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의 감사기도(사무엘상 2:1)25.02.23.주일낮설교
유퀴즈에 나온 김의신 의사 선생님은 세계 11위 안에 드는 의사입니다. 이 선생님이 만병의 근원, 병의 원인은 스트레스라고 합니다. 스트레스가 많으면 염증이 생겨서 암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음식은 쪄서 먹어야 한다고 합니다.
스트레스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했습니다.
웃으면 나온다는 앤돌핀보다 4천배가 더 좋은 다이돌핀이 있습니다. 이 다이돌핀은 감동의 호르몬이라고 합니다.
감동받을 때 다이돌핀이 나온다고 합니다.
좋은 노래를 들을 때,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볼 때,
엄청난 사랑에 빠졌을 때,
감격스런 스킨십을 했을 때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감사할 때 최고 많이 나온다고 합니다.
억지로라도 감사하면 몸이 반응해서 나온다고 합니다.
우리는 항상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주면 안 됩니다.
항상 감동을 주고 행복을 주어야 합니다.
말을 잘해야 합니다.
행동을 잘 해야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한나는 불행한 여자였습니다.
엘가나에게 시집가서 남편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아기를 낳지 못하는 불임 여성이었습니다.
유태인의 풍습에는 아기를 낳지 못하는 아내는 후처라도 두어 가문의 대를 이어야 한다는 것이 하나의 관례가 되어 있었습니다. 엘가나는 관례에 따라 브닌나라는 처녀와 결혼하더니 1년도 채 못 되어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때부터 한나의 불행이 더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아기를 낳은 둘째 부인 브닌나가 한나를 구박하고 학대하기 시작했습니다. 1장 6절을 보겠습니다.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고 했습니다.
여기 '격분한다' 라는 말의 히브리어(카아스)는 '마음을 슬프게 하다', 또는 '괴롭히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견딜 수 없을 만큼 마음을 아프게 하고 괴롭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괴롭혔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살면 안 됩니다.
스트레스 주면 안 됩니다.
이로 인해 한나는 한나는 너무 괴로워서 울고 먹지 아니했습니다. 엄청난 고통을 받았습니다.
7절을 보겠습니다.
“브닌나가 그를 격분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
그러나 한나는 고통을 당할 때 그 문제를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아갔습니다. 10절입니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한나는 하나님 앞에 괴로움을 다 고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이 당하고 있는 자신의 심정을 아뢰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므로 문제를 해결 받고자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울며 기도했습니다.
어떤 집사님은– 한나의 성품이 자기에게 도전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만약에 자기가 한나 입장이었다면, 브닌나와 싸우진 않았다고 해도, 사라처럼 남편에게 따졌을 것 같다. 했습니다. 그런데 한나는 문제를 가지고 사람에게보다 하나님께 가지고 가서 기도하였다는 것이 도전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불쌍한 한나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 주셔서 아들 사무엘을 주셨습니다. 사무엘을 낳은 후 그는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드리는 기도를 했습니다.
그 기도의 내용이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기도라기보다는 한나의 신앙고백입니다.
한나는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최고의 감사, 최고의 찬송을 올려드리고 있습니다.
1절을 보겠습니다.
“한나가 기도하여 이르되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
한나의 기도 속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여호와 하나님’ 입니다.
기도응답을 주신 분이 여호와하나님이시오,
찬양 받으실 분이 하나님이시오,
자신을 위로해 주시고 마음에 기쁨을 주시고,
높여 주신 분도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찬양 한다는 것입니다.
한나는 힘들고 어려울 때도 하나님께 시선을 맞추고 기도했고, 기도가 응답되어 기쁘고 감사할 때도, 자신에게 맞추지 않고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면서 감사하고 찬송하는 것입니다.
한나는 언제나 하나님 중심기도,
하나님 중심신앙,
하나님 중심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도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찾고,
기쁘고 감사할 때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지 않고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오직 하나님께 올려 드린 것입니다.
믿음의 기도의 특징은
감사로 시작해서 감사로 끝나는 특징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경우, 서신서를 읽어보면,
항상 감사로 시작합니다.
빌립보서 1:3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 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골로새서 1:3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빌립보서 4: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믿음의 기도는 환난 중에도 기도와 찬양으로 나아갑니다.
원망이나 불평이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는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어떻게 했는지 기억하실 것입니다.
사도행전 16:24-25
“그가(간수)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에 차꼬를 든든히 채웠더니 한 밤 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한나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라기보다는 한나의 신앙고백입니다.
1절을 보면 “한나가 기도하여 가로되 내 마음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 하고, 내 뿔이 여호와를 인하여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를 향하여 크게 열려졌으며 이는 내가 주의 구원을 인하여 기뻐함이니이다”
여기에 "내 마음... 내 뿔... 내 입이" 나옵니다.
그녀의 '마음'은 괴로움(1:10)과 슬픔(1:15)에서 즐거움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뿔'은(동물이 자신의 힘을 과시하며 자랑하듯이) 먼지 가운데서 짓 밟힘을 당하던 비참한 처지에서(1:6) 뿔과 같이 다시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그녀의 '입'은 침묵할 수 밖에 없었던 처량한 신세에서(1:13) 다시 크게 열려져 자신의 원수에 대하여 여호와의 은혜를 마음껏 알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나의 노래의 감격이 “여호와를 인해 즐거워한다."고 고백하듯 우리도 하나님 때문에 기뻐하고, 하나님 때문에 높아지며, 하나님 때문에 크게 외치는 귀한 찬양이 넘쳐야 합니다.
한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는 믿음이었습니다.
한나는 “아들을 주셔서 즐겁다!”고 고백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니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해 주시니까,
하나님이 내 기도를 응답해 주시니까?
정말 기쁘고 즐겁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에 이르렀을 때 애굽의 철군대가 따라와 그들을 치려고 하였습니다.
앞에는 파도치는 홍해 뒤에는 애굽의 철군대 이제는 꼼짝없이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 부르짖자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시고 그들을 인도하여 홍해를 건너게 하셨고, 애굽의 군대는 홍해에 수장시켰습니다. 이 광경을 본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를 찬송하며 즐거워합니다.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출 15:1,2절)
누가 먼저랄 것이 없이 모두 춤을 추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즐거워하였습니다.
한나는 그 속에서 활화산처럼 터져 나오는 즐거움을 얻었습니다. 샘물이 터져 나오듯 기쁨이 샘솟듯 하였습니다.
슬픔과 근심과 고통과 원통함이 진정한 기쁨으로 변했습니다.
한나는 아들을 선물 받은 것 보다 더 큰 기쁨을 노래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친히 내 고통을 돌아보셨다는 것입니다.
나 같은 못난 인간 주께서 생각하시고 사랑하여 주셨다는 이것이 너무 감사하여 그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뒤집기의 명수이십니다.
에스더서를 보면 페르사의 [아하수에르]왕 때 국무총리로 있던 [하만]이라는 사람이 자신에게 절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모르드개] 라는 유대인과 그의 모든 동족들을 몰살할 계획을 세우고 왕에게 아첨하여 왕의 허락을 받아냅니다.
이제 꼼짝없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온 모든 유대인들이 다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에스더왕비가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단을 하고는 금식기도한 후 왕에게 나아가 하만을 고발하므로 결국 하만은 모르드개를 달아 죽이려고 세워두었던 기둥에 자신과 가족들이 매달려 죽임을 당하고 그의 군대도 모두 몰살을 당합니다. 하지만 한 순간 모르드개는 국무총리가 되고 모든 유대인들의 지위는 높아졌습니다. 이 역전승을 기념하는 유대인들의 절기가 바로 부림절입니다.
오랫동안 브닌나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였던 한나였지만 한 순간에 상황이 역전되었습니다.
브닌나는 입을 다물게 되었고,
한나의 입은 열리게 되었고,
브닌나는 두려워하고 근심하게 되었고,
한나는 마음의 즐거움과 생활 속에 큰 기쁨을 얻었습니다.
호떡을 굽는 것을 보았습니다.
호떡을 굽다가 뒤집습니다.
그래야 호떡이 타지 않고 양쪽이 잘 익습니다.
그런데 아무렇게나 호떡을 뒤집지 않습니다.
다 나름대로 원칙에 따라 뒤집습니다.
하나님도 인생의 역전을 주실 때에도 때가 있습니다.
<오 헨리>의 작품 <마지막 잎새>가 있습니다.
늦은 가을 초라한 3층 지붕 밑 방에서 존지라는 소녀가 폐렴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소녀에게 있어서 폐렴보다 큰 문제는 살고자하는 의지를 잃어버린 것이었습니다.
존지는 자기 병상에서 보이는 건너편 집 담장에 있는 담쟁이 넝쿨을 바라보면서 그 넝쿨의 잎이 마지막으로 떨어지면 자신의 생명도 끝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언니 수우는 말합니다.
"담쟁이 잎이 너의 생명과 무슨 상관이야."
그러나 존지는 대답합니다.
"아냐. 언니. 저 잎이 떨어지면 나도 분명히 죽을 거야."
드디어 담쟁이 넝쿨의 마지막 한 잎 새가 남았습니다.
존지는 마음의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마지막 잎 새가 남았던 그날 밤은 유난히 비바람이 심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존지는 떨어진 마지막 잎 새의 흔적을 보려고 커튼을 젖혀 달라 했는데 놀랍게도 그 마지막 잎 새가 떨어지지 않고 아침햇살에 더 환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더 놀라운 일은 다음날도, 그리고 그 다음날도 마지막 잎 새가 붙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원래 그 마지막 잎 새는 이미 떨어졌는데,
그 집 1층에 사는 노(老) 화가 베어먼 할아버지가 그 담장에 그 마지막 잎 새를 그려 놓은 것이었습니다.
그려진 담장의 넝쿨의 마지막 잎 새 하나가 결국 존지를 병에서 일으켜 세웠습니다.
생각의 힘은 우리는 생각을 초월합니다.
죽는다고 생각하면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면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시고
행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즐겁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높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는 분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