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수필은 지옥 갈 사람을 천국으로 안내하는 위대한 문학입니다. 제 큰 당숙모가 청춘에 홀로 되셔서 딸 하나, 아들 하나를 어렵게 키웠습니다. 그때야 기계도 없이 오직 남정네 힘으로 농사 짓던 농경시대라 먹을 것 조차도 변변치 못하였으니 그 삶이 오죽 힘들었겠습니까. 삼촌인 제 할아버지가 맏종부라고 음으로 양으로 힘 닿는데 까지 도와 주고 자식들 버리지 말고 용기를 내서 살라고 다독여 주었던가 봅니다. 그 당숙모가 할아버지 집에 와서 일하는 모습을 보면 늘 혼자서 중얼중얼 거리면서 일을 했는데, 곁에서 가만히 들어보면 일종의 자기 한풀이 같았습니다. 그 한풀이 독백중에 지금도 기억 나는 게, "수케 좆자랑 하듯 한다"는 말이었는데, 그게 지금 생각하니 '개 좆도 아닌 것이 자랑질만 하고 한푼 도와 주는 법이 없다'는 알지 못하는 누군가를 향한 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어린 나는 그 당숙모께서 하신 말씀 때문에 여름에 수케가 길게 마루 밑에 누워 있는 것을 유심히 살피곤 했는데 어김 없이 뽀족하고 빨간 것이 튀어 나와 있었지요.
인생칠십고래희의 희자는 드물 희자 입니다. 살만큼 살아내고서도 돈자랑, 글자랑, 상 자랑하는 사람들을 보면 지금까지 당신이 살면서 이웃을 위해 선한 일을 한게 무엇이 있는지 묻고 싶어 집니다. (2026.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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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눈물
날만 세면 얼굴을 맞대고 놀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이름을 편의상 영구라 부르겠습니다. 영구네 집에 멀리 서울에서 친척이 찾아 왔습니다. 맛있는 케이크를 사가지고 말입니다. 보리밥도 배불리 못 먹던 시절에 하얀 크림이 발린 달콤한 케이크는 백설 공주나 먹는 동화 속의 음식이었습니다. 영구 엄마는 케이크를 밖에 가져가면 다른 친구들이 달라고 할 것이니 집에서만 먹으라고 주의를 주었지만 영구는 자신에게 주어진 그 황홀한 행운을 동네꼬마들에게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군침을 흘리며 한 입 먹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만 해도 기분이 날아갈 듯해 졌습니다. 엄마 몰래 케이크 한 조각을 들고 아이들이 놀고 있는 골목으로 달려갔습니다. 아이들이 눈길이 전부 영구의 입술로 모아졌습니다. 영구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입술을 혀로 핥으며 케이크를 음미하였습니다. 아이들은 넋을 놓고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어둠보다 더 깊은 적막이 흘렀습니다. 아주 잠시였지만 무한의 시간이 흐른 듯 느껴졌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그 적막을 깼습니다.
“영구야! 한 입만 도고”
그 소리는 거의 애원에 가까운 소리였습니다. 영구의 얼굴에는 선택받은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엷은 미소가 지나갔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그런 소리가 나와야지, 그 소리가 나오길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적막이 깨어지자 아이들이 모두 “나도 한입 먹자, 나도” 하면서 나서기 시작 했습니다. 영구는 그 케이크가 시골 아이들의 상상력으로는 미칠 수도 없는 저 먼 서울서 왔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 했습니다. 시골동네 골목을 누비는 엿장수가 가져 온 것이 아니라 서울 손님이 가져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맛이 특별하고 귀한 것이란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은 하던 놀이를 멈추고 영구의 입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영구는 말없이 케이크의 한쪽 끝을 조금 뜯어 입에 넣으며 아주 행복한 미소를 짓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다시 애원조로 말합니다.
“영구야 ! 쪼매만 묵자. 응?”
영구는 케이크를 들고 일어섭니다. 그리고 뻐기면서 말 합니다.
“ 먹고 싶은 사람, 이 앞으로 줄서라!”
대 여섯 명의 아이들이 후다닥 영구 앞으로 줄을 섭니다. 서로 앞에 서려고 밀치기까지 합니다. 영구는 아직까지 케이크를 줄 생각이 없었습니다. 가운데 선 갑식이를 지목하며 “갑식이 넌 빠져라”라고 했습니다. 지난번 하굣길에서 갑식이가 영구의 가방을 들어주지 않은 것이 생각난 때문 입니다. 갑식이는 영구보다 힘은 약하지만 공부는 더 잘했습니다. 골목대장인 영구의 말에 고분고분하지 않는 유일한 친구가 갑식이입니다. 갑식이는 슬그머니 줄에서 빠져나와 집으로 가버렸습니다. 나머지 아이들은 갑식이가 왜 빠졌는지 그 이유를 눈치 빠르게 알아 차렸습니다. 자신들은 언제 며칟날 영구의 가방을 들어 주었음을 상기시키려고 애를 썼습니다. 영구는 꼬마들 앞에서 의젓하게 허리를 펴고서는 한 말씀을 했습니다.
“예……, 케이크는 귀한 것이라 함부로 줄 수 없다. 앞으로 내 말을 잘 듣고 심부름도 잘 해줄 사람에게 줄 것이다. 그럴 생각이 없는 사람은 빠져도 좋다”
아이들의 머릿속에는 이제 곧 케이크가 자신의 목구멍으로 넘어 올 것이란 생각만이 가득했습니다. 모두들 영구가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맹서를 하였습니다. 그건 일종의 충성서약 같은 것이었습니다. 영구는 비로소 케이크를 아이들 입에다 넣어 주었습니다. 귀한 것은 함부로 먹는 것이 아니란 듯, 아주 조금씩 개미 눈물만큼 나눠 주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영구는 모 은행의 지점장이 되었습니다. 은행 지점장 하면 한때는 날리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라가 IMF 사태를 맞은 이후로는 매달 점포별 실적평가를 받고 명예퇴직을 강요당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달에도 예금 유치실적이 턱 없이 부족 합니다. 전국 50개 은행지점 중 꼴찌를 할지도 모릅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초등학교 동기인 갑식이가 사업을 하여 큰 부자가 되었다는 소식입니다.
‘그래 갑식이와 나는 죽마고우가 아닌가. 한번 찾아가서 부탁을 해봐야겠다.’
이리저리 수소문하여 갑식이 회사를 찾아 갔습니다. 사십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났지만 친구는 역시 친구였습니다. 둘은 반갑게 악수를 나누었습니다. 갑식이는 자신이 성공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해 댔습니다. 지금 재산은 얼마며, 살고 있는 아파트는 몇 평이며, 어디어디 은행에 얼마나 예금을 하고 있고 주식과 부동산은 또 얼마며, 사회적 감투는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승용차는 국산차는 안전을 장담 못하여 독일제 00차를 다시 샀다는 둥-, 온통 돈 자랑을 하고 있었습니다. 영구 귀에는 다른 말은 들리지 않고 어디 어디 은행에 예금이 얼마라는 소리만 들렸습니다.
‘저 예금을 우리 지점으로 돌려주면 내가 숨을 좀 쉴 것인데-’
헤어지면서 영구는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나오지 않는 소리를 겨우 토해 내었습니다.
“갑식아! 그 예금 우리 지점으로 좀 옮겨 주면 안 될까? 내 처지가 지금 아주 어렵거든……”
“아! 그래? 다음에 한번 의논하지, 뭐 힘든 일 아니니까……”
갑식이는 성공한 사람답게 시원시원하게 대답 했습니다. 영구는 씩씩한 그 목소리에 홀려서 갑식이 회사의 문턱이 다 닳도록 들락거렸지만 단 한 푼의 예금도 유치할 수가 없었습니다. 영구가 돌아가면 갑식이는 늘 혼자 말로 중얼 거렸습니다.
“ 세상은 내가 가진 것이 있을 때만 내게 굽실거린단 말이야. 줄듯 줄듯하면서 저들의 코를 땅에 닿도록 만들어야 앞으로도 나를 무시하지 않고 계속 존경 할 거야. 저 녀석은 어릴 때 케이크 한 조각으로 나를 ‘왕따’시킨 적도 있지 않은가. 그에 비하면 나는 지금 아주 신사적으로 대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야”
추석이 되자 영구가 갑식이에게 사과 한 상자를 선물로 보냈습니다. 그러자 갑식이는 온갖 생색을 다 내며 개미 눈물만큼의 예금을 영구가 근무하는 은행으로 옮겼다가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곳으로 빼돌렸다 합니다. 들리는 말로는 계속해서 영구가 굽실거리지 않았기 때문이라 합니다.
자수성가한 사람이라고 죄다 훌륭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 중에는 자신이 어려울 때 당한 설움을 잊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런 설움을 주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원금에다 이자까지 더하여 보복하고야 마는 개미 눈물만큼의 인정도 없는 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2010.8.17)
첫댓글 기가 막히는 글입니다.
웃기도 하고 열도 받치고 통쾌하기도 한 글이군요.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