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이세돌-최철한-박영훈-박정환' 같은 '시드 전문'멤버외에 세계대회나 국내대회에 본선 단골멤버로 얼굴을 비치는 게 한국바둑의 허영호다. 본선 진출 횟수로만 따진다면 정말 상당할 것이다.
허영호 7단의 한계 아닌 한계(?)는 상징적으로 8강이다. 8강이상을 넘어 결승무대에서 활약하거나 도약을 이루고자 하는데 뭔가 '욱'하면서 컨트롤 제어에 실패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8월 6일, 허영호 7단은 제15회 삼성화재배 통합예선을 뚫었다. 상대로는 중국기사가 둘, 일본프로가 둘이었는데 그리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2010년들어 허영호 7단은 비씨카드배, LG배, 삼성화재배의 통합예선을 모조리 뚫었다. 본인 말로는 '통합예선 성적이 국내대회 성적보다 훨씬 좋다'며 웃는다.
허영호 7단을 현장에서 바로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 씨에허도 이기고 오늘 중국신예인 타오신란을 이겼다. 중국기사들한테 유독 강한 것 같다. "전에도 이런 말을 한 것 같다. 국내 신인들보다 중국기사들이 더 편하다고. 중국기사들을 만났을 때 승부욕도 더 생기니까 결과가 좋았던 것 같다."
- 허영호 7단의 통합예선 과정은 방송이나 인터넷으로 대부분 공개됐다. 이게 부담이 되지는 않았나? "11시부터 시작하는 바둑TV대국은 솔직히 부담이 좀 됐다. 인터넷으로 중계되는 대국은 평소에도 적응이 돼서 그리 부담되지 않았다."
- 통합예선에서 모두 본선에 진출했다는 건 역시 중국에 강했다는 것 아닌가? 중국기사 킬러의 면모도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따져보면 50%를 좀 더 상회하는 정도일 것이다. 본선에 가면 더 강한 기사를 만나게 되는데 거기서 정말 좋은 성적을 올려야 한다. "
- 허영호 7단은 8강이 항상 고비였던 것 같다. (미안한 표현이지만)8강전문 같은 느낌이랄까. 본선진출횟수에 비해 8강이상의 성적이 많이 없어서 ... "후. 나도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다. 2판만 더 이기면 고지가 눈 앞인데.."
- 삼성화재배는 아니지만 한국물가정보배에서도 8강에서 그쳤었다. 이세돌 9단과의 대국이었는데. "그때는 내가 좀 흥분했었다. 기권패를 바란 건 전혀 아니었고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이세돌 9단이 오랫동안 오지 않자) 바둑TV 스튜디오 주변의 반응이 끓게 만들었다. 절대 지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상당히 유리했던 바둑이었고 마지막까지도 이길 찬스가 더 많았던 바둑이었는데 후반으로 갈 수록 울분이 받쳐오르면서 감정의 제어가 안됐다.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 음, 예전에 보면 콩지에 9단이 초읽기 상황에서 유리한 바둑을 망치는 경우가 많았다. 공교롭게도 춘란배 8강에서 콩지에랑 만나게 된다. "춘란배는 아직 남은 시간이 많으니까... GS 8강에서도 아깝게 졌다. 꼭 초읽기 때문만은 아니고, 쉽게 생각하다가 후반에 뭔가 역전을 허용하는 것 같다. 냉정하게 두다가도 도중에 흔들리는 것 같다. 초읽기까지 겹치면 더할 것이다. 요즘엔 시간안배에도 노력하고 있다. 3시간짜리면 초읽기 걱정은 거의 안한다. 2시간짜리 바둑은 초읽기를 신경쓴다. 8강 스트레스는 돌파해야 한다."
- 삼성화재배 본선 (더블 일리미네이션) 방식은 맘에 드나? "공정해 보인다. 누구와 편성이 되더라도 운에 맡길 일은 없으니까. 다만 너무 피곤하다. 두 판 두고 하루 쉬면 좋을 거 같다. 통합예선도 매일 두니까 피곤하긴 하지만, 본선에 참가한 프로들의 레벨(준비자세)이 다 높으니까 더 피곤하다."
 - 오늘 판은 어땠나? 전날에 뒀던 씨에허 판도 힘들었을 거 같다. "초반부터 데굴데굴 구르다가 중반에 씨에허가 공격을 이상하게 하는 바람에 이길 수 있었다. 씨에허를 이기니까 동료들이 금방 본선에 진출한 것처럼 이야길 했는데 오늘 만난 타오신란도 씨에허와 차이가 전혀 없었다. 오늘도 데굴데굴 구르다가 겨우 이겼다. (이름도 잘 모르는 신예인데, 게다가 94년생) 너무 잘 둬서, 정말 갑갑했다. 미치는 줄 알았다. "
◀ 뭐 이리 강해? 허영호를 힘들게 했던 중국신예 타오신린
- 실력이 어느정도인가? "중국 기사들이 그런 경향이 있다. 가령 저우루이양 같은 수준의 기사는 그 수가 많지 않다. 그런데 이름있는 그런 신예기사들이 아니고, 이름을 거의 모르는 신예기사들인데 막상 둬 보면 특별히 약하다는 생각이 전혀 안든다. 어떤 땐 거의 똑같다. 다만 이들의 성적이 좋지 않은 건 경험부족에서 오는 경솔함 때문인 거 같다. (자신감 때문인지) 신예들일수록 대부분 빨리 두는 경향이 있다. "
- 그래도 대부분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임하는 것인가? 어느정도 준비를 하는지? "일단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출전한다. 대진상의 모든 선수들을 준비하거나 대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질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런 걱정을 하기 시작하면 대책이 없다."
- 올해 세계대회 본선에 대부분 진출하고 있다. 이번의 목표나 각오라면. "아무 생각 없다. 너무 어려웠다. 올라갔다고 축하를 받고 있지만 오늘 이렇게 힘들줄은 전혀 몰랐다. 물론 졌을 때의 아픔보다야 아무래도 이겼을 때가 훨씬 좋다."
8강 스트레스를 부술 기회가 올해 안에도 허영호 7단의 앞에 많이 남아 있다. 먼저 9월에 닥칠 삼성화재배 본선에서 더 좋은 성적을 올리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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