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나의 소원은 목장주인이 되는 것이었다.
팔도강산이란 오래 전 연속극에서 민지환씨가 맡은 대관령 목장 주인 배역이 너무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딸아이가 다섯 살이 되었을 때, 유치원의 영아반에 보냈더니 적응하지를 못했다.
엄마를 떨어져서 지내본 적이 없다보니, 한 달이 지나자 아침이면 유치원 안 간다고 울고불고 난리가 아니었다.
결국 딸아이에게 우리가 졌고, 한 학기를 쉰 다음 딸아이를 피아노 학원에 보냈다.
피아노 학원의 처녀 원장 선생님이 잘 대해주었는지, 딸아이는 학원 가방을 바닥에 질질 끌고 다니면서도 군말 없이 잘 다녔다.
아침에 더 이상 딸아이의 떼쓰는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었고, 나는 출근 직전 아내와 딸에게 정다운 인사를 하고, 주머니에 든 동전을 죄다 끄집어내어 돼지에게 넣어주고는,
'돼지야~ 밥 많이 벌어 오께~'
신발장 위의 돼지 저금통에게도 인사를 건네는 일상을 되찾게 되었다.
매일 똑 같은 악보로 연습을 하다보니 피아노 학원 다니는 것도 지겨워졌는지 딸아이가 피아노 학원도 그만 다니겠노라고 단호하게 선언을 한 날, 나는 딸아이의 피아노 악보에 가사를 붙여 주었다. 붙여둔 가사로 노래 부르며 피아노 연습을 하면 덜 지루해할 것 같아 한 일이었는데 다행히 재미가 있었던지 딸아이는 다시 곧잘 피아노 학원을 다녔다. 대신 새로 배우는 악보마다 새 가사를 지어 붙여 주어야하는 나의 숙제가 하나 늘었다.
딸아이의 악보에 붙여진 가사를 보고 신기해하던 원장선생님이 딸아이에게 물었다.
'지현아~ 아빠는 무슨 일 하시는 분이니?'
피아노 연습에 열중하던 딸아이는 건반을 치며 대답했다.
'아빠는 돼지 밥 벌러 다녀요.'
'?????'
며칠 후 아내가 학원을 찾아갔을 때 원장선생님이 아내에게 물었다.
'저...지현이 아빠께서 목장을 운영하시나요?'
'네??? ....목장을요?? 무슨...말씀이신지?'
원장선생님께 자초지종을 들은 아내는 처음에는 도대체 무슨 말인가 어리둥절해하다가 그 대답이 내가 아침에 돼지저금통에게 건네는 인사에서 비롯되었음을 감 잡고는 딸아이가 왜 그렇게 대답을 했는지 원장선생님에게 설명을 해주고 같이 많이 웃었노라고 나에게 전해주었다.
원장선생님은 이렇게 생각하였다고 한다.
돼지 밥 벌러 다닌다니 목장과 관련된 일을 하는가 보다고 생각을 하였고, 딸아이 악보에 가사를 붙여주는 걸 보니 목가적이고 정이 많은 아빠인가 보다...라고 생각하였다고...
딸아이 덕분에 나는 목장 주인이 되고 싶던 내 소원 하나를 이룬 셈이었다.
오늘 그 옛날 이야기를 하며 우리 가족은 서로 마주보며 많이 웃었다.
첫댓글
딸에게 피아노 레슨을 받게 하기 위해
악보에 가사를 붙여주는 아빠가 몇 분이나 될까요.
마음자리님은 피아노 원장님의 말씀대로
목가적이고 정이 많은 아빠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옛 사람들은 큰 딸이 살림 밑천이라고 하지요.
돼지 밥 벌러 다니시니까....
목장 주인이 될 수도 있었지요.^^
옛 이야기 해주듯 재미있게 해주고 싶었지요. ㅎㅎ
덕분에 목장주도 되어보고요.
이 이야기가 나오니 나도 한마디
나는 생일이 4월인데도 7 살에 국민학교를 들어갔습니다
부모님이 집어 넣은거지요
그런데?
한살 일찍 학교를 다니니까 국민 , 중 , 고등학교 내내 남보다 등치도 작고 체육 같은 학과는 따라가기도 여렵구
애로사항이 많읍디다
그래서 나는 손자가 생일이 1월이지만 8 살에 초등학교 입학 시키라고 며느리에게 이야기 했습니당
다른 분들은 어떠신가요?
이게 생각이 나서 말씀드렸습니당
충성 우하하하하하
제 딸도 2월생이고 키도 작은데 한 살 일찍 학원이나 학교에 보냈더니 힘들어 하더군요.
한 해 일찍 공부 마치면 좋다던데 정말 좋은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너무 귀여운 아이네요.
돼지 밥벌러~ㅋㅋㅋ
그래서 목장 주인이 되었군요.
악보에 가사를 붙여준
자상한 아빠도 멋지고요
아이들의 그런 마음들이 예뻐서
그런 일화들을 잘 기억해두었지요. ㅎ
참 정겨운 순간이었네요.
표구해서 머리맡에 걸어두고싶은
정경.
그런데 어린이의 말은 어린이문법으로 들어야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아이들과 눈높이 맞추는 일이
참 행복한 일이었습니다.
다행히 많이 표구해두었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영화도 기억이 납니다.
그 포멧 그대로 연속극으로 했는데
김희갑 황정순씨 부부는 그대로였고
김자옥 한혜숙씨가 딸로 나온 기억에 사위로는 대관령 목장을 하던 민지환씨가 그렇기 멋있어 보이더군요. ㅎㅎ.
딸아이 올해 서른셋, 시집갈 생각없이 저희와 같이 삽니다.
마음자리님 글을 읽으면서,
'샘터'나 '좋은생각' 같은 에세이집을 읽고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잔잔한 소재를 갖고 주욱 써내려가는게 역시~
그옛날, 민지환 배우의 배역까지 기억하시니 대단하시구요..
그러보고니 가수 위키리의 푸른 양떼목장? 그런 노래도 있었던거 같은데요..
(남동이 아주 애기때..ㅎ)
'샘터'나 '좋은 생각',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저도 참 즐겨 읽었습니다.
딸이 연습하는 악보에 가사를 붙여주는 아빠가 몇이나 될까요.
물론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마음자리님이 쓰신 동화를 읽어보면 납득이 갑니다.
초딩생 우리 손녀도 피아노를 배우고 있습니다만 내가 보기엔 소질이 영 없어보였지만
무슨 대회엔가 나가서 상을 받았다고 제 부모는 좋아하더군요 ㅎㅎ
아이들은 좋아하는 놀이라도 자꾸 반복하면 싫증을 쉽게 내니 새로운 재미를 붙여보자는 생각에 해보았지요.
덕분에 지금도 신명 나면 아마추어 솜씨지만 가끔 피아노 연주를 들려줍니다.
소원 이루고
기쁘게 웃는 화목한 가족,가정이
읽는 마음도 행복합니다.
남편 손 꼭 잡고
아침,
산책에서 찍은 제 주변입니다.
와... 아침 산책으로 저런 길을
손 꼭 잡고 걸으시면,
폭염은 저 멀리 물러나고
청량한 공기 속에
새소리 매미 소리만 실리겠습니다.
다정다감 하신 아빠는 돼지밥 주는 목장주였다.
어쩜 그렇게 잼난 이야기를 잘 할 수가 있는거예요.
마치 화수분같아서요.
늘 놀라곤해요^^
'딸 아이를 위해 악보에 가사를 붙여준 아빠' 힐링 제대로 하고 갑니다.
ㅎㅎ 나이 들어서 이야기보단
제 어릴 때나 아이들 어릴 때 이야기들이 더 많이 저장되어 있다보니. 감사합니다.
그럼 저도 한때 목장 갖고 있었다고 해야 할까요?
역시 마음자리님 닮은 귀여운 따님 이시네요 .
피아노 연습 안 한다고 혼내던
예전의 제 모습이 부끄러워 집니다 .
그런데 이젠 제 딸이 손자 피아노 연습 안 한다고
투정을 부리네요 .
"네가 그랬잖아 " 그말이 나오는데 꼭 참았습니다 .
ㅎㅎ 잘 참으셨습니다.
큰따님과는 약간의 성격차가 있나 봅니다.
제 아들 성격이 큰따님과 닮았습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