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는 우리에게 아픔을 주는 동시에 귀중한 교훈을 준다.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이 많은 교훈을 이야기했다. 외국인들의 비평이 특히 뼈 아프다. IMF의 한 간부급 인사(Michel Camdessus)는 IMF논평(98. 2월)에서, 태국, 한국 등 아시아 위기상황을 진단하고 ①회계처리 관행의 국제화와 투명성, ②경쟁 확대, ③기업과 정부의 조직문화적 변화 등 신접근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일본의 경제위기를 특집으로 다룬 비즈니스위크(98. 5. 18일자) 기사도 좋은 교훈이다. 일본이 설마, 했는데 사실은 심각하다. 일본의 공식확인 부채액은 4조5천억 달러, 불실채권, 기업부채 부분까지 합하여 총부채를 10조달러로 추정하는 사람도 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정확한 부채총액을 누구도 모른다는 점이다. 이러한 수치들과 함께 비즈니스위크지 논평에서는 관료주의, 보수성향, 인맥구조, 계산불감증, 네 가지를 근본원인으로 지적하면서 일본의 유교적 전통을 비판했고, "다스릴줄 모르는 정치인, 규제할 줄 모르는 관료, 무관심한 유권자, 변화하지 않는 기업, 이것이 일본의 비극이다"라고 끝을 맺고 있다.
경제위기에 대한 처방과 교훈들의 공통점은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위기 극복이란 옛날 좋았던 시절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난날 우리가 자랑했던 높은 경제성장률 등 경제지표 수치를 회복하는 것에 목표를 두면 안된다. 전혀 다른 행동, 사고, 문화, 최선의 관행을 찾아야 한다.
미국은 1970년대초부터 약 15년간을 줄곧 무역적자, 재정적자에 시달렸으나 1980년대 후반에 새 패러다임을 찾음으로써 비로소 위기에서 벗어났다. 새 패러다임의 요점이 바로 품질경영 즉, TQM이다. 미국인들은 데밍의 <위기탈출 -Out of the Crisis(1986)->을 정독하고 14개항을 고지식하게 실천에 옮겼다. 제조기업, 서비스업, 병원, 군대, 정부기관, 대학, 초중고등학교, 마을 단체들까지 철저하게 실천했다. 유럽, 호주, 캐나다에서도 거의 같은 시기에 불길이 일어 났다. 단순한 유행이 아니다. 위기 탈출의 유일한 출구이기 때문이다. 개혁과 구조조정의 기본도구이기 때문이다.
현대의 미스터리
TQM이 어째서 새로운 이야기인가? 우리나라 품질운동의 역사는 줄잡아도 30년은 된다. 일본은 전사적품질관리의 종주국이라 할만큼 더 철저했다. 미국이나 유럽에 비하면 일본과 한국은 품질운동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들이 뒤늦게 열을 올리면서 TQM을 선전하고 일본과 한국을 비판하니 이상하지 않은가? 현대의 미스터리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다.
첫째, 일본이나 한국에서는 기업외 분야 특히 정부나 공공기관들이 품질 접근법을 도입실천하지 못했다. 최근의 외환위기나 금융문제도 그 때문이다. 금융기관들 뿐인가? 정부기관, 교육기관, 의료기관, 경찰, 군대, 마찬가지다.
둘째, 경쟁력과 품질을 연관지어 시스템화하지 못했다. 이 점에 있어서는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경쟁력이라는 말 자체도 친숙하게 쓰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경쟁력의 의미도 구구각각이다. 경쟁력이라는 용어를 쓰는 대부분의 경우 우리들은 품질 접근법을 생각하기보다 우선 거시경제논리나 산업구조론을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경제지표보다는 경쟁력
경쟁력이라는 말은 경우에 따라 다양하게 쓰인다. 우선 국제경쟁력을 생각해보자. 진정한 경쟁력은 국제시장에 의해 평가된다. 국제시장이 높이 평가해주는 제품과 서비스를 기민하게 안정적으로 공급하며 자국 국민에게 실질소득을 많이 가져다 주는 강한 기업이 많이 있어야 "경쟁력 있다"고 말한다.
월드컵 축구의 예를 들어보자. 월드컵 대회에 출전하여 8강이나 4강에 들 정도면 축구 강국이라고 할 수 있다. 대개 축구 강국은 국가 대표팀 하나만 강한 것이 아니라 나라 안에 수백 수천의 많은 강팀들을 보유하고 있다. 국내대회나 지역대회에서 우승하는 정도는 별로 알아주지 않는다. 축구 지도자는 강팀을 만드는 경륜과 지식을 갖추고 해외 정보에도 밝아야 한다. 강팀을 만드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유능한 지도자는 스코어에 절대적 가치를 두지 않는다. 승률이나 스코어를 만드는 일보다 강팀을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하고 그것이 지도자의 본업이기 때문이다.
경제와 기업의 경우도 그렇다. 경쟁력의 결과는 GNP, 무역수지, 생산성 등 경제지표에 반영된다. 따라서 정책당국이나 기업 경영자들도 이러한 거시적 경제지표의 변동에 매우 민감하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경제지표를 관리하면 경쟁력이 관리되는가? 여기에는 상당한 논리적 실제적 격차가 존재한다. 유능한 축구 지도자의 경우를 통해 배울 필요가 있다. 경제지표는 경쟁력의 형성과정을 말해주지 않는다. 경쟁력 형성과정, 그것을 인식하고 관리할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구조조정으로 충분치 못한 이유
경쟁력 형성과정에 관한 한 가지 대답을 우리는 경쟁전략론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버드대학 포터(M. Porter)교수의 명저, <경쟁전략 -Competitive Strategy(1980)->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구조적 요인과 대안을 잘 설명해준다. 예를 들면, 산업내의 경쟁자수, 잠재적 경쟁자 및 대체품 동향, 공급 및 유통경로, 고객층 등의 산업구조적 요소들, 그리고 위협/기회요소, 협상능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특히 규모의 경제, 학습곡선, 자본투자 등 진입장벽에 대한 설명이나 코스트 리더쉽, 차별화, 집중의 3대 본원적 전략에 관한 논리적 분석과 실증사례들은 매우 명쾌하다.
이러한 포터류의 산업구조적 접근법은 기업들과 경제정책 입안자들에게 하나의 준거틀을 제공해준다. 최근 우리나라 경제계를 강타하고 있는 구조조정, 합병, 빅딜들의 배경이론도 대체로 같은 맥락이다. 이와 같은 방법이 경쟁력에 상당부분 기여하게 되리라 기대한다. 그러나 그 후속과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우리나라 언론, 정부, 기업들 모두 조용하다. 산업구조적 조정만으로 경쟁력 문제가 완결될 것인가? 1990년을 전후한 세계의 신조류를 보면 그 대답은 부정적이다. 포터류는 경쟁력의 작은 일부분만을 설명해줄 뿐이다. 1990년대를 전후한 신조류의 증거를 세 가지만 들어보자.
첫째, 구조조정 방법론의 혁신이다. 비즈니스 프로세스 리엔지니어링(BPR)과 벤치마킹이 개혁의 기본도구로 등장했다. 스코트몰건(P. Scott-Morgan)은 "닥치는대로 부수는 핵폭탄식 개혁, 나무 벌채하듯 난도질해서 불태우는 식의 다운사이징, 그런 것이 바로 졸작경영"이라고 기존의 개혁방법을 비판한다. 이제는 포터류의 구조조정에 머물지 말고 BPR과 벤치마킹의 현명한 활용으로 경쟁력과 수월성을 본격적으로 추구해야 한다.
둘째, 정보기술의 발전과 그로 인한 산업구조의 재편이다. 돌이켜 보면, 1980-90년대에 걸쳐 최선의 생산시스템이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는 탐색이 이어져 왔다. 도요타시스템 또는 JIT가 린(Lean)생산으로, 다시 세계급(World-class)생산으로, 다시 차세대생산(NGM, Next Generation Manufacturing)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NGM은 탄력적 경영구조, 가상기업 운영, 고객기대 충실화, 협력에 의한 경쟁력, 통합적 유연성, 개성지향 정보화, QS(Quick Response), 기민성(Agility), 인터프라이스(Interprise)같은 신개념을 실현하는 미래상이다. 그러나 이미 여러 가지 소프트웨어들이 개발 보급되고 있으니 그 실현은 충분히 가시적이다.
1997년에 등장한 인터프라이스 개념을 보면 지금의 EDI, 전자상거래, 공급체인 등은 초보에 불과하다. 프라이스(K. Preiss)는 인터넷(internet)을 활용하는 국제적(international), 상호작용적(interactive) 네트웍상의 확장된 기업(extended enterprise)을 "인터프라이스"라고 정의한다. 이는 ①기업간 프로세스들의 결합, ②할부, 옵션, 리스크 배분까지 포함하는 다양한 결제방식의 금융네트웍 연결, ③공급자-고객간 가치부가의 3요소를 기본적 관계로 하여 동태적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거대한 가상기업 결합체를 뜻한다. 이런 경우, 고전적 개념인 규모의 경제나 국내 구조조정은 경쟁력의 변두리 요소에 불과하다.
셋째, 온 세계가 최선의 관행(best practices)과 경영수월성(business excellence)을 추구하는 현실적 대안으로 품질경영을 이의없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품질경영에 관한한 문화적 장벽을 논하는 것은 이제 매우 시대에 뒤떨어지는 이야기가 되었다.
필자가 애용하는 인터넷의 종합망인 "Quality World"(http://www.qualityworld.com)의 예를 들면, 1999. 1월 현재 이 종합망에는 총 48개국 1,855개 링크(links)가 연결되어 있는데 각 링크에서 다시 연결된 웹사이트들까지 합산하면 수만개가 된다. 많은 나라들이 수십개에서 수백개의 링크를 자랑한다. 한국은 2개뿐이다. 갈 데 없는 후진국이다. 품질경영의 키워드(key words)는 전통적인 통계적 수법 등에 국한되지 않고 BPR, 벤치마킹, 마케팅, 정보기술, 소프트웨어, 전략계획, 조직, 보건의료, 교육, 정부개혁들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경쟁력 향상에 공헌하는 품질경영을
품질경영이 경쟁력 향상을 당연히 가져 오는가? 이 질문은 이 분야 연구자들이 오래전부터 관심을 기울여 연구해온 중요한 토픽이다. 기존연구들을 정리해 보면 찬반양론이 엇갈린다. 대개는 ISO 9000 등 특정한 품질시스템의 도입효과와 관련된 연구들에서 비관론을 발견할 수 있다. 자발적으로 또는 외압에 의해서 그 동안 전세계 많은 대기업과 중소기업들이 ISO 9000 등 국제규격을 도입했고 인증획득을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데 들인 노력에 비하면 결과는 신통치 않다는 반응들이다. 한편, 이러한 기존연구의 연구자들은 "진정한 품질경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ISO 9000시리즈의 품질시스템 모형은 품질경영을 추진하기 위한 출발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품질경영을 추진하는 접근법에서도 다소의 착오가 있을 수 있다. 요즘 우리 주변에 고객만족을 강조하는 경향이 특히 눈에 뜨인다. 고객만족에 관심을 갖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그러나 고객만족의 사후적 측면에 치중하면 곤란하다. <Quality Progress(98.10월)>에서 포스터(S.T. Foster)는 최근 기업들이 사후적 고객지향품질(Reactive customer-driven quality, RCDQ)에 편중되어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RCDQ를 너무 강조하면 불내고 불끄기처럼 뒷처리 모드(reactive mode)가 습관화되어 경쟁력에 결정적 손상을 가져올 수 있다고 포스터는 경고한다.
그렇다. 고객만족점수에 일비일희(一悲一喜)하는 것은 한 씨즌의 승률이나 스코어에 목숨을 거는 축구감독과 다를 바 없다. 거시경제지표 수치에 명운을 거는 관료들과 다를 바 없다. 진정한 품질경영은 보다 사전적, 선행적(proactive)이고 전략계획적인 것이다. 스코어에 얽매이지 않고 강팀을 만드는 일에 힘쓰는 일류 축구 지도자의 본업과 유사한 것이다.
학습하는 사회
품질경영을 모르면 경쟁력을 말할 자격이 없다. 장관이든 대학 총장이든 배워야 한다. 이것을 고지식하게 해낸 나라가 미국이다. 예를 들면, 폴라로이드, 디지털, GE 등 미국 보스턴지역 소재 7개 유명회사들은 1989년에 품질경영센타(CQM)라는 협력기구를 만들어 MIT대학과 일본 쓰쿠바대학 교수를 초빙하고 사장, 부사장들부터 공부했으며 92년도에는 각회사의 고급간부 360명에게 품질경영을 수강시켰다.
6일간의 교육과정을 8회나 실시했는데 놀랍게도 그 강사진은 CQM 회원사 사장, 부사장들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직접 배우고 직접 가르쳤다. 오레곤주립대학 총장은 자기 대학내 평생교육과정에 개설된 TQM 강좌에 직접 출석하여 수강했다고 한다. 학습방법은 다양하다. 대부분은 데밍 강좌, 쥬란 강좌 등 품질경영 세미나에 가서 듣고 배우거나 녹음테이프를 구입해서 듣는다.
중소기업들은 지역별로 네트워킹을 하여 공동으로 학습하고 정보교환하고 컨설팅도 공동으로 받는다. TQM 추진이라는 공동목표를 가지고 지역내 중소기업, 대기업, 병원, 백화점, 관청이 함께 앉아 연구하는 경우도 있다. 주지사들도 배우고 배운만큼 연설을 한다. 그 연설내용이 인터넷에 올라 전세계에 알려진다.
첫댓글 품질경영도 중요하지만 품질관리또한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실질적인 것이기에 어떻게 보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