괄괄하고 화끈한 대구 지역 사람들의 성정 때문일까? 대구의 대표적인 음식은 따로국밥이나 신천떡볶이, 곱창전골, 닭똥집, 막창구이 등과 같이 아무래도 좀 거칠고 자극적이다. 그 중 화끈하기로 따지면 '동인동 찜갈비'가 단연 으뜸. 마늘과 고추가루가 듬뿍 들어가 입안을 톡 쏘는 매운맛은 여느 '갈비찜'과는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맛을 자랑한다. 중독성까지 있어 한번 맛에 길들여지면 누구나 고정팬이 된다는 동인동 찜갈비를 찾아가보자.
△"원조? 그런거 몰라요."
대구 시청 인근의 동인동 찜갈비 골목. 고작 200여m 남짓한 좁은 소방도로에 13개의 업체가 다닥다닥 어깨를 맞대고 붙어있다. 이 곳에 찜갈비 골목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벌써 30년도 훨씬 넘은 이야기다. 1970년대 초 '실비집'이라는 간판을 달고 마늘과 고추가루, 생강을 듬뿍 넣어 고기 특유의 느끼한 맛을 제거한 찜갈비를 선 보였던 것.
당시 처음 이 '찜갈비'를 개발했던 원조 할머니는 이제 이 골목을 떠나고 없다. '실비집'이 인기를 얻으면서 인근에는 비슷한 형태의 찜갈비 식당이 줄줄이 들어서자 오히려 초기 허름한 형태를 유지했던 원조 집에는 찾는 이의 발길이 뜸해졌던 것. 그래서 원 개발자는 벌써 수십년 전에 골목을 떠나고, 이제는 원조 뺨치는 전통을 지닌 가게들이 그 자리를 지킨다.
이들 가게들이 모두들 원조 '실비집'에 어느 정도는 빚을 지고 있어서일까? 동인동 찜갈비 골목에서만은 유독 '원조' 논쟁을 찾아볼 수 없다. 여느 먹거리 거리를 찾아가면 온동 간판을 도배하고 있는 '원조' 글자도 모자라 '원, 원조', '진짜 원조' 등의 볼썽사나운 경쟁이 없는 것. 오히려 가게들은 유독 한 업체가 부각되는 것은 골목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서로 말을 내놓기를 꺼려하는 모습이다.
그래도 궁금해서 가게에 들어가 "도데체 원조는 어디에요?"라고 물었더니 "그런게 뭐가 중요해. 맛만 있으면 되지. 우리 골목에는 '원조'없어."라는 명답만 돌아왔다.
현재 동인동 찜갈비골목 상가번영회장을 맡고 있는 장영숙(53`여`벙글벙글 사장) 씨는 "상당수의 가게들이 3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고 있고, 이제는 나름의 노하우를 가지고 각기 독특한 맛을 내고 있다."라며 "한 가게를 부각시켜 자랑하기보다는 직접 들러 맛을 보고 자신의 입맛에 알맞은 맛집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라고 설명했다.
가격은 골목길의 가게 대부분이 1인분에 1만2천 원 선으로 통일돼 있다. 번영회를 통해 합의된 가격은 아니다. 항상 오르락 내리락을 감안하는 갈비가격을 감안해 적정선을 정하다보니 자연스레 동일한 가격선이 형성된 것일 뿐이다.
찜갈비 맛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갈비와 마늘을 장만하는데도 서로 힘을 모은다. 거의 공동구매 수준이다. 한 가게가 질 좋은 고기를 납품해 주는 거래선을 찾으면 서로 소개를 해 줘 각자가 보유한 손맛에서 승부를 본다.
한 골목길에 옹기종기 모여 서로 돕고, 선의의 경쟁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동인동 찜갈비 골목. 맛도 맛이지만 대구 사람들의 끈끈한 의리가 이 골목길을 더욱 멋있게 만드는 요소가 아닐까?
"마늘·양재기 없인 대구명물 아니지~"
△마늘맛이 효자
동인동 찜갈비의 가장 큰 특징은 입안 가득 배어오는 맵싸한 마늘 맛. '갈비찜'과는 같은 재료에, 같은 '찜'이라는 형태의 요리법을 사용하지만 '찜갈비'의 맛과는 확연히 다르다. 갈비찜은 달큰한 간장의 맛이 입에 감겨드는 반면, 찜갈비는 일단 화끈한 맛이 일품이다.
처음 먹었을땐 "온통 마늘 투성이네."라는 푸념도 나오지만 한점 두점 집어먹다보면 입이 얼얼하게 달아오르는 매콤함에 절로 침이 고여든다. 그래서 동인동 찜갈비의 맛의 비결은 바로 마늘을 잘 다스리는 데 있다.
너무 푹 익혀 마늘의 매운맛이 다 달아나버리고 물컹물컹한 단맛만 남아서도 안되고, 덜 익혀 생마늘의 강한 향이 그대로 살아있어도 안된다. 자꾸 먹다보면 갈비맛보다는 양념 맛에 중독돼 아예 고기 양념에 밥을 듬뿍 비벼 쌈 싸먹는 마니아들도 다수다.
이순남(65`여`봉산식당) 씨는 "미리 갈비를 살짝 익혀둔 뒤 손님이 주문을 하면 고춧가루와 마늘 등의 양념을 넣어 10~15분 만에 다시 한번 익혀 낸다."며 "이 시간 정도가 마늘 맛을 가장 맛있게 하는데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양재기는 못바꾸지
아무리 맛도 맛이지만 동인동 찜갈비의 가장 큰 특징은 양은 양재기. 빨갛게 양념된 갈비가 다 찌그러지고 볼품없는 양재기에 담겨 나오는 것이 이 골목의 특징이다. 수 십 년 장사 경력에 가게는 예전의 초가집을 탈피하고 현대식으로 건물로 새롭게 단장했지만 이 양재기만은 변함없이 그 모습 그대로다.
양재기에 얽힌 사연도 부지기수다. 이순남 씨는 "그 사연을 우예 다 얘기하노. 내로라 하는 서울의 잘 나가는 사람들이 대구맛 본다고 찾아와서는 양재기에 담겨 나오는 고기를 보고는 버럭 화를 내는 일이 하나둘이 아니었재."라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찜갈비 골목에서 양재기를 사용하는 것은 제대로 된 양념맛을 위해서다. 다른 철제 용기에 비해 열 전도율이 좋아 빨리 뜨거워지고, 쉽게 식지 않아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양념맛을 내는 데는 이것보다 나은 용기가 없단다.
장영숙 씨는 "질그릇이나 스텐인레스 그릇을 사용하게 되면 너무 흐물흐물 익어버려 탕이 되지 제대로 된 찜을 내 놓을 수 없다."며 "더욱이 고기에서 빠져나오는 기름이 굳지 않아 이보다 좋은 용기가 없다."고 했다.
또 하나의 이유는 편리함. 다른 철제 용기를 사용하게 되면 양념이 그릇에 쫄아붙고 타버려 씻는 자체가 불가능하게 된다. 하지만 양재기는 물에 불려 닦으면 빡빡 닦으면 여느 용기보다 쉽게 설겆이를 할 수 있다.
여난희(`여`낙영식당) 씨는 "일부러 양재기를 찌그러뜨리는 것은 아니지만 워낙 많은 손님들이 들고 나기 때문에 바쁘게 식당일을 하다보면 여기저기 부딪혀 어쩔수 없이 찌그러질 수 밖에 없다."며 "한달에 한번쯤 양재기를 새것으로 교체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색깔이 옅어지고, 찌그러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 양재기. 여기에 바로 세월이 갈 수록 손 맛을 더해가는 동인동 찜갈비의 마법이 숨어있는 것이다.
첫댓글 좋은 대구 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