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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관리들과 랍사게의 협상(26-27)
랍사게의 교묘하고 탁월한 언변에 당황한 히스기야의 신하들은 랍사게에게 아람 말로 말해달라고 요청합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었으니 백성들이 알아듣지 못하게 히브리 말이 아닌 아람어로 말해달라고 요청합니다.
랍사게의 말을 듣고 백성들에게 히스기야 왕에 대한 불신이 생겨서 불만이 커질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국제 통용어는 아람어있기 때문에 앗수르도 아람어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랍사계는 이런 요청을 무시하는데, 성에 있는 군인들이나 백성들도 자신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자기의 소변을 먹고 대변을 먹는다는 말은 앗수르의 철통같은 포위로 식량이 떨어져 극심한 기아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며, 예루살렘이 곧 이런 운명에 처할 것을 백성들도 알아야 하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이 모든 책임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은 히스기야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열왕기하 6장에서 극심한 기아에 시달려 자신의 아이를 잡아먹는 모습이 떠오르게 합니다.
랍사게의 선동 Ⅱ(28-37)
세상이 교회를 공격하고 세속화가 교회를 유혹할 때, 유일한 대응전략은 침묵입니다. 세상의 제안과 논리를 거부해야 합니다. 세상은 결코 우리의 말을 들어줄 용의가 없습니다. 처음부터 목표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대꾸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이 때로는 가장 큰 용기와 울림이 됩니다.
28네가 내게 향한 분노와 네 교만한 말이 내 귀에 들렸도다 그러므로 내가 갈고리를 네 코에 꿰고 재갈을 네 입에 물려 너를 오던 길로 끌어 돌이키리라 하셨나이다 29또 네게 보일 징조가 이러하니 너희가 금년에는 스스로 자라난 것을 먹고 내년에는 그것에서 난 것을 먹되 제삼년에는 심고 거두며 포도원을 심고 그 열매를 먹으리라 30유다 족속 중에서 피하고 남은 자는 다시 아래로 뿌리를 내리고 위로 열매를 맺을지라 31남은 자는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피하는 자는 시온 산에서부터 나오리니 여호와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32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을 가리켜 이르시기를 그가 이 성에 이르지 못하며 이리로 화살을 쏘지 못하며 방패를 성을 향하여 세우지 못하며 치려고 토성을 쌓지도 못하고 33오던 길로 돌아가고 이 성에 이르지 못하리라 하셨으니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시라 34내가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였더라 35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36앗수르 왕 산헤립이 떠나 돌아가서 니느웨에 거주하더니 37그가 그의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경배할 때에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칼로 쳐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그들이 도망하매 그 아들 에살핫돈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28-37)
랍사게는 간교한 회유와 협박으로 계층간의 불화를 조장하고 저항 의지를 꺾으려 했습니다. 항복하면 좋은 땅과 안전을 선물할 것이라고 회유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앗수르의 손에서 살아남은 나라가 없었던 역사를 상기시키며 여호와를 의뢰하라는 히스기야에게 속지 말라고 위협합니다. 누구의 말을 따르시렵니까?
⑴ 히스기야의 말을 듣지 말라(28-35)
하지만 랍사게는 이런 요청을 무시하며, 더 크게 유다 말로 위대한 앗수르 왕의 말을 들으라고 외칩니다. 이 형식은 선지자가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는 형식과 동일한데, 이것은 앗수르 왕이 여호와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계속되는 말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과 상당히 유사한 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와 대조적으로 히스기야의 말에 속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그 이유는 히스기야가 너희를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히스기야가 여호와를 믿으라고 해도 듣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여호와가 앗수르 왕의 손에서 반드시 구원하실 것이라고 말해도 듣지 말라고 반복적으로 경고합니다.
대신 앗수르 왕의 말을 들으라고 권고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31절에서 앗수르 왕의 말을 그대로 전달합니다. 만일 항복하면 너희 포도와 무화과를 먹고 각기 우물물을 마실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함락 후 볼모로 끌고가고 성읍과 포도원이 완전히 파괴되는 것과 반대의 모습입니다. 또한 더 좋은 곳으로,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꿀이 가득한 지역으로 인도하겠다고 약속합니다.
이것은 신명기 8:78에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실 때 하신 말씀을 랍사게가 인용하면서 여호와께서 주신 땅보다 더 좋은 땅으로 앗수르 왕이 인도해줄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는 앗수르 왕을 믿으라고 하며 반복적으로 여호와와 히스기야를 믿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33-35절에서는 앗수르 왕의 손에서 자신의 땅을 구한 신이 없다는 사실을 실제 예를 들어가며 반복적으로 말합니다. 이제 히스기야 대신에 직접적으로 여호와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랍사게는 여호와가 앗수르 왕보다 무능하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앗수르 왕이 정복한 땅의 어떤 신도 앗수르 왕의 손에서 자신의 나라를 구원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경험적으로 보면 매우 설득력이 있습니다. 유다보다 강한 나라들과 도시들도 모두 멸망당했고 특히 같은 여호와를 믿은 사마리아도 앗수르에게 멸망당한 상황 속에서 여호와께서 유다를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신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랍사게는 이렇게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말로 예루살렘의 항복을 강요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를 믿는다는 것은 이런 논리와 통계와 합리적인 것을 넘는 일입니다.
나라가 흥하고 멸망하는 것이 여호와의 손에 있고, 전쟁의 승패가 여호와의 손에 있으며, 사람의 살고 죽는 것이 여호와의 손에 있다는 것을 믿으면서 여호와를 의지하면 주께서는 결코 그런 믿음의 사람을 버리지 않으시며, 이 모든 상황을 뛰어넘으실 것입니다.
⑵ 유다 백성의 반응(36-37)
유다 백성들은 이런 랍사게의 말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왕을 신뢰하고 그 명령을 따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랍사게의 이간질은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기 때문에 신하들은 옷을 찢고 히스기야에게 이 모든 사실을 알립니다.
우리 시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느끼는 지성’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세상을 읽는 감수성이 필요합니다. 애통의 언어가 필요하고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용도도 필요합니다. 교회의 교회됨을 유지하고 살려내기 위해서 시대를 분별하고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 영적 실력이 절실합니다.
<오늘의 말씀 요약>
랍사게는 앗수르 왕의 말을 들으라며 유다 말로 외칩니다.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히스기야의 말에 속지 말고, 항복하면 풍요롭게 살 수 있다고 합니다. 또 어느 신도 그의 땅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지지 못했다고 합니다. 유다 백성은 잠잠하고 신하들은 히스기야에게 이 말을 전합니다.
휘어졌으나 꺾이지 않는 신앙으로 다시 일어서기
▼ 열왕기하 18:26-37
앗수르의 침공에 대해 히스기야 왕과 유다 왕국이
어떻게 반응했는가를 보여주는 어제 오늘의 말씀은
오늘 우리시대에 재현되고 있는 영적 싸움에서
우리[내]가 어떻게 반응하고 대처해야 하는지
참 좋은 영적 법칙이자 원리로 받아 드리게 됩니다.
1. 어제는 실패했으나 오늘 다시 일어서기
히스기야는 유다의 지방 도시들이 앗수르의 침공을 받고
무너져가고 있다는 급보를 받았을 때 마음이 약해져서
앗수르 왕 산헤립에게 항복 의사를 전달하였고
많은 전쟁 배상금까지 바쳐야하는 굴욕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앗수르 군대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수도 예루살렘까지 함락하고자 침공해 왔을 때
히스기야는 생각을 달리 하게 되었습니다.
앗수르 왕에게 자신의 약함을 보였던 것을 후회하며
그리고 무리하게 전쟁 배상금을 받친 것을 후회하며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닌데 지례 겁을 먹고
스스로 무너지며 실수하고 실패했던 것을 후회했습니다.
그래서 앗수르 군대가 예루살렘을 향해
진격해온다는 급보를 받았을 때
이에 대한 철저한 방어 계획을 수립하게 되는데
오늘의 말씀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역대기에
더 자세한 이야기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대하32:1-8]
우선 앗수르 군대가 접근해 왔을 때
그들이 식수를 얻지 못하도록[대하32:3-4]
성안의 물이 성 밖으로 흘러가지 못하도록 차단하였고
성벽을 다시 점고하고 수리하여 든든히 하였으며
무엇보다 더 백성들의 마음이 앗수르 군대 앞에
약해지거나 흔들리지 않도록
온 군대와 백성들을 성문 광장에 모이게 하여
말로 위로하며 그들을 굳세게 무장시켜 주는데
이러한 히스기야의 모습은
어제의 비굴했고 나약했던 그가 아니라
어제의 실수와 실패를 딛고 서서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여 굳게 선 모습을 보여줍니다.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는 역대기의 말씀을 보면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선 그의 신앙이
눈물겨운 감동으로 가슴 깊이 닿아집니다.
너희는 마음을 강하게 하며 담대히 하고 앗수르 왕과
그의 군대로 인하여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하는 자가
저와 함께 하는 자보다 크니 ........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 하니 백성이
히스기야의 말로 인해 안심 하니라[대하32:7-8]
이처럼 히스기야가 연약하여 무너졌던 마음을
스스로 추스려 일으켜 믿음에 굳게 섰을 때에
그의 담대함은 곧 온 백성의 담대함으로 전이 되었고
앗수르 군대의 싸움 돋우는 자였던
랍사게의 어떤 위협적인 말이나 회유하는 말에도
백성들의 마음이 동요 되지 않고
오직 침묵 일관으로
히스기야와 뜻을 함께 함을 보여줍니다. [18:36]
어제 실패했고 무너졌으나 오늘 다시 일어서서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을 방비하며
백성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담대하게 일으켜 세워주는 히스기야의 모습은
어제 내가 영적 전투에서 패배하고 무너졌으나
오늘 다시 나를 일으켜
주님을 의지하므로 다시 굳게 서야할 것을 배웁니다.
주님 !
자신의 실패와 실수를 딛고 다시 일어서는
히스기야의 모습에서
나도 내가 실수하고 실패했을 때에라도
내가 다시 일어나야 하고
내가 또 일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봅니다.
넘어졌으나 다시 일어서고
휘어졌으나 결코 꺾이지 않는 신앙으로
나 자신을 주님 앞에 굳게 세울 수 있게 하옵소서.
묵상적용
2. 말의 기 싸움에 휘둘리기보다 침묵일관 하기
앗수르 군대의 전령 사신 랍사게는
이미 히스기야가 앗수르 왕 산헤립에게
항복 의사를 표시했고
무리한 전쟁 배상금까지 지불한 상태에서
수도 예루살렘의 성문은
쉽게 열려지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앗수르 군대가 예루살렘 턱 밑에 왔을 때
성문은 굳게 닫혔고
견고한 방어 태세를 보았을 때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게 되고
가능한 전쟁의 댓 가를 치루지 않고도
쉽게 예루살렘 성문을 열게 하는 방책을 쓰는데
그것은 히스기야 왕과 백성들의 마음을 이간 시켜
백성들이 히스기야 왕을 믿지 못하게 하고
성안에서 반란을 일으켜
성문을 열게 하려는 방책 이었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 왕의 지시에 따라
랍사게의 어떤 말에도 흔들리지 않고
침묵 일관하는 백성들의 모습에서
비록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 앞에 서있으나
지도자를 중심으로 굳게 서있는 저들의 모습에서
결코 성벽은 무너지지 못할 것이며
성문은 열리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랍사게의 온갖 위협과 회유하는 말처럼
때로 내 마음을 무너뜨리려 하고
또 때로는 우리의 신앙 공동체를 무너뜨리려는
온갖 시험과 시련들이 닥쳐 올 때가 많이 있는데
이럴 때 일일이 말의 기 싸움에 휘둘리는 것보다
하나님과 지도자를 신뢰함으로
침묵 일관하는 것이
주님 앞에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며
승리는
반드시 하나님을 의지하고 침묵함으로
자신을 지키는 자들에게 주시는
믿음의 보상이자 선물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어지는 말씀에서
백성들의 침묵과 히스기야의 기도는
하나님께 감동으로 닿아졌으며
그 밤에 하나님께서
단지 천사 한 명만으로도
예루살렘 성 밖에 진치고 있었던
앗수르 군대 십팔만 오천명을 멸하여
물러가게 한 것을 보여 줍니다.[19:35]
주님 !
마귀가 사람들의 입을 통하여
독을 묻힌 말의 화살을 쏘아댈 때에
믿음의 방패로 막아내며
오직 침묵 일관함으로
나를 위해 대신 싸워주시고
승리하게 하시는
주님을 바라볼 수 있게 하옵소서.
그러자 힐기야의 아들 엘리야김과 셉나와 요아가 랍사게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종들이 아람 말을 알아들으니 우리에게 아람 말로 말씀하시고
유다 말로 하지 마옵소서. 성벽에 있는 백성들이 듣고 있나이다.”
랍사게가 대답했습니다. “내 주인이 나를 보내실 때 이런 말을 너희의 주인과
너희만 들으라고 보내신 것이냐? 성벽 위에 있는 저 사람들도 너희와 함께
자기의 대변을 먹고 자기의 소변을 마시게 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냐?”
그리고 나서 랍사게가 유다 말로 크게 외쳤습니다.
“위대하신 대왕 앗수르 왕의 말씀을 들으라.
왕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속지 말라.
그는 결코 너희를 내 손에서 구원해 내지 못하리라.
히스기야가 너희를 속여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고 말할지라도 듣지 말라.
여호와가 반드시 우리를 건지실 것이고,
이 성읍이 앗수르 왕의 손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지라도
너희는 히스기야의 말에 귀 기울이지 말라’.
앗수르 왕께서 이르시기를 ‘너희가 내게 항복하고 내게로 나오면,
너희는 각각 자기의 포도나무와 자기의 무화과나무에서 난 열매를 따 먹게 될 것이며,
각기 자기가 판 샘에서 물을 마시게 될 것이라.
그러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의 땅과 같은 땅, 곧 곡식과 새 포도주가 나는 땅,
빵과 포도원이 있는 땅, 감람(올리브)기름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너희를 데려갈 것이라.
만일 너희가 항복한다면 죽지 않고 이런 땅에서 살게 될 것이라.
히스기야가 너희에게 여호와께서 우리를 건지시리라 하여도 그 말을 듣지 말라.
민족의 신들 중에서 앗수르 왕의 손에서 가지의 땅을 구원한 신이 있었느냐?
하맛과 아르밧의 신이 어디 있으며, 스발와임과 헤나와 아와의 신들이 어디 있느냐?
그들이 내 손에서 사미리아를 구해 냈느냐?
민족의 모든 신들 중에 누가 그의 땅을 내 손에서 건졌기에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내 손에서 건져낸다는 말을 하느냐?’”
그러나 백성들은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있었습니다.
그에게 아무런 대답도 하지 말라는 왕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왕궁 책임자(궁내대신) 힐기야의 아들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사관(史官, 역사기록관) 아삽의 아들 요아가
울분을 참지 못하고 옷을 찢으며 히스기야에게 돌아와서 그 말을 전했습니다.
예루살레을 포위한 채 히스기야와 백성들을 협박하는 앗수르의 장군 랍사게가 하나님과 왕을 모욕하고 업신여기는 말을 하지만 왕의 지시를 받은 백성들은 침묵으로 대응하고 있다.
히스기야의 신하들은 랍사게와 외교적 협상을 벌리려 했지만 랍사게는 의도적으로 백성들이 들으라고 당시 국제 통용어인 아람어가 아닌 히브리말로 전쟁의 참혹함을 경고하면서 왕과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말라고 선동하고 있다.
지금도 세상은 믿음으로 살고자 하는 성도들을 향해 세상의 문제를 신앙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믿음을 버리라고, 하나님을 따르지 말라고 위협을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위협에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을 더욱 굳건히 하여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위협의 목소리를 높이던 랍사게는 이번에는 유다 백성들에게 앗수르에 항복하면 땅도 주고 농사도 지을 수 있게 해줄 것이며 모든 것을 풍족하게 누릴 수 있다고 하며 유혹하고 있다.
세상은 때로는 두려움으로, 때로는 달콤함으로 우리의 신앙생활을 방해하게 된다.
예수님에게 천하만국 영광을 보이며 자기에게 경배하라고 유혹하던 사탄은 오늘 우리에게도 이 세대의 풍조와 현실을 따를 때 더욱 풍족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유혹하지만 이런 유혹과 회유를 믿음과 말씀으로 물리쳐야 한다.
백성들은 랍사게의 위협과 회유에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물론 앗수르의 위협과 유혹 앞에 유다 백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없기도 했지만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히스기야 왕의 명령을 존중하고 순종한 것이다.
우리는 매번 바뀌는 현실에 맞추어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영원히 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현실의 절박한 상황에서도 신실한 믿음의 결단을 해야 한다.
우리는 버거운 현실을 믿음으로 살아내야 하기에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신앙과 현실 사이 갈등이 심할수록 우리는 세상의 소리보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두려움과 근심 걱정이 몰려올 때에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적극 반응하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