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풍기방향에서 죽령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
죽령을 오르는 도중 희방계곡 옆에서
풍기 방향에서 죽령 정상 올라가는 길
중간지점에서 바라본 죽령
죽령 정상 ...여기까지는 경상북도 풍기읍이고 저 표말만 넘어서면 충청북도 단양읍이다
죽령 정상에 있는 죽령 주막집
죽령 정상에 있는 죽령 주막집
그래도 전에는 손님이 제법 있었었는데
우리나라에서 제일 길다는 중앙고속도로 죽령터널(6km)이 뚤리고 난 후부터는
이곳을 지나는 차량도 거의 전멸하다 시피 하여 아예 문을 걸어 잠갔다
그렇지 않았으면 저 곳 죽령주막에서 동동주 한잔 퍼 마시고 하룻밤 쉬어갔을 텐데
요즘은 한산하다 못해 스산한것이 귀곡산장을 방불케 한다
죽령 정상
죽령을 넘으려면 풍기에서 정상까지 15km
정상에서 단양 사인암까지 10km
도합 25km,그러니까 고개를 넘는데 70리 길이나 된다
일천 오백년전에는 고구려(단양)사람들이 신라(풍기)로 넘어가는 유일한 통로였다 한다
무려 일천 오백년동안 이 나라의 사람들이 이 길을 통해 단양에서 풍기로
풍기에서 단양으로 넘나 들었다 한다
자동차도 없던 시절에는 풍기에서 새벽밥 해먹고
죽령정상의 주막에서 점심으로 막걸리 한 사발 퍼마시고
단양으로 넘어가면 날이 저물었다 한다
물론 고개를 넘는 도중 쌍도끼나 갈고리 삼지창등으로 무장한 산도적을 만나
돈과,먹을것,글구 개나리봇짐, 등등 몽땅 빼앗기고
맨몸으로 풍기까지 삼십육계 출행랑을 친 사람도 많았으리...
죽령 정상
이제 저 고개만 넘으면 온달산성이 있는 단양 땅이다
고구려의 온달장군이 평강공주와 함께 산성을 지키다
신라군의 공격으로 장렬하게 전사 했다는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슬픈 사연이 깃들어 있는 땅 단양...
그때 고구려 군은 평양에서 단양까지 지원군과 군수물자를 조달 받으려면
무지막지한 산을 넘고 깊고 깊은 골을 건너 삼천리 육로길로 오든지
아니면 평양에서 황해도를 거쳐 철원을 지나 여주의 나루터에서
남한강을 타고 단양까지 오는길이 까마득하고 아득했었으리라...
하지만 신라군은 경주에서 안동을 거쳐 곧바로 죽령을 넘어 파죽지세로 공격하여
온달산성을 단방에 함락했을 것이다
바보 온달은 여윈 얼굴에 느추한 복장으로 웃기는 짬뽕같이 생겼지만 심성은 고왔다 한다
옆구리 타게지도록 가난하여 항상 밥을 빌어다 어머니께 올렸는데
누더기 옷과 구멍난 신으로 거리를 돌아다녀 사람들이 바보 온달이라 불렀다 한다
고구려의 왕의 어린 딸이 울기를 잘하므로 왕은 늘 바보온달에게나 시집보내야겠다고 말했다 한다
공주의 나이가 16세가 되어 왕이 좋은 신랑감을 정해 주었는데
공주는 어렸을 때 바보온달에게 시집보내겠다는 말을 진실로 믿고
온달과 결혼할 것을 고집하다가 왕궁에서 쫓겨났다 한다
공주는 온달의 집을 찾아가 그와 혼인한 뒤,
궁궐에서 가지고 온 패물을 팔아 논밭·집·노비 등을 샀다한다
믿거나 말거나...
죽령 정상
스산한 귀곡산장같은 죽령주막에서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에게 잠시 묵념을...
죽령 정상의 죽령 주막집 항아리
저 항아리 속에 술이 꽉꽉 들어찼으면 술이나 퍼 마시고 다음날 길을 떠났을 텐데...
죽령 정상, 곧바로 내려가면 단양이다
단양시장은 콧딱지 만해서 물건이 밸루 신통치 않게 팔린다
그래두 꽁치지 않고 나오면 성공하는 것이다
경상북도 경계선을 넘은 죽령 정상 여기부터는 단양군이다
첫댓글 요새는 엔간헌 디를 가 보먼 늘비허니 옹구 도가지로 깔아 놨더마! 근디 제대로 잘 써 묵는 집이야 말 헐 건덕지가 없제마는 기냥 폼으로 엎어트리 놈 집들도 솔찬허던디, 그런 지서리는 옹구도가지를 두본 쥑이는 지서리란 걸 아까? 거그는 질이 쌩쌩헌 갑네...
저기 죽령정상에 있는 주막집 항아리 확인을 해 봉께루 몽땅 빈 항아리드라구요..속았쥬..저 항아리속에 술이라두 있는줄 알았쥬..빈 항아리를 뭣담시 저리 마니 같다 놓는지 도씨 알수가 없구만유
올 초봄 희방사계곡(희방폭포를 보려고 올라가는 길은 어찌 그리 미끄럽던지...)을 오르고 눈덮인 소백산 봉우리를 눈높이에 맞춘후 이 고개를 넘었습니다.눈이 그친 후 발 아래 깔린 운무를 보고 황홀했던 기억이....
아...먹텅아님하구 같은길을 가 보았던 분이시구만유..소백산 하면 운무...운무 하면 소백산입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