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5:30]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능력이......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 치유 기적이 예수와 상관없이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여기서 알 수 있다. 즉 예수께서 자신에게서 치유의 능력이 나간 사실과 누가 자신의 옷에 손을 댄 사실을 감지한 것이다. 사실 그 치료받은 여인은 모든 것을 은밀히, 조용히 심지어 예수마저 모르게 해결하고자했었다.
물론 이 같은 그녀의 생각은 심히 어리석은 것이었지만 그녀의 겸손하고도 조용한 일면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예수는 사람들이 혼잡한 가운데서도 당신의 전지성 그녀의 간절한 소망을 이미 알고 계셨고 또 그녀가 당신의 옷자락을 만지신 것도 알고 계셨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당신이 친히 그녀의 소망을 들어 주셔서 그녀의 치유를 허락해 주신 것이다. 여기 "스스로 아시고"란 완전하고도 초월적인 지식을 의미한다. 결국 이 말은 예수께서 그 여인의 행위의 동기와 그 결과에 이르기까지 모두 알고 계셨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당신의 능력이 나간 줄 아신 것이 수동적인 의미에서의 지식이 아니라 곧 그 여인이 치료된 사실을 예수께서 뒤늦게 아신 것이 아니었다. 이는 예수께서 그 치료의 전반적인 상황에 대한 능동적인 깨달음, 곧 당신이 그 능력을 능동적으로 계획하셨고 또한 발휘하셨음을 보여 준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 예수께서 그 간은 사실에 대해 전혀 모르셨기 때문에 이 질문을 하신 것이 아니었다. 예수는 내밀한 이적을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하시기 위해 이 같은 빌문을 의도적으로 하셨을 것이다 그와 더불어 생각되는 바는 33, 34절의 내용으로 보아 치료받은 사람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기 위함인 것으로도 보인다.
병의 치료는 단순히 물리적인 치료만이 완전 치유가 아니다. 병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 역시 신체적 고통 못지 않게 큰 것이므로 인격적 만남 속에 병이 치유되어야 함을 보여 준다. 그리고 그녀가 그녀의 병을 고침받은 것이 미신적 신앙 때문에서가 아니라 진정한 신앙 때문이라는 사실을 그녀가 손으로 당신의 옷자락만 잡기보다 그 영(으로 당신의 거룩한 인격을 잡기를 바라셨던 것이다.
[막 5:31]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제자들이 여짜오되.....물으셨나이까. -여기서 제자들은 예수께서 손을 댄 사람을 찾으시는 것에 대하여 불만 섞인 응답을 하고 있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 혼잡하고, 또 사람들이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 누가 옷에 손을 대었는지 어떻게 알겠느냐는 식의 반문이다.
이 사실은 혈루증을 치유한 사실이 예수와 환자 자신밖에 므른다는 사실과 제자들의 영적 무지(육체적 접촉만 생각하고 영적 교감을 도외시함를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치유받은 여인은 즉각 나타나 고백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여인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상당히 큰 두려움을 갖고 있음을 보게 된다.
[막 5:32]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 보시니......."
예수께서......둘러 보시니.....여자가.....사실을 여짜온대. -예수께서는 바로 군중들을 향해 몸을 돌리고 직접 찾으신다. 그리고 이 광경을 지켜 보는 치유받은 여인은 더 이상 사실을 숨긴 채 있을 수 없었다. 이 여인은 몹시 두려워하며 예수 앞에 엎드려 사실을 고백한다. 여기서 두 가지 강조점을 결견할 수 있다.
첫째는 예수께서 여인을 찾으시는 행위이다. 제자들의 퉁명스런 변명에도 불구하고 계속 치유된 여인을 찾고 있는 장면("둘러 보시니"는 미완료시제)은 치유받은 자로부터 감사의 인사를 받기 위힘도 아니고 치유를 확인하기 위한도 아니다. 오직 치유받은 사람과의 인격적 만남을 통해 그녀로 하여금 바른 신앙을 갖게끔 하기 위힌 것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고난받고 고통당하는 사람에 대한 강한 관심과 뜨거운 사랑 및 다함 없는 연민을 갖고 있음이 암시된다.
둘째는 치유받은 여인의 행위이다. 그녀는 몹시 두려워 하고 있었다. 이유는 ① 자신의 병이 종교적으로 부정한 것이고 따라서 죄인 취급받는 신분이기 때문에 군중들 틈에 끼여들였다는 것을 공개하기에는 두려운 사실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② 또 그런 부정한 몸으로 예수의 옷자락을 만졌다는 사실이 특히 여자의 신분으로서 불경건한 행위였기 때문일 것이다.
③ 그녀는 자신이 지금 받은 은혜를 예수로부터 훔쳐 낸 것 같은 심령을 가졌을 것이다. 즉 그녀는예수 몰래 예수의 신적 능력을 이용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④ 마지막으로 예수에 대한 깊은 경외감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이 여인이 예수 앞에 엎드린 모습은 22절의 장면을 연상케 한다.
즉 치유의 기적을 체험한 이 여인은 예수에 대하여 신적인 권위와 초월적인 능력을 느꼈을 것이고 따라서 그에 따른 경외감이 두려움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한편 그녀는 예수의 강권적인 요구로(내밀한 요구였음) 자신의 만성적인 몹쓸 질병과 그 기적적 치유에 대한 모든 사연들을 무리들 앞에서 공개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소위 신앙간증오로서, 결과적으로 예수의 크나큰 은혜에 부응하여 그분께 무한한 존귀와 영광을 돌리는 일이 되었으며, 또 그녀가 완전한 정상인이 되었음을 공개적으로 알리는 일이 되기도 했다. 실로 "은혜 위에 은혜"의 역사가 주어진 것이다.
[막 5:33]
여자가 제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짜온대.........."
예수께서......둘러 보시니.....여자가.....사실을 여짜온대. -예수께서는 바로 군중들을 향해 몸을 돌리고 직접 찾으신다. 그리고 이 광경을 지켜 보는 치유받은 여인은 더 이상 사실을 숨긴 채 있을 수 없었다. 이 여인은 몹시 두려워하며 예수 앞에 엎드려 사실을 고백한다. 여기서 두 가지 강조점을 결견할 수 있다.
첫째는 예수께서 여인을 찾으시는 행위이다. 제자들의 퉁명스런 변명에도 불구하고 계속 치유된 여인을 찾고 있는 장면 "둘러 보시니"는 미완료시제)은 치유받은 자로부터 감사의 인사를 받기 위힘도 아니고 치유를 확인하기 위한도 아니다. 오직 치유받은 사람과의 인격적 만남을 통해 그녀로 하여금 바른 신앙을 갖게끔 하기 위힌 것이다
. 이것은 예수께서 고난받고 고통당하는 사람에 대한 강한 관심과 뜨거운 사랑 및 다함 없는 연민을 갖고 있음이 암시된다. 둘째는 치유받은 여인의 행위이다. 그녀는 몹시 두려워 하고 있었다. 이유는 ① 자신의 병이 종교적으로 부정한 것이고 따라서 죄인 취급받는 신분이기 때문에 군중들 틈에 끼여들였다는 것을 공개하기에는 두려운 사실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② 또 그런 부정한 몸으로 예수의 옷자락을 만졌다는 사실이 특히 여자의 신분으로서 불경건한 행위였기 때문일 것이다. ③ 그녀는 자신이 지금 받은 은혜를 예수로부터 훔쳐 낸 것 같은 심령을 가졌을 것이다. 즉 그녀는예수 몰래 예수의 신적 능력을 이용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④ 마지막으로 예수에 대한 깊은 경외감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이 여인이 예수 앞에 엎드린 모습은 22절의 장면을 연상케 한다. 즉 치유의 기적을 체험한 이 여인은 예수에 대하여 신적인 권위와 초월적인 능력을 느꼈을 것이고 따라서 그에 따른 경외감이 두려움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한편 그녀는 예수의 강권적인 요구로 자신의 만성적인 몹쓸 질병과 그 기적적 치유에 대한 모든 사연들을 무리들 앞에서 공개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소위 신앙간증오로서, 결과적으로 예수의 크나큰 은혜에 부응하여 그분께 무한한 존귀와 영광을 돌리는 일이 되었으며, 또 그녀가 완전한 정상인이 되었음을 공개적으로 알리는 일이 되기도 했다. 실로 "은혜 위에 은혜"의 역사가 주어진 것이다.
[막 5:34]
예수께서 가라사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찌어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 예수께서 치유받은 여인에게 공개적으로 내린 구원 선언이다. 여기서 "딸아"란 성숙한 여자나 소녀를 향하여 애정어린 마음으로 친밀히 부르는 호칭으로서 예수께서 여인을 향하여 친히 이렇게 말씀하신 곳은 복음서 가운데 본문이 유일하다. 실로 예수께서는 그녀로 하여금 그녀가 예수의 옷자락을 만졌기 때문에 치유의 기적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그녀가 지닌 "믿음" 떼문에 완전한 회복(구원)을 얻은 것임을 주지시키셨다. 그 "믿음"은 그녀가 예수에게 치유의 능력이 충만함을 확신한 것이다 그리고 그 믿음을 행위로 옮겼을 때 이 여인의 가장 절망적 문제였던 혈루증이 완전히 치유된 것이다. 여기서 "구원하였으니"란 완료시제를 취하고 있어 그 구원이 이미 그녀에게 확실히 주어졌음을 소개한다.
그리고 여기서 이 구원은 현상적으로는 육체적 구원과 영적 구원은 서로 밀접히 연관되어 묘사되고 있다. 따라서 이 치유의 체험은 질병으로 인한 모든 육체적 고통과 자신이 부정한 죄인이라는 정신적. 영적 굴레로부터 벗어남을 뜻한다. 이와 같은 구원 선언을 예수께서는 군중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선언함으로써 이 여인이 더 이상 죄인이 아님을 선언하고 있으며,
아울러 예수는 이 여인을 소외 당했던 사회로 다시 복귀시키고 있다. 예수께서는 이 같은 자유와 회복을 허락하시려고 그 여인을 그렇게 찾았던 것이다. 이 여인은 더 이상 죄인이 아니며 또한 부정한 여인이 아니다. 한 사람의 구원은 죄의식으로부터 풀려나는 것 뿐만 아니라 건강과 평화로운 사회 공동체에 복귀하여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것까지 포함되는 것이다.
때문에 예수께서는 구원 선언을 한 다음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라고 감동적인 선언을 하고 있다. 여기서 "평안히 가라"(Go in pease, NIV)는 문자적로 "평화를 향하여 가라"는 뜻보다 "평화의 상태를 지니고 가라"로 보는 것이 좋다. 즉 예수께서는 그녀에게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평화의 은총을 선사하신 것이다.
이 평안은 히브리인들의 전통적 인사말인 "샬롬"을 훨씬 능가하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공하신 것이다. 이 "평안"에 대해 혹자는 말하기를 "여기서 꼭 내적인 고뇌로부터의 해방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가짐으로써 얻게 되는 생명의 완전함을 의미한다"고 했다.
여하튼 모든 인류가 이와 같이 평화로운 은총을 누리며 살기를 바라는 것이 주님의 뜻일 것이다. 이러한 구원 선언은 눅 7:50 ; 17:19 ; 18:42 등에도 나타난다. 이렇듯 예수의 병치유의 기적은 내면적인 구원 문제와 연결된다. 따라서 치유의 목적이 단순한 병치유가 아니라 인간의 근본적 구원과 관계된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