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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문장 - 문장의 흐름
<송진 시인의 시 창작법 15>
물의 문장-문장의 흐름 / 겨울은 거울의 방충망을 저울에 달다 / 틈, 간間에 대해 사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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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十五, 경을 지니는 공덕
“수보리야, 어떤 선남자 선녀인이 오전에 항하의 모래수와 같은 몸으로 보시하고 낮에 또 항하의 모래수와 같이 많은 몸으로 보시하며, 다시 저녁때에 또한 항하의 모래수와 같은 몸으로 보시하여, 이와 같이 한량없는 백천만억겁을 몸으로 보시하더라도 만일 다시 어떤 사람이 이 경전을 듣고 신심으로 거슬리지 아니하면 그 복이 저 보다 수승하리니, 어찌 하물며 이 경을 베끼고 받아 지니며 읽고 외우며 남을 위해 연설해줌이겠느냐. 수보리야, 요긴하게 말하면 이 경은 생각할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는 아주 한없는 공덕이 있나니, 여래가 대승의 발심한 이를 위해 이 경을 말한 것이며 최상승(最上乘)의 발심한 이를 위해 이 경을 말하느니라. 만약 어떤 사람이 능히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며 사람들을 위해 널리 설명한다면 여래는 이 사람을 알고 이 사람을 모두 보나니, 이 사람은 헤아릴 수 없고 일컬을 수 없고 끝없고 가히 생각해 볼 수 없는 공덕을 성취하게 되리라. 이러한 사람들은 곧 여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짊어진 것이 되나니, 왜 그러냐 하면 수보리야, 만일 소승의 법을 좋아하는 이는 <나라는 생각> ‧ <남이라는 생각> ‧ <중생이라는 생각> ‧ <오래 산다는 생각>에 집착하여 이 경을 능히 알아듣고 읽고 외워서 남을 위해 능히 해설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어떤 곳이든 이 경이 있는 곳이면 일체세간의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가 응당 공양하는 바가 되리니, 마땅히 알라. 이곳은 곧 탑을 모신 곳이어서 모두가 응당 공경하고 절하며 에워싸고 돌면서 가지가지 꽃과 향을 그 곳에 뿌리느니라.”
* 금강반야바라밀경/선문출판사/요진 삼장법사 구마라집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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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는 날들이 많아졌습니다. 이팝나무와 불두화가 비에 젖습니다. 우산 없이 걸어 다니는 사람의 몸도 비에 젖습니다. 털북숭이 강아지도 갈색줄무늬 검은고양이도 비에 젖습니다. 어떤 사람은 비가 와서 좋다, 어떤 사람은 비가 와서 싫다, 어떤 사람은 비가 와서 짜증난다, 분별심을 나타냅니다. 비가 좋은 까닭도 비가 싫은 까닭도 갖가지입니다. 비는 내릴 만큼 내리고 자연스럽게 그칩니다. 누가 뭐라고 하든지 말든지 비는 자신의 갈 길을 걸어갑니다. 미움도 화냄도 좋음도 싫음도 없습니다. 집착, 번뇌가 없는 텅 빈 마음. 있으나 없고 없으나 있는 비의 텅 빈 마음입니다.
시를 생각하는 마음은 밥을 먹는 마음입니다.
배가 고프면 밥 앞에 앉듯
시가 생각나면 시의 밥상 앞에 앉아야 합니다.
가을오이, 매실장아찌, 가을가지양념무침, 들깨다시마토란국, 방아된장국…… 가을의 향이 가득합니다.
비가 내리듯
물이 흘러가듯
밤이 오고 낮이 오듯
자연스럽게 시를 적습니다.
<시>
나는 내 입술을 학대하고 있구나
이렇게 세게 손등으로 문질러 버리다니
입술이 얼마나 놀랬는지
“그만해”
라고 말해서 정신이 번쩍 들었지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야
따듯한 옥수수차를 마시러 갈 때
바셀린 냄새가 싫으면 휴지 반장 접어
살짝 입술을 훔치면 될 것을
모르는 사이 아는 사이 시간이 있는 사이 시간이 없는 사이
뜨겁거나 따듯한 머그잔을 노란 산수유 같은 장판 위에 놓으면서
C 머리카락이 있는 걸 보고 그 위에 머그잔을 놓았다가
오른손으로 머그잔을 들어올리고
왼손으로 C 머리카락을 부드러운 손가락이 옮겼지
머그잔 밑바닥을 더듬으며
C 뜨거웠을 거야......
아니야... C 따듯했을 거야...
송 진_ < C, 혹은 시 혹은 낙타 >
시는 소소小小한 것의 모임입니다. 사소些少한 것의 슬픈 파티입니다. 소소하고 사소한 것의 소소昭昭한 다리를 지나 순수한 동심의 눈꽃축제로 가는 길입니다. 그 길은 늘 하던 대로 다르지 않게 그러나 다르게 깨어있는 시간입니다.
밥솥에 갓 지은 밥이 있습니다. 주걱으로 밥을 푸면 갓 지은 밥의 체온을 그대로 느낄 수 없습니다. 밥공기에 담긴 후의 체온과는 다른 체온이지요. 밥공기 담기기 이전의 밥의 체온, 밥공기에 담긴 이후의 밥의 체온은 우리가 깊이 고민해야 할 부분입니다.
<고민해본다>
밥의 체온을 느낄 수 있는 방법
1.주걱을 사용한다
2. 손가락. 손바닥을 사용한다
3. 입술, 혀를 사용한다
4. 발을 사용한다
5. 그 외의 방법
밥은 시입니다. 시는 물입니다. 물은 밥입니다. 그들은 같으면서 다릅니다. 밥은 밥대로 물은 물대로 시는 시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같이 그리고 따로 다르게 흘러갈 것입니다.
⁍ 하루에 시 한 편과 시작노트 쓰기 ((시-(무의식)와 시작노트-(의식)의 결합))
<보기>
<시>
길은 이어지지만
길은 끊어지지 않지만
막다른 길은 있다
돌아 나와야 하는 길은 있다
길은 끊어진 듯 했으나
다시 들여다보면
갈 수 있는 길이 있다
막다른 길과 돌아 나와야 하는 길과 들여다보면 갈 수 있는 길은
모두 한 가지 길이다
그 때마다 푸른 파도가 밀려왔으며
미역 냄새가 향기로웠으며
하얀 갈매기들이 미역의 검은 상복 위에 앉아 휘파람을 불었으며
방파제 파도의 혓바닥이 육지로 밀려올 듯 넘실거렸다
송 진_ < 동해 바닷가 골목길 >
<‘동해 바닷가 골목길’ 시작노트>
윤정이는 지수와 영화 ‘순정’(EXO 중 누가 나옴 아마 도경수)을 보러가고 나는 동해바닷가 골목골목 바다를 찾아 진하까지 갔다. 송정-기장-송정-진하의 길들(진하 가까이 송정이라는 지명이 또 있다.) 서생과 임랑을 지나왔다.
길은 이어지지만 길은 끊어지지 않지만 막다른 길은 있다. 돌아 나와야 하는 길은 있다. 길은 끊어진 듯 했으나 다시 들여다보면 갈 수 있는 길이 있다. 막다른 길과 돌아 나와야 하는 길과 다시 들여다보면 갈 수 있는 길은 모두 한 가지 길이다.
서생과 임랑 사이에 있는 해물칼국수 집은 이제 들어가지 않으리.
슬픈 면바지의 빛바랜 푸른 반질거림.
소년의 야윈 손목.
훌쩍거리며 빈 그릇을 치우거나 된장에 박혀있는 청양고추를 다섯 번 자르는 야윈 손가락 사이에 무거운 가위의 벌어짐.
주방 앞에도 계산대 앞에도 텔레비전 앞에도 눈길을 둘 때가 없어 머뭇머뭇 손님이 먹을 사탕을 담다
“적게 담아!”
주인의 호통에 머뭇머뭇 조용히 움직이는 어깨 해물칼국수 집을 잠깐 나와 따듯한 햇살 아래 고인 눈물을 말린다 먹다 남은 칼국수는 소년의 기다란 팔에 의해 옮겨질 것이다.
그런 슬픔 후에도 나는 편의점에 들어가 인스턴트커피를 탄다.
저 소년은 누구이며 나는 누구인가.
또 내 옆에 서 있는 그 누구는 누구인가.
우리는 왜 끊임없이 먹어야 하는가.
우리는 왜 끊임없이 슬퍼야 하는가.
▪시를 잘 쓰려고 하지 말고 날마다 쓰시길 바랍니다. 날마다 쓰다보면 어느 날 시가 조금 좋아졌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물은 말없이 흘러가고 시는 말없이 익어갑니다
⁍ 지금 시 한 편과 시작노트 쓰기
<시>
<시작노트>
▪ 언어라는 방충망
언어라는 방충망을 저울에 달아볼까요. 무게가 얼마나 나갈까요. 언어의 다리를 벌리면 또 언어가 있고 언어의 다리를 벌리면 또 언어가 있고 혹은 모르지요. 운 나쁘게 인어 한 마리를 등에 업고 돌아올지 언어를 인어라고 할까요. 인어를 언어라고 할까요. 죽은 언어는 죽은 인어에 집착할까요. 죽은 인어는 죽은 언어에 집착할까요. 죽은 것은 소중한 것이라고 물론 죽은 것은 소중합니다. 그러나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언어들 그런 언어들도 지금의 언어들처럼 죽은 언어들처럼 과거의 언어들처럼 소중한 언어들입니다. 미래의 언어들은 바로 지금 우리들이 말하고 쓰고 행동하는 언어들, 아마추어처럼 슬퍼하고 아파하고 쇼핑하고 밤새우고 진중하게 토론하고 설거지하고 화장실 가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서툰 노동을 하고 서점에 가고 음반을 구입하고 프로처럼 장례식을 치르는 그런 행동과 생각과 상상에 의한 언어에 담긴 환경적 요소들이지요. 나라는 생각이 없으면 더욱더 나에게 집중할 수 있습니다. 남이라는 생각이 없으면 더욱 더 남에게 집중할 수 있습니다. 중생이라는 생각이 없으면 더욱더 중생에게 집중할 수 있습니다. 오래 산다는 생각이 없으면 더욱더 오래 산다는 생각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집착이 아니고 집중입니다. 탐욕이 아니고 집중입니다. 텅 빈 언어를 가진 인어는 무엇을 가진다 해도 가진 것이 아니며 무엇이 없다 해도 무엇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언어를 갈고닦으면 언어는 결국 없어지는 것입니다. 궁극에는 말하지 않아도 말의 마음을 모두 압니다. 언어로 쓰지 않아도 언어의 마음을 모두 압니다. 시를 쓰지 않아도 시의 마음을 모두 압니다. 언어는 텅 빈 허공이고 시는 이심전심以心傳心, 불립문자不立文字이기 때문입니다.
<시>
방충망에 알비노 인어가 걸립니다. 알비노 무지개송어가 걸립니다 알비노 등검은메뚜기가 걸립니다 실낱처럼 가느다란 발을 가진 알비노 아기거미가 걸립니다 사실 알비노 아기거미는 알비노 양변기 청소 중에 뜨거운 스팀청소기에 하얗게 살이 익어갔지요 그리고 익사했지요 건져 올려보았지만 뭘 어쩌겠어요 축 늘어진 팔다리를 변기 속에 넣고 물을 내렸죠 쏴아_ 모든 증거가 인멸되는 순간이었죠 ‘찾아들다’라는 단어가 문을 두드렸어요 이미 찾아들었는데 이미 알비노 문을 나킹나킹 두드렸는데 무슨 노크를 또 하는 거죠? 이봐요 이 집에서 나가주세요 들은 사람 있나요 듣는 사람 있나요 ‘알비노 새가 찾아들다’라는 꽃사슴이 펜스를 뛰어 넘었죠 어이 꽃사슴 자네 어디 가? 그렇게 불러야 하나요 못 본 척 헛간 청소를 하고 있어야 하나요 ‘알비노 칠성잠자리가 찾아들다’와 ‘알비노 칠성딱정벌레가 찾아들다’가 송정바닷가에서 만나면 페치카 불붙은 장작처럼 이글이글 익은 단풍 가을등산 가방에서 버너를 꺼내들고 알비노 라면부터 끓이죠 배가 몹시 고팠거든요 밤마다 알비노 노을은 늘 단단한 성기처럼 버티고 서 있지만 새벽이면 슬그머니 알비노 모래 묻은 하얀 운동화를 돌려 신었어요 ‘알비노 나뭇잎이 노랗게 파랗게 찾아들다’ 라고 은행나무가 운을 띄었지만 운은 운일 뿐 현실은 열매 없는 실제 상황이죠 실제상황입니다 실제상황입니다 주민여러분은 신속하게 대피소로 대피해주시기 바랍니다.
송 진 _ <알비노 아기거미 양변기>
<‘알비노 아기거미 양변기’ 시작노트>
미세먼지가 통과하다.
언어가 통과하다.
언어가 걸리다.
언어의 목젖에 걸리다.
언어의 목적에 걸리다.
언어의 목젖애愛 잠기다.
생각의 깊이
생각의 늪을 빨대로 휘휘 젓다.
생각의 발에 차이는 생각들
생각의 발을 늘어뜨리는 생각들
언어 속에 시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
언어들이 어떻게 여백에 시의 건축물을 세우는가를 지켜보아야 한다.
시인은 그렇게 자신의 시가 쓰여지는 것을 지켜보는 자이다.
시인의 시는 지켜보는 자에 의해 재탄생될 뿐
시인에 의해 시가 쓰여 지는 것은 아니다.
시는 쓰는 자는 오직 유일하게 ‘언어’일 뿐이다.
▪ 노을의 결실
시는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피나는 노력의 결실입니다. 그런데 그 피나는 노력의 결실은 피나는 노을의 결실입니다. 모든 걸 바라보는 노을. 세계에 일어나는 감각과 관념 모든 정황을 미리 다 알고 미리 다 보고 미리 다 깨닫는 노을. 우리가 날마다 만나는 노을처럼 객관적 냉정함 속에서 시를 쓰는 것이 좋습니다. 거품의 감정이 걸러지지 않은 채 시를 쓰게 되면 요란한 감정만 떠들썩한 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언어의 무의식에서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천도복숭아 향기를 맡지 못할지도 모를 일이지요.
▪ 언어와 함께 호흡하기
<보기>
1) 단어 쓰기
• 밀감
2) 문장 쓰기
• 밀감: 이맘 때 겨울이면 항상 네 호주머니 속에 노란 밀감이 병아리처럼 들어있었어
• 밀감: 아버지가 술에 취해 들어오는 날이면 엄마는 발에 밟혀 터진 밀감처럼 방구석에 던져졌지
• 밀감: 아버지가 술에 취해 들어오는 날이면 엄마는 급하게 뛰어가는 행인의 발에 밟혀 온 몸이 터져버린 밀감처럼 노란 오줌을 질질 흘리며 방구석에 내팽개쳐졌지
3) 시 쓰기
• 밀감
<시>
엄마랑 밀감을 먹고 있었어
맛있게 먹고 있었지
엄마 하나 나 하나
하하 호호
오랜만에 웃음꽃이 피었지
“이 개자식들은 뭐하는 연놈들이야!”
아빠는 그날도 낮술을 많이 드셨어
방바닥 밀감들이 후다닥 급하게 흩어지고
미처 피하지 못한 똬리 물달팽이 같은 밀감 하나
발에 밟히고 진물이 터졌지
질질 머리채 끌려가는 노란 오줌자국이
하얀 싸락눈 오는 날
고장 난 자전거 바퀴처럼 길게 이어졌지
입술 찢어지고 눈가 연못 파랗게 멍든 똬리 물달팽이 밀감
괜찮아 자고나면 편안해질 거야
검은 무명 이불 뒤집어쓰고 서럽게 울던 나에게
머리가 쇠수세미처럼 헝클어진 엄마는 꼭 안으며 속삭여주었어
준아, 엄마는 다시 태어나도
너의 달콤한 밀감이란다
괜찮아
밀감은 밀감이라고
밀감은 밀감일 뿐이라고
노랗고 하얀 LED 간판 국민은행 앞
파란 일 톤 트럭
발 없는 발전기 돌리며 말없는 밀감을 판다
송 진 _ < 밀감 >
4) ‘밀감’ 시작노트 쓰기
<시작노트>
밀감은 달콤한 하트 같기도 하고 뭉클 뱀처럼 슬픈 동물 같기도 하다.
어떻게 이 시가 나왔을까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언어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내면 깊숙이 슬픔이 눈을 뜨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아마 밀감처럼 노랗게 눈 뜬 슬픔이 이 시를 적게 했으리라.
일주일에 두 번 다문화 아이들 방과 후 창작글짓기 수업을 간다.
그 곳은 곱창음식점 골목으로 더 유명한듯하다.
그 곳,
문현동 장고개 성천 초등학교 아래 일신문구점 바깥에 아무렇게나 무성하게 꽂혀있는 노란 해바라기가 보고 싶은 2016년 10월 26일 수요일 정오를 지난 지 29분 32초 지난 12시 29분 32초이다. 사는 건 늘 파란 하늘과 노란 밀감 사이다.
<직접 쓰는 시간입니다>
⁍ 언어와 함께 호흡하기
<보기>
1)단어 쓰기
•
2) 문장 쓰기
•
•
•
3) 시 쓰기
•
4) 시작노트
•
⁍ 시는 묵묵히 걸어가는 한 자루 호미거나 거위의 뒷다리
어떤 사람들은 시가 길이가 짧으니 시는 잠깐 쓰면 된다는 말을 하는 이가 있습니다. 짧은 시를 보고 그렇게 생각 할 수도 있겠지요. 시가 길이가 짧든 길든 시는 시를 쓰는 자기 자신도 모르는 세계를 언어로서 보여주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이 힘은 금을 준다고 해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누가 준다고 해서 덥석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혼자 스스로 시라는 황무지를 개척한다고 본다면 어느 정도 맞는 표현일 것입니다. 만약 지도해주는 스승이 있다면 자꾸 시에 대한 의문을 자주 질문하고 의문을 풀고자 노력하고 스승에게 점검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궁극에는 자기 자신이 자신의 스승입니다. 평생의 스승이 됩니다. 그러니 늘 자기 자신과 이야기하고 자기 자신에게 의문을 던지고 자기 자신에게서 해답을 구하려고 하고 그러면서 시의 세계로 한 발 한 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두려움을 버리고 용기를 내어 자신의 논과 밭 속에 들어있는 황금의 문장을 찾아 갈고 닦아야 합니다. 실력을 쌓는 길은 생각하고 쓰기, 말하고 쓰기, 밥 먹고 쓰기, 자다가 쓰기, 길에 가다 주저앉아 쓰기, 오늘 본 것 쓰기 등등 오직 쓰기의 노력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시적 상상력이나 감성을 가지고 있다 해도 바로 그 때 쓰지 않는다면 그 때 느꼈던 그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시가 꼭 짧아도 되는 것도, 시가 길어야 되는 것도 아닙니다.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조차 없습니다. 그저 자신이 쓰고 싶은 길을 묵묵히 오래 꾸준하게 쉬지 않고 걸어가면 됩니다. 시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그저 묵묵히 걸어가는 한 자루 호미거나 거위의 뒷다리일 뿐입니다.
● 식물성 & 동물성 상상력에 대하여
⁋ ‘칡’에 대한 상상력
칡은 우포늪이다
칡은 자전거 안장이다
칡은 흘러가는 저녁노을이다
칡은 초미세먼지다
칡은 드라이를 마친 머리카락이다
칡은 나룻배다
칡은 웅덩이다
칡은 치즈케이크다
칡은 냉장고에서 썩어가는 토마토다
⁋ ‘햄’에 대한 상상력
스스로 언어의 감각이 자랄 수 있는 땅을 일구어야 합니다.
시는 바깥에서 구할 수 없으며 오직 자기 스스로 자신의 안에서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건 원래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니까요.
자신의 안에서 자신의 황금을 찾으려하는 노력이 더 필요할 뿐입니다.
바로 그것이 (시와 금강경이 일치할 수밖에 없는) 갈등이고 고통이고 환희이고 베풂이고 지혜이고 자비이고 확실함입니다. 내가 원래 시인임을 굳건히 믿고 간절히 찾고 구하시길 바랍니다.
⁋ ‘방울토마토’에 대한 상상력 써보기
‣
⁋ ‘양파’에 대한 상상력 써보기
‣
‘⁋ ‘지갑’에 대한 상상력 써보기
‣
◆ 틈, 간間
틈, 사이의 숨소리 틈, 사이의 환상 틈, 사이의 상상 틈, 두려움 없이 쓸 때까지 틈, 새로운 세계 추구 틈, 남과 같은 것은 버려라 틈, 지우고 또 지우고 틈, 쓰고 또 쓰고 틈, 완성되는 작품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틈, 지뢰밭 틈, 자갈밭 틈, 가도 가도 끝도 없는 울명새여 틈, 그래도 창작의 즐거움이 있기에 틈, 이 길을 간다 틈, 사이에 남아있는 보물을 찾아서, 틈 틈틈
※ 사물의 형상화, 사물의 구체성, 그리고 내가 생각하고 있는 그 하나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야 한다. 어린 아이가 무섭고 낯선 곳에서 보호자의 손을 꼭 잡고 놓지 않듯이
<시>
36번 버스정류소에는 붕대나비 한 마리 살고 있대 온 몸을 붕대로 칭칭 감고 있는, 땅굴을 파고 구더기를 먹고 살고 있대 우연히 나드리 택시기사가 봤대 붕대나비가 자기보다 만 배는 더 큰, 죽은 쥐를 실어 나르는 것을, 팔랑거리는 붕대나비의 날개에서 태권브이가 날아 나오더래 그리고는 눈깜짝할 사이에 쓰윽 죽은 쥐를 땅굴 속으로 밀어넣고 다시 붕대나비의 날개 속으로 들어가더라던거지 그걸 믿으라고? 글쎄 나는 그냥저냥 저절로 믿어지더라 늘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어리석음의 나비이빨이든 지혜의 나비 발가락이든 이제 납일 삼십일이 다가오고 있어 넌 어떤 관을 주문할 예정이니 나는 텅 빈 공간에 가슴 펴고 가부좌 비석처럼 겯고 앉아 텅빈공관텅빙공관텅빈공관 읊조리며 영원히 깨어있는 깊은 잠의 관에 들어 갈 예정인데
송 진_ < 유월 삼일은 토요일인데 >
Q. 질문
‘틈’은 우리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안겨줍니다. 언어의 틈에, 문자의 틈에, 화해의 틈에, 화단의 틈에, 공기의 틈에 구름의 틈에, 물의 틈에 끼었을 때 우리는 상상력은 어디로 나아가야 할까요?
A. 답변
독자는 생각한 답을 상상하여 자유롭게 쓰길 바랍니다. 예를 들면: 구름에게 다가가서 구름의 뜯겨나간 옆구리에 밤새 뜨개질 한 휘파람새의 비늘을 달아준다, 당근 구름의 허락을 구한 일이다,
★ 자유롭게 쓰기:
문장과 문장 사이에 독자가 직접 쓸 수 있는 공간을 비워두었습니다. 저는 ‘날마다 쓰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각자의 환경과 능력에 맞춰 십 분이든 이십 분이든 날마다 쓴다면 글이 쉽게 써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시는 오묘한 세계입니다. 잘 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가지고 날마다 꾸준히 열심히 정진하시기를 바랍니다
(2020년 겨울호에 계속됩니다)
▪지난호 수정: (2020년 사이펀 여름호(17호) p278 ‘제 十三, 법답게 받아 지니라’는 ‘제 十四, 상을 여윈 적멸’로 수정합니다.)
송 진 약력
1999년 『다층』 제1회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지옥에 다녀오다』, 『나만 몰랐나봐』, 『시체 분류법』, 『미장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