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몇달만에 쓰는지 모르겠네요.이런 불성실한 회원을 자르지 않아 주신 운영자분께 감사를 표하는 바 있습니다-_-;;
서울시내에 지하철역이 수십 개가 됩니다만,개중 가장 골아픈 역을 꼽으라고 하면 저는 단연 종로 3가역(줄여서 종삼)을 꼽아봅니다.1-3-5호선이 교차하는 탓인지 몰라도,역내가 너무 복잡하고,출구가 십여개에 달해서 대체 어디로 가야할지 모를 경우가 많고,길을 잃기 쉽기 때문이지요.1번 출구에서 6번 출구로 걸어가는데 10분이 걸리는 실로 기가막힌 역이지요.
그러나 저한테는 아주 달가운 곳입니다.아마 이 근방에 근무하시는 분들도 마찬가지일 테지만요.이 역을 중심으로 해서,골목골목에,밥 한끼를 싼값에 해결할 수 있는 싸고 맛있는 집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기 때문이지요.유명한 할머니칼국수라던가 찬양집은 물론이고 푸짐한 백반 한상으로 인기있는 안집,아직도 2500원짜리 닭곰탕을 팔아서 유명해진 집,낙원상가 쪽으로 1500원짜리 우거지국밥으로 유명한 추어탕집 등등 실로 저렴한 브랜드들이 진을 치고 있습니다.이름없는 집들이라도 단돈 3000원에 푸짐한 반찬으로 밥 한끼를 해결할 수 있는 저렴한 집이라던가,퇴근길 회사원들의 좋은 모임장소가 되는 고깃집 등이 많지요.
개중에 제가 우연하게 발견해서 소개해드리고 싶은 집이 이 `청송`입니다.
어느날 안집에 처음 갔다가,혼자는 안된다는 말을 듣고 입이 닷발만큼 나와서 어디서 밥먹나 하고 고민하던 차였는데 바로 안쪽에 이집이 있더군요.
문자 그대로 `꿩 대신 닭`이라는 심정으로 훌라댄스를 추어대는 위장을 부여안고 그집으로 들어갔습니다만,이것이 제게는 닭 대신 꿩이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운명의 장난은 심오하기 짝없지요.
겉면은 노상 그 거리가 그렇듯이 허름한 밥집입니다.특기할 점이 있다면 가게 앞에다 늘 대야라던가를 내놓고 나물류라던가 채소 같은 식재료를 대량으로 손질하고 있다는 점이랄까요.홀이라고 테이블이 하나 있지만 실상 식재료 놓는 선반으로만 쓰이고 있고,문도 없는 방이 하나.주방은 무려 오픈키친입니다.
안에 테이블이 너덧개 있습니다.뭐 그야말로 허름하죠.앉아 있으면 무진장 편합니다.
주인 아주머니 혼자서 일하고 있습니다.조리도 서빙도 캐셔도 다 무던하게 소화하시죠.
자리에 앉으면 통상은 물병과 컵 하나가 나오는데,이집은 사람 명수대로 작은 그릇과 큰 항아리하나를 주십니다.사철 나오는 이 항아리에는 동치미가 그들먹하게 담겨 있습니다.일단 이거 먹으면서 위장이나 달래란 겁니다.정감 갑니다.혼자 가도 한단지를 담아주지요.참 대책 안서는 아주머닙니다.
이 동치미가 참 별민데,배에다 생강에다 무에다 고추하고 순무까지 넣고 정말 제대로 만든 물건입니다.국물 한사발 떠서 속에 집어넣으면 빈속이 찌르르 울리는 것이 실로 전율스럽죠.이걸로 속 달래면서 주문받습니다.
아참,물도 달라면 줍니다.티피컬한 플라스틱 생수통 아닙니다.1.5리터 PET병에 담아놓는데,문제는 늘 얼려놓는다는 거죠.이것도 만만찮게 짜릿하더군요.
가끔 동치미가 떨어지면 나박김치를 대신 내주십니다.동치미만은 못해도 맛이 있어요.
이걸로 속달래면서 주문을 합니다.기본은 정식이라고 칭하는 백반 5000원,동태찌개 5000원.더덕구이나 고기류 15000 등 있지만,이집에선 누가 뭐래도 백반이 제일 무던합니다.
부엌에서 혼자 지지고 볶고 담고 하시더니 상이 날아오지요.밥상 받으면 참 눈물 납니다.
보통 일여덟가지 반찬이 나옵니다.그런데 이 아주머니 손이 진짜 너무 큽니다.큰 쟁반에다 파김치를 썰지도 않고 한줌 큼지막하게 집어서 놓습니다.배추김치도 놓지요.가끔은 포기도 구경가능합니다.재활용도 아닌 것 같거니와 재활용이라도 봐주고 싶어질 정도의 인심입니다.
반찬들은 설핏 별스런 것도 없고 평범하지만,대충 한번 지지고 볶고 한 흔한 것들은 전혀 없습니다.대개가 나물류나 건어물류에 속하는 것들인데,늘 바뀌게 됩니다.실파를 데쳐다가 참기름에 무친 거라던지,작은 게를 참기름에 볶아 양념한 것이라던지,토란을 삶아서 들깨가루에 무친 나물이라던지,재수 좋으면 갈치새끼포를 무쳐낸 것,깻잎과 마늘 장아찌,무나물 등등.하나같이 상당한 정성을 들이지 않고는 만들기 어려운 것들이지요.뭐랄까 반찬 10여가지 내는 집에도 많이 가봤지만,너무 적게 담아서 인심사나워 보이고,가짓수만 많고 실속없어 보이는 것들에 비하면,이쪽이 훨씬 낫다는 느낌이 들 지경입니다.
거기다가 주로 고등어 같은 생선 자반을 구워다 얹고,가운데 된장 뚝배기 하나를 얹으면 이게 아주 멋진 상이 되어버립니다.뚝배기도 쪼잔하게 손바닥 반만한 사이즈가 아니라 대짜인데,늘 넘실넘실 담아 주시죠.파와 두부,팽이버섯,바지락 등을 흠뻑 남아 내서 늘 넘칠 것 같습니다.육수를 내는 멸치도 잔멸치가 아니라 흡사 붕어처럼 큰 녀석을 써서,이 멸치를 씹어먹어도 참 몽실몽실한 것이 맛이 있지요.가끔은 굴도 들어갑니다.별다른 기교는 없는 찌개지만 넘실대는 건더기를 푹푹 퍼먹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집니다.여럿이 갔을 때 재수가 좋고,아주머니와 협상이 잘 되면 몽실몽실한 달걀찜이 추가로 떨어지지요.인덕의 문제입니다(헐헐).
보통은 밥집에 가면 공기밥 추가는 제게 있어 필수적인 미덕입니다만,이집에서만큼은 그게 필요없습니다.잘 퍼먹고 있으면 아주머니가 김이 샤라라 오르는 누룽지 숭늉을 한사발 떠다주시기 때문이지요.이제 엄청 진해서,밥 한그릇 먹고 이걸로 또 반찬 아울러 한그릇 더 먹으면 대개의 경우 더 들어갈 자리가 없습니다.부른 배 쓸고 일어설까 말까 고민을 좀 하다가 대세의 흐름에 맡기면 그만이지요.
아주머니가 또 별나신 분이라,밥상 다 깔아놓고는 가끔 방에 들어와서 밥 먹는데 옆에 불쑥 누워버리시기도 합니다.아들딸 같은 애들인데 뭐 어떠냐면서.가게 이름이 청송이라서 청송 분인가 했더니 그것도 아니고 서울 토박이시라네요.음식 솜씨는 딱 시골 솜씨인데 말이죠.
꽤 재밌는 밥집입니다.가면 늘 즐겁고 웃음이 나도 배도 부르죠.5000원으로 취할 수 있는 좋은 행복입니다.
단점이야 물론 많습니다.화장실 불편하고(그 거리의 집은 다 그렇지만),위생은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죠.설마 5000원 밥집에서 물수건 기대하시는 분은 없겠지만.좀 분위기가 후줄근하거니와 걸려있는 달력도 흔한 `그런`사진 달력입니다.여담이지만 개인적으로 맘에 안드는 점이기도 한 것은 아주머니가 너무 손이 커서 음식쓰레기가 대량발생할 거란 점이랄까.그래서 늘 밖에다 반찬재료를 쌓아두고 손질하나 봅니다.
간은 아주 약간 센 편이고 전체적으로 맛은 있지만 맛으로 사람을 누를 정도의 감동은 없습니다.지나가다 기분좋게 들르실 만한 곳이죠.물론 분위기 찾으시는 분께는 절대 비추입니다.싸고 맛있는 백반한상을 찾으시는 분들께 제일 좋겠지요.손님들의 연령층은 상당히 높은 편이고 지나가는 분들이나 주변 직장인들이 주고객인 듯합니다.
위치는 종로 3가역 6번 출구로 나가셔서,고깃집 골목에서 안쪽으로 들어가서,할머니칼국수집과 안집 바로 안쪽 골목에 있습니다.의외로 찾기가 쉽게 골목 초입에서부터 안내판이 있지요.그 골목에선 드물게 주일에 안 쉬는 희한한 곳입니다.
참 `정말 맛있는 집`이란 늘 찾기 어렵더군요.이집도 제가 발굴(...)이랄까 해냈지만,만점이야 주기 어렵지요,절대로.언젠가는 그런 집을 찾아내어 보았으면 하는데,갈길은 늘 멀기만 합니다......부족한 글로 눈 어지럽히길 여러번입니다.다음번엔 좀더 좋은 집을 찾아내어 글 올리겠습니다.
첫댓글 맛있겠지만;;; 어른이랑 함께 가지 않으면 선뜻 들어서지 못할 듯 하네요. (헛;;; 나도 어른이긴 하지만 ^^;;; ㅋㅋ)
좋은 정보~ 재밌는 글 감사합니다 종로 나가면 함 가봐야지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근데 반찬 인심 후한 식당은.. 약간 싱겁게 먹는 저로서는 남기는게 많아서 가슴아파요 ㅜㅜ
정말 가보고 싶네요 ...^&^ 그리고,그솜씨가 정말 좋아여.
우와 매주 종삼에서 밥먹는데 ..이젠 새로운 곳을 찾아야지 했는데..이번주엔 꼭 청송을 찾아봐야 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