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부임해 사하촌 정비
템플스테이 수련관도 건립
교구본사발전 청사진 마련
불교대학으로 지역불교 활성화
동곡학원 설립 선화여고 운영
군포교에도 매년 예산 투자
클래식 음악이 있는 산사로
시대와 호흡하는 생활불교
대중불교 사회불교 이끌어
12월 초입 봄날 같았던 날씨가 매섭게 칼날을 세우고 있다. 지난 9일 찾은 영천 은해사도 팔공산에서 불어오는 날선 바람이 옷깃을 세우게 한다. 하지만 혹한의 추위에도 매화향기가 피어나듯 열악한 농촌지역의 포교환경을 꿋꿋이 이겨내며 지역민과 소통하는 은해사는 과거보다 사뭇 다른 모습을 띠고 있다. 그 중심에 은해사 주지 돈관스님이 있다. 2008년 주지로 부임한 이후 은해사에서 겪었던 소중한 이야기를 주지실에서 들어보았다.
교구본사 주지를 연임한 돈관스님은 교구발전 아이디어를 찾기 위한 화두에 골몰하고 있는 듯했다. “은해사는 경산 영천 군위 청송 등 농촌 시골 사찰이라 참 힘들더라고요. 주지로 부임해 오니까 사하촌이 6ㆍ25 이후 그대로라 사찰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어요. 사찰이 활성화되려면 볼거리 즐길거리 먹을거리가 어우러져야 하는데 사하촌 정비가 시급했어요.”
스님은 영천시와 협력해 난개발이 된 사하촌 정비를 말끔하게 해결했다. “은해사에 와서 취임식 때도 말했지만 생활불교 대중불교 사회불교를 표방했어요. 그래서 사하촌 정비를 통해 볼거리 먹을거리 즐길거리가 있는 공간을 만들었어요. 그러니 과거에는 먹을 것이 없어 절에 찾던 많은 사람들이 절에 와서 끼니를 해결하더니 이제는 사하촌에서도 가능하게 되니 절을 찾는 횟수가 줄어들었어요.”
사하촌 정비와 더불어 은해사는 법당 해체 불사, 사찰 입구 정비, 한주실과 조사전 정비, 박물관 개원 등 굵직한 외형불사를 회향했다. “가람수호를 위해 365일 공사하지 않은 날이 없었던 같아요. 은해사를 찾는 분들을 위해 은해사가 깔끔하더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많은 불사를 했지만 가장 자랑스러운 것은 템플스테이 수련관 건립 불사를 3년에 걸쳐 회향한 겁니다. 이제 이 공간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한국 전통불교 문화의 진수를 체험할 수 있게 됐습니다.”
지역민과 어떻게 소통하는지 궁금했다. 그 방법은 ‘찾아가는 불교대학’의 활성화였다.
“처음에는 은해사에서 불교대학을 개설했어요. 그러다가 어느 정도 활성화되면서 영천포교당으로 옮겨갔어요. 앞으로 경산, 하양, 군위, 청송, 신령포교당 등 은해사 말사 포교당을 오가며 지역포교의 교두보를 마련하고 있어요.”
스님은 농촌지역 불자들의 고령화를 우려하고 있었다. “불교가 옛말로 치마불교 노인불교 여성불교라는 말을 공감했어요. 지난해 교구본사와 말사 대중이 통영 쪽으로 방생법회를 갔는데 노인들이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보이지 않더라고요. 그 후 며칠 동안 쇼크를 받았어요. 특히 농촌지역에서는 젊은 층이 없다는 사실을 보고 이들을 위한 포교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했습니다.”
스님의 이러한 문제의식이 청소년 인재육성의 교육사업으로 이어진 것 같았다. 돈관스님은 은해사 주지 부임 후 학교법인 동곡학원을 설립해 지역의 선화여자고등학교를 인수해 운영하고 있다.
“부친이 교육직에 계셨던 영향으로 제가 출가하지 않았다면 교육직에 종사하고 있었는지도 몰라요. 처음에 누가 학교가 나왔다고 해서 아무런 조건 없이 (교육을 통한 포교를 목적으로) 인수했어요. 인수를 해 놓고 보니 상당히 문제가 있더라고요. 오죽하면 학생모집도 잘 안돼서 경주까지 가서 부탁하기까지 했겠습니까. 학교 인수 이후 매년 1억2000여 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학교 명성을 높이는 사업을 적극 전개했어요. 그 결과 서울대학교에 연속 2년 입학시켰습니다. 우수한 인재도 계속 들어와 학교에 대한 호감도도 매년 높아지고 있습니다.”
돈관스님은 “교육사업이 곧 포교로 이어지고 있다”며 몇몇 일화를 들려주었다. “며칠 전 성당 다니던 기자의 딸이 학교를 다니는데 갑자기 개종해 절에 다니겠다며 상담을 요청했어요. 이유를 듣고 보니 ‘스님이 너무 멋있어서’라고 해요. 학교에 와서 공부하면서 보니 피자도 돌리고 상담도 해 주는 스님들이 멋져 보인 겁니다. 그런 스님들이 계시는 절을 다녀야겠다고 했데요. 여고생의 눈으로 보니 불교가 정말 좋았던 겁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선화여고를 인수할 때 한 학생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스님이었나 봐요. 그 여학생은 아버지가 스님인 게 부끄러워 초등학교 때부터 집을 나와 친척집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데요. 그런데 스님들이 학교를 인수해 학교를 운영하는 것을 보고 아버지가 스님인 것이 자랑스러웠데요. 그 여학생이 고3이 되어 이사장인 저에게 ‘스님, 이제 저는 집으로 들어갑니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써 보내 주었어요. 자기도 다음에 인연이 되면 아버지처럼 훌륭한 사람(스님)이 되고 싶다, 부처님이 훌륭하신 분인 줄 몰랐다고 했어요. 다른 많은 편지를 받았지만 그 편지 한 장만으로라도 엄청난 포교가 됐다는 생각에 학교 인수를 잘 했다고 확신했어요.”
한번은 생면부지의 비구니 스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늦은 저녁 영천 버스터미널에 서 있는 10여명의 여학생들이 자신을 보고 합장반배를 하며 ‘스님 어디까지 가세요?’라며 길을 안내해 주었다고 해요. 그래서 ‘너희들 어느 절에 다니니?’했더니 ‘자기들은 선화여고 다니고 이사장님이 은해사 주지 돈관스님이구요’라며 또박또박 대답해 주더랍니다. 거기에 감동을 받은 비구니 스님이 선방 수좌이면서도 평생 모은 재산 수천만원을 장학금으로 보내오기도 했어요. 교육불사에 대한 관심은 저 보다도 어른 스님들도 큽니다. 이름을 밝히지는 않겠지만 한 스님은 자신의 생일날 들어온 약값도 장학금으로 내놓을 정도입니다. 전국의 교구본사가 지역의 중ㆍ고등학교를 운영하면 포교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봅니다.”
은해사는 군포교에도 역점을 두고 있다. “영천은 부대가 많아요. 그중 3사관학교가 있는데 장교를 양성하는 곳이에요. 이곳에 매년 2000여 만원을 지원하고 있어요. 그리고 템플스테이수련관에 군장병이 항상 찾아옵니다. 군인들에게는 무료로 템플스테이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돈관스님은 “이 모든 것이 장차 한국불교를 이끌어 갈 불자 양성을 위함이므로 미래를 위한 보험 정도로 생각한다”며 웃음 지었다. 다른 교구본사 주지 선거가 치열해 혼탁한 소문이 떠돌 때도 돈관스님은 선거 없이 교구본사 주지로 재추대 됐다. 돈관스님은 이 모든 것을 ‘잘 하라는 사중 어른 스님들의 뜻으로 안다’고 말했다.
최근까지 전국교구본사주지협의회 회장으로도 활동한 스님은 1년 임기동안 느꼈던 소회도 밝혔다. “전국 교구본사가 가지고 있는 어려움을 서로 나누게 됐고, 좋은 의견을 나눌 수 있어 무척 유익했어요. 그런 시스템을 만들었다는데 자부심도 느껴요. 협의체 모임이지만 총무원에 부탁도 하고 조언도 하고 경책도 하면서 불교발전을 이끌어 갈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인터뷰 말미에 돈관스님이 불쑥 클래식 음악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은해사에 오시면 염불소리와 더불어 클래식 음악도 들을 수 있습니다. 특히 비오는 날 산사 추녀 끝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은 멋진 분위기를 연출하지요. 처음 사중에 몇몇 스님들은 ‘절에 염불 대신 무슨 서양 음악이냐’고 역정을 냈는데 이제는 함께 감상합니다. 한때는 부산에서 선생님들이 비오는 날 클래식 음악 들으러 왔다고 했어요. 절에서도 뛰고 놀고 춤도 춰야 합니다. 그러면 부처님도 웃으십니다. 야단법석이 이런 게 아닐까요.”
산사에서 클래식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것처럼 돈관스님은 “시대에 따라 종교가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교도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합니다. 시대에 따라 가지 못하면 낙후됩니다. 생활불교 대중불교 사회불교가 되어야 합니다.” 적극적인 포교마인드에 시대와 호흡하는 세련된 문화마인드를 겸비한 돈관스님을 만나고 오는 은해사의 장대한 소나무 숲 사이로 ‘한국불교의 희망’이라는 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돈관스님은 …
해인사에서 일타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78년 해인사에서 일타스님을 계사로 사미계, 1979년 송광사에서 구산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이후 제방선원에서 수선안거한 스님은 1990년 동국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해 1993년까지 일본 도토리대학(鳥取大學)과 오사카(大阪)교육대학에서 불교아동문학을 공부했다.
경산 환성사 주지, 대구 불광사 주지를 역임한 스님은 산중사찰과 도심 포교도량을 오가며 전법에 매진했다. 2001년부터 2004년까지 경북지방경찰청 경승으로도 활동했으며 2002년부터 현재까지 경북불교대학 학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매체포교에도 남다른 열정을 가져 1999년부터 2002년까지 대구불교방송 총괄국장, 2002년부터 현재까지 대구불교방송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는 조계종 제14대 중앙종회의원으로 활동했다.
2008년 제10교구본사 은해사 주지로 부임한 뒤에는 학교법인 동곡학원을 설립, 이사장으로 부임(2010년)해 영천 선화여고를 운영하고 있으며 2014년 9월부터 현재까지 능인학원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2012년 은해사 주지로 재임한 스님은 전국 교구본사주지협의회장(2013년)을 맡아 한국불교 발전의 주춧돌을 놓기도 했다.
대구경북녹색연합 공동대표 등 사회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으며 저서로 <진리와 지혜의 나눔>(1995), <불교를 알고 싶어요>(2001)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