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의 자기 이상 추구에 매혹된 한 기사의 불운을 그린 세르반테스의 "동키호테"는 안무가들에게 일찍이 1740년부터 영감을 주어왔다. 20세기에 관중들에게 가장 친밀한 발레는 마리우스에 의해 만들어진 1869년의 볼쇼이 작품부터라고 할 수 있다. 비록 후대의 작품 - 그중에서도 특히 1965년에 있었던 조지 발란신의 뉴욕시티 발레 - 처럼 세르반테스의 철학적 의도에 충실치 못하였다. 그러나 쁘띠빠의 작품은 후속 안무가들에 의한 수많은 교정을 통해 어떻게든 즐거움과 기쁨을 주는 하나의 웅대한 코믹 발레 닥션으로서 성공한다. 오랫동안 쁘띠빠의 "동키호테"는 그랜드 빠 드 뒤의 오리지널한 재원으로서만 인식되었다. 그러나 최근 수십 년 동안 전막 작품에 대한 관심도 살아나고 있다.
낭만주의 전통에서 출발하여 상상의 세계를 잡는 대신, 쁘띠빠는 아주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스페인 사람들을 선택하였다. 그가 일찍이 이 나라를 여행하면서 스페인 춤의 밝고 강렬한 영감을 발레에 옮기는데 성공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철학적 깊이와 극적 긴장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동키호테"를 발레화한 어떤 작품도 대작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아마 이것은 춤에 있어서 불가능한 과업인지도 모른다.
코펠리아
Coppelia
이 작품은 1870년 5월 25일 빠리 오페라에서 초연한 이래로 발레 팬들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아온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코펠리아"는 19세기 발레 걸작 중에서 비극적인 발레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지젤"에 대칭되는 희극적 발레이다. 레오 델리브의 음악은 그 자체만으로도 연주나 레코드로 널리 애호되고 있다. 안무는 아르뛰르 생 레옹. 그런데 1884년의 러시아 공연 때는 생 레옹의 대본을 수정한 쁘띠빠의 안무였는데, 현재 프랑스나 덴마크에서 무대화되는 "코펠리아"는 생 레옹의 직계인 반면, 영미측의 공연은 제정 러시아의 대본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외 죤 크랑코(독일:슈투트가르트)발레와 발란신(뉴욕 시티 발레)의 안무도 있다.
바로크 협주곡
Concerto Barocco
이 1941년 발레에서는 예를 들면 여성 독무가 두 명이 바흐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콘체르토 제1악장에서 두 대의 솔로 바이올린 역을 맡아하면서 두 개의 멜로디 선율처럼 서로 합해지고 분리되고 한다. 후반부에 들어가서는 제2바이올린의 좀더 침울하고 깊은 멜로디가 제1바이올린의 밑에서 연주되며, 여성 하나는 그에 상당하는 남성으로 교체되어 그가 발레리나를 써포트하고 포옹한다.
구체적인 무용 이미지 역시 직접적으로 음악과 부합하는데, 에드윈 덴비는 일찍이 씌어졌던 무용 평론 중 가장 유명한 구절 가운데 하나로 이것을 묘사했다.
'폭풍이 강타하기 전 바람 속의 나무들 모습을 시사해주는 군무단을 배경으로 한(아다지오 동작의) 클라이맥스에서 사지를 힘있게 펼친 발레리나를 남성 파트너가 들어올리는데, 더 높이 더 높이 호를 좁히면서 반복해서 들어올린다. 그런 다음 그녀가 최고도의 높이에 이른 정점의 프레이즈에서 그는 매우 천천히 그녀를 내린다. 우리는 그녀의 몸이 서서히 내려와서 발과 다리가 뻣뻣이 아래를 향하다가 발가락이 바닥에 닿고 마침내 그녀는 전 체중을 그 단 하나의 예리한 지점에 실은 다음 정지하는 것을 지켜본다. 그것은 상처속으로 향하는 의도적이고 강력한 돌입의 순간의 효과이며, 그 감정은 음악의 강세에 이상하게 답한다.
아공
Agon
1957년에 안무된 이 발레는 발란쉰 작품 중 음악과 무용 모두 신구 양면의 가장 완벽한 종합체일 것이다.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은 고전주의 발레가 최초로 개발된 16,7세기 궁중 무용의 성질에 기초를 두었다. 하지만 그런 무용들의 옛 박자나 멜로디를 여전히 들을 수 있는 반면에 소리는 분열되고 불협화음을 이루었다. 동시에 발란쉰의 안무에서는 다수의 낯익은 발레 스텝들을 볼 수 있지만 그것은 너무나 '기형적이고' 너무나 밀집돼서 4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놀랍고 새로운 인상을 준다.
이 발레는 흑백의 연습복을 입은 12명의 무용수를 위한 무용조곡이며, 무대장식은 없다. 무대는 동작의 형태와 에너지로 채워지기를 기다린다. 대부분의 무용수들은 팀을 이루어 등장해서 서로서로 춤을 추거나 멋지게 경쟁하며 때로는 특히나 짧은 정점의 빠 드 듀를 위해 무대가 빌 때 커플을 이루어 춤춘다.
에드윈 덴비는 이 발레를 처음 보았을 때 그 고도로 압축된 스타일과 스피드에서 발생되는 에너지로 말미암아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고 한다. 이 발레의 큰 빠 드듀에서는 모든 고전주의 밸런스와 써포트의 조치가 과장됐거나 반전된 것만큼 무용수들의 운동열도 위험하거나 관능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남성이 한 가지 제스쳐 속에서 여성의 다리를 뒤로 들어 올리고 그 여성의 머리를 뒤로 밀어 다리와 만나게 하는 것은 야만적이고도 친밀하다. 여성은 고전적인 아라베스크 자체를 취하고 있고 남성은 그 여성의 발 밑에 드러누워 여성의 축다리를 잡고 돌리면 여성의 다리는 남성의 머리 위에서 오만하게 돌아간다.
아공의 빠 드 듀에서 발란쉰은 이 발레의 남녀의 역할을 재편집하려는 것 같은데 - 여성은 남성이 조종하는 포옹속에 그대로 남아 있기는 해도 여기서는 19세기 동료들보다 휠씬 더 강하고, 더욱 오만하다. 그러나 비평가 데보라 조윗이 말한 바처럼 주역이든 꼬르의 멤버이든 간에 발란쉰 발레의 남과 여는 음악 안에서 모두 동등했다. 발란쉰에게 음악은 모든 일의 기초이고 영감이었으며, - 무용수의 본분은 그 서로 다른 부분들에 형태을 주는 것이었다.
초본
Firstext
이 발레를 위해서 런던의 로열 오페라 하우스 무대는 벽면을 온통 뜯어내 전선과 무대 장치들로 뒤범벅된 백스테이지가 다 드러나 화려함을 보여주는 환상이나 신비함이나 매력이 하나도 없어진 자리가 되었다. 첫 무용수(최초 배역은 실비 기옘)는 혼자 등장했다. 그녀가 우아하게 웅크렸을 때 한 쪽 다리는 이상하게 흔들리는 안테나처럼 한 쪽 다리를 귀 옆으로 해서 앞으로 쭉 내밀었고 길다란 한 쪽 팔은 작은 연결된 시퀸스로 잔물결을 일으켰다. 다섯명의 무용수가 합류했을 때는 수천의 의문스러운 충동이 몰아치듯 복잡한 예상치 못할 패턴으로 사지를 미끄러 뜨리고 곡선을 그렸다. 서로 파트너를 이루었을 때는 두 대의 자동 실톱이 연결돼 정신없는 것처럼 사지를 장난스럽게 움직여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는 자세로 맛물린다. 빠져나갈 곳이 없게 되자 평범하게 우아한 순간이 초점이 되어 정지되며( 세 명의 무용수가 동시에 거행하는 고전적인 아띠뛰드처럼), 그런 다음 소란스런 그룹 활동으로 분리된다.
포사이드 안무의 이 새로운 양상은 오늘날 다수의 현대 안무가들이 선호하는 '해방'형의 사촌격으로, 이 동작은 무용수의 신체를 통과해 흐르는 듯이 보이며, 특정한 선과 형태로 강요되기 보다는 그 나름의 행동이 흐름을 추구한다. 동시에 고전주의 발레 자세는 무용수 사지의 에너지가 가장 깊은 도관 속에 그대로 남아 있어서 동작이 소용돌이 칠 때조차 턴아웃된 다리와 쭉 편 발, 그리고 들어올려진 몸통을 통해 가장 자연스럽고 쉽게 흘러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목신의 오후
L`Apres-midi d`un faune
1912년에 드뷔시의 음악시를 배경음악으로 한 이 발레는 레옹 박스트가 의상을 맡아 이교도의 전원문학을 인상적인 이미지로 표현해냈다. 무대는 님프의 의상들과 니진스키의 검은 얼룩반점 타이즈가 배경막과 어우러져서 회색과 황갈색과 초록색으로 얼룩덜룩한 거대한 캔버스같이 보였다.
이 평면의 무대 이미지는 이 작품이 갖고 있는 기묘하게 고요한 특성의 한 부분이었다. 니진스키의 첫 번째 전통파괴는 동작을 드뷔시 음악의 리듬에 맞추지 않으려는데 있었고, 단지 그 음악의 무성한 색채와 분위기를 무용이 들어가려는 고요한 세계로 이용하였다. 두 번째는 무용수의 몸을 평면적인 2차원 형태로 만들어서 고전주의와 연관된 3차원의 광휘와 우아한 곡선을 부정하려는 것이었다. 이 발레는 마치 움직이는 부조와 같아서, 인물은 옆모습을 보이며, 상체는 비틀고, 손 바닥은 쫙 펴서 평평하게, 맨발은 바닥에 납작하게, 그리고 사지는 각도가 뻣뻣해서 고대 그리스의 꽃병이나 벽조각에 나오는 인물의 모방이었다.(마리 램버트는 발레 뤼스에서 잠시 춤추다가 나중에 런던에서 자신의 무용단을 결성했는데, 자서전 퀵실버(Quicksilver) 속에서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워킹은 발바닥 전체를 바닥에 댄 채 각광(footlights)과 평행한 일직선 상에서 모두 이루어졌다. 위킹이나 방향전환 때는 말할 것도 없고 그걸 해내기엔 너무도 어려운 자세였다.')
이 발레의 스토리는 간단하다, 목신이 한 무리의 님프들이 목욕하는 모습을 한가롭게 바라보다가 그 중 하나에게 반한다. 목신은 그녀를 사로잡으려 하고 그녀는 도망가다가 스카프를 떨어뜨린다. 몸이 달아오른 목신은 그 위에 드러누워 승리감에 그러나 고독한 황홀경에 빠져든다. 스토리를 이어가면서 그 속에 심리적 디테일 주입을 목표로 했던 포킨과는 달리 니진스키는 기본적인 물리적 개요로부터 자신의 드라마를 가속 시켰다. 그는 장식적이거나 기교적인 발레 스텝을 사용하지 않았고, 무용수들도 고조된 감정을 거의 나타내지 않았다. 종종 포즈를 몇 초간 유지했고, 또는 매우 원시적인 스탭을 썼다. 목신이 님프를 유혹하려 할 때 그녀는 한 쪽 무릎을 구부리고 웅크리며, 허리를 약간의 동의의 표시로 목신 쪽을 향해 기울이지만 몸의 각도는 두려움 때문에 뒤를 향한다. 목신은 바닥에 드러누우면서 골반을 한 번 단순하게 그리고 뻔뻔 스럽게 미디는데 그로써 성적으로 해방된다.
이 꾸밈없이 형식화 개념은 이 발레를 기하학으로, 선과 리듬의 극으로 축소시켰다.(비평가 린 가라폴라는 니진스키가 정적이고 형식화된 자세, 비의인화된 인물, 총체적인 의상 디자인을 사용하는 모스크바 극장 가독 브세볼로드 마이어홀드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놀랄 것도 없이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은 이 발레에 깊은 흥미를 느꼈다 :
니진스키가 최근의 이 역할만큼 뛰어났던 적은 일찍이 없었다. 더 이상의 점프, 반무의식 상태의 짐승같은 제스쳐와 포즈 이상의 것은 없다. 그는 드러 눕고, 팔꿈치로 기대고, 무릎을 구부려 걷고 그러다 몸을 쭉 펴고 때로는 천천히 때로는 급한 각도의 동작으로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한다. 그의 눈은 명멸하며, 팔을 쭉 뻗고 손가락을 함께 모아 손 바닥을 쫙 편다. 그리고 고개를 돌릴 때도 자연스러워 보이는 신중하고 어색한 태로로 계속해서 욕망을 나타낸다. 내재돼 있는 마음의 총체적인 표현인 그 몸속에 형태와 의미가 분리 시킬 수 없이 결합돼 있다.
동작은 무용수의 성별을 거의 부정할 정도로 형식화됐지만 니진스키 시나리오의 관능성은 그 당시로써는 극단적이었다. 여기에는 그 의도를 흩트러뜨리기 위해서 세헤라자드처럼 그 의미를 부드럽게 해주는 아무런 사랑 관계도, 허세의 모험도 없다. 프랑스 신문 르 피가로의 비평은 '동작은 그 관능성으로 인해 추잡하고 야만스러우며, 제스쳐는 외설한 만큼 서투른 음란한 목신을 우리는 보았다.'라고 했지만 대부분의 대중은 인정했다.
1953년 미국인 안무가 제롬 로빈스는 목신의 오후를 드뷔시 곡에 맞춰 해석해 냈는데, 이것은 무대를 가상의 거울로 하고 발레 바 옆에서 두 무용수의 만남을 그린 것이다.
봄의 제전
The Rite of Spring
목신에 대한 비평은 지금 돌이켜볼 때 1913년 발레 봄의 제전 - 원래의 프랑스어 제목은 Le Sacre du printemps - 이 야기한 격정에 비교해보면 니진스키에게는 부드럽게 보였을 것이다. 스트라빈스키와 공조한 이 대작은 그 소리와 음악에서 격렬하고 불안한 원시주의를 속까지 들여다보았고 동시에 20세기를 위한 완전히 새로운 언어를 창조했다. 그 초연으로 인해 발생된 스캔들은 용기있는 전위예술가들 대 아둔한 속물이 벌이는 모든 전투의 귀감이 되었고, 그 초연장에서 지지자들과 공격자들이 공공연히 싸운 소동에 대해서 우리는 거의 부럽게 생각한다. 전체적으로 웃음과 고함, 휘파람 소리에 밀쳐대는 와중에서 누군가가 라벨이라고 불렀던 객석에 있던 그를 옆에 있던 멋지게 차려입은 여자가 '더러운 유태인'이라며 따귀를 갈겼고, 각양각색의 시끄러운 재사들은 그 발레를 "봄의 대학살"로 제목을 바꿔 버렸으며 어떤 이들은 의사와 치과의사를 부르기도 했다.
이 발레의 시나리오는 목신만큼 원형적이었지만 (이교도들이 풍년제를 축하하고 그 클라이맥스에서 제몰로 바쳐진 처녀가 줄을 때까지 춤춘다), 이번에는 러시아 민속 전통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었다. 스트라빈스키는 곡의 일부를 러시아 전통 멜로디로 바꿔놓는 등 도저히 예측 불허의 식으로 박자를 맞출 수 없었다(달크로즈의 리듬에 의한 동작 운동을 훈련 받은 마리 램버트가 이 곡 파악에 도움을 주기 위해 불려 왔으며, 그후부터 리드미치카라는 별명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스트라빈스키는 또한 오케스트라가 다른 종류의 악기들처럼 소리나게 시켰다. 니진스키 일대기의 작가 리처드 버클의 표현에 의하면 금관악기의 비명소리, 푸드득하고 혀차는 소리를 내는 플륫, 튜바에서 나는 거치를 고동, 제각기 다른 리듬으로 연주되는 악기 등 이 연주자들의 소리 때문에 현악기와 목관악기는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 극단적인 음역을 사용했다고 한다. 색채는 번쩍이고 리듬은 겹치는 이 음악의 마구 취저어 대는 거대한 파괴력은 이 작품이 과거으 에덴동산에 대한 어떤 향수어린 시각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했다. 그것은 인생의 야만성, 종족의 잔인성, 자연의 힘에 대한 개인의 굴종을 나타낸 것이었다.
이 발레의 등장인물은 적당히 총칭적인데,부족의 일원들은 그냥 선조들 또는 동정녀들로 되어 있으며, 이들을 위해 니진스키가 창조한 언어는 고전주의 법칙에 대한 공격처럼 보였다. 다리는 너무 안쪽으로 턴인돼서 발이 안짱다리 모양이 됐고, 무용수들이 점프할 때는 바닥에서 발이 거의 떨어지는 것같지도 않아 보였다. 에너지는 외곽으로 방사되는 대신 안으로 응축되어서; 몸은 떨렸고 제스쳐는 무겁고 거칠었다. 이 발레의 가장 열렬한 지지자였으며 가장 상세한 증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프랑스 작가 "자끄 리비에르"는 이렇게 말했다. '욱체는 더 이상 영혼에 대한 탈출 수단이 아니다. 반대로 영혼의 주변에서 자신을 모으고 거두어 들인다. 그것은 자신의 외부로 향한 공격을 억누르고....육체와 이어지므로 영혼은 단지 물질이 된다.'
니진스키는 무용수들을 각기 다른 리듬으로 춤추는 소그룹들로 구성해서 몇몇은 원을 그리며 달리고, 다른 이들은 집단으로 점프를 했다. 그들은 19세기 후반 발레의 고요한 확실성에서 멀리 떨어진 맹목의 집단적인 긴급함이 불을 붙여준 듯이 보였다.
니진스키의 제전은 단지 13회 공연을 가졌지만 스트라빈스키 곡은 안무가들로부터 계속해서 성스러운 교본의 위치를 얻었다. 상당수의 많은 무용들이 이 곡에 맞춰 만들어졌는데, 그 중에는 한 여자의 인내심을 테스트하는 몰리사 펜리의 작품이 1988년에 만들어졌고, 원곡을 펑크락과 병치시켰으며 두드러지게 놀랍도록 사나운 동작이 스트라빈스키에게 현대 락음악의 긴급성과 관행을 주었던 마이클 클라크의 믐(Mmm,1992)도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
Romeo and Juliet
케네스 맥밀런의 작품 중 가장 잘 알려진 발레인 로미오와 줄리엣조차도 1965년 당시에는 편안하다고 여겨졌던 낭만주의 발레의 관례를 밀어냈다. 1막의 발코니 빠 드듀에서는 이 레퍼터리 속에서 가장 순수하게 서정적인 춤을 얼마간 포함하고 있지만 그 리프드와 붙잡기는 황홀하도록 관능적이다. 이것은 쥴리엣이 로미오의 손을 잡아 자기 가슴에 얹어 격렬하게 뛰는 심장을 느낄 수 있게 하는데서 시작한다. 이어서 일련의 동작이 나오는데 이 동작들은 최초의 로미오였던 크리스토퍼 게이블은 '밸런스와 돌아서기, 회전 등 모든 것이 잠깐 중지됐어요. 누군가에에 압도적으로....반한.... 그 순간을 아시겠지요....그들이 바로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겁니다.....머리 속에서 천둥이 치는 것과 같은 거지요'라고 말한다.
이 순간을 맥밀런은 대담하게도 무용수로 하여금 완전한 정지상태로 있게 했다. 로미오와 쥴리렛이 처음 서로를 보았을 때 그들은 아무짓도 못하고 바라보기만 한다. 그리고 쥴리엣이 파리스와 억지로 결혼하게 될 소름끼치는 장래에 대해 대처할 방법을 궁리하고 있을 때에도 그녀는 다만 침대가에 앉아 어둠을 응시한다.
맥밀런은 또 무용수들을 기괴하게 보이게 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로미오는 쥴리엣의 시체를 그냥 질질 끌면서 절망적으로 무대를 돈다. 처음에는 그녀의 죽음을 믿을 수 없어서 자기와 춤추게 하려고 애를 쓰지만 그 다음에는 '커다란 고깃덩어리(맥밀런이 의도한 이미지)처럼 그녀를 끌고 돈다. 게이블은 이것을 '나는 린을 무대 가장자리로 끌고 다녔습니다. 그녀의 다리는 벌어지고 옷같은 것도 모두 젖혀지고 노출돼서 다칠 것도 같고 보기에도 흉했습니다'라고 회상한다.
마농
Manon
맥밀런이 1974년에 만든 마농 역시 3막 설화체 발레라는 친숙한 관례를 따른다(후에는 타파한다). 배경은 18세기이며, 특별히 마쓰네가 편곡한 음악을 사용했다. 맥밀런은 일찍이 창작했던 것 중 깨끗한 고전주의 동작을 통해서 아베 쁘레보 원작의 마농 레스꼬와 그녀의 연인이며 시인인 드 그리오의 비극적 이야기를 다시 그려냈다. 드그리오가 마농에 대한 갑작스러운 정열을 표현하는 대목인 첫 번째 솔로는 우아하고도 감동적이다. 그는 절제된 일련의 아라베스크로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는데, 그 격식은 뻗친 팔이 나타내는 열망과 간절히 원하는 고갯짓으로 인해 거짓임이 드러난다. 연인들의 첫 번째 침실의 빠 드 듀에서는 서정감이 무용수들의 정열로 인해 위험한 극한 상황으로 몰리는데 - 한 놀라운 리프트 중 드 그리오는 마농과 함께 뛰다가 주르르 미끄러뜨리는 동작으로 그녀을 풀어주어서 그녀는 바닥으로 미끄러지게 되고 자신은 그 위에 엎드린다.
그러나 이 발레의 사랑과 성은 탐욕과 힘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마농은 만나는 모든 남자들의 아첨과 금전의 공격에 저항할 수 없다. 이것을 나타내기 위해 맥밀런은 터무늬없이, 냉소적으로 뒤바뀐 남/녀의 춤을 만들었다. 전통적으로 남자는 발레리나를 과시시켜 줄 때 그것은 그의 사랑을 나타내는 은유이다. 그렇지만 마농에서는 그것이 육욕의 표시와 획득을 나타내는 은유이다.
마농이 오빠 때문에 교활한 G.M.씨에게 팔려가는 1막의 빠 드 트로아에서는 모든 조치가 이중 암시로 된다. 레스꼬가 여동생을 써포트 할 때도 그녀을 G.M. 가까이로 밀어놓으며 그녀를 들어올릴 때마다 마농의 매력을 과시하기에 그리고 기다리고 있는 G.M.의 품에 그녀를 가까이 데려다 주기에 가장 알맞게 꾸며진 자세로 이루어진다.
2막에서 마농은 철저히 부패하게 된다. G.M.은 마농과의 사이에 남자들 무리가 지나갈 때 소유했다는 만족감에서 그것을 구경하며 마농의 팔다리를 조작해서 그녀의 몸은 쇼킹하게 관능적으로 과시된다. 마농을 감상할 때 박스 속의 스트리퍼를 구경하는 정도보다는 약하기 때문에 훔쳐본다는 느낌도 덜하다.
발레와 오페라는 그 뿌리를 한 곳에 두고 있다. 전달매체에서 단지 노래와 춤이라는 차이만 보일 뿐,거대한 스케일의 무대장치,화려한 의상과 드라마는 두 예술의 교집합적 요소다. 이러한 까닭에 외국에서는 같은 극장 안에 발레와 오페라가 소속되어 있고 공연도 가능하다. 또 하나의 원작을 각각 오페라와 발레로 각색한 작품들이 있는데,‘로미오와 줄리엣’ ‘말괄량이 길들이기’ ‘오네긴’ ‘카르멘’ ‘한여름밤의 꿈’ 등이 대표적이다.
오늘 소개하는 ‘마농’도 오페라 ‘마농 레스코’와 마찬가지로 아베 프레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 줄 마스네의 음악에 케네스 맥밀란의 안무로 1974년 3월7일 로열 발레단(영국)에 의해 초연된 3막 7장의 호화판 발레다. 작품은 파리 근교의 여관 앞에서 마농의 오빠 레스코가 수녀원으로 가는 그녀를 기다리는 데서 시작된다. 노신사와 함께 마차에서 내리는 마농을 본 부호 GM과 젊은 학생 데그류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한다. 레스코가 마농에게 빠진 노신사와 협상을 하는 동안 마농은 노신사의 돈을 훔쳐 데그류와 함께 파리로 도망친다. 한편 돈에 욕심이 생긴 레스코는 마농을 GM에게 넘기기로 약속한다.
데그류의 하숙집에 머물고 있는 마농 앞에 나타난 GM은 애인이 돼달라고 하고,그녀는 그 요구를 받아들인다. 어느날 GM의 파티에 마농,데그류,레스코가 참석한다. 데그류는 돈과 사랑 사이에서 방황하는 마농에게 함께 가자고 말하고,마농은 그에게 카드놀이에서 속임수로 GM의 돈을 뺏으라고 답한다. 하지만 속임수가 들통나자 데그류는 마농과 도망을 간다. 그러나 마농은 뒤쫓아온 GM과 경찰에 의해 체포된다. 마농이 미국 뉴올리언스로 추방을 당하자 데그류는 남편으로 행세하며 뒤를 쫓는다.
간수 가올라가 마농에게 흑심을 품고 희롱하자 데그류는 그를 살해하고 마농과 함께 도망친다. 하지만 마농은 루이지애나의 습지에서 데그류의 품에 안겨 숨을 거둔다. 사랑을 위해 신분상승의 욕망을 접은 마농과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 데그류가 마지막에 추는 파드되(2인무)는 비장하면서도 관능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비록 발레 ‘마농’이 원작이 지닌 삶의 복잡한 내면과 사회적 부패상을 미처 다 담아내지는 못하지만, 단순히 한 여자와 두 남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스캔들을 표현한 것만은 아니다.
먼저 작곡자 마스네에 의해 여인의 육체적 욕망은 건강한 본능으로 해석되고 이러한 인간의 본능이 지닌 아름다움과 생명력이 강조되었다. 그리고 작품 이면에서는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이중적 욕망과 갈등이 미학적 관점에서 작품으로 승화되어 발레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품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김긍수(중앙대 예술대 무용학과 교수)
라일락 가든
Jardin aux lilas
이 발레는 1936년 만들어졌으며, 최신 연극에 대한 튜더의 관심이 그중에서도 특히 의식의 흐름 기법의 대화를 통해 이야기되고 유진 오닐의 희곡 "이상한 간주곡(Strange Interlude)이 반영된 것이었다. 발레의 이야기는 한 여자 캐롤라인을 중심으로 해서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와 약혼을 한 그녀는 가든 파티에서 진정한 사랑과 마지막 정열적인 만남을 갖는다. 그녀 친구는 이 만남을 막아보려 하고, 마찬가지로 캐롤라인의 소유욕 강한 약혼자 역시 정부에게 작별 인사를 하려고 한다. 이런 일련의 짧은 만남속에서 튜더는 관습과 욕망, 자유와 필요, 사랑과 구속간의 갈등을 보여준다. 약혼한 쌍은 서로 손을 맞부딪치는 것에 불과한 대무, 꼿꼿이 세운 몸 등 극도의 예의 바른 태도로 함께 춤춘다. 캐롤라인은 연인과 단 둘이 되자 그에게 매달린다. 그들은 남에게 들키지 않도록 살피기 위해 고개를 살그머니 돌리면서 맹렬한 돌입 자세로 함께 걷는다. 둘이서 함깨 춤출 때 그녀의 몸은 정열적인 곡선을 그린다. 약혼자의 정부는 버려진 것에 화를 낸다. 그리고 한 시점에서 약혼자의 품속으로 반복해서 점프하는데 그녀는 여전히 사랑하는 그 남자에게 말 그대로 몸을 내던진다. 그런 사이에 친구 무리는 두 쌍의 남녀들 사이를 넘나들면서 악의에 찬 소문에 정확하게 어울 리는 리듬을 가진 너울대며 물결치는 3박자로 춤을 춘다.
발레의 끝이 가까워지면서 캐롤라인과 그 연인은 약혼자와 정부를 만난다. 약혼자가 캐롤라인을 나꿔채고 그녀에게 입맞추려고 다가서자 그녀가 기절해 버리고 무대는 모든 것이 정지된다. 일종의 혼의 체외 유리 현상이 일어나 캐롤라인은 사람들에게 절망적인 시선을 던지며 그들 사이를 방황하다가 기절한 자리로 돌아간다. 그때부터 발레는 불가피하게 냉혹한 결말로 미끄러진다. 캐롤라인은 연인에게 작별의 입맞춤을 하고, 약혼자는 그녀 어깨에 외투를 걸쳐줌으로써 그녀를 되찾는다. 그런 다음 그녀가 연인을 향해 마지막으로 팔을 내밀자 약혼자가 그녀의 팔을 꽉 잡아 차갑게 그녀의 몸 쪽으로 되돌려 놓는다.
때로 이 발레의 드라마는 억압과 거부라는 거의 눈에 안보이는 언어로 전달된다. 최초의 제작편에서 캐롤라인을 춤추었던 모드 로이드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느끼고 있는 것을 전달해야 했어요....가장 적은 제스쳐로 이 한풀 죽인 감정을 해내야 됐어요....볼 수는 없어도 무대 위에서 사람들 근육이 긴장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가끔은 큰 소리 치고 싶은 사람한테 뒷모습으로 감정을 나타내야 하거든요.'
그녀와 동시대 사람이며 미국 무용가이자 안무가인 애그니스 드 밀은 '작은 한숨이나 반쯤 들 리는 탄식처럼 팔동작의 포옹과 섬세함, 희미한 문지르기....등은 고작 장식이 아니라 영혼의 환기이고 메아리이며.... 각 동작은 의심과 후회와 열망에 휘감겨 있고 마침내는 무용수들이 문자 그대로 인간의 마음을 통해 움직이려는 듯이 보인다.
이 발레는 에드워드(특히 7세)시대의 영국이 배경이며, 가장 혁신적인 움직임은 이런 평범한 일을 고전주의 무용의 틀 속에다 그린 것이었다. 고전주의 무용은 보통 환상의 언어로 여겨졌었고, 반면에 새로운 모던댄스는 리얼리즘에 적당한 도구로 간주돼었다. 초치로 연인역을 맡았던 휴레잉의 말에 의하면 '사람들은 머리를 쥐어 뜯거나 무릎을 끊고 있지 않았고, 그것은 모두 무의미하다. 그들은 상류층이나 중하류층의 고상한 사람들처럼 점잖게 행동하고 있었으며, 마술은 왕자나 공주같은 식이 아니었다.....그것도 모두 고전주의 동작이다.....어떠한 현대적인 동작도 없다. 그것은 모두 글리싸드요, 아라베스크요, 아띠뛰드다.'
교향적 변주
Symphonic Variations
애쉬튼은 이 1946년 발레가 보여주는 것처럼 엄밀할 수도 검소할 수도 있었다. 이것은 새들러스 웰스 발레단이 큰 무대를 가진 런던의 로열 오페라 하우스로 옮기고 난 후 그가 만든 첫 작품으로 그 무대는 무용을 충분히 소화해낼 만한 공간이었다. 보통의 그리스식 튜니카를 입은 6명의 무용수들이 이상의 샘에 사는 엣 올림푸스 산의 신들처럼 맑은 초록빛에 물든 배경막을 뒤로 하고 배치됐다. 그들은 세자르 프랑크의 음악에 맞취 길고 깨끗한 동작의 실타래를 헤쳐 나가거나 또는 그냥 멈춰 서서 음악이 주변을 소용돌이 치게 했다.
남자들은 여자들을 낮게 들어올려 무대 위는 길다란 곡선이 그려졌다. 무용수들은 두 명과 세 명이 팔다리를 얽어 눈데 익은 조각상 모습으로 만들었다. 무용수들은 엄숙하리만치 정적을 유지하면서도 폭발력이 집중될 때는 빠른 타력의 점프를 했다. 휴지기에는 자주 가만히 서서 상체를 옆으로 곡선을 그리고, 한쪽팔은 머리 위로 뻗고 다른 쪽 팔은 몸 위로 비스듬히 해서 두 개의 평행선을 만들었다. 이것은 19세기 발레 동작만큼 고전적으로 순순한 형태였지만 전통적 표현에 나타났던 어떠한 자세와도 같지 않은 것이었다.
이 발레는 줄거리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 집중력과 명확도는 무용수에게서 초월감을 요구했다. 그들은 마치 그 동작이 그들의 특별한 천성인 양 춤춰야 했고, 그 장소가 더할 나위 없이 가장 편한 곳처럼 보이게 해야 했다. 앤트와넷 시블 리는 그것을 가리켜, '천국이 그래야 할 거예요. 그것은 성취감, 평화, 행복, 아름다움이지요. 추상적이 아닙니다. 동작도 아니고요. 인간, 평범이 아닌, 또 다른 아름다움과 모든 것에 대한 도취입니다' 라고 했다.
교향적 변주의 아름다움과 그 밖의 플롯없는 작품에도 불구하고 애쉬튼은 설화체 발레와 인물표현의 수단이 되는 스텝 개발 능력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결혼식
Les Noces
제전처럼 이 1923연도 발레도 보편적인 인간의 의례인 단순한 농부의 결혼식을 그리고 있다. 흥분한 신부, 신랑, 부모와 하객의 무리는 모두 짝짓기 일과 아이를 임신하기 위해 젊은 여자를 가족의 집에서 낯선 이방인의 집으로 보내는 일에 맡겨진 역할을 한다.
니진스키의 발레처럼 이 의례에서도 아무런 감상적인 허식은 없다. 스트라빈스키는 자기 음악이 강하게 종교적이라고 말했지만 니진스카는 자기 주제에 대해 본질적으로 페미니스트적인 시각을 취했으며, 이런 결혼에 흔히 관련된 고통과 공포를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그녀가 고집한 무대장식은 암갈색이고 엄격하게 기능적인 것으로, 단순한 벤치와 연단 그리고 칙칙한 흙갈색 의상이었다. 여자들은 뽀엥뜨 슈즈를 신었지만 고전적인, 천상의 아름다움을 용인하는 것과 같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니진스카는 '무용수들'의 실루엣을 '길 게 늘여서' 비잔틴 모자이크의 성인 모습을 닮게 만들고 싶어했다. 뽀엥뜨도 과시용으로는 절대 사용되지 않았다. 춤 하나는 신부의 친구들을 위해 만들었는데 이들은 신부의 길다란 머리를 두 갈래로 땋는다 - 그녀를 묶어서 새로운 세계에 대비시키는 것이다. 그들의 발이 빠른 부레(bourrees)로 열십자를 그렸을 때는 바닥을 스치는 것이 아니라 격하게 아래쪽으로 찌르는 것처럼 나타났다. 니진스카는 이것이 머리땋은 행동을 획득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했지만 많은 사라믈이 눈여겨 보았듯이 그들의 행동은 또한 절박한 성의 입문식에 대한 신부의 고통과 감정의 격렬함을 미리 나타내는 것이다.
제전과 마찬가지로 이 언어는 총칭적이어서 개인의 성격묘사나 묘기에 대한 용인은 없다. 남자와 여자들은 자주 같은 스탭을 춤추는데, 그것은 니진스키의 것처럼 중량이 있고, 각지고, 힘이 있으며, 무용수들은 대개 그룹으로 움직인다. 이 발레의 디자인은 건축적으로 - 하나의 신체들이 선과 형태 보다는 무용수들이 조 단위로 함께 움직여서 만들어내는 피라미드, 작은산, 삼각형, 사각형에 초점을 둔다. 이 구성과 디자인은 이 발레의 혁신적 성격의 일면이며; 다른 한 면은 그 이야기체 방식이다. 오빠보다 한 술 더 떴던 니진스카는 감정을 표현할 때 마임에 의지 않고 순수한 무용을 사용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이 작품의 드라마는 모두 무용수들이 구성해내는 스텝의 선과 힘 속에 그리고 모양 속에 있다. 온전히 한 덩어리가 된 하객과 연단에 높이 앉아 있는 권위있는 모습의 부모들은 외롭고 미숙한 상태의 신부와 강렬한 대조를 - 가족과 공동체 사회의 무서운 무게를 시사하면서 - 이룬다. 발레가 진행되면서 우리는 남자무용수들이 그룹을 이루어 요란한 축제를 벌이고 있고, 여자와 노인들은 이들과 거리를 두고 한켠에서 바라보고 있는데, 이는 성과 세대의 분리를 원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신성화된 고요함을 저항키 어려운 리듬과 힘의 믹스시킨 스트라빈스키 곡은 안무가들에게 제전만큼 거의 매력적인 음악으로 인정받고 있으나 니진스카 작품의 완곡한 부드러움과 위력 그리고 음악의 격렬성을 그렇듯 치밀하고 형식적인 구조 속에 맞춘 그녀의 능력에 비길 만한 해석편은 없다. 안겔린 프렐리요카이의 1989연도 해석은 5쌍의 인물과 5개의 양복점 마네킨을 등장시켰는데, 결혼의식의 정략적 와해를 좀더 현대적이고 뚜렷하게 그렸다. 여기서는 실제의 여자들이 욕망과 불안이 뒤섞인 결혼생활의 끝에서 떨고 있을 때 그 남자들은 여자들이 고분고분하고 만족해 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성공하지도 못할 애를 쓰다가 자상하게 살펴주고 다소곳하고 무구한 마네킨의 품속으로 기꺼이 후퇴한다.
페트루슈카
Petrouchka
미국 작곡가 I.F.스트라빈스키의 발레음악. 전 4악장. 스트라빈스키와 A.N.브누아의 대본에 의한 4개의 정경으로 이루어진 벌레스크풍 발레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1911년 6월 파리 샤틀레극장에서 S.P.디아길레프가 이끄는 러시아발레단(주연;나진스키)의 공연과 P.몽퇴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니콜라이 1세 치하의 페테르부르크를 무대로 세인형 사이에 펼쳐지는 사랑의 비극이 그 내용으로, 러시아 하류계층의 비극·불행을 다루었다. 음악은 근대감각을 살린 홀수박자와 폴리리듬을 사용한 러시아민요를 도입한것이 특징이다. 이 음악의 기교·미학은 같은시대 음악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인류의 역사는 권력을 가진 이들에 의해 씌어져 왔고, 상대적으로 힘없는 이들은 그들의 그림자에 가려졌다. 권력과 무지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간의 나약함과 이중성은 우리의 또다른 얼굴이며,이러한 모습을 심도있게 보여주는 발레 작품 중의 하나로 ‘페트르슈카’를 들 수 있다. 3개의 커다란 인형을 극중 인물로 등장시킨 이 작품은 이고리 스트라빈스키 음악에,미하일 포킨 안무로 1911년 디아길레프 러시아발레단에 의해 처음 공연되었다.
1830년,부활절이 며칠 남지 않은 상트 페테르스부르크 광장의 사육제 시장은 인파로 붐빈다. 가설흥행장과 수레 상점 그리고 각 계층의 사람들. 가설흥행장의 주인인 인형 조종사가 등장해 피리를 불며 사람들을 끌어들이면 ‘페트르슈카’는 극중극의 형태로 시작된다.
막이 열리면 세 개로 나누어진 방에는 부동자세의 인형이 있다. 새빨간 의상의 발레리나가 가운데 방에 있고,그 오른쪽 방에는 창백한 얼굴의 페트르슈카, 왼쪽 방에는 칼을 찬 늠름한 체격의 무어인이 있다. 페트르슈카는 발레리나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발레리나는 오히려 무어인에게 관심을 보이면서 제1경이 끝난다.
제2경에서는 방에 갇혀 있는 페트르슈카가 고독과 고뇌, 발레리나에 대한 사랑 그리고 연적인 무어인에 대한 증오심을 호소한다. 이때 발레리나가 나팔을 불며 들어오고 페트르슈카는 너무 기뻐서 자신의 사랑을 전하려 하지만 서투름으로 인해 발레리나는 도망쳐 버린다.
제3경에서 무어인이 코코넛으로 장난을 치다가 가지고 있던 신월도(新月刀)로 코코넛을 깨려한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자 코코넛에 신(神)이 들어있다고 생각하고서 마루 위에 놓고 엄숙히 회교도식의 절을 한다. 이때 무어인의 위풍당당한 풍채와 힘에 반한 발레리나가 들어와 진묘(珍妙)한 파드되가 시작된다. 페트르슈카는 사랑하는 발레리나를 지키려 하지만 무어인은 자신의 신월도로 그를 쫓아버린다. 페트르슈카가 나가자 무어인은 발레리나에게 구애를 시작한다.
제4경은 다시 눈 내리는 황혼의 사육제. 축제 분위기가 한층 무르익으면서 군중의 수도 늘어난다. 곰사육사들이 재주를 부리는 가운데, 우아하면서도 경쾌한 러시아 농민의 춤과 마부들의 힘있는 춤이 시작된다. 이때 갑자기 무어인에게 쫓기고 있던 페트르슈카가 군중 속을 헤치며 뛰어들어 온다. 발레리나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무어인은 칼로 페트르슈카를 쓰러뜨리고 만다. 삽시간에 군중들이 쓰러진 페트르슈카를 에워싸고 급히 달려온 경관은 쓰러진 페트르슈카가 인형임을 알고 안심한다. 하지만 군중들이 흩어지고 주인이 페트르슈카를 옮기려할 때 흥행장 지붕 위로 페트르슈카의 영혼이 나타난다. 놀란 인형 조종사는 급히 달아나 버린다.
‘페트르슈카’는 90년이라는 시간적 간극을 뛰어넘어 현대인이 겪는 소외의 비극적 상황을 그리고 있다. 또 표현에 있어서도 발레만의 독자적 영역을 개척했다는 점에서 흥미를 끈다. 포킨의 안무에서 눈여겨 볼만한 부분은 존재의 이중성으로, 강자와 약자, 아름다움과 추함,대담함과 소심함, 거침과 부드러움,고독과 분주함, 성스러움과 탐욕, 코믹함과 광기, 관능과 공포,현실과 상상 등에서 보여주는 유기적 비극성이다. 마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또다른 자화상일지도 모르겠다.
<김긍수<중앙대 예술대 무용학과 교수>
레실피드
Les sylphides
쇼팽의 음악에 M.포킨이 안무한 1막 발레. 일명 《바람의 정(精)》이라고도 한다. 1909년 6월 디아길레프 러시아발레단에 의해 파리에서 초연되었다. 레 실피드라는 타이틀은 유명한 로맨틱 발레의 《라 실피드》에서 온 것이다. 그것은 이 발레의 무용수들이 마리아 타글리니오가 《라 실피드》에서 사용하여 유명해진 흰 롱스커트를 입었기 때문이다. 여성 무용수들은 작은 날개도 붙이고 있다. 이 작품은 특별한 줄거리가 없이 오케스트라에 의해 연주되는 쇼팽의 짧은 피아노곡 몇 개로 구성되어 있으며 곡에 맞추어 앙상블·솔로·듀엣 등 여러 개로 나누어진 앙상블로 이루어진다. 무대는 대부분 달빛이 비치는 숲 속으로, 분위기는 환상적이고 꿈같은 장면이 펼쳐진다. 이 발레는 4명의 주역(남성 1·여성 3)이 무대 중앙 뒤에서 포즈를 잡고 이 4명을 기점으로 앙상블이 아름답고 우아한 모양을 그린 구도로 시작되어 같은 구도로 끝맺는다. 디아길레프 러시아발레단의 파리 초연에서는 A.파블로바·T.칼사비나·M.바르지나·V. 니진스키가 주역을 맡았다.
라실피드
Lasylphide
로맨틱 발레의 대표적 작품. 2막. 1832년 이탈리아의 무용가 F.탈리오니의 안무(음악 슈나이츠회퍼)로 그의 딸 M.탈리오니가 춘 것과 36년 A.부르논발 안무(음악 뢰벤스횰트)로 L.그란이 춘 것이 있는데, 현재는 부르논빌판(版)의 상연 기회가 더 많다. 실피드란 공기의 요정(妖精)을 말하는데, 샘이 많은 요정은 농부 제임스와 시골처녀 에피의 약혼을 원망하고 제임스를 유혹하여 약혼을 파기시켜 버린다. 제1막은 활기 넘친 농촌장면이며 제2막은 흰 의상으로 몸을 감싼 요정이 활동하는 환상적인 장면으로, 이와 같은 2막 구성은 《지젤》 등에서도 볼 수 있다. M.프티파 등이 프랑스에서 러시아로 많은 로맨틱 발레를 가지고 들어갔는데, 1907년에는 M.포킨이 《라 실피드》 제2막의 환상적인 발레 브랑 부분을 재구성하여서 《쇼피니아나(Shopiniana)》로 발표하였다. 1909년 《레 실피드(Les Sylphides)》로 개제하여 S.P.디아길레프의 러시아 발레단이 파리에서 초연하였다. 이 작품은 F.F.쇼팽 작곡의 프렐류드(prel-ude;전주곡)·왈츠·마주르카 등을 추는 것이다.
백조의 호수
白鳥-湖水 Lelacdescygnes
고전발레의 대표작. 총 4막으로 구성된다. V.P.베기체프와 V.F.게르젤의 대본에 P.I.차이코프스키의 작곡과 라이징거의 안무로, 1876년 2월 20일 모스크바의 볼쇼이극장에서 초연되었다. 마법사 로스트발트에 의해 백조로 변한 왕녀 오데트는 밤에만 사람이 되는데, 그녀를 사랑하는 왕자 지크프리트의 강한 사랑으로 그 마법을 푼다는 줄거리이다. 초연은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작곡자가 죽은 뒤인 95년 M.프티파와 L.이바노프의 안무로 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극장에서 개정하여 상연, 성공을 거두어 오늘날 유행하게 된 기초를 만들었다. 프티파는 무언극적인 몸놀림이 많은 1막과 3막의 디베르티스망(divertissement)을, 이바노프는 2막과 4막의 백조들이 등장하는 장면을 담당하였다. 그 뒤 안무와 연출에 많은 개정이 더해져, 마지막 장면도 두 사람이 악마를 쓰러뜨리고 결혼하는 것, 죽음으로 맺어지는 비극적인 것 등 여러 가지가 있다.
호두까기인형
-人形 The nutcracker
러시아 작곡가 P.I.차이코프스키가 작곡한 발레음악. 1891∼92년 완성되었으며 작품번호는 71이다. 대본은 E.T.A.호프만의 동화 《호두까기인형과 생쥐임금(1819)》을 M.프티파가 2막 3장으로 각색하였다. 1892년 페테르스부르크마린스키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소녀 클라라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호두까기인형을 받는데, 꿈속에서 그 인형이 쥐의 대군을 물리치고 아름다운 왕자로 변하여서 클라라를 과자의 나라 등 환상의 나라로 안내한다는 이야기이다. 발레음악을 작곡자 자신가 연주회용으로 편곡하여 같은 이름을 붙인 관현악모음곡 제1·2모음곡이 있다. 특히 3부(3악장)로 이루어져 모두 8곡이 들어 있는 제 1 모음곡이 유명하다. 제 1 부는 경쾌한 《작은 서곡》, 제 2 부는 《개성적 무곡》으로서 행진곡, 별사탕의 춤, 트레파크, 아라비아의 춤, 중국의 춤, 갈대의 춤, 제 3 부에서는 《꽃의 왈츠》이 연주된다. 1934년 영국 로열발레단이 이 곡에 의한 발레 《호두까기인형》을 상연한 뒤 유럽에서 꾸준히 계속되고 있으며 크리스마스 무렵에는 아이들을 위한 연중행사의 하나로 상연되고 있다
불새
L'Oiseaudefeu
발레작품. 러시아발레단의 주재자 S.P.디아길레프의 의뢰로 1910년 I.F.스트라빈스키가 작곡하였다. 러시아의 옛 민화에서 취재한 것인데, 러시아의 왕자가 불새의 도움으로 마왕에게 잡혀 있는 왕녀들을 구출하기까지의 경위를 환상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이해 M.포킨의 안무로 파리오페라하우스에서 처음 상연되어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 무렵 아직 무명이었던 스트라빈스키는 이 작품으로 온 유럽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연주회용 모음곡은 19년과 45년에 개정(改訂)하였다
지젤
Giselle
-2막으로 된 발레. T.고티에·S.조르주·J.코랄리가 공동으로 제작한 대본, A.C.아당의 음악, 코랄리와 J.페로의 안무로 1841년 파리 오페라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초연에서 C.그리지가 지젤역을, J.L.프티파가 알브레히트역을 맡았다. 고티에가 H.하이네의 <요정이야기>에서 암시를 받고 대본의 일부를 썼다. 시골 아가씨 지젤은 로이스라는 이름으로 가장한 알브레히트와 사랑에 빠지지만, 그가 왕자이며 약혼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광란의 춤을 추던 중 지병인 심장병이 발작하여 죽고 만다(제1막). 결혼 전에 죽은 아가씨는 윌리라고 하는 숲속의 요정이 되는데, 지젤도 숲속을 지나가는 남자를 죽을 때까지 춤을 추게 만드는 윌리가 된다. 지젤의 무덤을 찾아온 알브레히트는 요정들의 포로가 되고 아직도 그를 사랑하는 지젤은 그를 지켜주려고 온갖 노력을 다한다. 가까스로 새벽의 종소리가 울려서 요정들은 물러가고 알브레히트는 구원을 받는다(제2막). 민속적인 색채가 넘치는 연극적인 제1막과 하얀 튀튀로맨틱(발레에 사용하는 스커트)을 입고 춤을 추는 환상적인 제2막이 좋은 대조를 이룬 로맨틱 발레의 대표작이다. G.울라노바·Y.쇼빌레·C.프래치 등이 지젤을 추는 무용수로 유명하다.
-흔히 ‘클래식 발레’라고 하면 동화적이고 환상적이어서 우리 일상과 동떨어진 이야기로 생각하기 쉽다. 그런 면이 없지 않지만 발레야말로 현실과 이상을 한 무대에 조화롭게 결합시킬 수 있는 예술장르가 아닌가 싶다.
발레는 현실 세계와 이상 세계의 벽을 허물기도 하고 넘나들기도 하는 시간과 공간의 예술이다. 현실과 이상의 세계가 공존하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지젤’을 들 수 있다. 아돌프 아당의 음악,코랄리 쥘 페로 안무로 1841년 파리에서 초연된 ‘지젤’은 전 2막 발레로 1막에서는 현실 속에서 이루어지는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표현하고,2막에서는 정령들(귀신들)의 이야기로 비현실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어느 날 독일 라인계곡에 위치한 한 마을에 귀족(공작)인 알브레히드가 평민복장을 하고 나타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는 이 마을에 사는 지젤이라는 청순하고 순박한 시골처녀를 보고 첫눈에 반해 사랑을 고백하고 두 사람은 이내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녀를 짝사랑하고 있던 우직한 시골청년 힐라리온에 의해 알브레히드가 귀족이며 이미 약혼녀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심장이 약했던 지젤은 그 충격으로 그만 숨을 거두고 만다. 두 남자가 지젤의 죽음을 서로 상대의 잘못으로 여기고 회피하면서 1막이 내려진다.
제2막에서는 지젤의 죽음에 자책감을 느낀 두 사람이 후회를 하면서 지젤의 묘지를 찾는다. 황량한 숲속에서는 밤만 되면 윌리(남자들에게 배신당해 죽은 처녀들의 영혼)들이 나타나 밤새도록 춤을 추다가 새벽이 되면 자기 무덤 속으로 들어간다. 이 윌리들은 춤을 너무 좋아하다 죽은 처녀귀신들이다. 힐라리온이 나타나 자기 때문에 지젤이 죽었음을 사죄하며 지젤의 무덤 앞에 무릎을 꿇는다. 이때 윌리들이 나타나 그에게 계속 춤을 추게 하여 지쳐서 연못에 빠져 죽게 만든다.
알브레히드도 하얀 백합꽃을 안고 묘지에 등장한다. 알브레히드 역시 힐라리온과 같이 윌리들에 휩싸여 죽음을 눈앞에 둔다. 그때 지젤이 나타나 윌리의 여왕인 미르타에게 살려줄 것을 간청하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알브레히드와 지젤은 이 작품의 백미인 ‘그랑파드되’를 춘다. 밤새도록 춤을 춰서 지쳐 죽기 직전에 새벽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고 윌리들은 숲속으로 사라진다. 지젤의 숭고한 사랑이 알브레히드의 목숨을 구한 것이다. 알브레히드는 그녀의 사랑을 깊이 깨닫고 자기 잘못을 뉘우친다. 숲속을 향하여 지젤을 찾는 소리를 계속 외칠 때 막이 내린다.
이 작품에서 눈여겨볼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끝까지 지켜주는 지젤의 숭고한 사랑의 아름다움과 윌리의 의상인 백색의 ‘로맨틱 튜튜다. 이 의상은 귀신,요정 등과 같이 환상적인 인물을 표현할 때 입는 것으로 발목까지 오는 긴 치마에 토슈즈를 신음으로써 마치 하늘을 나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것은 우리나라 고전 납량물의 귀신이 발이 안 보이는 긴 치마를 입고 날아다니는 것과 같다. 발레의 토슈즈는 인간이 땅에서 떠 날아보려는 욕구에서 출발하여 만들어진 신발이다.
이 작품은 진정한 사랑의 숭고함은 변치 않고 영원하며,이런 주제는 다른 동서고금의 사랑과도 일치한다는 것을 일깨운다. 신문과 매스컴을 통해 연일 보도되는 ‘부적절한 관계’가 세상을 온통 떠들썩하게 하는 요즈음 ‘지젤’의 사랑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볼 일이다.
김긍수<중앙대 예술대 무용학과 교수>
잠자는 숲속의 미녀-美女
Spyashchaya krasavitsa
러시아 작곡가 P.I.차이코프스키의 발레곡. 프롤로그와 3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프랑스의 동화작가 C.페로의 같은 이름의 작품을 후세볼로지스키가 각본을 쓰고 M.프치파가 구성대본과 안무를 맡아 1890년 상트페테르부르크(레닌그라드)의 마린스키극장에서 초연되었다. 프롤로그는 오로라공주의 탄생 명명식(命名式)이다. 요정들이 공주를 지킬 것을 맹세하는데, 명명식에 초대받지 못한 마녀 카라보스는 공주에게 마법을 건다. 제 1 막은 공주의 16세 탄생일 축하연이다. 각 나라에서 구혼을 하기 위해 찾아온 왕자 4명과 공주가 변형 로즈 아다지오를 춘다. 이 때 카라보스가 나타나 공주에게 물레가락을 건네자 그 바늘에 찔린 공주를 비롯한 모두가 백년 동안 잠들게 된다. 제 2 막은 백년 후의 장면이다. 사냥하러 온 왕자가 리라요정과 만나 숲속에 잠들어 있는 오로라 공주를 구해낸다. 제3막은 공주와 왕자의 결혼식이다. 페로동화의 주인공들의 춤 등 여러 가지 춤이 이어진다. 이 작품은 불사성(不死性)에 대한 원망(願望)과 궁정발레시대의 결혼축하연의 흔적이 신선하게 나타나, 오늘날까지 여러 형태의 연출로 상연되고 있다
라 바야데르
La Bayadere
원초적으로 토속신앙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한국춤과는 달리, 발레에서의 종교적 색채는 작품 속에서 단지 하나의 배역 내지는 부분적 배경에 머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작품 전체를 통해 동양적인 색채와 이국적인 정취를 물씬 뿜어내고 여기에 불교의 윤회사상까지 덧칠해 우리의 정서에서도 그리 벗어나지 않는 클래식 발레가 있는데, 바로 ‘라 바야데르’다.
‘사원의 무희’로 불리기도 하는 이 작품은 사냥터에서 돌아온 용맹스런 전사 솔라가 사랑하는 사원의 무희 니키야를 기다리는 장면(1막 1장)에서 시작된다. 평소 니키야를 사모하고 있던 최고승려 브라민은 니키야에게 접근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의 맹세에 질투로 불타올라 복수를 맹세한다. 이어지는 2장의 무대는 라쟈의 궁전. 성주 라쟈는 솔라를 성으로 초대해 딸 감자티를 소개하고 그를 사위로 삼고 싶다는 뜻을 밝힌다. 잠시 망설이던 솔라는 결국 감자티의 아름다움에 매혹돼 결혼을 승낙하고 만다.
제2막은 ‘부채춤’과 ‘앵무새춤’,황금빛으로 바디페인팅한‘황금신상의 춤’,우리네 시골 풍경을 연상케 하는 물동이춤 ‘마누’,남성전사들의 ‘북춤’ 등 독특한 발레의 향연 속에서 이루어지는 솔라와 감자티의 약혼식이 펼쳐진다. 하지만 2막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요염한 관능미를 맘껏 뽐내는 감자티와 솔라의 극적인 파닥숑(Pas D’action : 발레의 클라이맥스인 그랑파드되와 군무가 함께 어우러져 작품 전체의 주제를 압축해 보여주는 형식)이다. 향연이 끝나고 브라민은 니키야에게 축하의 춤을 추도록 명한다. 니키야는 슬픔을 삼키며 애절한 몸짓으로 독무를 춘다. 이때 솔라의 선물이라며 누군가 꽃바구니를 건네고,춤을 추던 니키야는 그 속에 숨어있던 독사에게 목을 물리고 만다. 브라민은 자신의 사랑을 받아줄 것을 요구하며 해독제를 내밀지만 그녀는 솔라와 약속한 사랑의 맹세를 지키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다.
마지막 3막은 망령들의 왕국. 니키야의 죽음을 괴로워하던 솔라는 마리화나를 피우고 환각상태에 빠져든다. 꿈속에서 아름다운 망령들이 내려오고 그는 니키야에 이끌려 미지의 세계로 인도된다. 솔라는 아직도 니키야를 사랑하고 있음을 고백하며 용서를 빈다. 이때 순결의 상징인 흰색 스카프를 마주잡고 두 사람이 춤을추는 장면은 이들의 영적 결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4명의 여성군무가 이루어내는 독특한 앙상블의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망령들의 왕국’은 프티파의 걸작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영혼세계의 시간이 영원함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가슴으로 느끼기 전에 머리로 계산하고 작은 유혹에도 쉽게 무너져버리는 가벼운 사랑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라 바야데르’는 진실한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다시금 느끼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