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8월쯤 왠지 무료한 자신을 돌아본 적이 있다. 다치거나 아파본 적이 정말 오래되었는데 타성에 젖어 생동감이 없어진 느낌이었다. 걷기만 하는 운동에서 뭔가 바꿔야만 하는 필요성을 느끼고 주위를 돌아보니 12년 타던 자전거가 잘 안 나가니까 안타게 되는 핑계거리를 기분도 바꿀 겸 해서 120 주고 스피드의 중요 부품인 시마노 구동계 33단(3*11)과 카본 Frame 등으로 꾸며 바꿨다. 만보를 걷기만 하다가 갑자기 자전거를 타니 힘이 달리니까 속도가 영 시원치 않다. 그래도 한달 정도 꾸준히 연습하니 자꾸 속도가 붙었고 24단(3*8)으로 꾸준히 연습을 하는데 내 또래 영감들이 쌩쌩 날 질러 나가는 것이 내 배를 자꾸 아프게 했다.
좀 무리지만 27(3*9), 30, 33(Full)단으로 드디어 올려 타고 젊은 애들 80%정도 따라 가는데 처음엔 힘들었지만 그래도 발전에 따른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9월 말경쯤 작심하고 그래도 노숙해 보이는 쌩쌩이들을 열심히 따라가면서 90% 정도 따라붙으니 세상 다 가진 듯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래 나이 들어서 건강을 챙기는 것은 자전거를 즐기는 거야!” ㅎㅎ
"그리고 역시 자전거는 일단 좋고 봐야 돼!" 꿈도 야무지게 겁도 없이 무심천 20km 길을 타고 돌아오는 것은 좀 무리인 데도 재롱을 떨었다. 돌아와서 그래도 왕복 40km를 탔다는 자부심 보다 그렇게 쌩쌩 달렸다는 것 즉 자전거 가치를 높였다는 망상을 가지고 마누라한테 입 꾹하고 다음날 일어나는 데 아이고! 허리가 아파서 못 일어났고 마하님께서 다 아시면서 자중하란 한 말씀이 거룩했었고 날씨가 추워지면서 자전거는 일단 접게 되었다.
그런데 오호라! 금년 4월 24일에 위암 수술을 받고 5월 2일 퇴원한 바 있다. 지금 10월이니까 벌써 6개월이 거진 다 되어 가니까 우선 그동안의 노력으로 우선 옛날처럼 살 만한 자신을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자신을 뒤 돌아보면서 곱씹어 본다.
우선 억울한 것이 50여년간 즐기던 술을 끊고 5년이 지난 결과가 위 절제 수술이라니 정말 억울하다. 어디다 대고 물어볼 수도 알 수도 없는 너무 억울한 경지를 무엇이라 할까? 하여간 그 실마리를 찾기 위해 내 자신의 이상한 현상들을 되 짚어 보게 되었다.
첫번째 날씨가 추워지자 작년 11월 중순경 비가 조금 오는데 우비만 입고 마하님과 만보 걷기에 나섰다. 어지간히 아파도 난 만보 정도 걷는다는 직업의식을 14년간 이어오고 있다. 코스는 집이 충북대와 붙어 있으니 대학교 교정 자체가 내 커다란 앞마당이고 대한민국에서 어디에 비해도 떨어지지 않는 명 코스로 자랑할 만하다. 특히 코스 중 행복담길은 그 자체가 힐링을 수반하는 행복 길이다. 물론 학교 매점에서 커피 음료수 등을 곁들이고 걷기를 자축하며 지루함을 달래는 즐거움도 있다.
집에 거진 다와 가지고 평소 잘 아는 우리 아파트 골목 사람과 잠깐 인사를 나누다 보니 어! 저기 마하님이 혼자 가시고 있다. 얼른 지름길로 빠른 걸음으로 가는데 옛날에 축구 하다 다친 다리가 불편하니 뛰지도 못하고 바리바리 걷다가 약간 맨들맨들한 진흙 길에 쫙 미끄러지면서 왼 다리가 삐걱했는데 그 결과 이틀이나 만보를 못 걸었다. ‘세월이 흐르니 별수 있나!’ 이를 거울삼아 앞으로 특히 눈길을 조심하자고 다짐했었다.
두번째 작년 12월 하순경 눈이 조금 내린 적이 있다. 다리도 시원치 않은 놈이 그래도 만보 의식은 있어서 집을 나서 충북대 가파른 길을 정말 조심해서 내려가는데 11월에 다친 왼쪽다리가 맥없이 풀리며 겹질려져 나가 떨어졌다. 전화로 마하님 불러내서 정형외과에 가서 무릅 3군데서 피를 뽑고 간이 보조대를 한 적이 있다. 무릎에서 주사로 피를 뽑는데 마하님 옆에 없었으면 엄살 제스처라도 좀 했을 텐데 의연히 그 아픈 것을 참고 넘어 갔다. 세월이 가속될수록 어깨는 자꾸 움츠려 드는데 이제 정말 마하님 등장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사람이 결혼하는 것은 죽음이 겁이나 이를 메꾸는 가장 안전한 방법 중 하나 였음을 이렇게 나이 좀 들고 겨우 알았으니 ㅎㅎ---
세번째 정형외과에서 처방 받은 약이 몸에 잘 맞지 않았는지 금년 1월 초 수원 딸 집에서 약을 복용하다 피를 많이 토하고 인사불성이 되어 119에 의해 아주대 병원에 실려간 결과 약물에 의한 위장 파열로 1주일 치료 후 퇴원했는데 또 2월 중순에 재 검사를 받는 것이 좋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재검사 결과를 받지 못하고 좀 기다리라는 대답 대신에 무슨 일이 있는지도 모르는데 또 3월 15일 정밀 검사를 받으라 하니 아들 딸 등 온 집안 식구들이 은근히 겁을 냈다.
드디어 검사 결과 위암 1기로 4월 24일 위암 수술을 받으란다. 아마 이런 것을 날벼락이라 할 수 있는데 참 아는 것도 없는 내가 난감하기가 그지없었다. 인터넷을 뒤지고 아들 딸들이 각종 정보를 취합하는데 그래도 고교 동창 친구들 중에 먼저 수술 받은 친한 2명을 소개받아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마음의 대비를 했다.
수술 받기 전 마하님과 같이 주고받은 이야기 중 하나는 위암 초기며 다른 곳으로 전이가 안된 상태를 가지고 그냥 사는 것이나 수술 받고 사는 것이나 그 질이 같을 것 같은 생각이니 그냥 넘기자고 난 주장을 했지만 마하님이 절대 안 된다고 한 말씀하면서 앞으로 다른 말하면 가만 안 둔다고 으름장을 놓으시는데 정말 겁이 덜컥 나서 꼼짝 못한 사실이 있다. 우리가 앞으로 한 10년 더 산다고 나름대로 계산하면 나도 틀린 말은 아닐 것 같은데 위를 전부 잘라 낸다는 담당의사의 설명에 겁을 먹고 슬그머니 빼다가 치도곤을 맞은 기분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위 친구들 특히 같은 병의 경험자들의 격려와 조언 덕분에 쫄지 않고 수술에 임했고 퇴원해서도 끊임없는 안부 전화에 인생을 살만 한 것이라 결론부터 내리게 되었다.
요새 사람이 한치 앞도 알 수가 없는 세상에 재롱을 떨면서 자전거를 옛날처럼 타기위한 몸 만들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고 누구나 가볍게 생각할 수 있는 ‘얼음판에서 나가 떨어진 결과’가 초기 암 수술로 연결된 것에 거꾸로 감사하는 맴으로 겸손을 더욱 갖추고자 한다.
인간지사 새옹지마(人間之事 塞翁之馬)이니까?
첫댓글 임 대감마님 그간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더욱 건강히 10,000보도 걷고 고가품 자전거도 쌩쌩 안전운전 하시기를 간절히 기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