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고행(苦行)과 수행(修行)의 길, 내 인생의 안나푸르나 (4)

[호산아]

◇ 고행(苦行)과 수행(修行)의 길, 내 인생의 안나푸르나 (4)… ◇

* [HIMALAYA ANNAPURNA ROUND TREKKING] ♣…집필 오상수 *

▶ 2013년 3월 22일 (금요일) : 제3일

*[카투만두]-무글링(점심)-둠레-베리사르-불부레-샹게-[참제]

☆… 3월 22일(제3일) 오늘의 카투만두 날씨는 깨끗하고 화창했다. 이곳은 1,300고지의 분지여서 늘 건조하기 짝이 없는 곳이다. 그래서 땀이 나도 냄새가 나지 않으므로 이곳 사람들은 몸을 잘 씻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히말라야 등반은 목욕을 하지 않는 습관에 길들여져야 한다고 했다. 이른 아침 <삼사라호텔>에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끝내고, 오전 7시 20분 <아시아트래킹(ASTREK)>에서 제공하는 미니버스를 타고 트래킹을 시작하는 안나푸르나 대협곡을 향하여 출발했다. 우리 7인의 대원과 가이드 겔젠 셀파, 그리고 쿡 마일러가 동승했다. 원래의 계획은 카투만두를 출발하여 베시사하르에서 현지의 시외버스로 갈아타고 불부레(Bhulbhule, 840m)까지 들어가는 것이지만, 일정을 조정하여 오늘은 불부레 위의 샹게를 지나 참제까지 이동하여, 그곳의 산장인 롯지(Lodge, Guest House)에서 1박을 한다. 그렇게 해야 내일의 여정이 원만하게 되고 시간적으로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 카투만두 시내는 이른 아침부터 많은 사람과 차량과 오토바이로 붐볐다. 가는 곳마다 먼지가 일어나서 거리에 자욱했다. 도로에는 아직 차선도 없고 신호등도 없다. 차량과 사람들과 오토바이가 마구 몰려오고 몰려가고 있다. 기원섭이 ‘무질서 속의 질서’라는 말로 정리했다. 이제 막 새로운 문명이 들어와 역동적인 삶의 모습이 보이지만 개선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 대장은 말했다. 카투만두의 가장 큰 문제는 도로와 전기와 물 사정이라는 것이다. 문명의 개념으로 보면 갈 길이 먼 나라인 것 같았다.

*[트리부반 하이웨이] …천길 계곡으로 내려가는 구절양장의 도로

☆… 시내를 빠져 나가는 도로는 이 나라의 주 간선도로이다. 사하 왕조의 8대 국왕의 이름을 붙인 ‘트리부반 하이웨이’다. 네팔 제2의 도시인 포카라와 통하는 도로이면서 이 나라에 가장 많은 물량이 들어오는, 인도와의 유일한 교역로인 것이다. 넓은 직선도로를 달리다가 오르막길이 시작되면 카투만두 분지와 작별이다. 비탈길의 정상 탄콧 고개를 넘어서자 도로는 천 길 계곡으로 내려가는 갈 지(之)자의 산길이었다. 고개를 넘어서 현기증이 날 정도로 까마득한 계곡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이어져 카투만두 분지가 꽤 높은 곳에 있음을 실감한다. 고도차가 심한 구절양장(九折羊腸)의 길이었다. 길목마다 수많은 트럭과 버스가 연이어 올라오고 있었다. 특히 대소형 트레일러트럭이 엄청나게 들어오고 있는데 보통 인도에서 30~40시간이 걸려서 들어오는 것이라고 했다. 네팔과 인도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 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 해발 1,300고지의 카투만두에서 그 고도를 매우 낮추는 산길을 길고도 멀었다. 고개를 다 내려와 어느 정도 평평한 길이 시작된다. 차창 너머로 도로의 오른쪽에 트리슬리 강이 흐른다. 이 강의 근원은 티베트의 계류라고 하는데, 무글링 근처에서 마르샹디 강과 합류한 다음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인도의 강으로 흘러간다. 강을 따라 다딘, 가주리 등 큰 바자르(상점이 있는 휴게소)를 몇 개 지나면 무글링에 다다른다.

*[네팔의 언어와 사람들] …낙천(樂天)하며 사는 네팔 사람들, “나마스테!”

☆… 높은 산길을 내려오는 차 안에서, 이(李) 대장은 네팔의 문화와 언어, 그리고 히말라야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선 가장 많이 쓰이는 말이 합장하고 ‘나마스떼’라고 하는 인사말이다. 티벳어로는 ‘다시다리’라고 하는데 이는 우리말 ‘안녕하세요!’ 하는 말인데 ‘당신을 존경합니다’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고 했다. 감사하다는 뜻의 ‘단내밧’, 좋다는 뜻의 ‘훈차’, 맛있다는 뜻의 ‘미또차’, 또 만나자는 뜻의 ‘배리 배똘라’ 그리고 이곳에서 물이라도 얻어먹으려면 ‘치소빠니 디노스’(냉수 좀 주세요), ‘따또빠니 디노스’(따뜻한 물 좀 주세요) 정도는 알아야 한다고 했다. 음식을 먹고 난 뒤 맛있게 잘 먹었다고 말할 때는 ‘단내밧!’이라고 한다. 그리고 네팔에서는 작은 계곡물이나 시내를 ‘콜라(Khola)’라고 하고 강(江)을 ‘코시(Khosi)'라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네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말이 어려운 일을 당해도 아무 문제 없다는 뜻을 지닌 ‘합수차 마타타’, 즉 ‘노 플러블럼!(No, problem!)’이다. 말뿐만 아니라 자연의 시간에 따라 살아가는, 그들의 몸에 밴 낙천성(樂天性)이 반영된 말이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늘 얼굴이 평온하고 여유가 있다는 것이다. 히말라야는 ‘느림의 미학’이 살아있는 곳이다.

☆… 트래킹을 하다가 포터들에게 ‘가자’하고 말할 때에는 ‘자니!’라고 한다. 히말라야 트래킹은 고소증의 고통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는 서두르지 말고 오직 천천히 걸어가야 한다. 그럴 때 ‘비스타리 비스타리 자니!’(천천히 천천히 가자!)라고 말한다. 그래서 요사이 히말라야 등반은 ‘altitude’(고도)가 아니라 ‘l’자를 뺀 ‘attitude’(태도)라고 말하고, ‘히말라야는 깨달음의 땅이요, 영혼이 맑아지는 곳’이라고 했다. 그래서 ‘히말라야 등반은 숨 가쁜 고행(苦行)이면서 착한 수행(修行)의 역정’이 되어야 한고 덧붙였다. 히말라야 등반의 경향과 철학적 의미를 말한 것이다. 히말라야에서 고행을 하면서 영감을 받게 되고 그래서 새롭게 마음이 정화되면 ‘베리 베똘라 히말라야!’(다시 오겠다 히말라야!) 한다는 것이다. 히말라야의 아이들을 보면, 비록 가난하여 언뜻 보기에 꾀째째해 보이지만, 까만 눈동자의 눈빛이 사슴의 눈망울처럼 맑다는 것, 초롱초롱한 눈빛이 순진하기 그지없고 심성 또한 때 묻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글링(Mugling)에서의 식사] …네팔의 전통음식 ‘달밧’

☆… 무글링(Mugling)에 도착했다. 무글링은 카투만두와 포카라의 중간 지점에 있고 터라이 평원으로 이어지는 교통의 요충지이다. 붓다가 탄생한 룸비니를 거쳐 인도로 가는 길과 네팔 제2의 도시 포카라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삼거리이다. 점심은, 카투만두 분지고원에서 굽이굽이 산길을 내려온 곳, 이곳 무글링(Mugling)에서 들기로 했다. 길가의 한 식당 앞에 차를 세우고 네팔의 일상음식인 ‘달밧(daal bhaat)’을 시켜 먹었다. 녹두죽(daal)과 야채볶음에 밥(bhaat)을 비벼먹는 이곳의 전통음식이다. 이(李) 대장이 미션을 걸었다. 현지의 양식대로 수저를 쓰지 않고 손으로 음식을 먹어보라고 했다. 모두 손을 씻고 그리하여 대원들은 맨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었다. 네팔 사람들은 오른손으로 꼭 음식을 먹는다. 왼손은 따로 쓸 데가 있기 때문이다. 달밧은 의외로 구수하고 먹을 만했다. 무글링은 작은 소도시이지만 교통의 요로이다. 이곳은 인도로 가는 도로와 포카라-베시사하르로 갈라지는 삼거리 도시이기 때문이다. 거리에 나서 보니 식당 맞은 편 건물 위에 LG의 광고판이 있어 눈길을 끌었다. 우리나라의 전자제품이 이곳에 까지 판로를 열고 있는 것이었다.

* 붓다는 2,500여 년 전 네팔의 룸비니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불교가 전래된 것은 기원전 250년 경이다. 인도의 위대한 국왕이자 불교도이던 아쇼카 왕 시절이었다. 불교는 힌두교에 밀려 쇠락했다. 하지만 8세기 경 티베트의 탄트라불교(밀교)가 다시 네팔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네팔의 세르파족, 따망족 같은 히말라야 고산종족들이 불교를 믿으며 티베트 난민들도 불교도(라마불교)이다.

*[베시사하르(Besisahar) 가는길] …네팔의 민속 가요 ‘레쌈 삐리리’

☆… 무글링(Mugling)에서 좌측으로 가면 룸비니-인도로 가는 길인데, 우리는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트리슬리 강의 현수교를 건너서 포카라, 베시사하르 방향으로 이어지는 도로로 접어들었다. 날씨는 완연한 봄 날씨, 따뜻하고 화창한 기운이 천지에 미만했다. 가는 곳마다 나무마다 초록초록 새잎이 돋아나고 여기저기 선명한 꽃무리가 피어나고 있었다.

☆… 차를 타고 가는 차 안에서 이 대장은 스마트폰에 내장된 노래를 틀었다. ‘레쌈 삐리리(Rhesham Pheeree Ree)’라는 민요인데, 네팔 전역에서 가장 많이 듣는 노래이다. ‘바람에 나부끼는 실크처럼 내 마음 흔들리네’와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는데, 곡조가 애절하면서도 리듬은 매우 경쾌하다. 이 노래는 우리나라의 ‘아리랑’과 같이 일종의 국민적 전통가요이다.

☆… 그리고 이어지는 노래는 우리의 토롯트 ‘내 나이가 어때서’였는데, 네팔에서 듣는 대중가요가 새삼 여정의 분위기를 살렸다. 오승근의 노래를 여자가수 금잔디가 리메이크하여 신나게 부르는 노래였다. 천리만리 이국에서 듣는 우리의 노래가 아주 정겹다.

        야 야 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에 나이가 있나요

        마음은 하나요 느낌도 하나요

        그대만이 정말 내 사랑인데

        눈물이 나네요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어느 날 우연히 거울 속에 비쳐진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세월아 비켜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 달리는 차 안에서 듣는 흥겨운 한국의 트롯트가 감칠맛이 났다. 사랑하기에는 나이가 들어 이미 ‘한물 간’ 인생이라고 사람들이 말을 하지만, 그래도 얼마든지 사랑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열의를 노래하고 있다. 어디 사랑뿐이겠는가. 가사 속의 ‘사랑’을 ‘산 사랑’이나 ‘등산’으로 살짝 바꿔놓으면, 지금 히말라야 험로를 찾아가는 바로 우리의 노래가 된다. 고희가 다 된 전민수·여삼동 대원이 숨 막히는 고봉준령의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기 위해 지금 이 차안에 동승하고 있지 않은가. ‘내 나이가 어때서’, 그렇다. 나이의 문제가 아니다. 더구나 무거운 체중을 지닌, 육십 대 중반의 불곰 기원섭도 주변의 우려와 만류에도 불구하고 지금 안나푸르나 트레킹에 들고 있지 않은가. 아무리 다른 사람이 부정적인 상황으로 보아도 내 자신이 삶에 대한 역동적인 의지와 열정을 지니고 있다면, 그것이 산이든 사랑이든 어떤 인생이든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네팔식으로 ‘합수차 마타타’ 노 플로블럼이다. 무심코 듣는 유행가도 가만히 음미해 보면 이렇게 ‘살 맛 나는’ 하나의 철학을 담고 있다.

☆… 오전 11시 30분, 우리의 미니버스는 둠레(Dumre)라는 소도시에서 베시사하르로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날씨가 화창하기 이를 데 없다. 조금 지나니, 네팔에 와서 처음 보는 평야지대가 펼쳐졌다. 우리가 지나는 도로의 주변에는 평화롭고 고즈넉한 네팔의 농촌 풍경이 이어졌다. 어떤 곳에서는 우리나라처럼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모내기를 하는 곳도 있었다.

☆… 따뜻한 햇살이 내리는 들녘에는 밭일을 하는 농부, 지나가는 길목의 집 앞에는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유유자적의 삶, 트래킹을 시작하기 전 이(李) 대장이 강조했던 낙천적인 ‘느림의 미학(美學)’이 그대로 드러나는 정경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네팔 사람들은 화를 내는 법이 거의 없다고 한다. 안분지족(安分知足),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그들의 심성이 참 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사는 우리나라와 달리, 가난한 부탄이나 네팔이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라는 보도의 근본을 생각하게 한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멀리 차창으로 안나푸르나의 하얀 설봉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베시사하르] …가이드와 포터, 7명의 네팔인 수행원(隨行員) 합류

☆… 낮 12시 30분, 베시사하르(Besisahar)에 도착했다. 아주 규모도 크고 시가도 번창하며 길거리에는 오가는 차들도 많고 사람도 많았다. 이곳은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래킹을 시작하는 거점도시이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트래킹은 여기서 시작했는데 지금은 비록 열악하지만 새로 난 산간도로를 이용하여 어느 정도 깊은 계곡까지 차를 타고 들어갈 수 있다. 베시사하르 시가의 주변에는 등산객을 위한 다양한 상점이 늘어서 있었다. 이곳에서 입산신고를 하고, 산중 마을로 들어가는 소형 시외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겔젠 셀파가 입산 신고를 하는 사이, 소형버스 한두 대가 손님을 기다리고 서 있는 한가한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망중한의 시간을 보냈다.

☆… 그런데 이곳에서 우리의 짐을 지고, 우리와 함께 고산준령을 넘어갈 도우미(포터)들과 합류했다. 가이드 셀파 겔젠과 쿡(조리사) 마일러 따망은 카투만두에서 우리와 동행해 왔는데, 이곳에서 포터의 리더인 안소니 퀸을 연상하게 하는 강렬한 인상을 지닌 가지(Gaji)를 비롯하여, 그리스나(Grissna)와 앰럿(Amrit, 22세) 형제, 키가 훤칠하고 눈이 깊은 락빠(Lhagpa, 21세), 한국에서 보면 꼭 어린이 같은 앳띤 모습을 지닌 니마(Nyima, 17세) 등이 그들이다. 이렇게 하여 우리 원정대의 모든 진용이 갖추어졌다. 우리 대원 7명, 현지의 가이드 셀파 1명, 쿡 1명, 그리고 포터 5명 등 모두 14명이, 앞으로 10일 동안 고락을 함께하는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래킹의 대원이다.

*[대협곡의 산간도로] …불부레-상게

☆… 오후 1시 40분, 산간지방을 오가는 고물 미니버스가 출발했다. 차 안에는 우리대원들과 트래킹을 가는 외국인들, 그리고 이곳의 원주민이 들어차서 만원을 이루었다. 좌석은 물로 입석도 꽉 채우고 버스 위에는 카고백과 짐을 싣고 일부 포터들이 올라타고 있었다. 차는 본격적으로 안나푸르나 동쪽의 협곡을 따라 들어간다. 해발 760m의 베시사하르에서 출발한 버스는 좁은 비포장의 산간도로를 따라 나아갔다. 해발 840m의 불부레에서 잠시 멈추어서 많은 사람들을 내리고 태웠다. 오후 3시를 넘기는 시각이다. 한참을 쉰 후, 버스는 협곡의 왼쪽 산록으로 난 비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트래킹은 이곳 불부레(Bhulbhule)에서 시작하여 계곡의 오른쪽 산길을 따라 이어지며 전망 좋은 바운단다(Baundanda)를 거쳐 샹게(Shange)에서 이 산간도로와 합류한다는 것이다. 불부레에서 샹게까지는 걸어서 하루 일정인데 요사이 이렇게 찻길이 닦여져 버스로 1시간 남짓하게 걸린다.

☆… 버스는 샹게에서 한참을 멈추었다. 이곳의 주민들이 많이 내렸다. 바쁘다고 재촉하는 사람이 없다. 우리도 차에서 내려 가까이에 있는 장대한 100m 폭포를 감상했다. 천 길 절벽에서 떨어지는 수직의 폭포였다. 봄 가뭄으로 인해 수량은 그리 많지 않으나, 그 장대한 물줄기가 보는 이를 압도했다. 그리고 게스트 하우스에 들러 협곡에서 잡은 물고기 튀김을 시켜 맛을 보았다. 이 대장이 다니면서 친분이 있는 게스트하우스 주인이 반갑게 인사하며 별미를 마련해 내놓았다. 거의 40분을 쉬고 난 뒤, 오후 5시경 우리는 다시 차에 올라 계속 계곡의 길을 타고 올라갔다.

☆… 약 20분 정도 올라가다가 백파가 차를 멈추었다. 길 건너편에 또 하나의 장대한 폭포가 눈길을 사로잡았기 때문이었다. 차를 세우고 강 건거 편의 폭포를 감상했다. 아까보다 더 세찬 소리를 뿜어내며 급전직하 수직의 폭포가 강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이곳에는 이런 폭포들이 워낙 많아 따로 그 이름이 붙여져 있지 않다고 했다. 보이면 그냥 ‘Woterfall’(폭포)이다. 그 장관을 카메라에 담고 캠코더에도 담았다.

*[참제(Chamje) 가는 길] …오금이 저린 천 길 벼랑의 신작로

☆… 돌부리가 곳곳에 솟아 있는 길바닥은 거칠었다. 고물 시외버스 안은 만원이었고, 좌석조차 좁아서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다시 차는 산간도로를 타고 오른다. 거의 절벽(絶壁)에 가까운 산을 깎아 산간도로를 냈는데 완전히 갈 지(之) 자 형태로 고도를 엄청나게 높여 올라간다. 한쪽은 거대한 바위산의 암벽이고, 또 한 쪽은 천 길 낭떠러지의 깊은 계곡이었다. 그 깊은 계곡은 우리말로 ‘분노(忿怒)’를 뜻하는 ‘마르샹디(Marshangdi)’라고 했는데, 많은 비가 쏟아져 계곡물이 넘쳐흐를 때면, 그 세찬 물살에 크고 작은 바위 덩어리들이 함께 떠내려가는 바람에, 그 물소리가 마치 성난 사람의 절규처럼 들린다고 해서 그렇게 불린다고 했다.

그런데, 바퀴가 덩그렇게 높은 고물버스가 좁은 산길을 한 번에 커브를 돌 수가 없어 한두 번 후진을 했다가 다시 길을 잡는다. 만약 조금만 길을 벗어나도 차는 저 수백 미터 낭떠러지로 추락하게 된다. 아, 순간순간이 참 아찔한 시간이었다. 간간히 차창으로 아래를 내려다본다. 저 아래 대협곡의 강이 아득하여 그 세찬 물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는다. 참 오금이 저리고 불안한 버스투어였다. 아주 위험한 산길이었다. 솔직히 겁이 나고 두려웠다.

☆… 그러는 가운데 문득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이 청나라 연경에 사신의 일행으로 다녀와서 쓴, 기행문 <열하일기(熱河日記)> 중의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가 떠올랐다. 연암은 조선 후기 정조(正祖) 때 실학자이다.

* 박지원 일행이 1780년 6월 24일 압록강을 건넌 후, 책문, 산해관, 베이징 등을 거쳐 8월 9일 열하(熱河)에 도착했다. 당시 박지원 일행은 하루에 아홉 번이나 강을 건넜다.[一夜九渡河] 사람들이 백하(白河)라는 강을 건널 때, 낮에는 거칠게 소용돌이치는 물결 때문에, 밤에는 성난 듯 울어 대는 물소리 때문에 모두 두려워하여 강을 건너지 못하였다. 사나운 물결과 위협적인 물소리라는 외적 요인이 엄청난 두려움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박지원은 여기에서 사람의 ‘감정과 인식’의 허실을 깨닫는다. 사람이 어떻게 마음을 먹느냐가 중요하다. 감각 기관을 통해 받아들이는 것은 외물(外物)에 불과하다. 사물을 정확하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은 채 순수한 이성적 판단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지원은 태연히 배를 타고 강을 건넜다. 나아가 그는 인생이라는 큰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당당한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힘주어 말한다.

☆… 덜컹거리고 뒤뚱거리는 버스 안에서 나는 가만히 마음을 다잡고 조용히 생각했다. ‘외물에 현혹되지 말자. 모든 것은 하늘의 뜻에 맡기자.’ 내 연암처럼 그렇게 태연할 수는 없었지만 어느 정도 마음의 평정은 갖게 되었다. 이렇듯 사람 사는 일이란 생각해 보면 모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가 아닌가.

그런데 이곳의 네팔 사람들의 표정은 아주 천연덕스러웠다. 아니 그냥 무덤덤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그들 특유의 낙천성인지, 이런 산길이 늘 일상사가 되어 그런지 알 수 없으나 분명히 태평성대였다. 이(李) 대장의 말이다. “이 사람들은 무슨 일이든지 ‘노 플러블럼’입니다. 매사 걱정 없어요. 카트만두의 호텔 이름이 ‘삼사라(SAMSARA)’이듯, 세상만사는 순환(循環)한다고 생각합니다. 죽으면 더 좋은 생(生)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종교적 믿음이 확고하기 때문입니다.” 자연의 생명성이 함께 호흡하는 종교적인 믿음이 있는 것이다.

☆… 이렇게 위태롭게 고도를 높여가며 도착한 곳이 해발 1,500m의 참제(Chamje)의 로지(Lodge, 산장)였다. 오후 6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대협곡의 산장마을에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했다.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