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재집 제3권 =문목(問目)-퇴계 선생께 올림 임술년(1562, 명종17)〔上退溪先生 壬戌〕
문 ‘정성으로 말미암아 밝아짐[自誠明]’과 ‘밝음으로 말미암아 정성스러워짐[自明誠]’에 대해 묻습니다.
선생 답 정성으로 말미암아 밝아짐과 밝음으로 말미암아 정성스러워진다는 설은 본문 장(章)의 장구(章句)와 소주(小註)에 이미 상세하게 나와 있으니 세심하게 연구한다면 이해하지 못할 리가 없을 걸세. 만약 여기서 터득하지 못하고 달리 다른 설을 찾아서 통하려 한다면 다른 설이 어찌 사람에게 억지로 알게 할 수 있겠는가.
문 유원(悠遠)에 대해 묻습니다.
선생 답 《주자어류》를 살펴보면, “유(悠) 자는 ‘길다’는 뜻이다. 유는 지금부터 후대를 보았을 때 끝이 없다는 뜻이고, 구(久)는 그 요점을 가지고 말한 것으로 항상 이와 같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네. 또 “유는 지금에 근거하여 끝을 찾는 것이고, 구는 어디에나 항상 존재한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는데, 유구(悠久)라고만 하고 유원(悠遠)이라 하지 않았다네. 그러나 정씨(鄭氏)가 말한 ‘지극히 정성스러운 덕이 사방에 드러난다.[至誠之德 著於四方]’라는 등의 설로 본다면 유는 시간을 가지고 말한 듯하네. 그래서 지금에 근거하여 끝을 찾는다고 하였고, 원(遠)은 공간을 가지고 말한 것과 같으니 빛이 사방에 비추어 위아래에 이른다는 따위와 같은 것이네.
문 ‘복도(覆幬)’의 도(幬)에 대해 묻습니다.
선생 답 도(幬) 자의 훈은 단장(襌帳)인데, 단(襌)의 음은 단(單)으로 바로 단장(單帳)이네. 그러나 복도(覆幬)의 도(幬)는 이런 뜻이 아니라네. 《고금운회(古今韻會)》의 호(號) 자 운에 도(燾) 자가 있는데, 음은 도(道)이고 덮는다[覆]는 뜻이며 도(幬) 자와 통용하다고 하였네. 그 아래 인용한 ‘하늘이 덮지 않음이 없다.[天之無不覆幬]’와 같으니, 이 설이 옳다네.
문 ‘움직이지 않으면서 변한다.[不動而變]’에 대해 묻습니다.
선생 답 천지는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면서 그 자취를 보이지 않을 뿐이네. 그러나 사계절이 절로 운행되고 만물이 절로 자라는 것이 바로 움직이지 않으면서 변하게 하는 것이네. 성인이 움직이지 않으면서 변하게 하는 것도 이와 같다네.
문 ‘하늘의 명이 아, 깊어서 끝이 없도다.[維天之命 於穆不已]’에 대해 묻습니다.
선생 답 하늘은 유행하여 쉬지 않으니, 위에서 ‘명(命)’ 자를 말한 것은 “태극(太極)에 동정(動靜)이 있는 것은 천명이 유행하는 것과 같다.”라는 말과 같은 뜻이네.
문 ‘크고 넉넉하도다.[優優大哉]’에 대해 묻습니다.
선생 답 총괄해서 말하자면 삼천삼백(三千三百)보다 큰 것이 없고 세분해서 말하자면 삼천삼백보다 자세한 것이 없다는 것이네.
또 선생 답 도가 찬란하게 밝고 성대하여 가리켜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으로서 예(禮)보다 앞서는 것이 없기 때문에 오직 예를 가지고 말한 것이네.
문 ‘윗자리에 있어도 교만하지 않고 아랫자리에 있어도 배반하지 않는다[居上不驕 爲下不倍]’에 대해 묻습니다.
선생 답 윗자리에 있어도 교만하지 않고 아랫자리에 있어도 배반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하와 선후의 차이가 있을 뿐 다른 뜻이 꼭 따로 있는 것은 아니네. 다만 먼저 아랫자리에 있어도 배반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그다음에 윗자리에 있어도 교만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그 아래 ‘지극히 성스러움[至聖], 지극히 정성스러움[至誠], 경륜(經綸)함, 천명에 짝하는 것[配天]’ 등에 대해 지극히 말한 곳과 서로 이어져 말이 순조롭게 된다네. 그렇지 않고 중간에 ‘아랫사람이 되어도 배반하지 않는다.’는 한 단락을 삽입하면 말이 끊어졌다 이어져서 순조롭지 않게 되네.
문 ‘어리석으면서 제 고집대로 하고 천하면서 제멋대로 하는 것[愚自用 賤自專]’에 대해 묻습니다.
선생 답 어리석으면서 제 고집대로 하는 것을 윗사람으로 보고, 천하면서 제멋대로 하는 것을 아랫사람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은 듯하네.
문 ‘그 인을 간절하고 지극하게 하며……[肫肫其仁……]’에 대해 묻습니다.
선생 답 쌍봉(雙峯)이 ‘그 인을 간절하고 지극하게 한다.’라는 것을 ‘본성을 따르는 도[率性之道]’로 보았는데, 추론이 너무 심하여 뜻이 멀어 핍진하지 않네.
문 수레[車]에 대해 묻습니다.
선생 답 옛사람이 기구를 만들 때 모두 법상(法象)이 있는데 수레는 더욱 신중히 하였네. 《주례(周禮)》 〈고공기(考工記)〉 한 편에서 볼 수 있다네.
문 ‘함께 생육하면서 서로 해치지 않는다.[並育不相害]’에 대하여 묻습니다.
선생 답 함께 생육하면서 서로 해치지 않는 것은 다만 큰 줄기를 들어서 말한 것이네.
문 ‘소인의 도[小人之道]’에 대해 묻습니다.
선생 답 소인의 도(道)는 단지 자기가 행한 것을 ‘도’라 하기 때문에 한자(韓子)도 “도는 빈자리이고, 흉한 덕도 있고 길한 덕도 있다.[道虛位 有凶有吉]”라고 하였네.
문 ‘바람이 일어나는 곳을 안다.[知風之自]’에 대해 묻습니다.
선생 답 바람은 바로 비유를 든 말이지, 내 기운이 발하는 것을 바람이라고 한 것은 아니네.
문 ‘이때 다투는 이가 없다.[時靡有爭]’에 대해 묻습니다.
선생 답 시(時)는 ‘이때를 당하여’라는 말이고, 쟁(爭)은 다투는 것인데 분변하고 논란하는 것이네.
문 동정(動靜)과 선후(先後)에 대해 묻습니다.
선생 답 〈태극도설(太極圖說)〉에 “한 번 동하고 한 번 정하는 것이 서로 근본이 된다.[一動一靜互爲其根]”라고 한 것은 음양의 기운이 운행하여 소장(消長)하고 바뀌고 변화하는 곳을 가리켜 말한 것이므로, 선후를 말할 수 없다고 한 것이네. 그러나 사람을 두고 말한다면 어찌 동정과 선후에 말할 만한 것이 없다고 하겠는가. 또 보낸 편지에서 “수장(首章)은 오로지 성인(聖人)의 일을 가지고 말한 것이고 중간은 배우는 사람이 존양성찰(存養省察)하는 일을 가탁해서 말했다.”라고 하였는데 또한 틀린 것이네. 수장은 이미 도(道)가 하늘에서 나왔음을 말했고, 그 아래에서 군자가 존양성찰하는 도를 말했으니, 이것이 올바른 설이고 가설이 아니네. 그래서 여기에서는 성인의 지위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고 중화위육(中和位育)의 극치를 말한 곳에 이르러 비로소 성인의 일을 말하였을 뿐이네. 대개 수장은 ‘덕을 이루는 것[成德]’을 가지고 말하므로 존양(存養)을 먼저 하고 성찰(省察)을 나중에 말했고, 끝 장은 ‘덕에 나가는 것[進德]’을 가지고 말하므로 성찰을 먼저하고 존양함을 뒤에 말하였네. 그 말의 순서가 마땅히 그러하기 때문이지 수장이 오로지 성인의 일을 말했다고 볼 수 없다네.
[주-D001] 정성으로 …… 정성스러워짐 :
《중용장구》 제21장에 “성으로 말미암아 밝아지는 것을 성이라 하고 명으로 말미암아 성해지는 것을 교라 이르니, 성하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성해진다.[自誠明, 謂之性, 自明誠, 謂之敎, 誠則明矣, 明則誠矣.]”라고 하였다.
[주-D002] 유원(悠遠) :
《중용장구》 제26장에 “징험이 나타나면 유원하고, 유원하면 박후하고, 박후하면 고명하다.[徵則悠遠, 悠遠則博厚, 博厚則高明.]”라고 하였다.
[주-D003] 복도(覆幬)의 도(幬) :
《중용장구》 제30장에, 공자의 덕을 비유하면서 “천지가 잡아 주고 실어 주지 않음이 없고, 덮어 주고 감싸 주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으며,……일월이 교대로 밝게 비춰 주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다.[辟如天地之無不持載無不覆幬……如日月之代明.]”라고 한 말이 보인다.
[주-D004] 움직이지 않으면서 변한다 :
《중용장구》 제26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주-D005] 하늘의 …… 없도다 :
《시경》 〈유천지명(維天之命)〉에 나오는 내용이다.
[주-D006] 크고 넉넉하도다 :
《중용장구》 제27장에 “크고 넉넉하도다. 예의가 3백 가지요, 위의가 3천 가지로다.[優優大哉. 禮儀三百, 威儀三千.]”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7] 윗자리에 …… 않는다 :
《중용장구》 제27장에 “군자는 윗자리에 있어도 교만하지 않고 아랫자리에 있어도 배반하지 않는다. 나라에 도가 있을 때 그의 발언은 흥기(興起)시키기에 충분하고, 나라에 도가 없을 때 그의 침묵은 용납 받기에 충분하다. 《시경》에 ‘현명한 데다가 사려가 깊어서 자기 몸을 보전한다.’라고 한 것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말한 것이라고 하겠다.[居上不驕, 爲下不倍. 國有道, 其言足以興; 國無道, 其黙足以容. 詩曰旣明且哲, 以保其身, 其此之謂與.]”라고 하였다.
[주-D008] 어리석으면서 …… 것 :
《중용장구》 제27장에 “어리석으면서도 자기 멋대로 하기를 좋아하고, 천하면서도 자기 마음대로 하기 좋아하고, 지금 세상에 나서 옛 도를 행하려 한다면, 이러한 사람은 재앙이 그 몸에 미칠 것이다.[愚而好自用, 賤而好自專, 生乎今之世, 反古之道, 如此者, 災及其身者也.]”라고 하였다.
[주-D009] 그 인을 …… 하며 :
《중용장구》 제32장에 “성인의 그 인덕을 간절하고 지극하여 마치 못처럼 깊고 고요하며 하늘처럼 넓고 크다.[肫肫其仁, 淵淵其淵, 浩浩其天.]”라고 하였다.
[주-D010] 쌍봉(雙峯) :
요로(饒魯)의 호이다. 자는 백여(伯輿) 또는 중원(仲元)이다. 남송 때 경학가로, 황간(黃榦)과 이번(李燔)을 사사하였다. 주희의 이학(理學)을 계승하였는데, 만년에는 주정(主靜)에 치우친 경향을 보였다. 저술로 《오경강의(五經講義)》, 《춘추절전(春秋節傳)》, 《학용찬술(學庸纂述)》, 《근사록주(近思錄注)》 등이 있었으나 대부분 전하지 않는다.
[주-D011] 함께 …… 않는다 :
《중용장구》 제30장에 “만물이 함께 자라나 서로 해치지 않고, 도는 함께 행해져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萬物竝育而不相害, 道竝行而不相悖.]”라고 하였다.
[주-D012] 소인의 도[小人之道] :
《중용장구》 제33장에 “《시경》에 ‘비단옷을 입고 홑옷을 덧입는다.’ 하였으니, 이는 문채가 너무 드러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자의 도는 어둑하여 은은한 가운데 날로 드러나고, 소인의 도는 반짝 빛나서 날로 없어진다.[詩曰衣錦尙絅, 惡其文之著也. 故君子之道, 闇然而日章, 小人之道, 的然而日亡.]”라고 하였다.
[주-D013] 도는 …… 있다 :
한유(韓愈)의 〈원도(原道)〉에 “인과 의는 그 이름이 하나로 정해져 있지만, 도와 덕은 그 자리가 비어 있다. 그러므로 도에는 군자와 소인이 있고, 덕에는 흉덕과 길덕이 있게 되는 것이다.[仁與義爲定名, 道與德爲虛位. 故道有君子小人, 而德有凶有吉.]”라는 말이 나온다.
[주-D014] 바람이 …… 안다 :
《중용장구》 제33장에 나오는 말로, 바깥에 드러나는 행동은 내부의 마음에 근본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주-D015] 이때 …… 없다 :
《시경》 〈열조(烈祖)〉에 “나아가 신명(神明)에게 감격할 때에 말이 없고 이때 시끄럽게 다투는 이도 없다.[奏假無言, 時靡有爭.]”라고 하였는데, 《중용장구》 제33장에도 보인다.
ⓒ 한국국학진흥원 | 장재호 (역) |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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