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계 2:1-4)
사람은 부요하고 넉넉하면 다른 사람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그러나 궁핍하고 가난하면 돌아보고 싶어도 돌아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에베소교회를 살펴보면 그런 환경에 놓인 에베소교회를 발견하게 됩니다.
에베소교회는 참으로 많은 역경 속에서 신앙을 지켜온 교회였습니다.
에베소교회는 두명의 거장 목회자에게 목양됩니다.
초기에는 구약 성경에는 능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야 되심을 알고 전하지만 복음에 대하여 잘 모르던 아볼로, 그래서 세례 요한의 세례만 주던 아볼로라는 목회자를 만나 바른 복음적 신앙을 가지지 못하고 성장해 갑니다.
오늘날로 비교한다면 이신득의 신앙과 복음을 "예수 믿으면 천국 간다"는 정도로만 이해한 목회자에게 양육됩니다.
그러다가 복음의 사도 바울을 만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원과 복음적 신앙과 삶이 무엇인지를 바로 알게 되었고, 성령의 충만한 은사를 체험하게 되면서 우상의 도시 에베소에서 고난 속에서 참신한 신앙을 간직한 교회로 성장해 갑니다.
오늘 본문은 에베소교회가 멋지게 성장해 갔음을 소개합니다.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바울은 3차전도 여행 때 2년 넘게 주의 복음을 강론하던 에베소교회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로마로 가기 위하여 에베소교회 장로들을 초대하여 마지막 인사를 하게 됩니다.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행 20:35)
오랜 시간의 가르침을 준 에베소교회에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라고 줄여서 결론을 내려 줍니다. 이 말을 마지막으로 남긴 그 이유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에베소교회가 앞으로 겪을 신앙의 어려움이 무엇인지를 알았던 것입니다.
복음을 받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욕심을 버리고 자기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며 함께 살고, 주의 나라와 의를 구하기 위하여 복음 사역을 힘써 도왔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끝까지 실천하기가 힘든 시기가 올 것을 미리 알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랜 시간 복음을 가르친 것의 결론으로 “주는 것이 받는 것 보다 복되다”고 <주님이 말씀하셨노라>고 강조하고 에베소를 떠납니다.(나는 그런 바울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에베소는 아데미 여신을 섬기는 도시로 이미 당시에 25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수많은 여행객이 몰려드는 도시였습니다.
그리고 에베소는 바울의 믿음의 아들인 젊은 목사 디모데가 순교 당한 곳입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이 예수님이 당부한 어머니 마리아를 에베소로 모시고 군중 속에서 숨어 살았습니다. 마리아가 세상을 떠나자 사도 요한은 에베소에서 노년에 사역을 시작합니다.
사도 요한은 모든 사도들이 다 떠난 후에 홀로 쓸쓸히 에베소에서 사역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가 쓴 서신들 속에서 에베소교회의 사정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과 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가 에베소에서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 요한일서의 내용을 잘 살펴보면 에베소교회 성도들이 어떤 환경에 놓여있고, 어떤 고난을 겪고 있는지 보일 것입니다.
요한일서는 사도 요한이 에베소교회 성도들의 고충을 보면서 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복음이 요구하는 그리스도인의 위대한 신앙을 다시 일깨워 주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에서 계속하여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고 강조합니다. 우리는 그 이유를 당시의 에베소서 지리적 여건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에베소는 아데미 여신에게 정기적으로 제사를 드리고, 아데미 여신에 대한 상품을 판매하며 살아가는 번영회가 조직된 우상의 도시요, 음란의 도시였습니다. 그러므로 기독인들이 장사하며 살 수 있는 곳이 못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우상을 섬기는 에베소 사람들은 기독인들이 자기들을 마귀에게 속한 자로 여기고, 저주 받아 영원한 지옥불에 들어갈 자로 여긴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처음 에베소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신앙생활을 하였을 때에는 그동안의 벌어둔 재산으로 서로 사랑을 나누며 견딜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데미 여신을 섬기는 우상의 도시에서 배척 당하며 장사할 수 없었기에 시간이 지나가면 갈수록 기독인들이 가난하게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서서히 에베소교회 성도들도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처럼 남을 도우며 살아가는 것이 버거워지기 시작합니다. 자기 살기가 힘들어지자 복음을 처음 받았을 때의 그 사랑의 열정이 식고 자신만 돌아보는 삶으로 변화고 말았습니다.
처음 복음을 들었던 사람들은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알았기에 다른 사람을 용서할 줄 알았습니다. 자기를 자랑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용납하여 품을 줄 알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고 자신의 가진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를 힘써 도왔습니다. 그러던 그들의 삶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에서 끊임없이 사랑하자고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것 같이 우리도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내어 주기까지 사랑하자"고 강조합니다.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내어 줄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내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은 에베소교회 성도들이 복음을 처음 들었을때에 행하던 그 멋진 그리스도인의 삶과 신앙을 서서히 잃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 신앙을 회복 시키려고 다시 주의 복음을 일깨워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 3:16-18)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요일 4:7-12)
요한 계시록에서 에베소교회가 책망 받았던 그 첫 사랑, 그것은 처음 복음을 들었을 때에 그들이 행하던 신앙의 삶을 말합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에서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복음을 처음 받았을 때의 모습을 전혀 찾아 볼 수가 없고, 잘못된 열심으로 가득합니다.
오히려 한국교회는 첫 사랑을 잘못 이해하여 거짓 영적 신앙을 강조합니다.
첫 사랑을 처음 예수를 믿고 방언하며 밤새 기도하고, 새벽예배 열심히 참석하고, 열심히 예배하며, 열심히 전도하고, 교회를 열심히 섬기는 그 신앙으로 오해를 합니다.
초대교회와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에베소교회의 “첫 사랑”은 복음을 처음 듣고 주의 복음이 요구하는데로 욕심없이 형제를 사랑하며, 모든 것을 용납하고 용서하던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의 삶을 말합니다.
한국교회는 그 복음적 신앙, 그 처음 사랑을 바로 회복하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