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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의 영혼 사랑의 열정
사도행전 19:21~22, 20:1~2
사도 바울의 3차 전도 여행의 사역의 핵심 지역은 에베소 시에서의 복음 전도 사역입니다. 그는 에베소 시의 두란노 서원에서 거의 3년 동안 복음을 증거하며 제자들을 가르침으로써 아시아 전역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이들이 없을 정도로 큰 영적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그리하여 에베소 시 뿐 아니라 주변 여러 도시들에 많이 세워졌습니다. 예를 들면 소아시아 지역의 많은 도시들 곧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골로새 등 도시들에 교회들이 든든히 세워져서 거의 수 백, 수 천, 혹은 수 만 명의 영혼들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큰 열매를 맺었습니다. 이런 변화는 짧은 3년만에 걸쳐 일어난 큰 변화라서 오랫동안 우상을 섬기고 잡신을 섬기던 에베소 사람들은 이러한 영적인 변화를 인하여 분노해서 사도 바울을 대적하며 교회를 반대하는 폭동 수준의 소요 사태를 일으킨 바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인 사도행전 20장 1절에 보면, 에베소 시의 큰 이방 신전인 아데미 신전을 섬기던 이들이 일으킨 소요 사태 후에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권면한 후에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마게도냐 지방을 다녀가며 여러 말로 제자들을 권면하고 헬라에 이르러서 석달 동안 있다가 배를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짧은 기록은 사도 바울의 3차 전도 여행의 마지막 여정을 기록한 짧은 기록인데, 사실 이 기록은 여러 서신서들을 참고로 살펴보면 약 1년 반 정도의 긴 기간 동안 있었던 사도 바울의 행적을 요약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기간 동안에 있었던 일들을 함께 살펴보면서 영적인 교훈을 배우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사도 바울은 사역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하나님의 비전을 품고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사도행전 19:21~22 말씀을 먼저 함께 읽겠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기는 아시아에 얼마 동안 더 있으니라”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의 두란노 서원에서 복음 증거 사역을 힘있게 함으로써 복음이 왕성하게 증거되고 따르는 표적들이 힘있게 일어나서 당시 마술사들조차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를 깨닫고서 약 50억원 내지 100억원에 달하는 마술 주문을 기록한 책들을 한군데에 모여놓고 사람들 앞에 다 불태우고 예수님께 돌아오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영적인 큰 승리를 거둔 사도 바울의 에베소 사역은 앞으로도 엄청난 영적 영향력을 끼칠 것은 불을 보듯이 분명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바로 이러한 에베소의 복음 전도 사역이 절정에 이르른 그 때에 공개적으로 에베소를 떠나겠다고 말합니다. 사도는 그가 에베소를 떠나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갈 것이고 예루살렘을 들른 후에는 로마로 가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도 바울의 증거는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하나님의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겠다는 그의 원대한 비전을 갖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도 바울의 끝없는 도전 정신과 이방 전도 사명 완수에 대한 열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실은 사도는 약 1년 반 내지 2년 후에 고린도 교회에 가서 쓴 로마서 편지를 보면 로마만 아니라 로마를 넘어서 지중해 서편 당시 땅끝인 서바나까지 배 타고 가서 거기서 전도하겠다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의 전도 열정은 이처럼 원대하고 담대합니다.
그 때 사도 바울의 나이가 약 55세 정도이니 노화의 기준으로 보면 그가 오늘날 나이로 보면 약 65세 정도라 계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65세 정도의 사람들은 직장에서 은퇴하거나 은퇴할 생각을 하면서 서서히 물러갈 준비를 하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 때에도 왕성하게 원대한 꿈을 품고 해외 개척을 하며 사업을 더 크게 벌일 생각을 품고 기업을 확장하는 기업가와 같이, 왕성하게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더 큰 비전을 품고 도전하고 있습니다.
이 점을 생각하면서 90세,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지금까지 열심을 내었지만 앞으로 결코 안주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앞으로는 좀 쉬어야 하겠다고 생각하지 말고, 남은 생애 더 주님의 이름의 영광과 복음의 진보를 위하여 하나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큰 일을 해보자는 영적인 포부를 품읍시다. 우리도 영혼 사랑의 열정을 품고 기도하면서 부르심받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여 주님과 복음을 위하여 일하고, 영혼 구원을 위하여 전도에 땀을 흘리고, 기도의 불쏘시개가 되기 위하여 무릎을 주님께 드리기를 힘쓰는 열심있는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둘째로, 사도 바울의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한 끈질긴 영혼 사랑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까 읽은 사도행전 19:21,22 말씀에서 우리는 에베소에서 사도 바울의 사역이 큰 열매를 맺고 아시아 전역에 복음의 영향력이 힘있게 퍼지고 있음을 확인한 바 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그가 저 멀리 로마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겠다고 계획하고 그의 동역자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를 마게도냐로 먼저 보내고 사도 자신은 아시아에 얼마 동안 더 있었다고 하였음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여기서 언급하지 아니한 문제들이 서신서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도가 이 때에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낸 데에는 또 다른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두 가지 목적입니다. 한 가지는 당시에 유다 지역에 큰 기근이 들어서 먹을 것이 없기 때문에 이방인 교회들이 구제 헌금을 모아서 유대의 유대인 교회 형제들에게 전달하고자 디모데와 에라스도가 가서 마게도냐 교회와 아가야 지방의 교회인 고린도교회에 가서 구제 헌금을 드리자고 그들을 권면하는 일이었습니다. 또 한 가지 디모데와 에라스도 형제를 보낸 목적은 아가야의 큰 교회인 고린도교회 내에 일어난 파벌 문제와 교리적인 혼란과 도덕적인 부패와 바울의 사도성을 의심하는 문제를 바로잡는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사도 바울의 이차 전도 여행의 중심 사역지는 아가야의 큰 대도시인 고린도 교회 아닙니까? 거기서 사도 바울은 약 이 년간이나 머물면서 하나님 말씀을 힘있게 증거하여 고린도에 많은 사람들이 모인 큰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그가 고린도교회를 떠나 와서 시간이 좀 흘러 약 2년 내지 3년이 지난 후 에베소에서 사역하던 주후 55년 경에는 고린도교회의 문제들이 심각해져서 사람들이 에베소까지 찾아와서 고린도교회의 심각한 문제점들을 사도에게 전달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11 말씀에 보면, 고린도교회 성도인 글로에가 보낸 사람에게서 그 소식이 사도 바울에게 전달되었고, 고린도전서 16:17 말씀에 보면 고린도교회 성도들인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 이 세 사람이 직접 에베소교회에 있는 사도 바울에게 찾아와서 그 교회의 문제들을 알려주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16:12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 다음에 고린도교회에 건너가서 그들을 가르쳤던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청년 사역자 아볼로 역시 고린도교회에서 사역하던 중에 그들이 자기로 인하여 분당을 만들고 서로 다투는 것을 보고서 크게 당황하여 고린도교회를 떠나서 에베소에 있는 사도 바울에게 와서 그 상황을 알리고 사도 바울 곁에 머무르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사도 바울은 자기를 통하여 세워진 고린도교회 안에 혼란과 내적 부패가 있고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도 생겨나고 사도 바울의 사도직을 의심하는 자들도 일어난 것을 심각하게 여기고 적극적으로 대응하여 해결하고자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그냥 놔두면 사도가 전한 복음의 진실성과 정통성이 무너져서 결국 그들의 구원이 무너지고 사도의 수고가 헛될 것이 분명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의 그 바쁜 사역 중에도 고린도교회를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합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애쓴 노력들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고린도전서 5:9 말씀에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라는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쓰기 전 에베소 사역 초기나 그 중반에 고린도에 편지를 먼저 써 보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 시 전체가 아데미 신전 창기들이 들끓는 음란한 분위기였기 때문에 특별히 음행의 죄를 범하기 쉽기 때문에 그 점을 조심하라고 성도들에게 편지로 써 보낸 것입니다. 이 첫번째 편지는 잃어버렸기 때문에 전해져 내려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고린도 교회의 성도 글로에가 보낸 사람에게서 온 사람을 통하여 교회의 파당이 생겨서 서로 다툰다는 소식이 들리고,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오가 방문하여 그러한 교회 소식도 알리면서 그 외에도 음행하는 자도 있고 부활의 복음을 부인하는 자도 있고 사도 바울의 권위를 부정하는 자들이 생긴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또한 아볼로도 와서 동일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이에 사도 바울은 오늘 우리가 본 대로 믿음의 아들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보내어 그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도록 보내었습니다. 그 때 디모데를 그냥 보내지 않고 사도가 편지를 써서 보냈는데, 그 편지가 바로 우리가 신약 성경에서 갖고 있는 고린도전서입니다. 이 고린도전서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써 보낸 두 번째 편지입니다.
그런데 고린도전서의 편지를 가지고 간 디모데와 에라스도의 방문은 성과가 없었습니다. 고린도교회의 악한 자들은 나이가 어리고 유순한 디모데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고 더욱 거세게 사도 바울에게 도전했습니다. 그래서 디모데는 성과 없이 에베소 교회로 귀환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후에 사도 바울은 직접 고린도에 방문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고린도후서 2:1,2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이 근심 중에 다시는 그들에게 방문하지 않기로 결심하는 것을 쓴 내용이 나오는데, 이는 그가 근심하는 중에 고린도교회를 이미 방문했음을 전제로 한 말입니다. 고린도후서 13:1,2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이 이르기를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리니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정하리라 내가 이미 말하였거니와 지금 떠나 있으나 두 번째 대면하였을 때와 같이 전에 죄 지은 자들과 그 남은 모든 사람에게 미리 말하노니 내가 다시 가면 용서하지 아니하리라”
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이 두 번째로 고린도교회를 이미 방문하였고 나중에 가는 것은 세 번째로 가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두 번째 방문은 에베소 사역 중에 이루어진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 고린도교회가 심각한 내홍을 겪고 있고 분열되고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에서 사역하는 도중에 잠시 배를 타고 직접 에게해를 건너 멀리 고린도에 건너가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방문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직접 방문하였어도 대적하는 자들과 파당에 속한 성도들은 사도 바울의 말에 순종하지 않았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들은 교만하였고 자기들의 죄를 회개치 아니하였고 사도 바울의 사도권에 대하여 반감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을 겪는 사도 바울의 심정은 오죽 아팠겠습니까?
그래서 사도는 상하고 찢기고 눌린 마음을 가지고 빈손으로 에베소에 돌아와서 다시 눈물로 편지를 써 보냅니다(고린도후서 2:4). 그 내용은 눈물로 썼지만 내용은 준엄했습니다. 거역하는 자들에 대한 사도로서의 심판적 경고가 가득한 편지를 써 보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준엄한 편지는 사도가 고린도교회에 써 보낸 세 번째 편지가 될 것입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이 편지는 유실되었다고 보기도 하고, 혹은 고린도후서 10장부터 13장까지의 편지로 보기도 합니다. 저도 이 후자의 해석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이것에 대하여서는 저도 나중에 더 연구해보겠지만, 고린도후서 10장부터 13장까지의 편지의 논조는 고린도후서 1장부터 9장까지의 논조와 완전히 대조적이고 매우 직설적이고 엄숙하고 사도의 권위가 확실하게 드러납니다. 그래서 이 네 장에 걸친 편지 내용은 고린도후서 1장부터 9장까지의 편지와 다른 시기에 보낸 또 다른 편지인데, 초대 교회 시절에 고린도교회에서 한꺼번에 읽혀지다가 고린도전서 뒤에 묶여졌을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이 준엄한 편지는 사도 바울의 동역자 디도가 가지고 갔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사도 바울은 디도와 다른 형제를 함께 보내면서 나중에 그들과 소아시아의 서쪽의 드로아 항구에서 재회하기로 약속하였습니다. 그런데 고린도후서 2장 12절 이하에의 내용을 보면 사도가 드로아에 들러서 디도가 소식을 가지고 오기를 간절히 기다립니다. 그러나 디도가 더디 오니까 사도는 드로아에서 복음 전도의 열매가 맺히고 전도의 문이 활짝 열렸지만 사도 자신의 심령이 편하지 못하여서 드로아에서 전도의 문이 활짝 열렸찌만 사역을 중단하고서 디도를 만나려고 배를 타고 마게도냐로 건너갔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 말씀인 사도행전 20:1 말씀에서 누가가 기록한 바
“소요가 그치매 바울은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노냐로 가니라”
는 말씀의 간략한 기록의 전후의 상황입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의 기록의 표면적인 기록과 달리 사도 바울은 단순히 에베소에서 그를 죽이려는 소요 사태 때문만으로 에베소를 떠나 마게도냐로 간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가 폭동을 피하여 숨을 돌리고 쉬기 위하여 에베소를 떠나 여행간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서 사역하면서도, 심지어 폭동을 겪으면서 그의 생명이 위협을 당하는 심각한 상황을 겪으면서도 사실 그의 마음을 졸이고 애간장을 태우면서 디도가 어떤 소식을 가지고 오는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즉 고린도교회가 디도가 가지고 간 사도 바울의 그 준엄한 편지를 받고서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를 간절히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를 떠나 디도와 재회하기로 한 드로아에서 디도를 기다리다가 안오니까 마음이 편치 않아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마게도냐로 갔던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디도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사도 바울의 두 번째 방문까지도 반발하였던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디도가 가서 준엄한 편지를 낭독하고 디도가 그들에게 사도 바울의 여러 말들을 전하자 이제까지의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고 사도가 권면한 유대교회를 위한 구제 헌금도 기꺼이 동참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하여 이 소식을 디도가 와서 마게도냐에서 기다리던 사도 바울에게 전달해주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사도 바울은 크게 기뻐하고 고린도교회에게 고린도후서 1장부터 9장까지의 편지를 써 보냈습니다. 이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회개를 인하여 기뻐하며 유순하게 그들을 감싸고 격려하는 편지입니다. 그러므로 이 고린도후서 편지는 사도 바울이 마게도냐에서 머물면서 고린도교회에서 온 디도를 만나고 그 소식을 듣고 난 후에 기쁨으로 쓴 네 번째 편지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늘 본문 말씀 사도행전 20:2 말씀에 기록한 대로 사도는 나중에 헬라에 이르렀으니 곧 아가야에 있는 아데네 교회나 겐그레아 교회를 거쳐서 고린도교회에 도착하여 그토록 사도의 속을 썩이던 고린도교회에 세 번째로 방문하게 됩니다 그는 거기서 그의 사도적 권위를 가지고 흐트러졌던 교회 질서를 바르게 추스르고 상처받은 이들의 상처를 싸매어주고 분열된 교회를 하나가 되게 만들고 잘못된 교리를 바로잡아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까지 거역하는 악한 쓴 뿌리 지도자들과 성도들은 엄하게 징계함으로써 그 교회를 다시금 정상적인 교회, 사도적인 권위 아래서 잘 복종하여 교회의 반석이신 주님 위에서 잘 세워진 교회로 온전케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의 사도의 행적에 대한 이 짧은 구절 너머에는 사도 바울의 끈질기고 포기할 줄 모르는 교회와 영혼에 대한 사랑이 숨겨져 있습니다. 고린도교회의 이 거역하고 교만한 모습과 세상에 끌려가는 부패한 모습과 없는 말을 지어내어 사도를 뒤에서 깎아내리며 비난하는 모습들을 보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들을 살려내려는 사도의 간절한 영혼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신앙의 길에서 곁길로 미끄러져가는 그들을 위하여 네 번에 걸친 눈물과 탄원과 경고의 편지를 써 보내고 디모데도 보내고 안되면 자기도 직접 가보기도 하고 그래도 회개 안하니까 혹시라도 자기가 직접 가면 혹시라도 회개할 기회를 가로막을까봐 또 다시 편지를 동역자 디도를 또 보내고 그 손에 엄중한 편지를 써 보내고 그들이 회개하니까 이번에는 너무 기뻐서 또 편지를 보내고 마침내 모든 것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니까 그 때서야 그 고린도교회에 세 번째로 도착하여 그들과 교제하면서 잘 다독여주고 가르쳐주고 위로해주고 쓴 뿌리는 제거해주어 교회를 잘 세워주는 사도 바울의 모습은 참으로 진한 영혼 사랑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끌질긴 사도의 애타는 헌신, 끈질긴 권면이 있었기에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이 다시 설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는 마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그들의 완악함을 인하여 울면서 말씀하시며 십자가 위에서도 대신 용서를 빌면서 죄인들을 품으시던 예수님의 모습과 같습니다. 바로 이러한 끈질긴 사랑이 있었기에 우리 같은 죄인들도 끝내 버림받지 않고 구원을 받아 주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포기할 줄 모르는 영혼에 대한 열심, 교회를 끝까지 비진리와 불의함과 부패함으로부터 지켜내려는 진리에의 열정으로 인하여 우리가 길 잃지 않고 끝내 주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이러한 주님의 끈질긴 사랑을 기억하면서 우리도 이제 보답하는 마음으로 흔들리지 말고 진리 가운데 굳건히 서서 절대로 흔들리지 않도록 합시다. 주님과 사도가 그토록 생명을 내어주면서 온갖 핍박을 마다 않고서 우리에게 전해준 이 생명의 복음 진리를 꼭 붙들고 굳은 결심으로 이 복음 진리를 따라 살아가는 성도가 됩시다. 그리고 이 지상 교회 가운데에서 복음 진리를 어지럽히는 쓴 뿌리들과 부패한 양심을 가진 이들을 종종 일어난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우리가 깨어서 분벼하고 그들에게 절대로 휘둘리지 않도록 조심합시다. 그리고 우리 주님과 사도가 친히 본을 보여준 대로, 우리도 수많은 영적 시험이 오고 세상의 흔드는 시험이 오고 교회를 헐려고 하는 마귀의 공격이 재차 다가오고 또 다가올지라도, 사도가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행하였던 거룩한 사랑의 싸움을 싸웠듯이, 우리도 다른 연약한 영혼들을 살려내고 지켜내고자 선한 사랑의 싸움을 끝까지 싸웁시다. 우리에게 주신 영혼들을 살려내고 지켜내고자 눈물로 기도하며 진리의 가르침으로 가르치며 사랑으로 기다리고 또 기다려서 마침내 그들을 살려내고 구원의 길로 인도해들이는 거룩한 영적 어미, 영적 아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