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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와 백합
 
 
 
카페 게시글
시 해석 및 시 맛있게 읽기 스크랩 송도 앞 바다를 바라보면서/ 장기려
은하수 추천 0 조회 15 14.07.03 21:3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송도 앞 바다를 바라보면서/ 장기려

 

 

수도꼭지엔 언제나 시원한 물이 나온다.

지난겨울엔 연탄이 떨어지지 않았다.

쌀독에 쌀을 걱정하지 않는다.

나는 오늘도 세끼 밥을 먹었다.

 

사랑하는 부모님이 계신다.

언제나 그리운 이가 있다.

고양이 한 마리 정도는 더 키울 수 있다.

그놈이 새끼를 낳아도 걱정할 일이 못된다.

 

보고 듣고 말함에 불편함이 없다.

슬픔에 울고 기쁨에 웃을 수 있다.

사진첩에 추억이 있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이 그리 밉지만은 않다.

 

기쁠 때 볼 사람이 있다.

슬플 때 볼 바다가 있다.

밤하늘에 별이 있다.

그리고…… 세상에 사랑이 있다.

 

- 사랑의 의사 장기려 박사 이야기(한국일보,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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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산(聖山) 장기려 박사(1911년~1995년)는 한평생 가난하고 소외받는 사람들을 위해 헌신의 삶을 사신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리는 분이다. ‘바보 의사’라는 별칭도 갖고 있는 그는 이광수 소설<사랑>의 주인공 '안빈'의 실제 모델로도 유명하다. 생전에 그가 살았던 부산 복음병원 옥탑방은 엘리베이터가 끝나는 곳에서 다시 계단을 올라야 들어설 수 있는 곳이다. 장 박사께서는 바다가 훤히 바라보이는 그곳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은 집이라고 늘 말씀하셨다. 그곳에서 송도 앞 바다를 바라보며 쓴 시가 이것이다.

 

 한국전쟁 전 이북에서 최고의 실력을 인정받은 의사였지만 전쟁 중 평양의대학병원에서 밤새워 부상당한 국군장병들을 돌보다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국군 버스를 타고서 남쪽으로 내려온 이후 북에 남겨진 아내와 다섯 자녀를 그리워하며 눈물짓는 삶을 사셨다. 그 그리움의 눈물이 고통 받는 이웃과 사회를 향한 사랑으로 승화되었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가난과 질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병원을 설립하고 치료비가 없는 환자들에게는 직원들 몰래 도망가라고 뒷문을 열어주기까지 했던 그의 일화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치료비가 없는 환자들이 하소연하면 치료비를 자신의 월급으로 대신 처리하곤 했는데, 그 누적으로 인해 자신의 월급은 물론 병원 운영에도 어려움을 겪자 병원에선 원장의 재량권을 정지시키기까지 했다. 권한이 없어지자 이후엔 어려운 환자들을 보면 야밤에 탈출하라고 알려준 뒤 병원 뒷문을 열어 놓았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그런 분이 쓰신 시이기에 시의 행과 행간이 예사롭게 읽히지 않고 통째로 숙연해진다. 평생 유복하게 살 수 있었음에도 자족의 삶과 참사랑의 실천에서 느끼는 행복이 읽는 이의 가슴을 찌르르 전율케 한다.

 

 많은 사람들은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는 하지만 정작 돈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무 것도 없는 듯이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장기려 박사의 삶과 철학은 존경받는 사람들이 점점 줄고 있는 이때, 특히 청소년들에게 매우 소중한 롤 모델일 뿐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행복의 열쇠는 무엇이고 어디에 있는지를 진지하게 사유토록 한다. 그는 평생 혼자 살면서 가난하고 소외되고 병든 이들의 친구로 살았으나 외롭지 않았고, 평생 집 한 채 없이 병원 사택에서 살았으나 그는 사랑으로 부족함 없이 살았다.

 

 1인당 GDP가 2만 불 시대가 되면 대체로 사회가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변한다. 민주화와 개인의 인권수준도 한 단계 높아지고, 과거의 관행으로 통했던 불합리한 행태들이 없어지게 된다. 이를테면 변칙적인 부당한 돈들의 흐름이 차단됨을 의미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여전히 우리 사회는 과거의 ‘단물’과 ‘끗발’을 버리지 못하고 돈다발이 토스되고 있다. 부패에 길들여진 사이비 보수주의자들은 자꾸 옛날보다 못하다고, 옛날이 그립다고 한탄을 한다. 자기는 잘 먹고 잘 놀고 할 짓 다하면서 나라 경제가 어렵다고 걱정하는 척 한다.

 

 오늘날의 경제 위기는 풍요의 환상에 잘 못 젖어 길들여지고 있는 것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탐욕으로 물든 생활 습관과 사고방식에 일대전환이 없고는 안정된 경제도 사회도 기대하기 힘들다. 과거 ‘좋았던 시절’의 환상에 젖어 자신의 생활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적폐’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품위와 도리를 지키고 사람답게 사는 길만이 자신을 살리고 나라를 구하는 길일 것이다. 지금처럼 불우한 시대에 장기려 박사가 평생 신조로 삼은 ‘성산삼훈(聖山三訓)’이 더욱 값지게 다가온다. ‘사랑의 동기 아니면 말을 삼가라, 옳은 것은 옳다 하고 아닌 것은 아니다 하라, 문제의 책임은 항상 자신이 져야 한다.’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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