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할 일 많은 목요일입니다.
주님의 은혜로 모든 것을 감당하게 하시어
오늘도 풍성한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하오니
정결케 하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2.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3.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4.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하냐 그들이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5. 그러나 거기서 그들은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였으니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 계심이로다
6. 너희가 가난한 자의 계획을 부끄럽게 하나 오직 여호와는 그의 피난처가 되시도다
7.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포로된 곳에서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본문 주해)
1절 : 세상에서 ‘어리석은 자’는 이해타산에 밝지 못하여 손해를 보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나 본문에서 ‘어리석은 자’는, 세상에서 똑똑하고 잘나서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자들이기에 하나님을 찾지 않는 자를 가리킨다.
그들은 하나님을 인정하면 자신이 피조물이 되고 죄인이 되고 만다.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을 부정하고, 자신이 하나님이 되고자 하나님을 부정한다.
이 어리석은 자는 그의 모든 사상과 마음에 하나님이 없기에 당연히 교만할 수밖에 없으며 부패하며 행실이 가증할 수밖에 없다.
2~3절 : 아담이 타락 이후 인간은 모두가 부패한 죄인으로 태어났다. 그러므로 근본적으로 죄악 된 본성으로 태어난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을 찾을 수 없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6:5)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3:9~12)
4절 : “언제나 깨달으랴. 저 악한들, 떡 먹듯 나의 백성 집어삼키고 야훼는 부르지도 않는구나.”(공동번역)
죄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무지한 자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듯이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떡 먹듯이 먹는다.(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고 죽인다.) 그것이 밥을 먹는 것처럼 일상화가 되었다.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미워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5절 : ‘거기서’는 ‘하나님의 심판 때에’라고 본다.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는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 때에 두려움에 사로잡힌다는 것이다.
그들은 깜짝 놀라 공포에 떨며 의인의 세대에 하나님이 계신 것을 깨닫게 된다. 즉 하나님의 자녀들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깨닫게 된다.
6절 : 시편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은 가난한 자들 곧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로 나타난다.
그 사상과 마음에 하나님이 없는 악한 자들이 이러한 가난한 자들의 계획을 좌절시키며 억압하고 착취한다. 그러나 그들의 횡포로 인하여 가난한 자들은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게 된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세상의 힘을 추구하며 세상의 것으로 자신을 세우려고 하는 자들은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난한 자는 세상에 의지할 것이 없어서 여호와를 그들의 피난처로 삼는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시며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의 것이라고 하신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눅6:20)
7절 : 구원자가 시온에 오시기를 갈망한다. 시온은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는 곳 즉 예루살렘 성전이다. 하나님께서는 시온에 오셔서 자기 백성을 포로 된 곳에서 돌이키신다는 것이다.
구원자는 히브리어로 여호수아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통해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하셨다.
이 구원자는 바로 예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자 예수님을 믿으면,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자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셔서 영생을 주신다.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구원자 예수님을 믿는 길 외에는 없다.
그러므로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는 것이다.
(나의 묵상)
나는 천주교 미션 스쿨 고등학교를 다녔다.
시간표 속에 신앙교육 시간이 정식으로 있었는데, 그때 담당 선생님이 ‘우리는 죄인’이라고 늘 말씀하셨다.
나는 멀쩡한 나를 두고 죄인이라고 하는 그 소리가 너무 듣기 싫었다. 그래서 반발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다른 수업 시간에는 아주 모범생이었지만, 그 시간에는 아주 ‘꼴통짓’을 함으로 선생님을 괴롭혔다.
하나님을 부정하는 그 말과 행동 자체가 죄인의 모습인 것을 그때는 몰랐다.
결혼과 함께 남편을 따라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역시 ‘죄인’ 소리는 달갑지 않았다.
‘하나님이 나를 원하신다면 믿어드릴 테니 내게 복 주시는 일만 하시라.’는 속마음을 가진 채,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러니 입으로는 열심히 ‘하나님’을 반복하며 불렀으나, 십자가를 보지 못했으니 하나님을 알지 못한 자였다.
30년이 넘는 세월을 그렇게 보냈다.
2015년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한인교회에서 열린 복음생명 세미나를 통해 복음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말씀을 통한 주님과의 교제는 내 삶에 천지개벽을 이루었다.
먼저는, 내가 구제불능의 죄인임에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고, 함부로 입을 놀리고 내 멋대로 생각했던 철없던 시절의 모습까지도 탄식으로 보게 되었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1절)의 말씀에 ‘제가 바로 이 어리석은 자입니다.’라고 진심으로 고백하고 동의하며 용서를 구하는 자가 되었다.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다.
매일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무지의 껍데기를 한 꺼풀씩 벗어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성령님께서 하고 계심을 체험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 성령님께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하신다.
그것은 ‘말씀 아니면 죽는 줄 아는 나’보다 훨씬 주님의 사랑을 더 실천하고 배려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꼭꼭 보게 하시는 것이다. 그들의 아낌없는 헌신과 섬김을 내 눈 속에 꼭꼭 담게 하셔서 내게 불편한 마음을 마구 심어주시는 것이다.
오늘 아침에 서목사님의 묵상을 읽어보니 이런 내 모습이 바로 ‘실천적 무신론자’-이 무시무시한 단어를 쓰고 싶지 않지만-였음을 알게 되었다.
‘진짜 무신론자’에서, ‘교회 다니는 무신론자’를 거쳐, ‘말씀 묵상하는 무신론자’라니......
이 문제를 성령님께서 기도하게 하셨다.
내가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더 잘 알게 되었다면, 내 삶에서도 하나님의 본질이 드러나야 하는데......염려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
그러나.....
그래서......
내게는 주님의 십자가가 살 길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주님과 교제함으로 붙든 십자가, 내면 깊숙이 숨겨진 탐심 하나까지도 그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회칠한 무덤 같은 어리석은 자에 머물지 않고, 주님 앞에 다 까발려진 정결한 자가 되어 참으로 자연스럽게 또 자유하게 선을 행하는 하루하루가 되길 소망한다.
(묵상 기도)
주님,
스스로 지혜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이 어리석은 자를 구원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숨을 쉬며 사는 것조차도 가증스럽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저를 이 땅에 남겨두심은
십자가에 연합된 삶으로
사랑하고 섬김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주심입니다.
무신론자가 어디 따로 있는 것이 아님을 생각하며 떨리는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성령님,
진실로 주님과 교제하는 자이니,
진실로 주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자 되게 하옵소서.
복음으로 살고, 복음으로 살리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제 안에 주님의 기쁨이 가득한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