘의 “몽골인”들은 옛 몽고족(蒙古族)과는 거리가 먼 조선인(朝鮮人)들이며, 이들은 옛 조선왕조(朝鮮王朝)의 백성(百姓)들이었다.
○ 이러한 “호인(胡人)”들이 “한반도(韓半島) 북방(北方) 땅에 있었다는 말은, 사기극(詐欺劇)이다.” 황인종(黃人種)과는 전혀 다른 “이민족(異民族)”이라는 사실(事實)이다. 이런 이민족(異民族)을 한반도(韓半島) 북방(北方)에 옮겨 놓고 “호인(胡人)”이라고 한다면 얼마나 웃기는 이야기가 되겠나? [2편으로 계속]
2023년 09월 06일 [글쓴이 : 문무(文武)]
첫댓글 *** 대한민국 국민이나 정부가 : "내 나라인 조국과 내 민족인 한민족(조선족)을 놔두고, 일본이나 일본인, 또 미국이나 미국인을 우선시한다"면 : 이게 과연 옳은 일일까?
*** "내나라인 조국과 나의 민족인 한민족(조선족)이 항상 우선시 되어야 하고, 모든 것들은 이에 준하는 것이 옳바른 일이다" 이러한 이야기(견해, 주장, 의견등등)는 '보수나 진보'를 떠나 모두의 공통된 일일 것이다.
*** 여기서 대한민국의 보수파들을 단어의 의미대로 "보수우파"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것에는 다른 의견이 많다. 즉 [일제제국주의자들, 이들에게 부역한 부역매국노들인 친일파들이 해방된 후에 '보수'라는 이름뒤에 숨어들고, 일제시대, 해방이후의 공산주의 사상과 빨갱이 활동을 했던 자들이 보수라는 이름뒤에 숨어 들었다. 이후 이들은 "보수우파"행세를 하며, 토호세력으로, 정치인으로, 군인으로, 여러 학계로 행세한 것이 우리나라 보수우파의 정체다.]
***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자들이 있잖은가! 하면 이들을 가리켜 "보수우파"라고 하는 것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어떻게 국가를 배신하고 민족을 배신한 자들을 "보수우파"라고 부를 수 있나?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를 보면 : "진보주의자"들이 바로 "보수우파"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에는 "보수우파"라고 부를 수 있는 단체는 없다.
미합중국도 보수들과 진보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고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다. 헌데 대한민국은 어떤가?
* 독립운동가를 암살하고, 친일청산을 방해하고, 정적들을 감옥으로 보내고 살해하면서 독재정권을 휘두른 자가 보수우파냐?
* 공산주의자. 빨갱이가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탈취한 자가 보수우파냐?
* 군인신분으로 1212사태를 일으키고 광주사태를 만들고 정권을 탈취한 자가 보수우파냐?
* 대한민국 땅에서 "보수우파"라고 부르는 자들의 정체는 뭔가? *** "보수라는 말은, 자주와 자립과 민족주의가, 법치주의가, 권리에 의한 의무와 책임의 수행을 중요하게 우선시되는 것등이 바로 '보수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 헌데 대한민국의 보수우파들의 행동은 어떤가?
국론을 분열시키는 것도 보수우파냐? 법치가 있냐? 의무와 책임을 지고 있냐?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이익극대회를 꾀하고 있냐? 국가와 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모욕과 창피를 주는 것이 보수우파냐?
* 대한민국에는 '보수우파'라고 부를 만한 무리들은 없다.
이는 "역사학계"도 이와 똑같다.
오늘날의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대부라는 자들은 '일제부역매국노'들이었다.
이들 또한 보수우파라고 스스로 말한다.
이런 자들이 '보수우파'라고... ...?
대한민국 땅에는 "보수우파"가 존재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