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일월드컵 결승전(30일 저녁8시)이 열리게 될 일본 요코하마 국제경기장을 소개하고 있는 요코하마시 웹사이트(www.city.yokohama.jp)의 경기장 전경 사진. |
"한국팀, 해냈군요! 승리의 여세를 몰아 (결승전이 열리는) 요코하마까지 와주세요."
22일 한국-스페인전을 중계 방송한 일본 NHK방송의 축구해설자는 한국이 '무적함대' 스페인을 물리치고 아시아 국가 중 최초로 4강에 오르자 이렇게 환호했다.
한국은 준결승전(25일)에서도 독일을 제치고 당장이라도 현해탄(玄海灘)을 건널 기세다. 이러한 '꿈의 시나리오'가 실현될 경우 "한국과 일본, 양국은 자국팀의 시합을 가능한 한 자국에서
개최할 수 있다"는 대회 규정이 '한국의 결승전 유치'로 해석돼
국제축구연맹(FIFA)과 한일 양국 월드컵조직위원회간의 새로운 논란거리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촉박한 일정 등 기술적인 문제들로 인해 '요코하마 결승전'이 번복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한국, 일본, FIFA 등 3자 대표는 지난 1996년11월6일 스위스
취리히 FIFA본부에서 월드컵 준비를 위한 실무회의를 갖고 월드컵의 공식명칭은 '2002 FIFA Worldcup Korea/Japan'으로 결정하고, 한국이 월드컵 개막전과 3-4위전을, 일본이 결승전을
치르는 것으로 합의한 바 있다.
당시 합의는 그해 12월7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FIFA집행위원회의 인준을 받았는데, '개막식과 공식명칭'을 얻은 한국이 외형적 명분에 치중했던 반면, 일본은 결승전을 유치해 실리를 챙겼다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2002 월드컵 시합 규정집(Competition Regulations:
2002 FIFA World Cup) 2002년도 개정판'은 결승전 장소의 변경 가능성과 관련된, 흥미로운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규정집에서 해석을 놓고 논란을 일으킬 수 있는 30조(Second Round)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16강전, 준준결승전, 준결승전, 3-4위전, 결승전은 토너먼트
방식에 따라 치러지게 된다.
2. FIFA 월드컵 조직위원회가 마련한 다음 스케줄(본선
2라운드)은 '한국 또는 일본 축구협회가 2라운드에 진출하게 되면 그들이 가능한 한 오랫동안 자신의 시합을
자국에서 할 수 있다'는 만일의 경우(eventuality: '예측불허'의 사태로도 해석 가능)를 고려한다.
1. The round of sixteen, quarter finals, semifinals, play-off
for third place and final shall all be played in accordance with
the knock-out system.
2. The following schedule, set up by the
Organising Committee for the FIFA World Cup,
takes account of the eventuality that if the
Korea Football Association and/or the Japan
Football Association qualify for the second
round, they can play their matches in their
respective country for as long as possible.
이 가운데 2항은 한국이 결승전에 진출할 경우 논란의 불씨를
안고 있다. 즉 동 조항은 한국이 3-4위전(대구, 29일 저녁8시)을, 일본이 결승전(요코하마, 30일 저녁8시)을 유치한 상황에서
양국 중 4강전에 진출한 나라가 있을 경우 가급적이면 자국팀이
출전하는 경기를 자국 관중들에게 서비스할 수 있다고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
▲"본선 일정은 한국 또는 일본축구협회가 2라운드에 진출, 그들이
가능한 한 오랫동안(for as long as possible) 자신의 시합을 자국에서 하는 경우(eventuality)를 고려한다"고 명시한 '2002 월드컵 시합
규정 30조' (2002년도 개정판, p.27) |
양국 조직위와 FIFA는 한국과 일본팀의 경기 진행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동 조항을 삽입했지만, 이들의 4강 진출 가능성이 적은 상황에서 굳이 "3-4위전과 결승전은 예외로 한다"는 단서조항을 넣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동 규정집에는 개막전(서울)과 결승전(요코하마) 장소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 동 규정집은 FIFA 웹사이트(www.fifa.com/service/pub_E.html)에도 PDF 파일이 올려져
있어 내용을 열람할 수 있다.
<클릭! 2002 월드컵 시합 규정 (2002년도 개정 영문판)>
한국이 18일과 22일 각각 유럽의 강호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연파하고 준결승전에 진출하자 미국, 유럽의 언론들도 "한국과 터키는 전통적인 축구강국인 독일과 브라질을 두려워하지 않아
이길 수도 있다"(미국 뉴욕타임스) "한국이 독일에 이기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미국 LA타임스) "이대로 가다간 우승 트로피를 거머쥘 수도 있다"(영국 파이낸셜타임스) "한국이 결승전까지 못 갈 이유가 없다(프랑스 TF1 방송)"고 보도했다. 교도(共同)통신 등 일본 언론들도 4강 진출 이후 한국의 결승전 진출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점쳤다.
브라질 언론 "붉은악마 없는 요코하마 결승전은 큰 위안"
영국의 양대 스포츠 도박회사 '래드브록스'와 '윌리엄 힐'도 대회 개막전 한국의 우승확률을 각각 150 대 1, 126 대 1로 낮게
책정했지만, 한국의 폴란드전(각 66 대 1, 81 대 1), 이탈리아전(각 14 대 1, 17 대 1)으로 올려 잡았다가 급기야 스페인전 승리
후에는 우승 확률을 각각 6 대 1, 6.5 대 1로 큰 폭 상향조정했다.
한국일보는 23일자에서 "한국이 결승까지 오른다면 '붉은 악마'들의 일방적 응원이 없는 요코하마 경기장에서 결승전이 열린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될 것"이라는 브라질 언론들의 반응을 전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네티즌들 사이에도 단순한 기원을 넘어 '결승 진출'의 실현 가능성을 점치는 의견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한국의 16강전(대 이탈리아전) 승리 이후 "2002월드컵 한일공동개최 합의 당시 한국이 결승에 진출하게 되면 결승전을 서울에서 하기로 비밀 협약을 맺었다"는 소문이 급속히 확산됐다는 것이다.
이 소문에 따르면, 96년 실무협상 당시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이 농담 삼아 이런 문구를 합의문에 집어넣자고 하자 나가누마
겐 당시 일본축구협회장(현 일본월드컵조직위 부위원장)이 코웃음을 치며 '되면 그렇게 하라'고 수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일보>는 20일자 '색연필'란에서 "한국팀이 월드컵 결승에
오를 경우, 일본 요코하마가 아닌 서울에서 결승전이 열릴 것이라는 내용의 글이 인터넷을 통해 급속도로 유포되고 있다. 한국월드컵조직위(KOWOC) 관계자는 이에 대해 '공동개최 합의문이란 이름의 문서는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고, 개막전·결승전
개최지 등을 명시한 FIFA와 양국조직위(LOC)간 협약서에도 그런 조항은 없다'며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일'라고 말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월드컵 대회 일정은 '30일 요코하마 결승전'을 향해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다. 월드컵 개막에 맞춰 서울에 설치된 FIFA 월드컵
운영본부도 19일 요코하마로 옮겨 업무를 이미 시작했다. 지난
1999년8월 JAWOC 이사회에 의해 결승전 장소로 결정된 요코하마경기장(97년10월 완공)은 71,416석 규모의 최첨단 천연잔디구장으로, "개막전 아니면 결승전에나 어울릴 경기장"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또한 "준결승전(25일 서울)부터 결승전(30일)까지 5일 동안 경기장을 옮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려한다는 내용의 월드컵 시합규정 30조는 강제적 성격이 없으므로 이를 적극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없다"는 '현실론'이 아직까지는 결승전 유치까지 욕심내는 한국 팬들의 기대를 압도하고 있다.
한국 월드컵조직위, '관련조항 없다'에서 '실현 불가능'으로 입장 선회
그러나 "일본이 이미 16강전에서 터키에 져 탈락한 상황에서 한국이 결승전까지 진출할 경우 일본이 굳이 '이웃나라 잔치'를 유치할 이유가 없다" "일본이 비록 16강전에서 탈락했지만 만약
3-4위전에 진출했을 경우 동 조항을 이유로 '3-4위전 일본 주최'를 주장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조항은 한국에게만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항은 아니다"라는 문제제기도 만만치 않다.
KOWOC는 '요코하마 결승전'의 번복 불가를 천명하는 한편, 이에 대한 논란의 확산을 경계하는 분위기이다. '문제의 경기규정'을 작성하는 데 참여한 가사면 KOWOC 경기운영본부장은
지난 21일 "해당 규정은 한국과 일본의 축구팀이 각각 경기를
치를 때마다 양국을 지그재그로 오가는 번거로움을 덜고자 양국 팀이 가능한 한 자국에서 경기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 위해
97년부터 규정집에 들어갔다"고 설명하고 "경기규정은 '헌법'이
아니고, FIFA집행위원회의 결정이 우선한다. 요코하마 결승전
표가 이미 매진됐고 결승전 준비가 순조롭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FIFA집행위원회가 당초 결정을 번복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가 본부장은 이어 "해당 조항에 '3-4위전, 결승전은 예외로 한다'는 단서가 없다는 이유로 무리하게 해석하지 말아달라. 일본으로서도 막대한 입장권 수입이 걸려 있는데, 우리에게 결승전을 양보할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이재준 조직위 대변인도 "일본에서 지진 등 천재지변이 일어나서 경기를 못하게 된다면 모를까, '결승전 한국 개최'는 기본적으로 말이 안 된다"며 "한일 밀약설도 어디까지나 루머"라고 못박았다.
반면, 정몽준 의원 측은 "인터넷에 떠도는 루머 이상의, 문서화된 내용이 있다면 검토해 보겠다. 해당 규정집을 팩스로 보내달라"고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정 의원의 한 보좌관은 "대회 규정과 관련된 내용은 KOWOC에서 챙겨야 하는 것 아니냐?"고 적극 개입에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
'30조2항'의 존재는 물론, 이것이 미칠 파장에 대한 계산이 서
있지 않는 것은 일본월드컵조직위(JAWOC)도 마찬가지이다.
JAWOC 미디어서비스센터의 이와미 후쿠다 씨는 24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이런 조항이 있었다니 금시초문이다. 그러나 결승전 준비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왜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모르겠다. FIFA측에 알아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