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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 제주해군기지 백서- 나꼼수에게 강정마을 구럼비바위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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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강정8경으로 제목을 달았다면 단연1경은, 강정천이 폭포수처럼 떨어지며 바다와 만나는 '냇깍'이다.
아니다. 강정천을 사이에 두고 본격적으로 강정마을이 시작되는 이곳, 한라산을 지붕 삼아 악근내와 바다가 만나는 '붕둥이소'를 상징적으로 1경으로 삼았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강정의 힘은 강정천으로부터 비롯된다.
바다를 향한 눈맛도 기가 막히지만 쉬어가는 맛도 그만이다.
사실, 강정1경은 강정천으로 시작하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다.
그러나 강정 평화8경의 의도는 이와 다르다.
그럼에도 강정 평화8경 1,2,3경은 강정천을 벗어나지 못한다. 강정천은 그렇게 너른 품으로 유혹한다. 그냥 가면 살짝 눈을 흘긴다. 여기만한 곳이 어디 있냐고, 넙적바위 징검다리 삼아 세월아 네월아 부를 수 있는 물가가 어디 있냐고. 그래서 평화1경으로 점 찍었다가 그러나 한 수 물린다.
1경. 나의 살던 고향은 남장진소
차라리 1경을 강정천 다리 밑 풍경으로 전할까 하다가 조금 더 발품을 판다.
정갱이까지 걷어올렸다가 옷 입은채로 첨버덩 물 속으로 뛰어든 올레 아가씨는 맛뵈기만 보시고,
다리 위에서 도로를 따라 조금만 가다보면 강정천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온다.
제대로 강정천을 즐기려면 이곳 남장진소에서 웃통 정도는 벗어야 한다.
일행이 있다면 분명 누군가 한 명쯤은 동심으로 돌아가, 팬티바람으로 뛰어들 것이다.
저수지 쪽으로 올라가면 큰바위 뒤에서 알탕을 즐기는 사람도 나오니까, 눈치 볼 것 없이 부러워 죽겠다는 표정만 지으면 된다. 물 반 은어 반, 던졌다하면 낚아채는 은어잡이에겐 혀를 내두르시고.
그래서 1경은 남장진소 망중한. 고향의 맛. 그러나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1급수 올림은어는 사라진다. 은어도 사람도 고향을 잃는다.
2경. 비밀의 정원 냇길이소
냇길이소 비경. 문자 그대로 알려지지 않을수록 좋은 곳이다. 그래서 더 이상 문자를 쓰지 않기로 했다.
다만, 안내판은 이렇게 말한다.
[강정천의 수원으로서 사시사철 푸른 물을 가지고 있다. 폭포, 암벽, 은어, 깨끗한 물, 네 가지가 '길상'이라 하여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원앙과 흰뺨검둥오리가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냇길이소 옆에는 국내 최고수령에 버금가는 담팔수나무가 신목으로 있는 '냇길이소당'이 있다.]
이곳이, 강정이 지켜질 수 있도록 빌고 또 빌 뿐이다.
3경. 철조망에 걸린 맷부리
강정천 끄트머리 맷부리에 섰다. 하얗게 파도를 할키는 주상절리의 발톱으로, 해군기지를 백지화시킬 수 있다면... 멀리 구럼비가 보인다. 구럼비를 파먹는 포크레인도 보인다.
9월3일 평화비행기 때는 이곳에서 구럼비를 보는 것조차 막았다. 아예 맷부리에 오르지 못하도록 강정천에서 원천봉쇄했다. 무엇이 두려운가? 구럼비야 구럼비야 구럼비를 향해 목이 터져라 부르는게 두려운가?
평화의 섬에 그어진 또 하나의 삼팔선.
그러나 최전선은, 삼팔선은, 다른 곳이 아니라 우리 머릿속에 있다. 평화를 그리느냐 전쟁을 그리느냐 여기에 달렸다.
"이 땅이 뉘 땅인데 오도가도 못하는가?"
1961년의 피맺힌 낭만주의는 유효하다.
맷부리에서 만난 여행자에게 올레7길이 온전하다면 이곳에서부터 비로소 강정의 품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전했다. 물론 해군의 해적질에 대해서도.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며 아쉬운 듯 눈길은 철조망 너머 구럼비를 향한다. 장장 1.2Km를 한덩어리 바위로 꿈틀대며 바다로 달려나간 구럼비는 그러나 해군의 무자비한 폭력으로 조각조각 박살나고 있다. 공사중지 요청이 각계에서 쏟아져도 마이동풍이다.
그런데 지난 여름, 저 노란 부표가 떠밀려올 정도로 태풍이 몰아치는 바람에 공사가 일시 중단되었다. 참 고마운 부표다.
자세히 보았다. 쪽팔렸는지 [강정대림] 소유라는 징표에서 '대림' 표시는 가렸다. 가렸는데 읽히는 게 우습다.
해군 하는 짓이 이와 같다.
속속 몹쓸 짓이 드러나고 있다.
그래서 노란 부표를 평화3경으로 하기로 했다. 치부를 가린 철조망과 함께.
그런데 몹시 궁금하다.
해군은 정말 자신들의 행위가 적법하고 정당하다고 믿고 있는 것일까? 집에 돌아가면 다 같은 가장인데 혹시 자식들에게 부끄럽지는 않을까?
주민들을 죄인으로 만들고 자신에게는 당당할까?
이런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건 이곳 맷부리 조망권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눈 가는 곳마다 포토존이다.
만약 철조망이 없다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평화로운 올레길이 이어졌을 것이다.
어찌 청문하지 않을 수 있으랴.
파도가 부숴질 때마다 목구멍을 타고 흐르다 실밥처럼 줄줄이 터져나온다. 구럼비를 허하라 허하라 허하라..
4경. 유물유감 전망대
제주올레 공식 사이트가 일러주는 강정천 다음 길은 중덕 갈림길이다. 갈림길에선 좀 헤매도 좋다. 구럼비 가는 중덕해안길이 봉쇄된데 따른 값이 무엇인가, 내가 본 강정 평화8경으로 본격적으로 답한다.
중덕 갈림길에서 강정포구까지는 가장 느린 걸음, 올레꾼답게 간세다리로 갈 일이다. 평화를 바라는 마음 하나로, 시린 가슴으로 두근두근 갈 일이다. 완주를 위해 총총 가더라도 고개 두리번거리며 곰곰 생각해볼 일이다.
중덕 삼거리 가는 길. 강정에는 있다. 올레길을 안내하는 수위가 있다. 안내는 방패로 한다.
원래는 정면으로 서 있었는데 비켜서주기를 정중하게 요구했더니 딱 하루 주인의 말을 들어줬다.
어쨌거나 이 젋은 수위들의 호위를 벗어나자마자 바로 왼편에 있는 회색담을 넘겨볼 일이다.
유물발굴현장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레미콘차량, 덤프, 포크레인, 기중기도 눈에 잡힐 것이다. 뒤로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범섬이 눈에 어릴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아리게 눈에 박힐 것이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만나보기 힘든 진풍경이다.
전쟁과 평화처럼 발굴과 공사는 양립할 수 없지만 대한민국 해군은 해낸다.
어찌 그 장한 풍경을 기리지 않을 수 있으랴
4경으로 지정하며 하루빨리
사경을 헤매기 바란다.
5경. 가슴으로 보는 길거리 풍경
이런 거다. 멸종위기종 붉은발말똥게가 보이지 않느냐는 거.
구럼비바위가 집인데 왜 깨부수느냐는 거.
그런 법이 있으면 어디 나와보라는 거.
그때까지 일단 공사는 중단해야 한다는 거.
하나도 틀린 말 아니라는 거.
널리 알려야 될 풍경이지 않을 수 없다.
헷갈리는 풍경도 있다.
한진 정리해고 노동자가 한진 정문이 아니라 해군기지 사업군 정문 앞에서
'강정마을 살려줍서' 1인 시위를 하고있다.
사실, 하나도 안 헷갈린다.
일터에서 강제로 쫓겨난 정리해고자나, 삶을 통째로 정리해고 당한 강정마을이나. 하나도 다를 바 없으니까. 헷갈리는 풍경이 헷갈리지 않을 때까지 서로 어깨를 내어줄 일이다. 그림 참 좋지 않은가?
그렇다, 강정에는 그림이 널려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평화롭게 싸우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강정에는 하루도 빠지지 않는 평화미사가 있고 백배서원이 있고 촛불문화제가 있고..할망물 다방도 있고, 길거리 자체가 예술이다. 삶의 예술이다. 난리부르스 길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길이 보인다. 평화의 길..
아참~ 중덕 삼거리 밥집도 예술이다. 구럼비 깃발을 달고 자전거 타는 풍경도 예술이고..그 무엇보다 사람들이 예술이다. 일일이 담으려면 책 한 권이기에 손에 잡히는 몇몇 풍경만 무작위로 전한다.
해군기지 공사장 정문 앞에서
평화미사로,
릴레이 백배서원으로,
할망물 다방으로,
중덕 삼거리에서는
지울 수 없는 그리움으로,
즉석 판소리 한마당 풍자로,
국제 트리오 지원열창으로,
밤마다
남녀노소불문 동네사람들
사거리 촛불문화제로,
끝이 없는 풍경,
가슴으로 담아야 할 평화5경
해군기지반대 풍경
6경. 평화깃발
강정엔 있다. 해군기지 결사반대 깃발이 있다. 집집마다 있다. 해군기지 찬성은 애국자니까 태극기를 내건다. 딱, 두 집이다. 따라서 민주주의 풍경이라는데 이의가 없을 것 같아 노란 깃발을 6경으로 한다.
멱 감으러 가던 길, 노란 깃발이 선명한 집을 지나가다가,
베란다에 할망 하르방들이 모여 계시길래 주먹손 번쩍 치켜들고 이깁니다! 인사를 건넸다.
박수를 보내는 눈길에 함박꽃이 피어난다. 세월의 주름이 활짝 펴진다.
결코 평화꽃은 지지 않는다.
7경. 수중 평화기도
곳곳 용천수가 솟구치는 중덕해안 구럼비바위 대신 4,5,6경으로 돌아온 올레길. 전쟁과 평화 사이로 온 길, 부적절한 곳에 부당한 방법으로 해군의 성을 쌓겠다는 게 얼마나 낯 뜨거운 일인지, 강정포구 방파제 끝에 서면 알게 된다.
범섬과 문섬 사이로 떠오르는 일출에 기대어 사무치는 가슴을 태워보면, 왜 구럼비에 애를 태우는가 애간장이 타는가, 묻지 않아도 알게 된다.
그래서 강정포구 해돋이가
강정7경이다.
그러나 강정 평화7경은 따로 있다. 평화7경이 없으면 강정7경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름하여 수중 평화기도
내력은 이렇다.
구럼비 일대는 아예 접근할 수 없도록 철조망까지 둘러막았다. 유일한 통로는 바다.
누군가 구럼비바위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드렸던 새벽기도를 위해 강정포구에서 매일 헤엄쳐 갔다.
어느 날, 해군은 SSU특수부대 요원을 동원해 수중고문까지 가하며 끌어냈다.
공사방해라서 막은 게 아니다. 그 기도가 평화기도라는 걸 알기에 확산되는 걸 막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강정 평화7경은 이에 대한 헌사다.
일출을 보러 나왔다가 우연히 그 장면 가운데 서는 바람에, 얼떨결에 경찰에게 붙잡히지 않도록 잠시 시간을 벌어준 인연도 한몫했다. 어쩌면 내가 뛰어들지도 모르길래 정실로 흐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8경. 평화를 캐는 사람들.
강정포구에는 있었다. 2차 평화비행기가 있었다. 그날은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눈물났다. 사람들을 보면 기뻐서, 경찰들을 보면 슬퍼서,
포구는 그저 평화로웠다. 그저 아름다웠다. 간이화장실마저 바그다드 까페로 다가왔다. 콜링 유. 황량한 사막과 수평선이 서로 만나며, 그리움을 폴폴 날린다.
군더더기 없는 풍경, 저 정도까지가 딱 강정에 맞는 풍경이다.
역시 강정8경의 대미는 강정포구 방파제가 제격이다.
중덕 삼거리에서 만나는 올레꾼마다 부탁드렸다.
구럼비를 못 밟는 대신, 강정 포구 방파제 끝까지 반드시 가시라.
그곳에 서면, 지나온 올레7길이 한눈에 다 들어온다.
범섬, 문섬과 섶섬, 세연교와 써건도가 서로 손에 손 잡고 중덕해안 구럼비를 부른다.
결코 문섬, 섶섬 연산호는 해군을 부르지 않는다. 결코 미군을 부르지 않는다. 법환포구 해녀회장 강애심도, 써건도 모세도 결코 부르지 않는다.
이쯤에서 눈을 감는다.
문섬과 범섬 사이로 거대한 미
항공모함을 놓는다.
어떤 그림이 그려지는가?
금빛나팔돌산호가 덩실 춤을 추겠는가?
해는 다시 떠오르겠는가?
일본군이 본토 방어용으로 제주를 기지화하며 황우지 열두굴을 판 것만 해도 기가 막힌데,
자진하여 미군의 동북아 해양패권주의 전초기지로 나서기 위해 구럼비바위를 파먹다니..
강정 평화8경은 사람이다. 보말 캐는 사람들이다. 바다와 하나 되는 소박한 풍경을 결코 잃지 않을 사람들. 자연을 빼박은 사람들, 그들처럼 나 또한 이곳에 내 딸애를 데려올 것이다. 내 딸은 또 애비를 그리며 언젠가 자식들을 데려올 것이다. 그렇게 평화를 캐 나갈 것이다.
강정포구 입구에는 서귀포 시장 이름으로 <문화재 보호 안내문>이 세워져있다. 이렇게 시작된다. [위의 섶섬, 문섬, 범섬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으며..문화재는..후손 만대에게 물려줘야 할 고귀한 국가유산입니다.]
천 번 만 번 공감한다.
이 이유 하나만으로도 강정마을 사람들을 공감한다. 해군기지를 반대한다. 강정을 이대로 대대로 물려주고 싶다.
강정은 이제 국가유산이 아니라 세계유산이다.
평화문화재다.
바다의 한 자락으로 물든 평화하는 사람들과 함께, 강정 평화8경을 평화문화재 구럼비에게 전한다.
첫댓글 좋은 풍경 잘 봤습니다. 저렇게 아름다운 경치(자연)를 왜 파괴를 하는지, 에이 나쁜놈들....
무플방지해주셔서 고맙슴다^^ 지들도 사람인데 보는 눈이 없겠습니까? 안보 팔아서 해군 휴양지 만들려는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