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년 8월 13일 토요일 새벽기도회 ♣
성경:이사야8:16-22(구977P)
제목:주님이 찾아오시는 마음(2)
16.너는 증거의 말씀을 싸매며 율법을 내 제자들 가운데에서 봉함하라/
17.이제 야곱의 집에 대하여 얼굴을 가리시는 여호와를 나는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리라/
18.보라 나와 및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이 이스라엘 중에 징조와 예표가 되었나니 이는 시온 산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19.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주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물으라 하거든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 하라/
20.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따를지니 그들이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 아침 빛을 보지 못하고/
21.이 땅으로 헤매며 곤고하며 굶주릴 것이라 그가 굶주릴 때에 격분하여 자기의 왕과 자기의 하나님을 저주할 것이며 위를 쳐다보거나 /
22.땅을 굽어보아도 환난과 흑암과 고통의 흑암뿐이리니 그들이 심한 흑암 가운데로 쫓겨 들어가리라.
할렐루야! 목마른 사슴이 갈급한 심령으로 시냇물을 사모하듯이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시는 여러분에게 흡족한 은혜를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제목}“주님이 찾아오시는 마음(2)”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1.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2. 주님 안에서 만족하는 마음입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입니다.
4. 넉넉하게 기다릴 줄 아는 마음입니다.
여러분!우리는 주님의 신부입니다. 주님 외에 우리가 다른 곳에 눈을 돌리고 마음을 돌리면 우리는 영적 우울증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때 사단이 찾아와 같이 놀자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잘못된 것을 청산하려고 결심하고 실천하면 그때부터 주님은 우리 마음에 찾아와주시고, 동시에 심령에 놀라운 자유와 평화가 찾아올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면서 넉넉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사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이 찾아오시는 마음”(2)
오늘도 어제에 이어 주님이 찾아오시는 마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아무리 어려운 문제가 있어도 주님이 우리 삶에 찾아오시면 그때부터 문제는 해결됩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된 당시 이스라엘의 상황은 지극히 어려웠지만 이사야 8장 8절에 나오는 임마누엘의 예언이 주어지면서 그 임마누엘 예언을 기점으로 9-15절까지의 이사야의 우울한 어조가 승리의 어조로 완전히 변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어떤 마음에 찾아오실까요?
1. 말씀에 열린 마음입니다.
본문 16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는 증거의 말씀을 싸매며 율법을 내 제자들 가운데에서 봉합하라.”
이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양피지에 적어 두루마리로 싸서 소수의 제자만이 듣게 하라는 말입니다. 즉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더 이상 말씀하시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처럼 말씀이 막히는 것처럼 큰 불행은 없습니다. 신앙생활에서 말씀이 지겹게 느껴지면 곧 상처와 불행이 임할 것이고, 말씀이 즐겁게 느껴지면 곧 은혜와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말씀을 지겹게 생각하면 무엇보다 본문 19절 말씀대로 주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를 찾으라는 유혹이 옵니다.
이 구절에서 “주절거리며 속살 거리는 신접한 자”란 “그럴듯한 말로 사람을 유혹하는 영매”를 말합니다.
그리고 마술사는 원어로는 “야데오님”이라는 말로 점쟁이를 뜻합니다.
말씀을 지겹게 생각하면 어느새 신비한 모습을 한 무속신앙이 찾아와 유혹합니다. 그때 무속신앙을 좇으면 어떻게 됩니까?
본문 20절 하반부에서 22절까지 말씀을 보면 그런 사람들은 아침빛을 보지 못하고(20절), 헤매며 곤고하며 굶주릴 것이고, 환난과 흑암과 고통 중에 처할 것이라고 말합니다(21-22절).
무슨 말입니까? 다시 말씀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말입니다.
말씀 중심적인 삶은 신앙생활에서 가장 힘든 삶입니다. 평생 재미있는 소설책 한 권도 읽지 않은 사람에게 성경을 읽으라고 하니 얼마나 고역입니까? 때로는 주일에 예배 중에 가만히 앉아 말씀을 듣는 것이 따분하게 느껴지고, 때로는 그 말씀이 나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긁고 마음을 찌릅니다.
그처럼 말씀이 칼이 되어 나의 영혼과 자존심을 찌르면 다음부터는 그런 말씀을 듣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생각하면 말씀이 나를 찔렀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 말씀에 반응했다는 말이고, 그 말씀이 내게 한 말로 들려졌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는 말씀 앞에 찔림을 받기 위해 성경을 보고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무슨 말씀이든 “이것은 나를 두고 한 말씀이구나, 내게 주신 말씀이구나”하고 듣는 마음이 은혜 받는 마음입니다.
가끔 설교가 끝난 후에 “제게 주신 말씀이네요.”라고 하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그 말은 예배를 잘 드렸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말씀을 통해 마음의 찔림을 받고 그 다음에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스데반의 설교를 듣고 당시 지도자들은 이를 갈고 귀까지 막았습니다.
그처럼 귀를 막고, 남의 얘기는 듣지 않고 내 얘기만 하려고 하니까 싸움만 생깁니다. 오늘날 가장 큰 문제는 듣는 귀가 없는 것입니다. 귀를 막으면 주님의 축복도 막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초대 교회 교인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베드로의 회개하라는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려 회개하고, 그날 삼천 명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처럼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실 때 마음을 열고 그 말씀을 기쁘게 받고 실천하면 그때부터 말씀은 나의 영혼을 치료하고, 나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과 축복의 도구가 될 것입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말씀은 민들레 홀씨와 같습니다. 민들레 홀씨는 아주 척박한 환경에서도 기필코 싹을 틔웁니다.
그처럼 말씀은 어떤 척박한 환경에서도 역사를 일으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붙잡고 사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희망의 싹이 나고 열매가 맺어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말씀 중심으로 삶을 재편해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예배에 더 참석해서 말씀을 더 듣고, 조금이라도 성경을 더 보려고 해보십시오. 그리고 한번 말씀대로 살려고 해보십시오. 그러면 신기하게 문제가 풀리고, 축복의 문이 열리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2. 겸손하게 헌신하는 마음입니다.
왜 사람들이 무속신앙을 찾습니까? 특별한 존재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영적 교만이 그 내면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제일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신앙심을 자랑하고 과시하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하나님을 믿고 앞세우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신앙을 자랑하는 삶과는 본질적으로 반대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신앙을 과시하는 순간, 그 사람은 가장 신앙이 없는 사람이 됩니다. 반대로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부족한 신앙을 죄송해하는 사람이 가장 신앙심이 좋은 사람이고 하나님의 축복은 그런 사람에게 임하게 됩니다.
요즈음 영성훈련을 한다는 곳이 많습니다. 좋은 영성훈련 프로그램도 많지만 가끔 이단들이 하는 영성훈련을 보면 무속적인 신앙을 가지는 것을 영성훈련이라고 미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훈련을 받으면 입신을 잘하고, 성령의 9가지 은사를 다 받을 수 있고, 미래를 보는 예언과 투시의 능력이 생기고, 사람의 마음을 읽는 투심이 생겨 사람을 척 보면 그의 영성을 진단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을 일급 성도로 여기는데 그런 모습이 영성일까요?
영성이 무엇입니까? 영성(靈性)이란 쉽게 말하면 자기를
“영(zero)”으로 만드는 성품입니다. 자기를 영으로 만들수록 영성은 높아지고, 자기가 충만할수록 영적 만성질병에 빠져서 참 고치기 힘듭니다.
그 병은 인간이 죽는 순간에는 다 고쳐집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죽기 전에 자기를 잘 죽이느냐 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잘 죽이면 고통도 그만큼 죽고 자기가 펄펄 살아 있으면 고통도 그만큼 커집니다. 우리가 인생을 잘 살려면 먼저 잘 죽을 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이란 주님께 우리를 바치는 것입니다. 그때 말로만 바치거나 생각으로만 바치면 안 됩니다. 호주머니를 비우는 실제적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레는 “호주머니의 회개가 없는 회개는 참 회개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자기 안의 매머니즘(mammonism,배금주의)을 죽이지 못하면 자기를 죽이는 것이 아니고 그런 상황에서는 결코 영성이 깊어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보다 깊은 신앙을 위해 선교와 구제에 힘써야 합니다.
최고의 영성은 자기 및 자기의 소중한 것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기꺼이 바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자기를 바쳤다고 하면서 선교사들을 돕자고 하면 강풍에 문이 “쾅!” 하고 닫히듯이 마음 문을 닫고, 누군가 조금만 ‘자아’를 건드리면 펄펄 뜁니다. 그것은 자기를 바친 것이 아니라 바친 척 한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주님 안에서 힘써 ‘제로’로 잘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짜 사는 길, 진짜 축복받는 길이 열릴 것입니다.
3. 기다리는 마음입니다.
본문 17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제 야곱의 집에 대하여 얼굴을 가리시는 여호와를 나는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리라.”
선지자가 말씀을 적은 두루마리를 싸는 심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마음이 착잡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그는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리며 하나님을 바라보겠다는 말합니다.
이사야는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내일의 비전을 가졌습니다. 그는 어렵지만 당당하게 살았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당당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수군거립니다.
“뭘 믿고 저렇게 큰소리를 쳐!” 우리는 큰소리만 치는 허풍선이가 되서는 안 되지만 힘들 때에는 하나님 믿고 큰소리도 칠 줄 알아야 합니다.
본문 18절 말씀을 보면 이사야는 비전을 가지면서 특별히 두 자녀를 통한 하나님의 비전을 보았습니다.
우리도 우리 자녀들과 3대, 4대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후대를 통해 하나님
의 비전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비전을 가지고 넉넉한 마음으로 주님의 은혜를 기다리며 최선을 다할 때 오히려 그 비전의 성취가 더 빨리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조급한 마음으로 점쟁이, 무속인, 사주팔자를 보는 사람을 찾으면 인생의 고통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1989년 10월 21일, 브란트 서독 수상이 기자회견을 할 때 한 기자가 물었습니다. “수상님! 언제 동서독의 장벽이 언제쯤 무너지겠습니까?” 브란트 수상이 대답했습니다.
“한 십 년쯤 기다리면 되겠지요.” 그 말이 끝나고 정확히 10일 만에 동서독의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그처럼 여유를 가지고 기다리며 최선을 다할 때 오히려 문제 해결의 때가 더욱 신속하게 찾아올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대개 씨앗을 뿌리기보다는 열매를 수확하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다리는 데 인색합니다. 그래서 많은 것을 성취해도 사람의 질은 더 떨어지고 있습니다.
왜 많은 사람들의 삶이 불안해 보입니까? 무엇보다 뜸 들이는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과속으로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진정한 의미의 축복은 주어지기 힘듭니다.
이제 주님을 더욱 사모하고 주님의 은혜를 기다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기다림의 대상이 주님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 모릅니다. 그렇게 기다리면서 우리는 주님의 마음을 품게 되고 주님처럼 변하게 될 것입니다.
여성들은 임신할 때 그가 생각하는 사람과 닮은 아이를 낳는다고 합니다. 미워하는 사람이 있으면 거의 미워하는 사람을 닮은 아이가 태어납니다.
그때 주님을 생각하면 주님 닮은 아이가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날마다 주님을 생각하면 우리 자신이 주님 닮은 사람으로 변하고, 주님이 가지신 모든 축복과 권세도 우리 것이 될 것입니다.
토마스 하디의 소설 중에 “환상의 여인”이란 소설이 있습니다. 한 여인이 시를 읽다가 그 시를 쓴 사람을 사모하게 됩니다.
한번도 만난 적이 없고, 아무 특별한 관계도 없지만 계속 시인을 사모하다 보니까 나중에 그 시인을 빼닮은 아이를 낳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의 오해를 받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우리도 주님을 사모하면 반드시 주님 닮은 모습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우리 자녀 중에 주님의 뜻을 크게 이룰 자녀들이 생길 것입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대상”이 “우리의 미래”를 만듭니다.
***{결론}***
주님은 어떤 마음에 찾아오실까요?
1. 말씀에 열린 마음입니다.
2. 겸손하게 헌신하는 마음입니다.
3. 기다리는 마음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열린 마음을 가지십시오.겸손하게 헌신하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주님을 계속 생각하고, 계속 기다리면 우리의 앞날은 주님의 기쁨과 평안과 권세와 축복으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이제 주님만 생각하고, 바라보고, 기다림으로 앞날에 주님의 축복이 넘치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묵상:이사야8:16-18절입니다. 오늘도 말씀을 깊게 묵상하시고 성령님께서 깨닫게 하시고 감동을 주신 말씀을 꼭 실천하시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