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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다시 계몽] 23장
23장. 휴머니즘
- 이성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나머지 인류에게 바라지 않는 것을 자기 자신에게도 바라지 않는다.(스피노자) 휴머니즘은 인류의 번영-생명 건강 행복 자유 지식 사랑 풍부한 경험-을 극대화한다는 목표. 우리가 인간의 지식으로 성취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판정해 주는 것이 휴머니즘. 존재(사실명제)를 보조하는 당위(가치명제)는 휴머니즘에서 나온다.
- 1993년부터 세번에 걸쳐 선언된 휴머니즘 운동의 목표(2003년 제3차 휴머니즘 선언) 세계의 지식은 관찰 실험 이성적 분석을 통해 획득한 성과물이다. 인간은 본래 자연의 일부분이며 어떤 안내도 없이 진화적 변화를 거친 존재이다. 윤리적 가치는 경험으로 검증되었듯이 인간의 필요와 이익에서 유래했다. 삶의 실현은 인간적인 이상에 봉사하는 개인적 참여에서 나온다. 인간은 본래 사회적이며 관계에서 의미를 찾는다. 사회에 이로운 일은 개인의 행복을 극대화한다.
- 휴머니즘의 요소들은 이성과 계몽의 시대에 전면에 부상해 영국 프랑스 미국에서 권리선언을 이끌어 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유엔과 세계인권선언 그밖의 국제협력 기구들로 이어짐. 유태교와 기독교에서도 많은 교파가 이성과 인류의 보편적인 번영을 위해 초자연적인 믿음과 교회의 권위 같은 그들의 유산을 뒤로 물리고 휴머니즘적으로 변모함.
공평성과 도덕성
- 스피노자의 금언은 도덕성의 세속적 기초를 공평성에서 찾자는 생각이 담겨 있음. 공평성은 도덕성을 ‘이성적 근거’ 위에 놓고자 하는 많은 시도를 떠받쳐 준다. 은률은 “너 자신이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하지 마라”이고 백금률은 “남들이 너에게 바랄 만한 일을 남들에게 하라” 미국 독립 선언에 따르면 생명, 자유, 행복 추구의 권리는 “자명하다”
- 과학에서 나온 엔트로피와 진화라는 두가지 주요 개념을 갖고 도덕성을 휴머니즘적으로 더 분명하게 정당화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금욕적이고 청교도적인 체제와 달리 휴머니즘적 윤리에서는 사람들이 위안 쾌락 성취를 추구하는 행동의 본래적 가치를 비난하지 않는다. 그것들을 추구하지 않았다면 인간은 존재하지 않았을 테니까. 우리가 지혜라고 부르는 것중에 많은 것들이 우리 자신의 내면에서 충돌하는 욕구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우리가 도덕과 정치라 부르는 것 중에 많은 것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충돌하는 욕구들에 균형을 부여한다.
- 평화와 안전이 휴머니즘 윤리의 영원한 목표가 된다. (심리학자 피터 드치올리) 적과 단둘이 대면했을 때 가장 좋은 무기는 도끼지만 구경꾼들 앞에서 적과 대면했을 때 가장 좋은 무기는 논증이다. 그리고 논증을 시도하는 사람을 물리치는 것은 더 좋은 논증이다. 결국 도덕의 세계에는 생각할 줄 아는 사람들이 살아 남는다.
공리주의와 의무론적 윤리학
- 휴머니즘에 대한 또 다른 철학적 반론은 휴머니즘이 그저 공리주의라는 것, 즉 인간 번영의 극대화에 기초한 도덕론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도덕론과 같다는 것. 안락사 지망자 vs 장기 이식. 이에 반해 권리 의무 원리 들로 구성된 의무론적 윤리학은 특정 행위를 그 본질에 비춰 도덕적인지 혹은 비도덕적인지 판단한다. 테러범 vs 물고문. 역사상 많은 윤리학자들이 의무론적 사고를 이용해서 예방접종 마취 수혈 생명보험 인종간결혼 동성애가 본래적으로 잘못이라고 주장하곤 함.
- 고전적인 공리주의자들-체사레 베카리아, 제러미 벤덤, 존 스튜어트 밀-은 당시에 유행했던 노예제, 가학적인 형벌, 동물 학대, 동성애 금지, 여성의 예속화에 반대함. (인지 신경학자 조슈아 그린) 의무론의 많은 신조들이 부족주의, 순수성, 혐오감, 사회적 규범 같은 원시적인 직관에 뿌리를 둔 반면 공리주의적 판단은 합리적 사고에서 나온다고 주장.(심지어 그는 두 종류의 도덕적 사고가 각각 뇌의 감정적 체계와 이성적 체계에서 나온다는 것도 증명함)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어떤 도덕률에 대해 합의해야 할 때에는 공리주의적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미국 헌법의 정교 분리 원칙, 유엔의 세계 인권 선언)
유신론적 도덕관
- 도덕성은 인간 번영의 극대화에 있다는 생각은 두가지 대안과 충돌. 하나는 도덕성의 핵심은 신의 명령에 복종한다는 유신론적 도덕관과 둘째는 도덕성은 한 개인이나 민족의 순수성, 진정성, 위대함에 있다는 낭망적 영웅주의. 낭만적 영웅주의는 19세기 처음 명확히 표현되어 권위주의적 포퓰리즘, 네오파시즘, 신반동주의(neo-reaction 반자유 반계몽 애국주의 백인우월주의를 주장하는 극우 운동) 영향
- 많은 젊은이가 IS에 끌리는 건 젊은이들이 “무미건조한 세속주의”에서 등을 돌리면서 인간의 삶에 대한 단조로운 시각을 바로잡을 급진적이고 종교적인 혜안을 찾고 있다는 해석. 유신론적 종교 vs 세속적 휴머니즘
- 유신론적 도덕관의 두가지 치명적 결함. 1.신이 존재한다고 믿을 타당한 이유가 없음. 반면 우리의 과학적 이해는 결코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틈새의 하느님(God of the Gaps)같은 유사 논증 존재. 기본적인 물리상수와 의식이라는 난제 2.신이 있다고 해도 종교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는 식의 신성한 명령은 도덕의 원천일 수 없다. 플라톤의 대화편 <에우티프론>
기본적인 물리 상수
- 우리의 세계는 중력, 전자기력, 핵력과 같은 자연 힘의 세기, 거시적 시공간의 차원의 수(4개), 암흑 에너지의 밀도(우주 팽창을 가속하는 원인)와 같은 몇 가지 숫자로 나타낼 수 있다. 오늘날 가장 잘 확증된 물리학 이론들마저도 왜 이 상수들이 우리가 생겨날 수 있는 값들로 엄밀하게 조정되어 있는지를 설명하지 못하고 그래서 유신론자들은 미세 조정자인 신이 있었음이 분명하다고 주장.
- 신정론의 반론중 하나는 우리 우주는 무한개의 우주들, 즉 다중 우주multiverse 중 하나이고 그 우주들은 각기 다른 기본 상수 값을 갖고 있다는 것. 또 다른 버전은 양자 역학의 다세계many-worlds 해석으로 개연성 있는 양자 과정의 복수의 결과가 중첩된 평행 우주들 속에서 모두 실현된다고 주장.
의식
- 의식의 계산 원리와 신경 생물학적인 기초 (인지 신경 과학자 스타니슬라브 드하네) 의식이 총괄적 작업 공간 혹은 칠판 같은 역할을 한다고 주장. 칠판 은유는 다양한 계산 모듈이 자신의 계산 과정과 결과를 다른 모듈이 모두 ‘볼’ 수 있는 공통의 포맷으로 의식이라는 칠판에 적어 놓는다는 것. 이 모듈에는 인지 기억 동기 언어이해 행동계획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 모든 모듈이 현재 관련되어 있는 정보(의식의 내용)의 공용 풀에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 덕분에 우리는 눈앞의 물체를 묘사하거나 이해하거나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에 반응할 수 있으며 기억을 하고 우리가 원하는 것과 아는 것에 의존해 계획을 세울 수 있다.
- 이른바 난제는 빨강은 빨갛게 보이고 소금은 짜게 느껴지는 등의 주관적 체험과 관련해서 왜 의식을 가진 사람 모두가 그것을 그렇게 느끼는가 하는 것. <의식의 수수께끼를 풀다>의 대니얼 데닛은 의식이라는 난제는 없다고 주장. 지금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이 난제가 비물질적인 영혼과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의식에 대해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의식은 오로지 신경활동에만 의존한다.
에우티프론
- 유신론적 윤리학자들은 성서의 하느님은 본성상 부도덕한 계율을 내릴 수 없다고 하지만 구약의 하나님은 무도하고 잔인함. 오늘날의 개화된 신자들은 인도적인 명령들만 골라 담고 사악한 명령들은 우화적으로 해석하거나 수정하거나 무시한다. 그런데 그게 바로 요점이다. 계몽주의적 휴머니즘의 렌즈를 통해 성서를 읽고 있는 것이다.
- 많은 역사가들이 종교 전쟁은 길고 처절하며 그 처절한 전쟁이 종교적 신념 때문에 더 길어지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함. 매슈 화이트에 의하면 최악의 재앙에 속하는 종교적 갈등 30건의 희생자는 5500만 명에 달함. 히틀러는 다음과 같이 말한 이신론자였다. “나는 우리 창조주의 대리인으로서 행동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유태인을 척결하는 것은 신의 사업이다”
- 2004년과 2007년 사이 샘 해리스, 리처드 도킨스, 대니얼 대닛, 에릭 히친스의 4권의 베스트셀러를 통해 널리 퍼져 나간 ‘신무신론’에 반대한 신앙신론자들에 따르면 보통 사람은 신앙을 버릴 리도 없고 버려서도 안된다. 사회가 건강하려면 이기심과 무의미한 소비주의를 막아 줄 성채로서 종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종교 조직은 자선 활동, 친교, 사회적 책임, 통과 의례, 과학이 절대 답할 수 없는 실존적 질문에 대한 조언 등을 제공한다.
- 종교를 모두 싸잡아 비난하거나 칭찬하지 말고 <에우티프론>의 논리에 따라 숙고해야 한다. 만일 특별한 활동 뒤에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그 활동은 장려해야 하겠지만 단지 종교적이라는 이유로 그런 운동을 인정해서는 안된다. 만일 종교 조직의 긍정적인 기여가 시민 사회에서의 휴머니즘적 연합체 역할에서 나온다면 우리는 그 혜택을 유신론적 믿음과 엮을 필요가 없다. 종교 조직이 휴머니즘적인 목표를 추구할 때는 칭찬할 가치가 있듯이 그런 목적을 방해할 때는 비판으로부터 보호해서는 안된다.
- 도널드 트럼프는 백인 복음주의자와 거듭난 기독교인의 81%에게서 표를 얻었으며 이는 면세 혜택을 받는 자선단체들의 정치 활동을 막는 법을 철폐하기로 약속했기 때문.
무교
-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종교집단은 무교이다. 1900년에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은 전체 인구의 0.2%로 추정. 2012년 세계 인구의 13%가 확신에 찬 무신론자. “종교적인” 인구가 1세기 전 거의 100%에서 59%로 떨어지고 세계 인구 중 추가로 23%가 “종교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밝힘. 2010년 세계 인구중 6분의 1이 종교를 고르라고 했을 때 “없음(무교)”을 선택함.
- 최근 연구들은 부유하고 교육 수준이 높은 나라일수록 종교인의 비율이 낮다고 확언함. 영국의 GI세대(1905~1924년생)는 80% 이상이 종교에 속해 있다고 말했지만 같은 나이의 밀레니얼 세대(1981~1996년생)는 동비율이 30% 미만. 미국은 70% vs 40%. 2012년에 미국인의 60%가 종교를 인정했는데 캐나다의 46% 프랑스의 37% 스웨덴의 29% 와 확실히 비교됨.
- 미국에서의 무교는 1972년에 5%에서 오늘날 25%로 증가해서 가톨릭(21%) 복음주의 기독교(16%) 백인 주류 개신교(14%)를 제치고 미국에서 가장 큰 종교집단이 됨. 무교를 고른 사람들은 투표를 하지 않는다. 2012년 무교 미국인은 전체 인구의 20%였지만 투표자 중에서는 12%. 그에 반해 백인 복음주의 개신교도는 성인 인구의 20%지만 투표자중 비율은 26%. 무교를 고른 사람들은 트럼프보다 클린턴을 3대 1 비율로 더 많이 지지함.
- 왜 종교는 세계에서 사라지고 있을까? 20세기 공산주의 국가들의 종교 금지, 여권신장 동성애 용인등 해방적 가치 추구, 경제성장과 사회보장 확대 등에 따른 세속화, 그러나 가장 확실한 이유는 이성 그 자체로 지적 호기심과 과학적 사고력 확대로 종교의 가르침에 대한 믿음 부족.
이슬람
- 여러 측면을 객관적으로 측정했을 때 이슬람 세계는 다른 세계들이 누리는 진보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이 진보의 결핍 중 얼마나 많은 부분이 유신론적 도덕관의 산물일까? 진보의 물결에 저항하는 힘이 종교적인 믿음에서도 나온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만은 없다. 이슬람 교의의 많은 가르침이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탓에 지독하게 반휴머니즘적이라는 사실이다. 코란에 의하면 술을 마신 사람에게 채찍질을 하고 간통과 동성애를 한 사람들에게 돌을 던지고 9세 소녀의 강제 결혼을 승인한다. 대부분 종교에서 우화적 해석이 이뤄짐에도 문제는 이 온화한 위선이 현대 이슬람 세계에서는 상대적으로 아주 미진하다는 것이다.
- 이슬람은 신앙심이 강한 신자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아 82%. 자칭 무슬림중 92%나 되는 사람들이 10점 단위 신앙심 평가에서 자신을 9~10으로 평가함.(유태인, 가톨릭, 복음주의자 중에서 그 비율은 절반 이하) 많은 나라에서 압도적인 비율의 무슬림이 이슬람법(샤리아)이 그 나라의 공식 법률이어야 한다고 믿음. 설상가상으로 무슬림 형제단의 일원이자 알카에다를 비롯한 여러 이슬람 운동을 고취한 이집트 작가 사이드 쿠틉의 반동적 이데올로기가 영향력을 갖게 됨.
- 계몽주의와 함께 서양은 교회와 국가를 분리하는 과정에 돌입해서 세속적인 시민 사회의 공간을 마련하고 보편적인 휴머니즘의 윤리로 그 기초를 다짐. 이슬람의 폭력과 억압에 희생되는 사람은 대부분 같은 무슬림들이다. 고전 시대에 아랍 문명은 과학과 세속주의 철학의 온실이었음. 유럽에서 종교 재판이 성행할 때 16세기 무굴황제는 무슬림이 통치하는 인도에서 여러 종교를 인정하는 자유주의적인 사회질서를 지켜냄. 많은 이슬람 국가에서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태도는 느리지만 꾸준히 나아지고 있음.
권위주의, 민족주의, 포퓰리즘
- 휴머니즘의 정반대를 대표하는 사상가를 고른다면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 니체는 냉정하고 자기 중심적이고 과대 망상에 빠진 소시오패스가 되는게 좋다고 주장했다. 인간 대중(엉망진창에 솜씨 없는 것들, 말 많은 난쟁이들, 버러지들)의 목숨은 하등 중요하지 않다. 삶에서 가치 있는 것은 초인이 선악을 초월하고 권력에의 의지를 실현하고 개인을 초월한 영광을 성취하는 것. 인간의 위대한 공적은 위대한 예술 작품 창작과 전쟁을 통한 정복이다. 기독교의 노예 도덕성, 계몽주의의 이성 숭배, 19세기의 자유주의 운동이 서양 문명을 타락시켰다.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망치를 휘두르듯 철학을 해서” 현대 문명에 마지막 일격을 가해야 한다.
- 니체는 20세기에 가장 중요한 사상가에 속하고 그 영향력은 21세기까지 흘러넘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니체는 제1차 세계대전을 낳은 낭만적 군국주의와 제2차 세계대전을 낳은 파시즘을 고취하는데 일조했다. 니체는 사후에 나치의 궁정철학자기 됨. 니체의 사상과 20세기 대량 학살의 관계는 의문의 여지없이 명백하다. 폭력과 권력을 찬양하고 자유 민주주의 제도를 열심히 파괴하고 인류의 대부분을 경멸하고 인간의 생명을 버러지처럼 취급했다.
- 무솔리니가 말했듯이 니체는 전 세계 상대주의들에게 영감을 불어 넣음. 과학자들과 계몽 사상가들이 진리 추구에 몰두하는 것을 경멸하면서 니체는 “사실은 없고 해석만 존재한다” 라거나 “진리는 특정한 생물 종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오류이다”라고 주장함. 니체는 하이데거 사르트르 데리다 푸코에게 중대한 영향을 주었고 실존주의 비판이론 후기구조주의 해체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을 포함해 20세기에 과학과 객관성을 적대시한 모든 지적운동의 대부가 되었다.
- 왜 모든 사람 중에서 유독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이 잔인한 독재자들에게 아양을 떨었을까? 전문가 나르시시즘. 나는 트럼프주의를 순순한 이드 즉 정신의 어두운 곳에서 올라오는 부족주의와 권위주의의 분출이라고 생각함. 권위주의적 포퓰리즘을 이해할 때 개인적인 성격의 너머를 알고 싶다면 두 종류의 이데올로기를 이해해야. 둘다 계몽주의적 휴머니즘에 호전적이고 각기 다른 방식으로 니체의 영향을 받았는데 하나는 파시즘이고 다른 하나는 반동적이다. 집단 무리 결속을 뜻하는 이탈리어에서 나온 파시즘은 개인이란 신화일 뿐이며 사람은 그의 문화 혈동 조국에서 헤어날 수 없다는 낭만주의적 개념에서 발전함.
- 우리에게는 민족 국가를 자신과 동일시하는 선천적 욕구가 있다는 주장(그래서 세계주의는 인간 본성에 위배된다는 주장)은 사이비 진화 심리학이다. 종교에 귀속하고 싶다는 선천적 욕구가 있다는 주장과 마찬가지로 이 주장도 인간 본성의 약점과 욕구를 혼동하고 있다. 부족 내집단 연합이라는 인지 범주 자체가 추상적이고 다차원적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부분적으로 겹치는 많은 부족에 속해 있음을 안다. 인간 본성의 어떤 요소도 사람들이 프랑스인이자 유럽인이자 세계 시민으로서 동시에 존재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
- 반동적인 이념의 호소력은 지독하게 질기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이성 과학 휴머니즘 진보의 가치를 다시 또다시 강조해야 한다. 수학을 기억하라. 일화는 추이를 대신하지 못한다. 역사 철학 심리학을 기억하자. 균형감을 유지하라. 비관주의와 심오함을 혼동하지 마라. 마지막으로 니체를 버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