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1.18 07:21
한삼희 조선일보 논설위원
지난 10일 법원이 한국수력원자력 송모(48) 부장에게 UAE 원전 납품 비리와 관련해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검찰 구형은 8년이었다. 검찰이 어떤 형량을 구형하면 법원은 거기서 일부 깎아 선고하는 게 보통인 걸 감안하면 굉장히 이례적이다. 그는 지난달 8일 불량 제어케이블 납품 관련 재판에선 5년형을 선고받았다. 두 판결이 확정된다면 교도소에서 20년을 살아야 한다.
수사 검사에게 물어보니 송 부장은 능력을 인정받던 사람이라고 한다. 고졸 학력의 그는 18세였던 1983년 한전에 입사했다가 한수원이 분리되면서 따라 나왔다. 신고리원전 건설 현장의 전기부장으로 일하다가 2010년부터 UAE 원전사업단 보조 기기 구매 담당 부장으로 근무해왔다.
송 부장은 작년 6월 20일 구속됐다. 원전에 불량 제어케이블이 사용된 사실이 확인된 지 한 달 뒤 일이다. 검찰은 그의 아파트를 수색해 6억원이 담긴 상자를 발견했다. 5만원권 현찰이 띠지로 묶인 상태였다.
원전 제어케이블은 제조업체(JS전선)가 만들어 시험업체(새한티이피)에서 성능 검사를 한 후 검증기관(한국전력기술)의 승인을 거쳐 수요처(한수원)에 납품된다. 그런데 새한티이피는 제어케이블을 2001·2004·2006년 캐나다 전문 업체에 보내 성능 시험을 의뢰했고 여기서 세 번 모두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그러자 JS전선은 열·방사선으로 노화(老化) 처리를 하지 않고 열풍기로 표면만 살짝 그을린 생(生)케이블을 섞어 캐나다에 보내 일부 합격 판정을 받았다. 한전기술은 이 시험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송 부장이 2008년 1월 한전기술에 전화해 "승인해달라"고 압력을 넣었다. 결국 JS전선·새한티이피·한전기술 3자 대책 회의에서 시험 성적서를 위조하기로 합의가 이뤄졌다. 송 부장 전화 한마디로 술술 풀려나갔다. 법원은 가짜 케이블로 인한 직접 피해액만 1조4600억원이라고 봤다.
불량 케이블 수사 과정에서 송 부장이 현대중공업으로부터 17억원을 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UAE 원전의 비상발전기·변압기 납품과 관련해서였다. 송 부장은 알고 지내던 원전 관련업체 사장 두 명을 현대중공업에 보내 "봐줄 테니 돈을 달라"고 했다. 두 대리인이 현대중공업과 엉터리 용역 계약을 맺고 현대중공업에서 건네받은 돈을 송 부장에게 넘겨줬다. 현대중공업은 이를 통해 도합 2200억원어치 납품 계약을 성사시켰다. 판결문을 보면 현대중공업 임원들이 송 부장에게 설설 기었다고 돼 있다.
궁금한 것은 송 부장의 비리가 개인적 일탈(逸脫)인지, 아니면 한수원 조직에 뿌리박힌 풍토인지 하는 점이다. 그가 관련된 비리 또 하나를 들여다보면 얼추 답이 보인다. 2008년 6월 신고리발전소 직원 사택의 전기 설비 공사를 맡은 업체 사람이 송 부장 부서 직원에게 3000만원이 든 쇼핑백을 전달했다. 직원은 쇼핑백을 과장에게 갖다 줬고, 과장은 송 부장에게 전달했다. 송 부장은 이튿날 1800만원은 자기가 갖고 나머지는 부하 두 명에게 600만원씩 나눠 줬다. 일상적인 뇌물 분배 방식처럼 보이는 대목이다.
수사 검사는 "한수원은 다른 공기업에 비해 관행과 의식이 20년쯤 뒤처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한수원엔 부장급만 613명 있다. 송 부장 비슷한 이가 몇 명 더 있는 것인지 겁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