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앗수르가 예루살렘을 공격함(17-18)
우리의 신앙적 결단은 애굽과 앗수르 사이에서 줄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냐 다른 것이냐 사이의 선택일 뿐입니다. 세상은 지금도 우리를 아는 채하지만, 사실은 왜 여호와를 의뢰하는지에 대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반대로 조롱합니다. 항상 성도들은 하나님을 알고 신뢰하는지를 점검하면 승리하게 됩니다.
17여호와여 앗수르 여러 왕이 과연 여러 민족과 그들의 땅을 황폐하게 하고 18또 그들의 신들을 불에 던졌사오니 이는 그들이 신이 아니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 곧 나무와 돌 뿐이므로 멸하였나이다(17-18)
산헤립이 앗수르의 왕정을 정리하고 강력한 군사력을 갖게 되자, 팔레스틴 정복에 나섭니다. 자신이 직접 출정하는 대신 다르단과 랍사리스와 랍사게로 하여금 대군을 끌고 라기스부터 예루살렘까지 정복하라고 보냅니다. 라기스 성은 강력한 수비성이거나 왕의 요새였습니다. 이곳은 르호보암이 요새화한 곳으로 유다 산지와 해안 평야 사이의 세펠라 기슭에 있으며, 사방으로 깊은 골짜기에 둘러싸인 천연 요새이고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입니다. 라기스는 예루살렘으로 쳐들어가는 주요 관문이었기 때문입니다. 산헤립의 명령을 받은 랍사게의 대군은 이런 견고한 요새인 라기스를 함락하고 예루살렘까지 진격합니다. 이 것은 당시 앗수르 군대의 전력이 매우 강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예루살렘 성 근처까지 온 이들은 왕을 불러냅니다. 고대 전쟁에선 무력으로 싸우기 전에 먼저 말로 항복하라고 설득하거나 협박하는 말싸움을 먼저 합니다. 그러자 왕을 대신해서 왕궁 책임자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사관 요아가 대응하기 위해 나갑니다.
랍사게의 선동 Ⅰ(19-27)
세상은 하나님께서만 줄 수 있는 풍요와 번영을 자신들이 줄 수 있다고, 그리고 쉴 새 없이 ‘너희에게 풍요를 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주장은 일종의 신성모독입니다. 오늘날 광고와 선전 문구는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다는 말을 진리인 양 제시하고 있습니다. 랍사게의 선동, 또한 그러한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19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천하 만국이 주 여호와가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리이다 하니라 20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보내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앗수르 왕 산헤립 때문에 내게 기도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 하셨나이다 21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에게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처녀 딸 시온이 너를 멸시하며 너를 비웃었으며 딸 예루살렘이 너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었느니라 22네가 누구를 꾸짖었으며 비방하였느냐 누구를 향하여 소리를 높였으며 눈을 높이 떴느냐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에게 그리하였도다 23네가 사자들을 통하여 주를 비방하여 이르기를 내가 많은 병거를 거느리고 여러 산 꼭대기에 올라가며 레바논 깊은 곳에 이르러 높은 백향목과 아름다운 잣나무를 베고 내가 그 가장 먼 곳에 들어가며 그의 동산의 무성한 수풀에 이르리라 24내가 땅을 파서 이방의 물을 마셨고 나의 발바닥으로 애굽의 모든 강들을 말렸노라 하였도다 25네가 듣지 못하였느냐 이 일은 내가 태초부터 행하였고 옛날부터 정한 바라 이제 내가 이루어 너로 견고한 성들을 멸하여 무너진 돌무더기가 되게 함이니라 26그러므로 거기에 거주하는 백성의 힘이 약하여 두려워하며 놀랐나니 그들은 들의 채소와 푸른 풀과 지붕의 잡초와 자라기 전에 시든 곡초 같이 되었느니라 27네 거처와 네 출입과 네가 내게 향한 분노를 내가 다 아노니(19-27)
앗수르 왕의 사신 랍사게는 히스기야의 전의를 꺾기 위해 그가 의뢰하는 대상이 얼마나 미덥지 못한지를 지적합니다. 그러니 싸울 계교와 용력이 있다는 말도 입에 붙은 말뿐이라고 폄훼합니다.
⑴ 애굽을 의지하지 말라(19-25)
랍사게는 앗수르 왕의 말을 그대로 전달하는데, 너희가 믿은 것이 무엇이냐고 합니다. 19절과 20절에서 반복적으로 질문하는 것은 너희가 누구를 믿고 반역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유다 왕이 싸울 능력이나 계략이 있다는 말은 오직 말뿐이라고 하며, 유다 자체는 능력이 없다는 것을 전채합니다. 유다가 의지한다고 생각하는 대상들을 21절부터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21절에 따르면 앗수르 왕은 유다가 애굽과 동맹을 맺고 앗수르에게 반란을 일으켰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히스기야가 애굽과의 동맹을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선지자 이사야의 비난으로 이 동맹이 성공하진 못했습니다. 랍사게는 애굽을 상한 갈대 지팡이로 비유하면서, 애굽은 동맹국을 도울 힘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동맹들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라고 조롱합니다. 당시 애굽은 이전의 힘을 어느 정도 회복한 상태이지만, 앗수르에 맞설 만한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22절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유다의 믿음의 근간이 되는 여호와 신앙도 히스기야 때문에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비난합니다. 히스기야가 산당과 제단들을 제거하고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예배하라고 한 것이 여호와의 분노를 일으켜, 여호와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유일신 종교인 여호와 신앙의 특징을 제대로 알지 못했거나, 설혹 알았더라도 그동안 히스기야의 종교개혁에 불만이 있거나 불안한 마음을 가진 백성들에게 히스기야에 대한 불신을 만들기 위해 이런 말을 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내기를 하자며 말 타고 싸울 수 있는 병사 이천 명을 세울 수 있다면, 자기가 기꺼이 말 이천 마리를 주겠다고 합니다. 이것은 너희는 말 탈 병사 이천 명도 없는 주제에 무슨 전쟁을 하겠다고 버티느냐고 조롱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전쟁은 여호와의 손에 있다는 이스라엘의 신학을 이용해 놀립니다. 자신이 이곳에 전쟁을 하러 온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불가능하다며 자신은 유다를 멸망시키라는 신탁을 받았다고 허풍을 칩니다. 즉, 히스기야가 여호와를 제대로 섬기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들이 여호와의 명을 받고 유다를 치러 왔다는 것입니다. 이런 랍사게의 말은 매우 교묘하고 간교합니다. 이스라엘의 신학을 비틀어 자신의 공격을 합리화하는 데 사용한 것입니다. 여호와의 뜻을 바로 알고 있지 못하면 속아 넘어갈 만큼 랍사게는 탁월한 언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