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51). 전어회와 친구들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구연식
농경사회는 모든 농사일이 개인의 노동력에 의존하던 시기였다. 더구나 수확기에는 일손이 모자라서 부지깽이도 한몫을 한다는데 가을 농사일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추수 전에 집을 나간 며느리가 있었을까? 그 며느리를 집으로 불러들이는 방법은 전어구이의 냄새가 산 넘어 다른 동네까지 풍겨 전어를 먹고 싶은 며느리가 다시 시댁으로 돌아오게 했다니, 그 전어가 가을의 별미 아니겠는가?
나는 50여 년간 대학동기부부모임을 격월제로 주로 전남지역에서 가졌는데 이번에는 전북지역에서 갖기로 했다. 그래서 점심은 금마저수지 아래 ‘물머리 집’에서 새우와 동자개 매운탕을 주문하고 찹쌀 청주를 반주로 곁들여 거나하게 마셨다. 전남지역에서는 쉽게 올 수 없는 마한문화권지역이라 미륵사지를 중심으로 관광에 나섰다.
차량으로 5분 거리인 미륵사지 국보11호 미륵탑을 관람했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고무신이 닳도록 자주 왔던 곳이어서 신기한 것도 없어 옛날 추억들이 떠오를 뿐이었다. 다시 국보 289호 왕궁5층석탑으로 이동했는데 여자들은 인근 찻집에서 남자들이 올 때까지 차를 마시며 유리창 너머로 탑을 바라보고 있었다. 따가운 적외선 햇볕보다는 시원한 청량음료가 미용과 건강에 좋은 것 같았다. 여자들은 스타킹 하나 고르는데도 온 백화점을 몇 바퀴 돌면서 쇼핑을 한다. 백화점 구석에서 기다리는 남자들의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문화재 관람에만 열중한 오늘의 남편들과 대조가 된다.
다시 일행은 사적 87호인 백제 무왕과 선화공주 능으로 추정하는 익산 쌍릉으로 가고 있다. 이 길은 시골 들녘과 야산 비탈을 거쳐야 한다. 만발한 길가의 코스모스는 먼 곳에서 온 친구 내외들을 환영한다. 고추잠자리들도 질세라 차창 앞을 날갯짓으로 손짓하고 있다. 선화공주와 서동 왕자의 전설을 떠올리면서 어느덧 쌍릉에 도착했다. 쌍릉을 한 바퀴 도는데 숲 속에는 토실토실한 알밤이 여기저기 떨어져서 서동 왕자가 선화공주에게 갖다 드리라는 건지, 찾아온 관광객의 선물하라는 것인지 쉽게 판단이 서지 않았다.
차는 전어회를 먹으러 오늘 여행의 최종 목적지인 군산횟집으로 갔다. 한 친구가 군산 장항 간에 새로 개통된 다리를 가보자고 하여 이미 개통된 하굿둑을 건너서 장항 해변 도로를 일주하여 새로 개통된 ‘동백교’에 들어섰다. 오후 한나절이 되어서 태양의 빛은 서해를 반사경으로 그 빛이 차창으로 바로 비쳐서 실눈을 떠야 볼 수 있었다. 다리 난간에 앉아 있는 갈매기들을 향해 소리를 지르고 손짓을 해도 갈매기들은 하루도 수십 번이나 그런 행동을 많이 보아서인지 저 할 짓만 계속하고 있다. 드디어 비린내 물씬 풍기며, 파도 소리 뱃고동 소리로 왁자지껄한 해망동 횟집 단지에 도착했다.
횟집 단지 2층으로 올라가니 군산 재직 시절 단골집 주인아주머니는 손을 크게 벌려 금방이라도 안아줄 기세로 반갑다는 인사를 온몸으로 했다. 전어회를 주문하니 주방 아주머니는 머리와 꼬리 그리고 비늘과 내장을 제거하고 난초잎처럼 가늘고 뾰쪽하게 포를 떠서 회 접시에 국화 꽃잎처럼 가지런하고 예쁘게 담아 왔다. 너무 예뻐서 젓가락으로 그 모습을 헝클기가 멈칫거려졌다. 술 좋아하는 친구는 전어회를 안주로 술을 마시니 그리도 좋은지 권주가 이상의 목소리로 다른 사람은 이야기할 기회는 주지도 않고 흥겨워하니 주위 친구 내외들도 덩달아 어깨를 들썩인다.
횟집 서쪽 유리창은 따가운 햇볕을 가리기 위해서 녹색 햇빛 차단지로 발라 놓았는데 어떤 짓궂은 손님이 담뱃불로 지져놓은 동그란 구멍으로 햇빛이 들어와서 거의 바닥이 나는 전어회 접시를 비추었다. 친구들은 전어회는 실컷 먹었으니 전어구이 맛을 보자고 했다. 전어구이를 주문하여 먹으려니 냄새는 집 나간 며느리가 다시 돌아올 만하기도 한데 앞에 먹은 전어회 맛 까닭인지 배가 부른 탓인지 남자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에도 여자들은 여기서 저녁 식사를 때울 생각인지 기어이 해물탕에 저녁 식사를 하자고 했다.
벌써 항구의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깜박거리는 등댓불은, 나이 드신 어른들에게 밤이 더 깊어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시라고 하는 것 같았다. 광주 친구들은 서해안 고속도로로, 나는 전군도로로 핸들을 돌려 다음에 만날 것을 기약하며 아쉬운 작별을 했다. (2019. 9.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