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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2 그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3 또 제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4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그들이 가고,
5 제육시와 제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6 제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7 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8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9 제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10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11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12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13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14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설교를 위한 도움>
* 포도원 일꾼 고용(20:1~7)
하나님 나라는 세상 기준과 다릅니다.
예수님은 포도원 비유를 통해 우리가 현재 속해 있고 또 장차 누릴 하나님 나라가
어떤 곳인지 알려 주십니다.
세상 기준으로 볼 때 쓸모없어 노는 듯한 사람을 고용하는 것은 효율 면에서 낭비일 수 있습니다
포도원 주인의 모습은 죄 가운데 있던 무가치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생각나게 합니다.
질문
ㆍ제 십일시(오후5시)에도 일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ㆍ이 비유에 등장하는 일꾼 중 나는 몇 시에 부름받은 자라고 생각하나요?
*주인의 품삯 지급(20:8~16)
질문
ㆍ일찍 왔든 늦게 왔든 같은 품삯을 지불한 데서 들어나는 주인의 성품은 어떠한가요?
ㆍ남의 것과 비교해 불평하면 하나님이 어떻게 보실까요?
<설교>
■ AI가 음성 녹음해 준 것을 교정해 놓음
인간은 한계를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새로운 사실을 받아들일 때 어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새로운 개념이나 지식을 기존에 나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설명해 나가는 것이 가르침의 큰 기조 입니다.
새로운 사실을 기존에 알고 있는 것을 확장시켜 나감으로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현재 즐겨 마시는 콜라를 천년 전 오백년전의 시대로 가서 설명을 한다면
여러분 콜라를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미래에 마실 콜라를
먼저 색깔은 간장 색깔입니다. 근데 맛은 수정과를 떠올리면 될 것입니다. 근데 수정과 같이 텁텁하지 않고 식혜 맛이 좀 많이 나옵니다.
근데 그냥 식혜가 아니고 얼음이 서걱서걱 씹히는 시원한 그 식혜 맛입니다.
그리고 물은 저 증평에 가보니까 초정리란 곳에 탄산수가 있던데 팡팡팡팡 솟아나는 그런 물로 만든 것입니다 라고 설명을 한다면
콜라 맛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색깔은 간장 같지만 맛은 식혜 맛이 느낌은 또 무슨 수정과의 맛이고 물은 이렇고 하는 기존의 개념을 끌어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영화를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영화 이렇게 설명하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여러분 꿈을 꾸죠. 그 꿈을 여러 사람이 모여 앉아서 같이 보는 겁니다.
컴컴한 곳에 같이 앉아서 내가 꾼 꿈을 다 같이 보는데 소리도 나고 거기에서 다른 음악도 나오고 그렇습니다.
꿈은 공짜지만 이 영화는 엽전을 두닙씩 내야 됩니다.
이렇게 가장 기존에 내가 갖고 있는 개념을 가지고 새로운 기능을 설명하는 방식을 [비유]라고 합니다.
[비유]를 가장 잘 말씀하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천국에 대해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설명하는데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제한적인 지식과 경험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기존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에 근거해서 설명을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포도원 품꾼'의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비유를 굉장히 즐겨 사용하셨어요.
성경에는 '예수님은 비유가 아니면은 말씀하지 아니하셨다'라고 할 정도로 새로운 개념을 새로운 티칭을 비유를 통하여 설명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비유 중에 가장 대표적이고 어렵다라고 평가받고 있는 '포도원 품꾼'의 비유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스라엘은 두 생산물 중의 하나가 포도입니다.
이스라엘의 포도는 성경에도 많이 등장하고 백성들이 가장 즐겨 먹는 그 과일 중에 하나죠.
그런데 이 포도는 9월 말에서 10월 초 사이가 수확기입니다. 한 주 내지 두 주 사이에 집중적으로 수확해야 됩니다.
조금 빨리 따면 시어서 못 먹고, 조금 늦게 따면은 또 이게 물러서 못 먹습니다.
그래서 9월 말과 10월 초에 일꾼들을 고용을 해서 집중적으로 따야 합니다.
그래서 포도원의 기존 일꾼이 있지만 이 때에 또 일용직 노동자들을 집중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고용해서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한 포도원 주인이 포도 수확철이 돼서 이 비정규직 일용직 노동자를 고용하려고 장터에 나갔습니다.
이스라엘도 마침 6시에 해가 떠서 저녁에 6시에 해가 집니다.
그러니까 이 시장터에 이 주인이 청지기를 보내서 노동자를 고용하려는 시간은 새벽 5시경이 됐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가서 필요한 일꾼들을 데리고 왔어요.
또 제 3시에 나가보니,
여러분 성경에 나와 있는 시간 단위는 더하기 6을 하면 돼요. 왜냐하면 이스라엘 해 뜨는 시각이 6시경입니다.
그래서 제 3시 그러면 우리나라 시간으로 9시가 되겠습니다. 제 6시 그러면 6더하기 6이 낮 12시가 되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9시, 12시, 오후 3시 심지어 오후 5시에 나갔는데 그때도 사람들이 있는 거예요.
너희가 왜 이러고 있느냐? 물으니 아무도 고용해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와라"하고 데려다가 일을 시켰습니다.
다섯 종류의 일꾼들이 왔어요.
처음에 고용된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하는 사람, 그 다음에 9시에 와서 6시까지 일하는 사람,
12시에 와서 이렇게 한 5 종류의 일꾼들이 섞여서 일을 했습니다.
해질녘에 청지기가 와서 자 이제 오늘의 일을 했던 일당을 받아가라. 그리고 일당을 계산합니다.
그런데 처음에 얘기하기를 성경에 보면 하루에 한 데나리온을 주겠다 약속했어요.
한 데나리온은 특별한 기술이 없는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니 오늘날로 말하면 한 10만원 15만원 정도 되는 금액일 것입니다.
그걸 주기로 했어요. 이 청지기는 뒤에서 온 사람부터 계산을 합니다. 5시에 와서 한 시간 한 사람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는 거예요.
그러자 일찍 온 사람들은 눈에 기대의 불빛이 반짝입니다.
아 5시에 와서 1시간 했는데도 한 데나리온이면 나는 3시에 와서 3시간을 했으니까 두 데나리온은 받지 않을까?
그런데 똑같이 한 데나리온 이라는 거예요. 설마 설마 설마 하더니 6시에 와서 12시간 일하는 사람도 한 데나리온을 주는 거예요.
그러자 불만이 터져 나옵니다. 세상에 뭐 이런 경우가 있어? 이런 불공정한 행위가 어디 있어 하면서 막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주인이 말합니다. "뭐가 문제인데, 내 것을 가지고 내 마음대로 하는데 뭐가 문제예요?"
"내가 선함으로 너희들이 나를 비난하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하면서 오늘 본문은 끝을 맺습니다
주인이 한 마디 알듯 모를듯 말을 한마디 합니다.
자,오늘 본문 마지막절을 한번 볼까요. 20장 16절 말씀을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이와 같이 나중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된다.
이건 무슨 뜻일까요? 소위 비교인데 자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 주인은 이 일에 대해서 뭐라고 했습니까? 틀렸습니까?
정서적으로는 틀린 것 같은데 틀렸다고 말하면 왠지 성경을 거스르는 것 같애서 마음이 불편하지요.
좀 더 쉽게 얘기할게요.
여러분이 6시에 와서 12시간 일하고 한 데나리온을 받는데 5시에 와서 1시간 일하는 사람과 똑같이 받는다면 마음이 좋을까요? 안 좋을까요?
안 좋죠. 인간이면 당연히 안 좋습니다.
근데요. 성경은 정의를 설명하는 법률책이 아닙니다.
어떤 것이 경우가 옳은가를 따지는 책도 아니고 오늘 예수님이 이 비유를 든 이유는 1절에 나와 있습니다.
뭐라고 나왔습니까? 천국은 마치 모든 예수님의 비유에 첫 구절에 똑같이 시작합니다.
천국은 마치 [천국]이란 말은 죽어서 가는 [천당]과 동의어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천당 그거는 천국이 완성될 때의 모습이고요. 지금 이것은 [천국]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말씀이 선포되는 [내 마음]일 수도 있고요, [내 가정]일 수도 있고요, [교회]일 수도 있습니다.
● 하나님의 임재가 임하여서 통치하고 그 뜻을 추구하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 즉 천국인 것입니다.
● 그 하나님의 임재가 임하는 곳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통치하는 곳의 모습이 어떤지를 설명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이 포도원의 비유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 이 비유를 통하여 예수님이 말씀하고자 하신 것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1] 첫째로 이 하나님의 나라의 구성원인 인생이 어떤 존재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오늘 본문에 나타난 인간은 어떤 사람을 말할까요?
우리가 이미 보다시피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청지기는 하나님이 부리시는 천사들일 것입니다.
여기 불려온 일꾼들은 바로 우리들인 것입니다.
그러면 부름받아 온 우리 인간은 어떤 존재이냐?
● 첫 번째로 예수님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는 부름 받아서 온 존재]라는 것입니다.
자기 발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부르셔서 하나님 나라로 오게 된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른 종교와 가장 큰 차이인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 보면 이 부름받은 일꾼들의 이전의 삶에 대해서는 기록하고 있지 않아요.
부름받아서 포도원에서 일하는 순간만 기록돼 있습니다.
● 우리 인생은 비로소 하나님을 만날 때 의미를 갖는다는 것입니다.
ㆍ존재의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인생에 대해서 말하고 있죠.
예)
옛날에 어떤 사람이 밤에 급한 볼일이 있어서 산을 넘어서 저 산 넘어 볼일을 보러 가게 되었어요.
급하게 일이 생겨가지고 밤중에 산을 하나 넘는데 부주의해서 산중에 있는 구덩이에 그만 빠지고 말았습니다.
깊은 물구덩이에 빠져서 물이 허리나 찰 것처럼 차고 있습니다.
기어올라가기는 너무나 높습니다. 누군가 꺼내줘야 됩니다.
이 사람이 구덩이에 빠져서 "사람 살려" 하고 한 시간쯤 소리치니까 어떤 사람이 등불을 비춥니다.
아저씨는 왜 이 밤중이 거기 있습니까? 내가 너무 급한 볼일이 있어서 서둘러 나오느라고 등불을 안가지고 나오고 부주의해서 여기에 빠졌습니다.
그 사람이 그래서 내가 뭐라고 그랬냐고 평상시에 미리미리 준비해서 볼 일은 낮에 보고 밤에는 집에 있고 혹시 밤에 나갈 일이 있으면 꼭 등을 준비하고
친구와 함께 같이 가고 또 밤에 산에 갈 일이 있으면 항상 발밑을 보면서 조심하라고 그렇게 말하지 않았느냐고,
근데 당신은 내 말을 듣지 않고 여기 빠졌으니 이것은 어쩔 수 없어 당신의 잘못에 대한 결과이니 그냥 그곳에서 고생 좀 하시오
하고 그렇게 가는 거예요.
이 사람이 다시 구덩이에서 "사람 살려! 사람 살려"하고 한 두 시간을 외쳤더니
어떤 사람이 또 와서 이렇게 보면서 참 딱하다고 여기 빠진 지 얼마나 됐소? 한 서너 시간 넘었는가 봅니다.
그런데 당신은 전에 구덩이에 빠진 사람을 구해준 적이 있습니까? 아니, 그런 적 없습니다.
그럼 더 큰 곤궁에 빠진 사람을 도와준 적 있습니까? 그런 적도 없는 것 같은데요. 그러면 나도 당신을 못 도와주겠어
당신도 안 구해주고 선을 베푼 적이 없는데 내가 뭐 하려고 당신을 도와주냐? 그리고 또 가버리는 거예요.
또 사람 살려 사람 살리라고 또 한 두 시간 외쳤더니 어떤 사람이 와서 이렇게 보며 묻지도 않고 뛰어듭니다. 그리고는 내 어깨를 밟고 올라가라는 거예요.
밤새기 전에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빨리 가라는 거예요.
당신 그 급한 일 빨리 가서 보고, 당신 가족들이 얼마나 기다리고 있겠냐고 빨리 가서 이후에는 조심하며 사시라고 하며
그리고 머물러서 어깨를 밟고 올라가게 합니다.
첫 번째 지나간 나그네를 우리는 [공자]라고 부릅니다.
공자 선생님 말씀 틀린 얘기 한 마디도 없죠.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를 참 설명한 부분입니다.
두 번째 지나간 나그네를 우리는 [석가모니]라고 말합니다
그는 철저히 [인과응보]의 룰을 따라 설명합니다.
내가 선을 행하였으면 선의 대가를 받을 것이고 악을 행하였으면 악의 대가를 받을 것이다.
하지만 구덩이에 빠진 사람에게 공자의 윤리와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무슨 도움이 됩니까?
세 번째 나그네는 여러분 모두가 추측한 대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잘못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으셨습니다.
주의 [은혜]로 [구원]하시고 나를 [자녀] 삼아주신 것입니다.
오로지 나의 고통과 아픔에 초점을 맞추시고 자신의 몸을 내어주셔서 구원받게 하신 것입니다
.
여러분 이것이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대비되는 가장 큰 차이인 것입니다.
석가모니 위대한 철학자입니다.
공자 뛰어난 윤리자죠.
하지만 죄악에 빠지고 오늘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죄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공자의 가르침이나 석가모니의 논리보다는 예수님의 희생과 은혜인줄로 믿습니다.
오늘 이 포도원 품꾼의 비유는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말하는 가치가 무엇이냐? [은혜]라는 것입니다.
그분이 찾아오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석가모니도 찾아왔고 공자도 찾아왔죠. 하지만 나를 구원해 주진 않았습니다. 더욱이 십자가에 달려 피흘려 죽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예수님은 우리 하나님 나라의 가치인 은혜로 그분이 찾아오셔서 자신의 희생으로 우리를 구원한다는 것입니다.
장터에 이 주인은 다섯 번이나 나갔어요.
청지기를 보내서 이른 새벽에 9시에 12시에, 3시에 5시에
그래서 아직도 근무처를 구하지 못한 자신의 일당을 벌지 못하는 사람을 불러올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는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인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이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것이죠.
'파스칼'이라는 유명한 프랑스의 철학자가 한 말이 있죠.
[인간에게 누구나 다 하나님으로만 채워지는 공간이 있다] 라는 말이죠
●하나님이라는 형상의 공간, 이 공간이 채워지지 않고는 인간은 결코 만족되지 않는다는 거죠.
하나님은 우리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실 때 이 공간이 생겼는데, 여기서는 하나님의 영인 성령의 은혜가 채워질 때 만족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높은 지위에 올라가도, 아무리 돈이 많아도, 은혜가 아니고는 채워지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의 삶인 것입니다.
이 비유는 오늘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을 추구하느냐?
은혜를 추구합니다. 하나님이 찾아오신 은혜를 추구한다.
●2] 두 번째로 이 비유가 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해질녘에 [결산]이 있다는 것입니다. 해가 저물면 청지기가 와서 사람들을 불러놓고 품삯을 지불합니다.
여러분 아무리 기분 나빠도 아무리 싫어도 인간은 누구나 다 죽습니다.
내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갈 시간이 반드시 있다는 거죠.
기분 나빠도 이 사실을 늘 기억하고 사는 자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20세기 최대의 철학자로 뽑히는 사람 중에 '장폴 사르트르'라고 하는 프랑스의 철학자가 있죠.
아마 가장 영향력이 있는 20세기의 철학자를 꼽으라면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사람입니다. 이름하여 '실존주의' 철학자이죠.
1905년에 태어나서 1980년에 돌아가신 분입니다.
이분은 굉장히 유명한 일화를 많이 갖고 이분의 철학의 제일 기전은 무엇인가 하면, 인간의 자유와 존재를 최고로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가 한 유명한 말 중에 하나가 [존재는 본질보다 우선합니다.]
인간의 존재가 그 어떤 것보다도 우선한다라고 주장하고 인간의 자유를 굉장히 주창했어요. 좌파 철학자입니다.
공산주의 철학에 많이 경도된 사람인데 이 장폴사르트르는 굉장한 문필가 이기도 해서 글도 많이 써서 1964년에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됐어요.
그런데 그 상을 거부해서 더 유명해졌죠. 왜냐하면 저 상이 내 자유를 속박하는 것이 싫다는 거예요.
그래서 인간의 자유를 주장하는 그가 아주 맹렬히 공격한 것의 하나가 기독교입니다.
기독교에 대해서는 아주 극렬하게 여러 군데에서 공격을 했는데 특별히 기독교를 노예 윤리라고 많이 공격을 합니다.
왜냐하면 왜 기독교는 천국 지옥 그 있지도 않은 교리를 가지고 말해서 인간의 선함의 의지를 속박하냐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너 잘못 살면 지옥간다 이렇게 협박하고, 잘 살면 천국간다 상받는다 이렇게 왜 하는가
이거 없어도 인간은 충분히 선하게 살고 있는데 천국과 지옥의 여지로 인인ㅇㅢ 자유를 속박하는 것에 대해서는 공격을 했어요.
그리고 죽음에 대해서도 두려운 것이 아니고 자연에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일반적인 현상인데 그것을 뭘 두려움의 현상처럼 말해서,
하나님의 심판이니 그런 말을 해서 인간의 자유를 속박하느냐 그리고 인간들에게 자유롭게 살아라.
아주 뭐 해방스럽게 살아라라고 하면서 그가 한 유명한 말 중의 하나가 [타인은 지옥이다] 라는 말이 있죠.
그것은 희곡에서 나온 말인데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고 니 멋대로 살아라' 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걸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 중에 하나가 페미니즘 여성 철학을 하는 분들도 굉장히 좋아하는 그렇게 나름 멋있는 사람이었요.
근데 그가 말년에 75세에 돌아가셨는데 이분이 돌아가실 때에 폐수종증이라는 폐에 물이 차는 병에 걸려서 돌아가셨어요.
이분이 병원에 입원을 하셨는데, 사람이 한순간에 돌변하는 거예요.
물건을 집어던지고, 이 돌팔이 의사들아 왜 내 병을 못 고치냐? 간호사도 왜 빨리빨리 안오냐? 이러면서
간호사와 의료진들에게 행패를 부리는데, 이 프랑스 전체가 존경하는 대노학자의 모습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노벨상 수상을 당당히 거부할 정도로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말했던 사람 모습과 너무 달라서
정부에서 이분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면회 제한 조치를 취하기까지 했었습니다.
그는 몸부림 치며 죽기 싫다고 소리 지르고 고쳐달라고 몸부림치다가 추악한 모습으로 돌아가셨어요.
75세에 돌아가셨으니 그 시대에 산 분들로는 장수 한 편에 속할 겁니다. 1905년생이시니까요.
그런데도 그렇게 죽음을 거부하면서 죽었어요.
죽고난 다음에 많은 분들이 의문을 품었어요.
아니, 어떻게 해서 저렇게 당당하게 죽음을 말하고' 자유를 말하고' 인간의 존엄과 존재를 말하던 사람이
자기 죽음 앞에서는 이렇게 추악하게 일반인만도 못하게 저렇게 죽어갑니까.
그에대해 한 지방의 신문 기자가 글을 썼는데 그 글이 많은 사람의 공명을 받았습니다
[ 그는 돌아갈 고향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돌아갈 고향을 파괴했기 때문에 두려웠던 것이다 ]그렇게 했다는 거죠
사르트르가 아니라 그 어떤 영웅이 부정해도 죽음은 있습니다.
그 어떤 권력가도 죽음 앞에서는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것이 오늘 이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 여러분을 협박하기 위해서 교회에 많이 나오게 하기 위해서 천국과 지옥의 교리를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일반적인 가르침 입니다.
● 우리의 삶을 마친 후에 하나님 앞에 내 삶이 평가된다는 순간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오늘 성경의 이 비유가 두 번째로 말하는 것입니다.
3]
마지막 세 번째로 그러면 이 비유가 공정을 위반했는지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봅시다.
3가지 측면에서 보겠어요.
첫째로 주인이 핵심은 이거 아닙니까? 일한 시간과 상관없이 똑같이 급료를 줬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피해 본 사람이 있습니까? 누가 피해 봤어요?
5시에 와서 1시간 일한 사람이에요? 6시에 와서 저녁 6시까지 일한 사람이 급료가 깎였습니까. 아니죠,
다 똑같이 받았어요. 피해 본 건 없지만 다만 마음이 불편한 거죠. 마음이
뭐 내가 가진 것을 나눠서 그 사람에게 줬다면 그건 문제가 되겠지만,
내 거 그대로 받았고, 그 사람에게 주인이 선의로 더 준 것뿐이잖아요. 그렇죠?
피해 본 사람 없어요.
그럼 두 번째로 주인이 계약을 위반했느냐? 성경을 보십시오
20장 1절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라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주인의 말을 봤더니
그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처음에 온 사람들 6시부터 일한 사람입니다.
그 다음에 3절을 보면 또 4시에 나가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이 또 있는지라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겠다.
상당하다는 말은 무슨 말이죠? 합리적으로 비슷하게 경우에 맞게 주겠다는 거죠.
한 데나리온 약속한 사람은 오전 6시에 고용된 사람밖에 없어요.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주인이 금액을 약속하지 않았어요.
상당하게 주리라. 그리고 주신 거예요. 주인은 계약을 위반하지 않았습니다.
세 번째로 가장 중요한 측면을 봅시다.
그러면 도대체 누가 오후 3시 5시까지 시장 근처를 서성거리고 집에도 못 들어가고 있을까요?
어떤 사람일까요? 나이 드신 분들일것입니다. 몸에 장애가 있는 분들일 겁니다.
6시에 고용된 사람은 20대의 젊은이들일 겁니다.
9시에 온 사람은 30대에 그래도 쓸 만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점점점점 12시, 3시, 5시 그 뙤약볕 밑에 서 있는 사람들은 하루 종일 논 것일까요?
그 장터에 있지만 놀고 있는 상태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누가 3시에 와서 고용합니까?
누가 5시에 와서 고용합니까? 100분의 1 ,1000분의 1의 확률을 기다리면서 그래도 집에 못 돌아가는 사람! 왜요?
집에는 병든 어머니가 약값이 없어 앓고 계시고, 등록금을 가져가야 되는 자녀들이 아빠의 손을 쳐다보고 있기 때문에,
3시, 5시까지도 차마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노동시장에서 경쟁력이 떨어진 나이들고 장애가 있는분인데
그렇다면 그 앞에 6시에 고용되고 9시에 고용된 분들이 어떻게 말해야 됩니까?
주인님 참 훌륭하십니다. 내가 저 아저씨 어저께도 공치고 그저께도 공치는 걸 봤어요.
나는 건강해서 매일 고용돼서 일장을 갔는데 마음이 불편했는데, 한 시간만 일하고 세 시간만 일하고 정규 일당을 주시다니요.
주인님 참 훌륭라십니다 복 받으실 겁니다. 이렇게 말해야 한다는 것이죠.
왜요 여기는 포도원이니까? 포도원
세상에서는 그렇지 않고 여러분 군대에서 이 논리가 통할까요?
부녀회에서 이런 논리 통합니까? 낚시터에서 이런 논리가 통합합니까?
안 통하지요. 왜요? 거기는 배추밭이고 무밭입니다. 거기는 거기 논리가 있어요.
약육 강식 경쟁에서 밀린 사람은 도퇴 되는 거
세상에 논리는 당신이 나이 들고 몸이 부자연스러우니까 고용 못 되는 거예요. 당연한 것이죠
하지만 포도원에서는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은혜가 지배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이 분도 동일하겠죠.
아니 이분들에게 먼저 품삯을 준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개포동 포도원에 속한 성도여러분!
우리 개포동교회 안에서는 이런 은혜의 법칙이 통용될 수 있기를 정말로 원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품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귀히 여기고, 먼저 믿은 자가 나중에 믿은 자를 섬기는,
그런 모습이 바로 오늘 이 포도원의 모습입니다.
왜요 우리는 동일한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오래전에 영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서울에 있는 교회에 청빙을 받아 목회할 때 얘기입니다.
벌써 한 27~8년 전이군요.
은평구에 있는 교회였는데 교회가 할 일이 많았어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얼마나 일이 많은지, 거기다 또 대학에 강의도 나가고 있었고, 겸임 교수였기 때문에 그리고 또 글도 쓰고.
여러 가지 일을 하느라고 새벽 예배인도 하려고 새벽 5시에 집에서 나서면 저녁에 보통 10시, 11시, 12시 돼서 들어갔어요.
제가 아이가 셋이 있는데 그때 큰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아마 이 녀석이 굉장히 아빠가 그리웠던 것 같아요.
영국에서 늘 자기와 놀아주고 대화도 많이 했는데 한국에 오니까 아빠 얼굴을 볼 수가 없으니까 이러면 이제 머리를 쓰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저녁에 전화를 걸어가지고 아빠 오늘 저녁에 들어오실 때는 치킨을 좀 사 갖고 들어오세요. 그게 먹고 싶어요.
시장에서 파는 치킨 안 돼 보였고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에서 그래야겠다. 그럼 10시까지 안 자고 기다리고 있어요.
그걸 하지 못하고 며칠째나 또 다른 아빠 내 신발이 떨어졌으니까 신발을 하나 사 오시는데 흰색으로 사 오시고 반드시 나이키를 사 오시고
나이코도 안 되고 나이스도 안 되고 나이키를 사 오셔요.
또 전화해서 아빠 오늘은 들어오실 때 아이스크림을 사 오시는데 반드시 베스킨라빈스여야 되고 맛은 뭐 이맛 저맛 지정을 하는 거죠?
나중에 짜증이 나더라고요. 바빠 죽겠는데 지가 뭔데 그렇게 아빠한테 주는 대로 시장 통닭이든 무슨 통닭이든 먹고 나이키든 나이코든 신으면 되는 거지.
나중에 이놈에게 따져봐야지 몇 번 하면 나도 짜증이 나가지고 네가 뭔데 도대체 당당하게
남들을 어려워서 전화도 못 하는데 너는 뭘 그러냐 하고 따져볼 생각이었어요.
틀림없이 요놈이 머리가 좋은 놈이니까? 아마 나한테 내가 아빠 저번에 구두 닦아줬잖아요.
뭐 안마 한 걸 그걸 얘기할 거야. 반박 논리도 준비했죠.
야 구두 닦은 거 보니까 손자국이 더 많더라고 어깨에 주무른 거 간지러워서 그냥 잠을 못 잤다는 둥 준비하고 들어갔어요.
그날 또 아이스크림 인지 뭐 시킨 거 있어요 밤 10시 11시인데 안 자고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그냥 지연아 너 도대체 네가 뭔데 아빠한테 뭐 이거 사라 저거 사와라 콜콜이 좀 얘기했죠.
네가 도대체 뭔데 아빠한테 그걸 시키며 시켜도 그냥 주는대로 먹는 거지 뭐 자식이 너 하나냐?
너 말고도 둘이 더 있는데 그래서 내가 그 말을 했더니 딱 한 마디로 그 한 마디가 내 입을 다물게 했어요.
"저요? 저 아빠 아들이 잖아요" 그 말에 입을 다물었어요 그래요 미안하다.
나는 행위로 개를 꾸짖으려고 했어요. 근데 걔는 To be 그의 존재로 대답을 한 거 거죠 너 날 위해서 뭐 해주었냐?
나는 걔한테 따지려고 했는데 걔는 내 존재가 아빠에게는 절대적입니다라고 말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여러분을못왜 못 버리는 줄 아세요?
● 여러분이 아무리 큰 죄를 지고 하나님을 모른다고 세상으로 나가도 하나님이 결코 여러분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여러분은 그의 자녀이기 때문에요 핏값으로 산 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불평을 한 일꾼들의 가장 큰 잘못이 무엇입니까?
● 일하는 것 자체가 은혜고 특권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거예요.
12시간 동안 일할 수 있는 은혜와 특권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그는 몰랐던 거예요.
그냥 품삯을 받는 삯꾼으로 아니까 주인은 이들이 일꾼 이기를 원했는데 이들은 삯꾼으로 만 안것입니다.
주인이 그 다음날 고용할 때 어떻게 고용했을까요? 불평한 사람을 또 썼을까요? 안 썼을까요?
그래서 마지막 절에 이와 같이 '나중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된다.'
그 앞에 구절 15절에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함으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가치와 이런 논리와 이런 철학으로 가는 것입니다.
ㆍ교회를 섬기는 것 은혜고 특권인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ㆍ예배하는 거 얼마나 감사하는 일인지 아십니까
ㆍ100년 넘게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는 교회를 가지는 것 큰 은혜인 줄로 믿습니다.
저는 우분트라고 하는 세계 선교회의 대표로 섬기고 있습니다.
저희 선교회는 120교회 정도가 갈 데가 있고 30여 교회가 이사 교회로 참여하고 있고
개포동교회도 참여해서 도움을 잘 주시고 기대해 주시고 있습니다.
저희는 공산권을 주로 섬기는 선교단체 입니다
공산권을 중심으로 북한과 중국과 베트남이 주선교지 이고 그 외에 캄보디아와 태국 같은 곳에 주로 현지 목회자들을 양육하는 일을 합니다.
1년에 8번~10번 제가 팀을 이끌고 가서 현지 교육 자들을 지도합니다.
여러분 한국의 K-POP, 케이 컬처, 이런 것들이 강력하다고 하지만 K- 크리스찬
한국의 기독교는 전 세계에 어떤 부러움의 대상! 입니다.
그런데요 여러분! 아세요? 예배 한번에 목숨 거는 곳들이 많습니다.
북한의 지하교회에 800에서 1200 교회로 추정됩니다. 예배 한 번에 목숨 걸고 드려요.
중국의 많은 교회들도 전도하다 잡혀가고, 예배드리다가 교회 폐쇄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몇 년 전에 베트남에서 허가받고 한 교역자 교육에서도 지역 공관이 와서 트집을 잡아서 중간에 스톱 됐고 베트남도 그래요.
●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일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은혜이고 특권입니다.
● 예배하고 훈련받고 섬길 수 있는 것이 은혜인 것입니다.
오늘 포도원 품꾼의 비유가 우리 마음에 주시고 있는 이 은혜의 가치를 소중히 알며
삯꾼이 아닌 일꾼의 은혜로서 살아나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무리 기도 >
하나님 주님의 은혜로 구속 하시고 나를 자녀 삼아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내 죄를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낱낱이 따진다면 살 수도 없고
이 자리에 들어올 수도 없고 살 수도 없는 죄인입니다. 은혜로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은혜를 잊고 불평과 불만의 마음으로 살아갔던 것을 회개 하오며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 가운데 주시는 은혜를 다시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인생은 부름 받은 존재라는 것,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신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게 하시고
그리고 그 일꾼은 반드시 결산하는 날 있음을 기억하게 하시고
우리 주인은 항상 우리에게 은혜로운 존재임을 기억하여
우리가 결코 먼저 됐으나 나중된 자가 되지 않도록 도와주시고
늘 주님 곁에 가까이 가는 일꾼들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축복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쳇GPT가 요약해 준 것
다혜님, 아래 설교는 예수님의 ‘포도원 품꾼의 비유’(마태복음 20장)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나라(천국)**에 대한 본질과 그 안에서의 은혜, 인생, 죽음, 공정성의 개념을 비유와 철학적 관점을 통해 풀어낸 말씀입니다.
전체 설교의 핵심을 다음 세 가지 큰 줄기로 정리드릴게요.
이 설교는 **하나님의 나라(천국)**가 공정성보다 은혜를 기초로 삼고 있다는 점을 포도원 품꾼 비유를 통해 풀어주며,
인간의 본질, 죽음 이후의 결산, 진정한 공정성을 은혜의 시선에서 다시 보게 해 줍니다.
Q1
하나님 나라를 ‘은혜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내 삶의 태도는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요?
Q2
‘죽음 이후 결산’이라는 관점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Q3
하나님의 은혜는 비교할 수 없다는 이 비유 속 주제를 그림이나 창작물로 표현한다면, 어떤 장면이나 상징이 적절할까요?
<오늘의 기도>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수고를 인정받기 원했던 탐욕스러운 모습을 고백합니다
자격 없는 저를 부르시고 하나님 일꾼 삼으신 은혜로 인해 날마다 감사가 넘치게 하소서
선하신 하나님의 뜻을 신뢰함으로 신실하고 충성스러운 제자로 하루하루 살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