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제사장이신 우리 주님의 기도의 7번째는 사랑함입니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사옵고 그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아옵니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요17:24-26절)
사랑함이란 바로 우리로 천국의 체질로 만들어 가는 겁니다. 만일 사랑의 사람이
아니라면 주를 믿는다고 해도 이 세상에서 따분하기 짝이 없는 삶을 살게 될 겁니다.
사랑하므로 행복하노라 하는 말처럼 사랑을 받는 것보다 사랑하는 체질은 행복자체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로 사랑의 체질로 만드시는 분은 우리가 아니라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하고
찬양하는 겁니다. 하나님만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로 하여금
사랑의 사람이 되도록 하실 수 있으며 그로인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주님이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14:3)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두고 주님이 천국에서 우리가 영원히 살 처소를 만들고 계신다고 하면 답답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우리의 개인 장막이 되시고 그의 몸 전체를 덮는 빅 텐트임을
믿지 못하면 증거장막을 어디에 짓네, 피난처가 어디에 있네, 이 땅에서 천년 동안
왕 노릇하고 살것이네 하는 타령으로 날밤을 샙니다. 새 언약은
진리의 성령이 우리 안에 임재하시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는 계명(요14:21)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의 성령이 임하신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는 계명을 주를 사랑하므로 지키면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처를 삼고 함께 계십니다(요14:21,23)
사랑의 집이 되어 사랑의 아버지와 사랑의 아들이 머물면 사랑의 사람들이 되는 거죠.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므로 창세전에
아버지께서 그리스도에게 주신 영광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의 성도들이
다 보기를 원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말씀을 통해 그 분과 하나 되어
주를 사랑하므로 그의 계명을 지키며 주와 교제하는 그의 제자들에게도
그 영광을 보여주시기를 위해 지금도 기도하십니다. 참으로 놀라운 복입니다.
우리 속에 있는 말씀이 계속 발전하여 우리의 체질이 천국화 되는 것을
주님이 바라시면서 지금도 보좌 우편에서 기도하고 계신다는 말입니다(히7:25)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아버지의 이름을 알렸고 또 알리실 겁니다.
이는 계속해서 그리스도의 계시가 진행되어 갈 것임을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제게도 요한복음 강해를 하는 동안에 엄청난 진보를 체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신 것과 같은 사랑으로 우리에게도
말씀을 주셨다는 사실 이것이 바로 복중에서 가장 귀한 복입니다.
지금 이 말씀을 하시는 때까지는 예수라는 그 분 안에 그리스도가 계셔서
그 안에만 계셨던 하나님의 말씀이 주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사신 다음
승천하시고 보좌에 앉은 후에 보혜사 진리의 성령을 보내시므로 그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하여 우리 안에도 말씀이 임하십니다. 임마누엘의 복입니다.
어떤 목사가 겁도 없이 칼빈의 예정론이 비성경적이라고 우기고 있는데 가까이
있으면 꿀밤이라도 한 대 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자네는 비성령적이라 말하면서요.
진리의 성령이 없는 성경의 지식은 창세전의 예지예정을 비성경적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늙은이는 진리를 모르면 여기 와서 배워야지 왜 이단이라고 하느냐고 소리를 높입니다.
제가 옆에 있으면 진리가 뭐죠 하고 묻겠습니다.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이 진리를 알아요?
성령이 계시지 않는데 진리를 알 수 있을까요? 그러므로 이 땅에 증거장막을 짓네
12지파를 창설하네 하는 설레발을 떨고 있는 거죠. 그 사람 지금 바로 죽으면 불못입니다.
‘그 사랑이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라’는 말씀은 요한일서의 내용입니다.
히브리서의 강을 건너 정복이 되면 야고보서부터 말씀이 체화가 되어 행함이 됩니다.
요한일서에서 생육, 번성, 충만, 정복, 다스림의 5복 중에 정복의 복이 완성이 됩니다.
이렇게 사랑화 되어 정복이 되면 드디어 계시록에서 왕노릇을 하게 됩니다.
계시록은 그 안에 바로 끼어들 문이 없습니다. 4복음 특히 요한복음부터 시작이
되어 교회서신을 거쳐 히브리서를 지나 요한서신의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이루어진 자들이 바로 이긴 자들이 되어 계7장, 14장, 21장에서 발견이 됩니다.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지극하신 사랑은 바로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함이니이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천하의 모든 영광과 권세를 가지고, 우리 안에 거하시겠다는
그 분의 소원이 바로 아가페의 참사랑인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의 성령을 강조하는 겁니다.
다시 한 번 주님의 기도를 개관하면 진리로 거룩하게 하시고,
그 거룩함으로 영광을 보게 하시고, 그 영광으로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그 하나 됨이 온전하게 되면 드디어 사랑의 체질이 되는 겁니다. 요한복음 강해를
다시 하면서 거듭났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진리의 성령으로 보좌를 향해 나아간다
하는 믿음이 초보에서 벗어난 장성한 자들의 것이지만 제게는 그 영광을 보는 순간부터
복종하여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을 이루라(빌2:12)는 말씀이 가슴으로 파고듭니다.
참 구원을 제대로 이루어야겠다고 하는 천국의 신입생이 된 것 같은 마음이 듭니다.
처음 은혜를 받아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의 예수의 마음이니(빌2:5)
하는 말씀을 금과옥조로 여겼는데 수십 년이 지나도 고만고만한 제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 영광을 보여주시고 주의 동선에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 따라오라는
주님의 명령을 다시 받습니다. 곧 부르심을 받고 빼내심을 받고 신실한 자는 어린 양이신
주님께 붙잡혀 따라가기 때문에 이깁니다(계17:14) 한 인간이 이기는 게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살아 진리의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주와 하나가
되어 아버지와 하나가 된 계명을 지키고 복종하여 따르면 누구나 다 이기게 됩니다.
천국은 사랑이신 하나님의 자녀들의 나라인데 사랑할 수 있으면 이기는 게 아닙니까?
그리고 요17장의 주님의 기도가 끝난 다음 요18:1절에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저편으로 나가시니”
하시므로 예수님의 공생애의 사역은 이것으로 끝이 났습니다.
최초 설교인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신 주기도가 마지막 설교인 다락방강화에서
천국의 추호윤리인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이루시는 주체인 진리의 성령을 보내시고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육화된 인간이 영화 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와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해산의 수고를 통해 진리로 거룩과 영광 하나됨 온전함 그리고 사랑이 됩니다.
이는 우리를 그 안으로 부르신 주님의 소원이며 성령이 탄식하며 기도하시는 내용입니다.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은 선지자와 제사장의 사역만 하셨습니다. 그러나 왕의
사역은 진리의 성령으로 오신 이후 우리 속에 들어오신 다음부터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자들을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시고
말씀을 받아 그 속에 체화가 되면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벧전2:9)
따라서 우리는 언제나 ‘나라가 임하시오며’ 라고 자신 있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늘에든지 땅에든지 천국은 사랑만 가득한 곳인데 이 땅에서 천국을 외상으로
구입해서 할부를 제대로 갚아 가면 천국에 가서 사랑하고 찬양할 것이라고 말들을 합니다.
그건 거짓이며 미혹이며 불법입니다. 지금도 주님은 요17장의 주님의 기도를 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 주님의 기도와 같은 내용인 주님이 가르쳐 주신 우리의 기도인
주기도를 계속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기도와 나의 기도가 성령 안에서 화합이 되면
드디어 사랑화되어 세상에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업적을 알리게 됩니다.
***요한복음 17장까지만 강해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18장부터 역사적인 사실이기 때문에 그대로 보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