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서울시단 90회 시수필낭송회 문집 2013, 6월 11일>에 실렸던 글입니다.
누룽지 귀신이요 !
조 시 형
난 누룽지를 정말 좋아한다.
아파서 누웠다가도
“누룽지 드세요.”하면 벌떡 일어나 밥맛없다고 투정하다가도 잽싸게 먹어치운다.
나만 그럴까?
아닌 듯하다.
우리 집사람은 그렇지도 않은 듯. 그러니 내가 좋아하는 누룽지를 자주
얻어먹을 수가 없지…….
누룽지를 좋아하고 안 좋아하고는 천성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것으로 나만이
결론을 내렸다.
왜냐하면 우리 식구들은 어렸을 적에 서로 누룽지를 차지하려고 전쟁 아닌 전
쟁을 했기 때문인데 우리 아내를 보면 별로인 것이다.
난 비아냥거리면서 “못 사는 사람들이 밥을 많이 먹으려 누룽지를 안 먹는
거지, 뭐……. “
라고 하면 “그게 뭐 맛있어요. 흰 쌀밥에 배추김치가 최고지……. 거기다가 돼지
고기 팍팍 삶아서 걸쳐 봐요, 끝내주지요……. “라고 응수한다.
난 지지 않고
“그 고소한 맛을 모르는 사람은 참말로 불쌍해…….! 영양가도 얼마나 많다고…….
그리고 또 하나, 반찬별로라도 되잖아, 안 그래? “
이렇게 우린 논쟁아닌 논쟁을 벌여왔다.
그런데 최근 아내 태도가 싹 달라졌다.
밥솥에서 식은 밥을 꺼내다가 다시 프라이팬에 넣고 누룽지를 만드는 법을
개발?한 것이다.
노릿노릿 구수한 누룽지에다 물까지 넣고 푸욱 끓여 놓으면 끝내준다.
“좋아하시는 누룽지탕 대령이요,”라고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우리 딸아이들도 “난 아빠 닮았나 봐. 엄마 미안해용…….” 하면서 신나게 먹어
주곤 했다.
어제는 아예 누룽지를 한 바구니 만들어서 책상위에 놓아둔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
“나도 먹어보니 맛이 괜찮네요…. 식성이 달라지나 보죠?”
난 맞장구치며“아무렴, 부부는 닮아가는 벱이라요, 알갔슈?”
지난번 가을에도 내가 시골 고향엘 가서 ‘지평선 축제’ 때 올깃쌀( 일명 찐쌀)을
얻어 왔는데 아낸 처음이라며 먹을 줄을 모른단다.
“세상에,,, 그 맛난 것을 모르다니,,,” 난 혀를 찼지만 사실 어려서부터 먹어보지
않은 음식이란 길들여지기가 어려운 것인가 보다. 도시 출신인 아내가 모를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올깃쌀 봉투에 약간 물을 부으면 말랑말랑 해져서 깨물기가 수월해지고 입안에
퍼지는 고소한 그 맛이란…….
난 나만 먹으려 했는데 외출하고 들어와 보니 세 봉지가 거의 없어지고 조금만
남았다.
“먹다보니 맛있어 다 먹으려다 좀 남겼는데, 담에 또 가져오시와요…….”라며
얄밉게 약을 올린다.
“흠, 뭐가 뭐 맛을 알면 남아나는 게 없다더니만…….하하하”
누룽지 하면 떠오르는 일화가 있다.
6. 25직후 시골서 자란 나는 둘째형 (나보다 12살 위 띠 동갑)을 무척 따랐었다.
그런데 형은 물고기를 잡는 일이 취미여서 가끔 멀리 원선똘 갈 때 어린 나를 데리고
가려하고 난 멀어서 힘이 드니 안 따라가려고 했다.
이 때 형이 가진 비장한 무기…….
“막내둥이야, 같이 가면 누룽지 줄~~께.”하면
“어디 봐, 얼마나 있는데요?.”
그럼 형은 어머니를 졸라서 얻어놓은 직사각형으로 잘라 만든 누리끼리한 누룽지를
한 봉지를 내 보이면서 꼬시곤 하였다. 먹을거리가 귀하던 시절에는 이렇게 손쉽게 얻
을 수 있는 하찮은 것들이 인기가 있었다.
과자며 아이스크림이 냉장고에 그득 쌓여있는 요즘…. 세월의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말하면 무얼 하리오, 씹고 물에 헹구어 생밀로 만든 껌도 씹다가 지치면 벽에 붙여놨다가
며칠간씩 다시 우물거리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요즘 압력 밥솥은 어떻게 되었는지 누룽지를 만들기에 별로인 것 같아서,
내가 “누룽지 만드는 솥은 없나요?”라고 하자 아낸 빙그레 웃는다.
“간단해요,, 좀 시간 끌어서 살짝 태우면 돼요~”
“그럼 왜 여태까지 안 만들었어요?”
“알았어요,, 이제 매일 만들어 드릴게요. 나도 맛을 알았으니까, 하하하하~~”
얄미운 짓 하고는.
그리고 며칠 전에는 큰딸네 집에 갔다 오더니 시중에서 파는 누릉지를 한 보따리
사가지고 와서 하시는 말씀, “서방니임, 맛난 누릉지 풍년 들었수다아. 에헤헤헤 ~~~ ”
웃어야 한다. 웃어야 마음이 순해지고 엔도르핀이 많이많이 나와서 오래 살 수
있다잖아요. “우하하하…….하하하... ~~~ ”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