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먹을 때 작은 선풍기를 켰다. 열대야인지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삼복 더위라지만 그런 대로 견딜만 했기때문에 지금까지는 선풍기도 켜지 않았었다.
집에는 거실과 침실에 에어콘도 설치돼 있지만 한여름 외부 손님이 올 때만 잠깐 틀기 때문에
에어콘이라기보다는 가사리모노 즉 장식용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전기세가 겁이 나서 그런 것은 아니다.
크고 작은 선풍기도 몇대 있다. 많이 더울 때는 선풍기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저녁 식사중에 와인을 한잔 들면서 앞에서 돌고 있는 선풍기에 대고 "넌 누구나?"하고 물었다.
그러자 " 난 선풍기다. 왜?" 하고 대꾸한다. "이것 봐라! 쬐끄만게 제법 말대꾸를 한다!"
"존 만한게 까불어?"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기어 올라왔지만 꾹 눌러 참았다. 말은 한번 뱉으면
주워 담지 못하기 때문이다.
잠시 주춤하는 사이에 안도현의 '연탄재' 싯구절이 생각 났다.
'연탄재 발로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남을 위해 한번이라도 뜨거운 적이 있었느냐?'
맞는 말이다. 연탄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을 위해 자신을 태우고 재가 된다.
다 타고 난 연탄재를 골목밖에다 내어 놓으면 지나가는 젊은애들이 가만이 둘리가 없다.
선풍기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위해서 도는 게 아니라 당신을 위해 돌아간다.
옛날 폐간된 샘터라는 잡지 뒷 표지에 천국과 지옥이 실렸다.
지옥에서는 사람들이 배가 고파 아비규환이었다. 그런데 음식이 모자라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집어 먹는
젓가락 길이가 너무 길어 음식을 집어서 자신의 입으로는 넣을 수가 없는데도 기를 쓰고 자신의 입에 넣겠다고
싸우는 것이었다.
한편 천국에서는 젓가락 길이가 너무 길어 자신의 입에는 넣을 수가 없으므로 서로 음식을 집어서 상대방의
입으로 넣어 주고 있으므로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던 것이다.
'역지사지( (易地思之) '라는 말이 있다. 자신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으로 바꾸어서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는 사자성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