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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에서의 영적 싸움
사도행전 19:21~41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이 그의 에베소 사역의 마무리 단계에 있었던 에베소 시 전체에 있었던 아데미 신상 제조업자 데메드리오가 일으킨 대규모 폭동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폭동의 시작과 과정과 종결 과정이 매우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서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가 그 현장에 함께 있었을 것이라 추측합니다.
사도 바울이 그곳에서 있었던 사역의 시간이 거의 3년에 이르게 되었을 때에 에베소 지역과 소아시아 지역의 영적 판도는 크게 달라졌습니다. 사도 바울이 사역하기 전에는 에베소 시는 매년 5월이면 미의 여신 아데미 여신을 숭배하는 신도들이 당시 가장 큰 아데미 신전이 세워진 에베소로 집결하여 엄청난 축제를 벌이면서 온 도시에 들썩이곤 했습니다. 이를 통하여 에베소는 많은 경제적 이득도 얻었고 그 시민들은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곤 했습니다. 에베소의 아데미 신전은 백 개가 넘는 거대한 기둥들이 받치고 있는 길이가 100미터가 넘는 엄청난 규모의 신전으로서 고대의 불가사의 중 하나로 여길 만큼 사람들이 대단하게 여겼던 신전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와서 그곳의 두란노 서원에서 사역하면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였더니 하나님은 유일하신 참 신이며 모든 신들은 거짓이며 우상은 헛것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 서남부 튀르키예 넓은 지역에 다 퍼져서 각 도시마다 교회가 세워지고 사람들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아데미 신전에 참배하는 사람들이 예전보다 훨씬 줄어들었습니다. 그리고 5월 축제의 열기도 한 해 한 해 시들어갔습니다. 그 결과 그 동안 아데미 신전 축제 때에 모인 사람들에게 그 신전을 축소한 은으로 만든 신전 모형의 판매로 큰 돈을 벌던 데메드리오라는 사람이 계속하여 마음에 분노가 생겨났습니다. 그 동안의 성업하여 큰 돈을 벌었는데, 이제는 은으로 만든 아데미 신전 모형 판매율이 형편없이 떨어져서 수입이 다 떨어져갔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은장색업자였던 데메드리오는 동종업자들을 소집하고 자기 직공들을 불러 모아 분노의 연설을 하여 그들을 흥분시켰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크다 에베소 살마의 아데미여”라고 외치면서 온 시내로 쏟아져나와 사도 바울과 함께 다니던 마게도냐 출신의 가이오와 아리스다고 두 사람을 붙잡아서 끌고 연극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이 와중에 온 도시 사람들이 이 큰 소동에 휘말려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함께 이 소란스러운 무리에 휩쓸려서 연극장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그 모인 장소인 에베소의 연극장은 엄청난 규모의 야외 무대인데, 약 2만 4천 명이 한꺼번에 모일 수 있는 석조 건물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갑작스러운 이 소동을 진정시키려고 직접 그 연극장에 들어가서 사람들을 설득하려 했지만 그 도시의 고위직 관리 중에서 사도 바울의 친구들이 그를 말렸습니다. 어느 틈엔가 그 도시의 고위직에서도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도 생기고 적어도 호의를 가진 사람들이 생길 정도가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야외 극장에 모인 사람들이 두 시간씩이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라고 외쳤으니 그 기세가 대단하였습니다. 그들의 수효는 수천 명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도시의 서기장 곧 그 도시에서 공적인 기록을 남기는 직무를 맡은 자, 시의 실제적인 행정을 맡은 고위직 공무원이 그 자리에 나서 그들을 타일렀습니다. 사도 바울이 아데미 신전의 물건을 도둑질하거나 그 여신을 공개적으로 비방하는 언행을 하지 않았으니 함부로 체포할 수 없다면서, 만약 그런 일이 있으면 정식 재판을 걸라고 말했습니다. 오히려 그 소요를 주동하고 참여한 사람들에게 경고하기를 이렇게 아무런 이유 없이 불법 집회를 열고 소요 사태를 유발하면 도리어 법적 책임이 따를 수 있다면서 그들을 타일렀습니다. 그 결과 그 흥분했던 많은 사람들이 이제 차분해져서 조용히 자기 집으로 돌아감으로써 그 사태가 종결되었습니다. 바로 이 에베소 소요 사태는 사도 바울의 신변에 큰 위협이 될 뻔하였고 복음 전도에도 큰 장애가 될 뻔하였으나 다행히 큰 해가 없이 넘어가게 되었으니 참 다행하고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 소요 사태가 보여주는 것은 사도 바울이 그곳에서 복음을 전파하면서 에베소와 그 인근 지역의 영적인 판도를 바꾸어졌음을 알려주는 증거입니다. 이삼 년의 사도 바울의 사역으로 인하여 그곳의 광대한 지역에서 주님의 나라는 점점 왕성해지고 악한 마귀의 세력권은 점점 약해져간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지역에서 그 동안 왕노릇하며 영혼들을 도적질하던 마귀와 귀신들의 영적 세력들이 크게 분노하여 들고 일어난 일이 바로 그렇게 은장색 데메드리오를 필두로 하여 그처럼 강력한 분노감을 가지고 수천 명의 사람들이 동참하여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 여신이여!”라고 몇 시간 동안 정신없이 외치며 복음에 대한 적대감을 표출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구원의 복음이 전파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져가는 과정에는 반드시 영적인 싸움이 일어나고 마귀의 공격이 뒤따르는 것을 보여줍니다. 성령의 강림 후에 예루살렘의 초대 교회에서도 그런 영적 양상이 있었음을 우리는 그 동안 살펴본 사도행전의 기록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 승천 후 십일 동안 사도들과 120문도가 예루살렘의 다락방에서 모여 기도하는 중에 성령이 강림하였을 때에 그 날 오순절에 모인 순례객들 가운데 사도 베드로의 전도 설교로 하루 삼천 명이 주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 후에 성전 미문 앉은뱅이를 고친 일로 또 다시 오천 명이 주님의 제자로 더해졌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 가문과 유대인 장로들은 공회를 열고 사도들을 붙잡아 위협하고 예수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위협하였습니다. 마귀와 귀신들이 시기하여 방해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들이 그들의 말에 복종하지 않고 담대하게 기도하며 복음을 전하자 성령께서 충만하여 교회가 더욱 부흥되고 사람들이 감동하여 밭을 팔아 사도들에게 드리니 가난한 자들에게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사람들이 더 많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마귀는 아나니아라는 거짓 신자를 교회 내에서 충동질하여 사도를 시험하고 교회를 내부에서 부패하게 하려고 밭 판 돈을 속이고 다 팔았다고 하여 일부만 드렸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그 속에 사탄이 가득하여 거짓말로 하나님을 속이려 든 것을 드러냄으로써 교회는 더 경외심으로 든든히 섰습니다. 그러자 대제사장 일행들은 사도들을 다 잡아들여 위협하였으니 이들은 기꺼이 주님의 이름으로 채찍질당하기를 기뻐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마귀가 교회의 내부에서 유대인 과부들과 헬라파 과부들 사이의 불공평을 인하여 서로 원망하도록 조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이러한 영적 도전을 받고 성령이 주시는 지혜를 따라 성령 충만한 일곱 집사를 선발하여 돕는 자로 삼았습니다. 그 결과 더 부흥되고 말씀이 흥왕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귀도 지지 않았으니 마귀는 성령 충만한 스데반 집사를 돌로 쳐 죽이고 회심 전의 사도 바울인 사울을 충동질하여 교회를 무섭게 박해하여 예루살렘 교회를 쑥대밭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흩어진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을 가는 곳마다 복음의 불을 붙이게 하여 복음이 오히려 팔레스타인 전역과 저 북쪽 시리아 지역까지 퍼지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복음이 사마리아 지역에도 빌립 집사에 의하여 증거되어 많은 사람들이 돌아왔는데, 그곳에 악한 마술사 시몬이 거짓으로 세례도 받고 교회에 잠입하여 성령의 사역을 방해하려고 함으로 이에 사도 베드로가 그 악한 정체를 드러내어 사마리아 교회에서 쫓아내었습니다. 그리고 포악한 핍박자 사울에게도 부활의 예수님께서 친히 나타나셔서 자기의 부활의 영광을 보여주심으로써 사울이 극적으로 회심하여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뀌는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보면 늘 하나님의 나라의 사역에는 악한 마귀의 반대와 도전이 있고 그 대적하는 방식도 다양함을 알 수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의 역사를 보아도 그러합니다. 사도 바울이 두란노 서원에서 이년 내지 삼년 동안 복음을 증거할 때 성령께서 크신 은혜로 표적까지 더해주심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가만 있지 않고 은장색 데메드리오를 통하여 폭동을 일으켜 사도 바울과 에베소 성도들을 크게 위협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에베소 교회가 잘 이기고 성장해가는 과정에도 마귀는 이런 저런 도전을 하여 에베소 교회를 흔들었는데 사도행전 20장에 보면 사도 바울은 영적으로 장차 일어날 일들을 예견하기를 그 교회의 장로들 중에 일부가 성도들을 미혹하여 자기를 따르게 할 자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였습니다. 이처럼 일부 영적 지도자가 에베소 교회 내에서 마귀의 앞잡이 역할을 하며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할 것이라고 경고한 것입니다. 실제로 나중에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사도 바울이 그 경고를 한 후 약 사오년 뒤인 로마 감옥에 갇혀 있을 때와 나중에 로마 감옥에서 나와 다시 이년 정도 활동한 후에 다시 로마에 이차 투옥 되었을 때에 에베소교회에는 사도 바울을 대적하는 악한 쓴 자들이 일어났습니다. 디모데전서와 디모데후서를 보면 그들의 이름은 후메네오와 알렉산더, 부겔로와 허모게네, 빌레도라고 나옵니다. 그 중에서 구리세공업자 알렉산더는 사도 바울에게 크게 해를 입히는 악독한 대적자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사도 바울이 미리 경고한 바대로 사도 바울이 세웠던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 중 일부였을 것이 분명합니다. 주님은 열두 사도 중에 가룟 유다가 자기를 배신할 줄 알았는데, 사도 바울도 그가 세운 장로들 중에 일부가 그렇게 자기를 배신하고 교회를 쪼개고 성도들을 자기에게 끌어낼 자가 있을 것을 미리 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에베소 교회에는 여러 교리적 미혹도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교회는 이러한 이단과 사이비적인 유혹자들을 물리치는 데 온 힘을 기울여서 성공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그렇게 교리적인 싸움을 벌이는 가운데 교회의 성도들의 심령에 뜨거움과 순수함을 도적질하는 교활한 꾀를 써서 성공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교회가 세워진 지 약 50년이 된 즈음에는 그 교회가 교리적으로는 철두철미해졌지만 영적인 온기가 차가워져서 주님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실종되는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요한계시록 2:2~4 말씀에 보면,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게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요한계시록 2:1~5)
고 하였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매우 큰 교회요 소아시아 각처의 많은 교회들의 어머니 같은 교회였기 때문에 사도 바울의 사역에 이어서 그의 후계자 디모데도 사역하고 훗날에는 사도 요한이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를 모시고 그곳 에베소에 머물면서 사역하다가 세상을 떠났던 유서 깊은 대형 교회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큰 교회에 이렇게 훌륭한 주의 종들이 사역을 오랫동안 했지만 마귀는 가만 두지 않고 끊임없이 시험하고 흔들고 교회 안에서 분란을 일으키고 영적인 열기를 식게 만드는 등 끊임없는 방해 공작을 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영적 방해와 시험과 도전은 기독교가 퍼져나간 모든 지역에서 언제나 있어왔던 일입니다. 저 유럽 각처에서 교회가 세워져갈 때에 이러한 마귀의 공작은 계속 있어왔고 치열한 영적 싸움은 계속되어 왔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동일합니다. 성령께서 주의 종들을 보내어 복음을 이 땅에 전파한 후에 크신 은혜도 주셨고 교회가 흥왕하게 도와주셨지만 마귀도 가만 있지 않았습니다. 1907년의 평양 대부흥의 성령의 폭발적인 역사로 교회가 산지 사방으로 퍼져나갔지만 마귀는 악한 일본 제국의 공권력을 이용하여 교회를 탄압하였으니 1919년의 3.1운동의 대한독립만세 운동 때에도 기독교가 앞장선 것을 기억하고 교회를 잔인하게 핍박하고 그 후에는 늘 주의 종들을 요주의인물로 감시하고 신사참배 곧 일본의 우상 신전에 참석하여 절하도록 교회에 강요하고, 일왕을 신적 존재로 삼고 우리나라 백성들을 동쪽으로 절하기를 강요하였습니다. 그러한 신사참배를 끊임없이 요구하고 교회들이 하나씩 굴복하였으나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 최권능 목사님들을 중심으로 계속하여 저항하다가 감옥에서 순교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일본이 패망하고 이 나라에 광복이 되었으나 또 다시 교회의 수난이 찾아왔으니 북쪽에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공산당 정권이 들어서 교회를 핍박하며 주의 종들을 거의 다 죽였으니 북한에서 남한으로 주의 종들과 성도들이 피난을 내려왔습니다. 육이오 동란은 또 한 차례의 교회의 핍박으로 다가왔으니 이것은 일제 때의 신사 참배에 따른 하나님의 진노라 할 것입니다. 이로써 수많은 주의 종들과 성도들이 육이오 전쟁 중에 순교했습니다. 그 후에 북한의 형제들이 김일성 폭압 정권 아래 지금도 조용히 믿음을 지켜오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남한의 교회들은 그 후에 크게 부흥되어 수백만 명의 신도를 얻었고 세계 선교에도 크게 동참하는 교세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나라가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번영함으로 인하여 영적으로는 오히려 세속화의 위기를 맞이한 상태에 있습니다. 그래서 순결하고 강인한 믿음의 선배들의 신앙심을 계승하지 못하고 영적으로 연약하여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이 마귀와 귀신들이 크게 분을 내어 교회를 뒤흔들 말세의 시험이 닥치면 많이 자빠지고 일어나지 못할 위험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교회와 성도는 변함없이 끈질긴 영적 원수가 있습니다. 마귀와 그 졸개인 귀신들이 교회와 성도들인 우리들을 늘 시험하여 넘어뜨리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그들은 우리의 첫 조상 아담과 하와가 살던 에덴 동산 때에도 그러하였고 그 후 인류 역사 속에, 교회의 역사와 하나님의 백성들의 인생 여정에 항상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쉬지 않으며 그들의 악함은 결코 누그러뜨려지지 않으며, 그들의 꾀와 술수는 우리가 전부 알아차릴 수 없습니다. 외부의 핍박, 내부의 분열, 도덕적 유혹, 영적인 교만, 신앙에 대한 무관심, 영적 무관심, 영적인 자만, 생활의 염려와 탐욕, 원망과 불평 이 외에도 마귀의 공격 수단은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선명한 영적 교훈을 마음에 새기고 영적 시험을 이기고 끝내 승리하고 주님 앞에 서도록 굳게 다짐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마귀의 공격과 시험을 이기고 끝내 승리하기 위하여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짧게 다음 네 가지를 우리는 반드시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첫째로, 영적으로 항상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대적 마귀가 실존하며 마귀와 그 졸개들인 귀신들이 항상 우리를 노리고 있음을 늘 명심하고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고 감각되는 것만 믿고 살아가곤 합니다. 그래서 자칫 방심하면 보이지 않는 대적 마귀의 존재를 잊어버리고 그 졸개인 귀신들의 공격과 시험을 전혀 생각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앞에서 보았듯이, 예루살렘 초대 교회의 성장 과정에서나 이방 지역의 복음 전파 과정에서나 에베소 교회의 이후의 전파 과정에서나 우리나라의 복음 전파 과정에서 늘 엎치락 뒤치락하는 영적 씨름이 있었고 그 이면에는 교회와 성도들을 삼키고 그 믿음을 빼앗아 영적 패망으로 이끌어가려는 마귀 역사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에 있으면서 멀리 있는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쓴 편지의 마지막 부분인 에베소서 6:10~12 말씀에서 이 점을 뚜렷이 환기시키고 있습니다.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분명한 대적 상대가 에베소의 불신 이웃들이나 로마 권력이 아니고 악한 영들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도 끝없는 시험이 오고 역경이 오고 믿음을 흔들어놓는 유혹과 불만족, 불평의 일들이 다가옵니다. 사업의 실패, 건강의 적신호, 이런 저런 사건 사고 등이 일어납니다. 이런 것들이 끊임없이 다가올 것인데, 그것들의 이면에는 악한 영의 공격과 시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단지 그 문제의 현실적인 해결책만을 찾으려고 몰두하지 말고, 그 이면에 역사하는 영적 공격이 있음을 명심하고 항상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누가복음 21:36)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방심하지 말고 항상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히스기야가 잘 깨어 있다가 모든 앗수르의 군대가 물러가고 자기 병도 다 낫고 저 멀리 바벨론의 축하 사절단이 와서 온갖 축하와 아첨의 말을 했을 때 그만 방심하여 무기고와 보물고 문을 다 열어 보여주고 자기 마음의 근신하여 깨어 있는 마음도 다 활짝 도둑들인 마귀와 귀신에게 열어줌으로써 교만과 안일 때문에 큰 화를 불러왔지 않습니까? 우리는 주님 뵐 그 날까지 우리의 인생 여정에 늘 마귀의 시험이 있고 공격이 있고 숨은 교활한 술수가 있음을 기억하고 끝까지 영적으로 깨어 있도록 합시다.
둘째로, 인격적으로 도덕적으로 신앙적으로 무장해야 하겠습니다.
에베소서 6:13 이하의 말씀에 이르기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에베소서 6:13~17)
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이 비유적으로 에베소 성도들에게 마귀와 그 졸개들인 귀신들의 군대와 맞서 싸우기 위하여 입어야 할 군인의 무장으로 제시한 것들을 보면, 진리의 허리띠에서 ‘진리’인 ‘알레쎄이아’는 인격적인 진실함으로 해석함이 좋습니다. ‘의의 호심경’에서 ‘의’는 도덕적인 의로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평안의 복음’에서 ‘평안’도 영적인 화평함과 더불어 사람들 사이의 화평함도 담겨 있습니다. ‘믿음의 방패’에서 ‘믿음’도 하나님께 대한 깊은 신뢰의 마음을 가리킵니다. ‘구원의 투구’에서 ‘구원’은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구원받고 천국 백성이라는 확신으로 무장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인격적인 무장, 도덕적인 무장, 신앙적인 무장을 가리킵니다. 한 마디로 충성스러운 믿음으로 무장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렇게 충성스럽게 인격적으로, 도덕적으로, 신앙적으로 무장하면 마귀와 귀신들이 공격해온다 해도 다 이겨냅니다. 다니엘을 국무총리 자리에서 대적들이 밀어내려고 시험할 때에 그가 직무를 감당할 때 혹시 뇌물을 받았는가를 다 살펴 보았으나 흠이 없으므로 허사가 되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를 시험해보았으나 죽음을 무릅쓰고 우상 숭배를 거부하고 불 속에 들어가니 주님이 불속에서 그들을 보호해주시고 더 높여주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인격적으로, 도덕적으로, 신앙적으로 무장하면 마귀가 시험해도 끄덕없습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물욕의 시험에 넘어졌고, 삼손은 정욕의 시험에 넘어졌고, 아히도벨은 더 높아지려는 교만함과 복수심에 넘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귀가 노리는 틈이 내게 없는지를 늘 살피고 틈을 주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항상 도덕적으로, 인격적으로, 신앙적으로 잘 무장해 있어야 하겠습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해야 하겠습니다.
에베소서 6:17 말씀에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사도는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권면했습니다. 마귀와의 영적 싸움에서 이기려면 늘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하신 말씀을 확고하게 붙들지 않아서 결국 마귀의 달콤한 거짓말을 받아들이고 시험에 빠져 모든 축복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마지막 아담이신 우리 예수님은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 주리신 후에 시험하는 자 마귀가 와서 세 번에 걸쳐 흔들어보았으나 언제나 ‘기록되었으되’로 시작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다 마귀 시험을 대적하여 단호하게 물리쳤습니다. 시편 119:11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동일하게 마귀와의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늘 가까이 하고 마음에 늘 굳게 붙들고 성령의 검인 말씀으로 마귀와 귀신들을 단칼에 베어야 하겠습니다.
넷째로, 늘 기도로 무장해야 하겠습니다.
에베소 교인들에게 주는 사도의 영적 싸움에 대한 지침은 에베소서 6:18 말씀에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라고 하였으니, 모든 종류의 기도를 전부 동원하라는 것입니다. 통성 기도도 좋고 침묵 기도도 좋고 방언 기도도 좋고 합심 기도도 좋고 골방 기도도 좋고 산 기도도 좋고 지극히 짧은 화살 기도도 좋다는 것입니다. 영적 싸움을 위하여 최대한 기도를 쌓으라는 권면입니다. 그리고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하였으니, 성령의 감동과 지원을 받아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뜻에 맞게, 성령의 감동 아래서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성령의 뜻과 반대 되는 방향으로, 나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목적으로 기도하지 말고 기도의 영이신 성령의 마음에 맞게 합치하여 성령께서 돕는 기도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처럼 간절한 영적 도움을 받아서 기도에 전력을 쏟으라는 것입니다. 자기만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고 여러 성도들을 위하여 중보 기도하라고 명하면서, 19절에서는 주의 종을 위하여 특별히 중보 기도해주라고 덧붙여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늘 기도하는 자는 끝내 승리합니다. 다니엘이 연로하였을 때에 공무에 바쁜 중에도 늘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루 세 번씩 기도함으로 악한 대적들이 주도하는 사탄의 공격인 사자 굴의 죽음의 위험에서 보호를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쓴 고린도후서 1장에 보면, 그가 아시아 곧 에베소에서 사역할 때에 사형선고를 당한 것 같은 살 소망이 끊어진 것 같은 환난을 만났는데 하나님께서 자기를 건져주셨다면서, 그 때에 자기가 오직 죽은 자를 살리시는 다시 하나님만 의지하였노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편지를 받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자기를 위하여 계속 간구함으로 자기를 도와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이처럼 사도 자신이 기도를 통하여 불같은 마귀의 시험을 이겨냈음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끊임없이 기도로 무장하는 것이 마귀의 공격을 이기는 길이 확실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주님 나라 갈 때까지 마귀와 귀신들의 공격 대상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영적 공격과 시험이 우리의 생애의 여정 가운데 끊임없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시험과 도전이 없기를 바라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마치 바다에 파도가 전혀 없기를 바라는 것처럼 순진한 바람입니다. 여름에 더위가 전혀 없을 것을 기대할 수 없듯이, 우리의 인생 여정에는 반드시 마귀의 쉬지 않는 도전과 시험이 다가올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점을 분명히 기억하고 마귀가 실존하며 그것들이 항상 노리고 공격해온다는 점을 알고 영적으로 항상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인격적으로, 도덕적으로, 신앙적으로 단단한 전신갑주를 취하여 입음으로써 마귀의 공격이 있더라도 너끈하게 물리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말씀으로 무장하고 기도로 무장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마귀의 시험과 도전을 맞이하여 영적으로 대적하여 싸워갈 때에 우리는 분명 강해질 것입니다. 더 거친 공격을 받으면 영적으로 우리의 내적 힘이 더 강력해질 질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시험과 맞서 끈질기게 싸울 때에 모든 것들이 합력하여 선으로 바꾸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싸우는 가운데 더 훌륭한 성품으로 우리가 빚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은사와 능력도 우리에게 더 주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들이 우리에게 부어질 것입니다. 그리할 때에 바울이 에베소의 영적 판도를 바꾼 것처럼 우리도 우리 주변의 영적 판세를 바꾸는 주역이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한평생 영적 도전들과 끝까지 잘 싸워 감으로써 우리는 앞으로 한발 한발 나아갑시다. 그리고 주님 앞에 서는 그 날에 주님께서 우리를 기쁘게 맞아주시고, 우리가 대적과 싸우다가 입은 상처들을 주님께서 보시고 크고 영광스러운 상급으로 우리에게 갚아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