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잡설 1부 총론
아파트 공화국' 한국. 아파트가 주택의 절반을 넘는다. 새로 짓는 집만 따지면 80~90%다. 머지않아 단독주택이 멸종할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홍콩·싱가포르 같은 몇몇 도시국가를 제외하면 우리처럼 아파트 일색인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농촌 허허벌판에까지 20~30층 아파트가 들어서는 걸 보면 땅덩어리가 좁기 때문만도 아니다. 주택공사는 1961년 서울 마포에 첫 아파트 단지를 세우면서 거창한 목표를 내걸었다. '국민의 재건의욕을 고취시키고, 한국의 건설상을 과시하고, 토지이용률을 높이고, 생활양식을 간소화하고, 공동생활 습성을 향상시키고, 수도 미화(美化)에 공헌하고….' 거기 더해 '근대문명의 혜택을 국민에게 제공해 대북(對北) 선전효과를 도모한다'는 야심도 있었다. 북한과의 체제경쟁이 아파트 건설의 숨은 동력이었던 셈이다.
파리나 미국LA 공항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파트다. 그들도 아파트를 우리처럼 사랑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곳은 유색인종이 몰려 사는 Slum Quarter라 하는 빈민촌이다. 평상시 우리는 위험성 때문 그곳에 얼씬도 못한다. 그런 그들이기에 우리 아파트를 보는 시각은 의아하기 그지없다. 1990년대 초반 프랑스 지리학도가 서울에 왔다가 사방을 뒤덮은 아파트단지에 충격을 받았다. 무엇보다 중산층과 부유층까지 아파트에 몰려드는 이유를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어느 교수는 아파트 보급이 사회주의혁명을 막았다고 주장한다. 서울대 전상인 교수는 "아파트 공화국과 더불어 성장한 중산층이 1987년 노동자 대투쟁 때 한국 사회의 이념적 좌경화를 막는 방파제 역할을 했다"고 보았다. 1970년대부터 여의도·반포·잠실·영동·목동 개발로 대량 공급된 아파트가 중산층을 키우고 우리 사회의 급진적 변화를 막았다는 것이다.
아울러 전 교수는 "아파트 문제가 좌파 진보 평등주의 이데올로기가 쉽게 파고들 온상도 제공한다"고 했다. 아파트 값이 너무 뛰어올라 사회에 나서는 청년층이나 서민의 내 집 꿈이 멀어지고 있고, 아파트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과 스트레스가 커지고 있는 데 대한 경고다. 과거엔 아파트가 우리 사회의 방파제였지만 이제는 오히려 사회 안정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아파트 공화국의 그늘이 너무 짙다. 앞서 살펴보았지만 1960년대 초부터 1980년대에 이르는 20년이라는 짧은 기간 내 인구 750만 명을 불리는 서울공화국을 탄생시켰다. 이는 달리 말해 빨리 빨리 문화를 말하는 것으로 그 문화의 산물은 다름 아닌 아파트였다. 전교수가 지적한대로 그 기간 좌경을 막았다는 평가가 나는 정확히 맞는다고 본다. 여의도를 비롯해서 그 구성원들은 공무원이나 은행원 대기업종사자 기자 등등 사회지도층 내지 시대를 이끄는 리더층인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압구정동의 현대 아파트 특혜분양대상들을 보면 추측이 가능하다. 실제 70년대 월남전에서 돈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중산층은 더욱 탄탄해졌으며 그들의 보금자리는 거의 강남이었다. 이는 짧은 기간 내 건설을 마무리한 아파트 공급이 또 유효했기 때문 가능한 것이었다.
생각해보자면 20년 만에 1천 만 명이 넘는 도시를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은 아파트이기 때문 가능했다고도 볼 수 있다. 물론 연탄가스 중독이나 물 공급 생활 하수도라든지 교통 환경 등등 각 방면에 많은 난제가 돌출되었고 지금도 공해 등 문제는 산적해 있기는 하지만 주거환경 개선은 물론 삶의 질을 향상한 도시공간을 그 짧은 시간 내 이루어 냈다는 것은 실로 경이로운 진보로 한강의 기적이란 말도 가히 틀리지는 않다 싶다. 아무튼 그 아파트 들이 노후화 된 상황, 그렇다면 강남불패가 꺾인다고 보는가.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기득권을 쥔 그들은 결코 이를 용납하려들지 않을 것이고 독재국가가 아닌 이상 현재로선 이를 잠식할 묘책은 그렇게 많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아무튼 우리나라 사람들은 집에 대한 집착이 남달리 크다.
예전 울티마 온라인이란 게임에서 대륙을 하나 추가하는 패치를 했는데 그 패치 원인이 한국인들이 하도 성을 많이 지어대서 대륙에 땅이 모자라서 그러했다는 것이다. 게임 안에서 게임 머니 악착같이 모아서 성 하나 올리고 뿌듯해 하는 한국인. 게임의 재미보다 부동산 소유욕 수집 욕이 보다 앞서는 사람들이란 명성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한때 미분양 아파트가 급증하고 있고 주택을 사려는 사람도 자취를 감추던 때가 있었다. 은행 주택담보대출 담당자들은 사실상 손을 놓을 수밖에는 없었다. 미국계 모기지 보험 전문회사인 젠워스는 이런 주택담보대출 시장을 공략한다며 모기지 보험을 선보였다. 모기지 보험은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고객이 대출금을 갚지 못하면 보험사가 대신 갚아주는 상품으로 이에 가입하면 현행 주택담보 인정비율(LTV) 60%보다 높은 80%까지 대출받을 수 있다. 주택 시장에 찬바람이 부는데 젠워스가 엉뚱하게 한국에 진출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의 대답은 의외였지만 타당한 것이었다. “한국인은 주택 소유욕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강하다. 미국 등과 달리 경제 사정이 어려워져도 주택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만큼 주택담보대출이 부실화할 가능성이 작다는 얘기다. 현재 한국 부동산 시장이 각종 규제로 침체돼 있지만 이것도 점차 풀릴 것으로 기대한다. 주택 구입 수요도 늘어날 것이다.”
그들의 분석은 정확히 맞았다. 이후 부동산 시장은 다시 호황을 맞았다. 젠워스는 1980년 미국 GE 계열사로 설립됐으며 2004년 기업 공개를 통해 GE로부터 독립했다. 모기지 보험의 경우 시장점유율이 미국에서 4~5위, 유럽에서 1~2위를 하고 있는 회사다.
몇 년 전 전 세계 집값이 떨어지고 미분양 아파트가 13만 가구가 넘는데도 부동산 투기를 걱정한다면 집과 관련된 한국인의 특별한 정서가 있는 것이다. 우선 당장 전쟁 화페 개혁 증권 폭락 등으로 불안했던 기억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공중 분해되지 않는 땅과 집에 대한 믿음이 형성 되었을 것이다, 지주와 소작인처럼 집주인과 세입자의 관계를 불평등하게 간주하는 전통적 상하 관계에 길들여진 탓이다, 특히 베이비부머 세대들은 절대 집을 안팔 것이란 심증들이 강하다. 바로 마당 깊은 집에 살 적 집주인 눈치 보며 성장한 기억이 가슴에 박혀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자들이야 뭘 해 놓고 살든지 나만 행복하면 된다는 서양의 개인주의적 사고방식과 달리 치열한 경쟁 속에서 외향적으로 변한 한국인은 끊임없이 남과 나를 비교한다, 당연히 집을 신분 상승과 과시의 대상으로 생각할 수 있다,유럽처럼 '귀족'이라는 신분을 타고나지 않은 한국에서 비싼 집은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우월한 종자인 듯 착각하게 만드는 기능을 만든다, 무시당하지 않을까? 혹은 우습게 보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숨어있다,
그런데 묘한 심리가 한국인에게는 하나 더 있다. 호주 멜버른 공원에서 일어난 실화다. 그 공원은 털 게가 공원으로 기어오르곤 하는데 그들은 전혀 손을 안 댄다. 그런데 한국인이 트럭을 몰고 나타나 싹쓸이를 했다. 신고를 받고 나타난 경찰이 털 게 실린 트럭을 보고 놀라 그에게 다가갔다. 한국인이 뭐라고 하자 경찰은 바로 그를 체포를 했다. 그들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됐기 때문이다. 먹기 위해서라는데 먹기 위해서라면 한 부대면 충분 할 것인데 트럭 가득 이라니, 이는 정신병자가 아니곤 그럴 수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집 말고도 먹는 것에도 무척 집착을 한다. 왜 그럴까. 나는 이를 역사적 입장에서 바라본다. 우리는 보릿고개가 흔했고 똥구멍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았다. 중국 역사를 보면 당나라 시대 전성기 이후(수양제의 경항 대운하가 큰 공이 됐다. 수량 풍부한 소주나 항주의 곡식과 목축을 하는 북부와의 교류는 그들의 일상이었다) 그들은 굶주림의 역사는 거의 없었다. 아무래도 우리는 춥고 배고프게 살았다는 DNA가 몸에 배어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 밖에 것에 대해서는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너그러운 측면이 강하고 넘쳐난다. 하얀 옷을 즐기듯 한국인은 밝은 색을 좋아한다. 음울한 천에 무늬를 넣은 띠(오비)로 매무새를 다잡은 일본 옷과 비교하면 바로 알 수 있다.
일본인이나 한국인이나 자연을 좋아하기는 매한가지다. 봄이면 일본사람은 온 가족이 자연 속에서 휴일을 즐긴다. 귀깃길에 아버지는 새잎 돋는 관목 다발을, 어머니와 아이들은 꽃과 버들개지를 한 아름 안고 온다. 여름이면 숲에서 가지를 수없이 꺾어 집으로 가지고 온다. 그들은 이 모든 것을 병에 꽂아 두고 소유를 즐긴다. 가을이면 마른 꽃잎까지 방에다 보관하려 든다. 일본 사람은 자연의 아름다움보다는 그것을 소유하는 데 큰 매력을 느낀다. 그들은 물질주의자다.
아름다운 것은 소유하고 싶어 한다. 이런 성향 때문에 일본 사람은 알프스의 절반을, 호수와 다리까지, 자기 정원에 갖다 놓는 재주를 부린다. 이 알프스는 그들의 작은 거실보다 작다. 그들은 자연을 베껴서라도 소유하고 싶어 한다. 좁은 집에서 자연 상태로 키울 수 없다면, 나무도 가차 없이 기형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 무차별적 소유욕은 예술적 감각에도 영향을 미쳤다. 일본 사람은 숲과 들판에서 가지고 온 것을 눈앞에 두고 모사했다. 그들은 세밀함에 심취했으며, 꽃과 잎이 시들어 떨어지기 전에 가을의 단풍과 색색의 꽃떨기 문양을 부인과 아이들의 옷에 새겨 길이 보전했다. 그래서 걸어 다니는 분재나 어색하게 엮인 꽃다발처럼 줄줄이 종종걸음을 치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인은 자연을 꿈꾸듯 응시하며 몇 시간이고 홀로 앉아 있을 수 있다. 산마루에 진달래꽃 불타는 봄이면 , 그들은 지칠 술 모르고 진달래꽃을 응시할 줄 안다. 차라리 내일 다시 자연에 들어 그 모든 것을 보고 또 볼지언정, 나뭇가지 꺾어 어두운 방안에 꽂아두는 법이 없다. 그들이 마음 깊이 담아 집으로 가져오는 것은 자연에서 추상해 낸 순수하고 청명한 색깔이다. 그들은 자연을 관찰하여 얻은 색상을 그대로 활용한다. 무늬를 그려넣지 않고, 자연의 색감을 그대로 살린 옷을 아이들에게 입힌다. 하여 이 소박한 색조의 민무늬 옷들은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하고 원숙하고 예술적이다. 한국의 정원과 일본의 정원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아무튼 먹는 것과 집에 대해선 집착을 유달리 많이 하는 것은 틀림없다.
그런데 왜 우리는 부동산 투기를 못 잡는 것일까. 당연 때가 되면 값이 곱절로 오르기 때문이다. 이에는 교통 좋고 학군 좋은 측면에 강남에 쏠림이 크게 작용하는 데 수요공급 또한 맞아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데 이보다 더 큰 이유는 그릇된 인식에 있다고 본다. 인텔리라 하면 누구든 위장전입에 투기를 안 해본 사람이 없고 다운 계약서를 안 쓴 사람이 없다. 수시로 바뀌는 령은 양치기 소년으로 둔갑으로 했으며 법은 무딘지 오래다. 청나라 때 백만의 만주족이 수천 만명의 한족을 다스릴 수 있었던 것은 공명정대함에 있었다.
이목지신(移木之信), 오늘 이 말을 상기해 본다. 나무를 옮겨 믿음을 준다는 뜻으로 남을 속이지 않거나 약속을 반드시 지킨다는 말. 이목지신은 사기 상군열전에 나오는 말이다. 중국의 통일왕조 진(秦)의 기틀을 세운 상앙은 재상을 지내며 엄격한 형벌 위주의 통치술로 나라를 다스렸다. 그가 내놓은 부국강병책은 과감한 법제개혁과 세제개혁을 통한 내치(內治)였다. 상앙은 법령을 공포하기 전에 함양의 남문에 나무를 세우고 누구든 나무를 북문으로 옮기는 자에게 십금(十金)을 준다는 방을 붙였다.
그러나 미심쩍은 백성들은 아무도 옮기려하지 않았다. 상앙은 다시 방을 붙이고, 상금을 오십금으로 올렸다. 비로소 그때 누군가 나무를 옮겼고 상앙은 그에게 돈을 지불했다. 이는 나라에서 백성들을 속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리려 했던 것이었다. 이후 법령을 공포하자 백성들은 위정자를 믿고 법을 잘 지켰다고 한다. 하지만 훗날 상앙은 자신이 만든 법에 의해 죽고 만다. 그만큼 진나라의 법제도는 엄격했다. 조직의 단결된 힘이 하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신뢰가 필수조건이다. 따라서 리더는 공명정대해야 하고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래야 구성원의 힘이 분산되지 않고 한 곳으로 역량을 모을 수 있으며 또한 불법이나 허튼 짓은 감히 통용이 안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