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픈 나의 안식처을 찾아서...
오색~대청봉~봉정암~구곡담~수렴동~백담사~용대리
♧●2017년07월15일~16일(무박)●♧
▲ 사리탑 가는길.
▲ 11시00분:- 봉정암 사리탑.
보물 제1832호. 높이 3.3m.
설악산 대청봉 밑에 있는 봉정암 옆의 능선 위 거대한 암석 위에
세워져 있는 석탑으로, 643년(선덕여왕 12)에 자장법사(慈藏法師)가
당나라에서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셔와
이곳에 탑을 세우고 사리를 봉안했다고 전한다.
▲ 용아장성.
나에게 용아장성은 언제나 짝사랑하는 나의 애인품중 최고의 산야이다.
사리탑에 올라서 그렇게 짝사랑하는 님을 가까이서 보고 있으니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 마음을 들킨듯..가슴이 설레고 두근거린다.
언제가 이몸 늟어지고 저승갈때는 용아장성=1,080봉 자리에 뿌려주길 바라지만...
용아장성 너의품에 안겨서 아름다운 산야 바라보며...???
▲ 당겨 본 공룡능선.
오색에서. 대청봉. 희운각. 공룡능선. 마등령. 금강굴. 비선대. 신흥사로..
공룡의 등,, 등뼈 마디마디가 새록새록 생각 난다.
소청에서 희운각내림길에서 수많은 사람들로 지체되어
순간을 참지 못하고 등로를 벗어나 추월하는 사람들과
한바탕 실랑이 하며 고성이 오고가던 일들이..
이제는 오히려 그때가 그립다.
▲ 용아장성... 곰바위봉
이름도 잘지었다.. 용의 이빨..
▲ 노송(老松)과 노승(老僧)+일명-곰바위봉이라 부르기도한다.
▲ 봉정암 뒤에위치한 사리탑
▲ 갈망(渴望)...
▲ 봉정암 적멸보궁.
▲ 사자바위..
죠~기 위에 사자가 산다는데.. 비경이라는데.. 일행들은 그냥 가고..
에구~.. 사자바위가 궁금하다.. 두고두고 아쉬움이지 싶다.
▲ 숨은 그림찾기 1.
▲ 숨은그림찾기 2.
▲ 봉정암 하산길에서 가장 급한 내림길이다..
▲ 바위아래서 솟는 샘에서 식수보충(생명수).
▲ 드디어 구곡담 계곡의 시작이다..
▲ 역시 계곡은 물이 흘러야 제맛이다..
▲ 감탄..
▲ 쌍용폭포 상류.
▲ 쌍용폭포의 오른쪽 46m 폭포의 비경..
▲ 12시00분:- 쌍룡폭포.
쌍용폭포의 왼쪽은 22m 폭포.
▲ 오늘 최고의 비경에 또 감탄이다.
▲ 헐~~ 아직도 8.4km.
▲ 저위 바위능선이 내가 이세상 떠난후 노닐고 있을 1,080봉 (오른쪽)장소 이다.
▲ 이제 머잖아 가을이 내려오면..
돌단풍도 부끄러워 얼굴을 붉힐 것이고..
▲ 에메랄드 같은 물속으로...
▲ 풍덩하고 싶다... (국립공원은 불가-벌금)
▲ 올 가을..
설악의 가을이 내리면 애기단풍도 너무 이쁠 듯...
▲ 14시00분:- 수렴동대피소.
▲ 14시 15분:- 오세암 갈림길.
▲ 14시20분:- 영시암.
조선 후기의 유학자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 1653~1722)이
1648년(인조 26)에 창건해 6년간 머물렀다.
영시암(永矢庵)이란 이름은
김창흡이 이 절에 은거하여 죽을 때까지
세상에 나가지 않겠다는 맹세의 뜻을 담고 있다.
그가 이곳에 머문 지 6년이 되던 해인
1714년(숙종 40) 11월에 공역(供役)을 하던 찬모(饌母)가
호랑이에게 물려 변을 당하자 춘천으로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1950년 6·25전쟁으로 전각이 소실된 것을
1994년 백담사 주지 설봉도윤(雪峯道允)이 중창했다.
영시(永矢)는..
영구히 맹세하다..라는 뜻이다.
- 다음백과 -
▲ 수렴동 계곡.
▲ 수렴동 계곡.
▲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
설악산은 금강산에 버금가는 명산 · 명승으로
자연 경관이 뛰어나고, 주변에는 문화재와 관광 명소가 많다.
현재 공원 면적은 373㎢에 이르고 있으며,
800여 종의 식물과 500여 종의 동물이 살고 있어
귀중한 학술 자원지가 되고 있다.
설악산 일대는 천연 기념물 제171호로 지정되었으며,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생물권 보전 지역으로 설정되었다.
- 다음백과 -
▲ 백담탐방지원센타.
▲ 15시50분:- 백담사 입구.
▲ 백담사...
버스막차 시간에 맞추려니
백담사을 둘러 볼 시간이 없기에 다리에서 백담사전경만 담고
얼른 셔틀버스 주차장으로 가야만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의 말사.
근대에 한용운이 머물면서〈님의 침묵〉,
〈불교유신론 佛敎維新論〉을 집필하는 등 만해사상의 산실이 되었다.
6·25전쟁 때 불탄 것을 1957년 중건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88년 11월 23일 전두환 전(前)대통령이
대(對) 국민사과성명 발표 후 이 절에 은거(?) 했다가
1990년 12월 30일에 연희동 사저로 돌아가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후.. "잘~ 한것도 많은데..왜 나만 갖고 그래"..라는
유행어(?)도 만들고..
다리는 수심교라는 이름과 글씨를 전 전대통령이 지었다는데
그가 백담사로 갈 때는 없었으나 백담사에서 귀가하기 직전인
1990년 12월에 완공한 다리 라고 한다.
- 다음백과 -
▲ 셔틀버스 승차.
백담사에서 용대리까지 약 7km 셔클버스로 약 12~3분 소요..
꼬불꼬불~ 중국의 <천문산> 오름길의 아찔했던 기억이 되살아 난다.
좁은길에 뒷좌석에서 앞을 보면 운전기사는 낭떠러지 허공에서
아랑곳 없이 속도를 줄이지 않고 핸들을 돌린다.
요금.. 인당 / 2,300원..이
전혀 아깝지가 않다는..생각이다.
▲ 16시03분:- 용대리 주차장 도착.
▲ 용대리 시내전경..
인제가면 언제오나..라던.. 첩첩산중에 어느날 정치권의 산물이.. 이슈화 되면서..
백담사를 알게 되고.. 용대리가 뉴스의 중심에서 세간의 이목을 받은지가 벌써 30년세월..
발전인지.. 많이도 변하고 있다. 세상은 돌고 돈다.
▲ 가로수가 마가목이다.
▲ 선인장꽃..
노란색 꽃은 처음 본다.- 너무도 이쁘다.
▲ 백담마을.
▲ 리아트리스. 꽃말은... 고집쟁이.
▲ 풀협죽도... 꽃말은... 주의, 방심은 금물.
▲ 자귀나무.
설악산 산행을 마치면서..
오색쪽으로는 다시는 안오을거다.. 해놓고 또 올랐다.
설악산은 언제 어느코스로 올라도 찾을때마다 절로 비경에 탄성을 자아 내게한다
시간여유을 갖고서 산장예약되면 하루쉬어가며 즐기면서 여유있게
오른다면 언제 어느계절에 찾아도 좋은 설악산이다.
가이드안내라서 무박으로 서둘러서 산행을 하다보니
무릅에 무리가되서 좀 아프긴헤도 산에만가면 괜찮은것이 문제...?
3시간 30분만에 대청봉 주파.. 이 나이에 스스로 생각해도 대단하다.
소청을 지나 봉정암까지는 힘이 든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쌍용폭포 가기전 급경사에서 부터는 다리가 내다리가 아니다..
하지만 구곡담계곡의 비경들이 피로를 잊게 한다.
계속 건장마에 계곡이 말라 있었으나 며칠전 내린 비로
구비구비 힘찬 굉음을 내며 떨어지는
하얀 포말의 폭포들이 감탄 또 감탄이었다..
대청봉에서는 대자연의 파노라마 보며 감탄..
각종 이름모를 야생화들의 환영의 향기에 감탄..
봉정암.. 그 천년의 사리탑.. 그리고 가까이에서 바라본 용아장성에 감탄..
오랜만의 무박에도..
거뜬한 체력으로 버텨낸 나자신에게 칭찬의 박수을 보낸다.....
단풍이드는 가을에는 붐비지않은 설악산 북능코스로
비박산행으로 찾아올것을 계획하여 보면서...
떠나면서 다음에 또 올계획을 세우는 마음이땡기는 설악산!
기다려라! 설악산아! 내다시 찾아오려니...
메아리, 메아리, 메아리,
산노래(설악가의 슬픈사연)
설악의 품에 안겨 비박하며 별을 벗삼아
우쿨렐레 선율에 맞춰 노래하던 그곳에 다른 모습으로
찾아 서북능선에서 그곳을 바라보았지요.
수많은 계곡과 암봉속 추억을 떠올리며.....,
1절
굽이져 흰띠두른 능선길 따라 달빛에 걸어가는 계곡의 여운을
내어이 잊으리오 꿈같은 산행을 잘있거라 설악아 내 다시 오리니
2철
저멀리 능선위에 구름꽃 필적에 너와나 다정하게 손잡고 걷던길
내어이 잊으리오 즐겁던 산행을 잘잊거라 설악아 내다시 오리니
3절
저높은 봉우리에 백설이 필적에 나는야 생각난다 친구의 음성
내어이 잊으리오 즐겁던 산행을 잘잊거라 설악아 내다시 오리니
그러나 설악의 노래는 슬픔과 산악인들에게는 찡하고도 서럽도록 아름다운 가사가 담겨져 있다.
그중 하늘에서 꽃이 내려와 앉았다는 천화대(天花臺)에 석주길 이라고 하는 릿지가 있다.
"천 가지의 꽃이 피어있다" "바위에 피어있는 꽃" "하늘 꽃"이라는 숫한 설을 남긴 천화대는
그 만큼 아름답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천화대는 비선대에서 철 계단을지나 천불동 계곡방향으로 가다보면 우측에 초입이 시작된다.
끝 지점인 공룡능선에서는 비선대 방향으로는 동북쪽으로 연결되어 있고
외설악을 대표하는 30개 이상의 크고 작은 봉우리를 넘어야하는 구간이다.
희야봉에서는 범봉을 앞에 두고 설악골과 잦은바위골 로 길이 갈라지고
맞은편으로는 범봉과 공룡능선으로 이어진다.
특히 잦은바위골에 다다르면 50m,100m 폭포는 장관을 이룬다. 천화대에서는
화채봉과 동해바다가 보이며 북동쪽으로 울산암이 바라보이는 곳 이기도하다.
풍광과 조망 또한 좋아서 등반 내내 발길을 멈추곤 한다.
이중 설악골에서 범봉사이에 성곽과도 같은 침니로 이어진 리지구간이 석주길이다.
이곳에서 엄홍석과 신현주라는 두 연인이 생을 마감한 산악인의 이야기가 있다.
외설악 노루목에는 1969년도 죽음의 계곡에서 눈사태로 10명이 운명을 달리한 십동지묘
와 설악산에서 등반도중 숫한 목숨을 잃은 산악인들의 묘지가 있다.
묘지에는 자그마한 동판에 적혀져있는 그들의 영혼을 달래는 글귀와 이름만이 남아있다.
그중 엄홍석과 신현주도 그러했다.
엄홍석과 신현주는 요델산악회 의 연인사이로 1967년 가을 등반중 목숨을 잃는다.
그중 같은 요델산악회원이었던 송준호와 는 생명줄 을 잡아준다는 암벽 자일 파트너였기도 했다.
송준호는 악우인 엄홍석과 신현주의 넋을 달래 68년 7월 지금의 천화대 석주길을 개척하며
엄홍석의 이름 끝 자인 "석"과 신현주의 끝 자인 "주"를 딴 석주길이라는 길이 생기게 되었다.
산악계에서는 처음 길을 개척한사람에게 "명명(命名)권" 을 주게 되는데 송준호에게
명명권을 주어 두 사람의 석주길이라는 길이 설악산 천화대에 생기게 된 것이다.
여기서 송준호도 엄홍석과 신현주의 뒤를 따라 설악산 토왕성폭포에서
1973년 1월2일 새벽 등반 중 악우였던 엄홍석과 신현주를 따라 토왕성폭포에서 생을 마감한다.
근데 1973년 새해 첫 날밤 등반하루 전 그는 엄홍석과 신현주에게 마지막 편지를 남긴다...?
죽음을 예감이라도 한 듯 번지 없는 주소로 엽서를 보낸다.
받는사람 "석주 귀하" 주소는 "벽에서 노루목" 보내는 사람 "준" 그것이 전부였다.
한편 서울에서는 토왕성폭포 등반을 마치고 돌아오겠다던 송준호의 애인은
1973년 1월5일 오후2시 서울 중앙극장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상영을 앞두고 그를 기다리다
그가 나타나지 않자 뇌리에 스쳐오는 송준호를 생각하며 극장가를 떠난다.
송준호는 그녀가 짜준 목도리와 장갑 모자를 가슴에 품은 체 토왕폭에서 그의 곁을 영원히 떠나게 되었다.
송준호는 토왕폭을 등반 후 돌아와 그녀와 함께 스위스 등산학교를 유학 한 후 결혼하기로 되어 있었다.
모든 것이 바람과 함께 사라졌지만... 훗날 다시 극장가를 찾은 그의 애인 은 영화의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 처럼 살아달라는 송준호를 생각하며 홀로 객석에서 눈물을 흘려야했다.
그 해 가을 산악회에서는 추모등반을 설악산 용아장성에서 이루어지게 되었는데
동판은 제14봉에 부착했다. 애인은 동판에 송준호에게 마지막 편지를 썼다.
"고인의 뜻대로 강하게 살아가겠다고".
그 후 1974년 1월2일 1주기가 되던 해 그는 송준호와도 산 친구였던 oo대출신의
한 사람과 함께 설악의 노루목을 찾았다.
그는 산 친구인 송준호에게 절을 하며 약속한다. 그녀와 함께 살아가겠다고...
그 이듬해 그들은 결혼해서 그들의 꿈이었던 목장을 이루고 살아가면서
설악가처럼 굽이져 흰띠두른 능선길 따라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는 지금 설악산 노루목에 엄홍석 신현주와 함께 묻혀있으며 이들 세사람의 충혼비는 이러하다.
"시간(時間)과 존재(存在)의 불협화음으로 공간을 활보하고 있는 악우(岳友)들이여!
철학적 경이로써 모둠된 그대들의 자취는 훗날 이 인자한 산정을 찾는 이들의 교훈일 것이다.
추억을 침묵으로 승화시킨 사람들, 그 대담한 의지로 회생하리라."
설악의 산하 한 암벽에 지금도 색 바랜 동판에는 그들 세 사람의 아름다운 산악인의
발자취가 노루목에 남아있다.
잘 잊거라 설악아! 내다시 오리니..., (옮긴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