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시골에서 자랄 때는 큰 부자는 아니어도 문전옥답이 열마지기면 밥은 굶지 않고
먹을 수가 있었다. 6.25 사변으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함께 잃으셨던 아버지는 세상을 원망하고
늘 술로 세월을 보내셨다. 농삿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으셨기 때문에 농삿일과 집안 일에는 어머니가
고생이 많으셨다. 어린 나야 지게를 지고 뒷산에 올라가 땔감나무나 해오곤 하였다.
가을에 추수를 하고서는 흰 쌀밥을 먹을 수 있지만 쌀이 떨어지는 봄이 되면 보리쌀로 두번을 삶은
보리밥을 먹어야 했다. 동네에는 보리밥도 배불리 못 먹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 겨울에는 농삿일도 없고 해가 짧다고 하여 끼니를 늘인다고 고구마를 삶아 동김치나 배추김치와
함께 먹기도 하고 호박죽을 끓여 먹기도 하였다. 밥에도 무나 고구마를 깔아 무,고구마밥을 해 먹었다
흰 쌀밥이 건강에 좋지 않다고 해서 집사람이 마트에서 혼합곡을 사와서 밥을 하는데 별로 당기지 않는다.
오늘 집사람이 출근하고 없는 틈을 타서 밥솥 밑에는 감자를 썰어서 깔고 위에는 쌀을 씻어 앉혔다.
압력밥솥에 밥을 했더니 구수한 밥 냄새가 구미를 당겼다. 혼자 밥그릇에 한 그릇 퍼놓고 나머지는
전기밥솥에 퍼서 담았다. 밥이 맛있으면 반찬은 별로 상관이 없다. 김치 하나만 있으면 됐고 냉장고에서
젓갈 한통을 꺼냈다. 와인쿨러에서 와인 한 병을 꺼내 코르크 마개를 땄다. 와인 잔에다 한 잔 따루어 놓으니
세상에 부러울 게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