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方[3621]왕창령,부용루송신점(芙蓉樓送辛漸)-왕유,산거추명(山居秋暝) 초서
<낙관글>
錄唐詩二首癸卯春月管朔書(록 당시 이수 계묘 춘월 관삭 서)
당나라 시 두 수를 계묘년 봄날에 관삭이 쓰다.
작가 관삭(管朔)
약력 · 중국 경필 서예협회 회원
· 중국 노년서화연구회 창작 연구원
· 일조 경제기술개발구 서화친목회 부회장
· 일조 경제기술개발구 서예전각가협회 부주석
명제: 부용루송신점(芙蓉樓送辛漸)
부용루에서 신점을 전송하며
-왕창령(王昌齡)
寒雨連江夜入吳(한우연강야입오)
겨울비 강을 따라 밤새 오 땅으로 흘러들고
寒雨(한우): 겨울비. 찬비
平明送客楚山孤(평명송객초산고)
동틀 때 그댈 전송하니 초산은 외롭구나.
平明(평명): 새벽녘, 동틀 때.
洛陽親友如相問(낙양친우여상문)
낙양의 벗들이 만일 안부를 묻는다면
一片氷心在玉壺(일편빙심재옥호)
한 조각 맑은 마음 옥항아리에 들어있다고...
氷心(빙심): 얼음처럼 맑은 마음.
玉壺(옥호): 옥으로 만든 술병, 고결함의 비유.
※氷壺(빙호): 얼음을 담는 항아리로
'맑고 깨끗한 마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작가 소개>
盛唐(성당) 때 시인. 자 少伯(소백). 陝西省 長安(섬서성 장안) 또는 江蘇省 江寧縣(강소성 강녕현) 출생이라고 한다. 開元(개원) 15년(727)에 進士(진사)가 되고 校書郎(교서랑)을 지냈다. 다시 博學宏詞科(박학굉사과)에 급제하여 汜水縣尉(사수현위), 江寧副知事(강녕부지사)가 되었으나, ‘細行不謹(세행불근, 대수롭지 않은 예법을 삼가지 않음)’이라 하여 龍標縣尉(용표현위)로 좌천되었다. 安祿山(안록산)의 난이 지난 뒤 고향에 돌아와 刺史 閻丘曉(자사 염구효)에게 피살되었다. 李白(이백)과 함께 7언절구에 뛰어났고, 특히 이별이나 閨怨(규원) 같은 시를 잘 지어 ‘長信秋詞(장신추사)’ 같은 작품은 많이 알려졌고, 塞北(새북)의 정서를 노래한 ‘出塞(출새)’는 당 나라 절구 중의 걸작이라 일러 온다. 당시에 ‘詩家天子 王江寧(시가천자 왕강녕)’이라고까지 칭송했으며 ‘王昌齡詩集(왕창령시집, 5권)’이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한시작가작품사전)
명제: 산거추명(山居秋暝)
산 속에서의 가을 저녁
-왕유(王維)
空山新雨後(공산신우후) 적막한 산에 막 비가 내린 뒤
新(신): 막. 방금
天氣晩來秋(천기만래추) 저녁 무렵 날씨는 서늘한 가을 느낌이네.
만래(晩來): 저녁 때. 來는 助字(조자)
明月松間照(명월송간조) 밝은 달은 솔 사이로 비치고
淸泉石上流(청천석상류) 맑은 샘은 돌 위를 흐르네.
竹喧歸浣女(죽훤귀완녀) 대숲은 빨래 마친 여인들로 시끄럽고
훤(喧): 시끄럽다. 귀(歸): 돌아가다. 끝내다. 마치다. 완녀(浣女): 빨래하는 여자
蓮動下漁舟(연동하어주) 연잎은 고기 잡는 배들로 흔들리네.
隨意春芳歇(수의춘방헐) 어찌 되었든 봄꽃은 시들어 떨어지나
수의(隨意): 뜻대로. 어찌 되었든지 헐(歇): 떨어져 없어지다.
王孫自可留(왕손자가류) 왕손은 스스로 머물만 하네.
왕손(王孫): 여기서는 시인 자신을 말함.
<작가 소개>
盛唐(성당)의 風流詩人(풍류시인). 자 摩詰(마힐). 山西省 太原(산서성 태원) 사람. 동생 縉(진). 후에 아버지를 따라 산서성 남쪽의 永濟(영제)에 이사해 살았다. 조숙하여 9세부터 글을 지었고 開元(개원) 초인 21세에 進士(진사)가 되었으며, 右拾遺(우습유), 監察御史(감찰어사), 吏部郎中(이부낭중), 給事中(급사중) 등 40여 년 동안 평온한 官吏生活(관리생활)을 했는데, 다만 安祿山(안록산)의 난 때 포로가 되어 죽을 뻔했다가 아우 縉의 힘으로 구출되어 太子中允(태자중윤)으로 좌천되었다. 이 때부터 사상적 변화가 생겨 차츰 불교에 기울기 시작했고 詩禪一致(시선일치)의 경지에 이르렀으며, 다시 승진하여 尙書右丞(상서우승)이 되어 그를 ‘王右丞’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적한 생활을 좋아하여 30세 전후에 상처하고도 再娶(재취)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내면서 長安(장안)의 終南山(종남산)에 별장 輞川莊(망천장)을 짓고 산수의 아름다움에 빠져들었다. 다재다능한 사람으로 시뿐 아니라 음악과 그림에도 뛰어나 南畫(남화)의 祖宗(조종)이라 할 만큼 산수화에 능했다. 그는 자연을 觀照(관조)하고 순응하여 自然詩(자연시)를 지어, 孟浩然(맹호연)과 함께 陶淵明(도연명)의 맥락을 받아 당 나라 시의 한 유파를 이루었다 하겠으며, 문집으로 ‘王右丞集(왕우승집 10권)’이 전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한시작가작품사전)
※ 제20회 한·중(평택-일조) 서화문화교류전 출품작
[출처] 芙蓉樓送辛漸, 山居秋暝|작성자 farh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