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관글>
唐陸游詩一首癸卯春月何慶泉
(당 육유 시 일수 계묘 춘월 하경천)
당나라 육유의 시 한 수를 계묘년 봄날에 하경천이 쓰다.
작가: 何慶泉(하경천)
약력: · 산동성 서예가협회 회원
· 일조시 서예갸협회 회원
· 거현 서예가협회 주석단 성원, 판공실 주임
冬夜讀書示子聿(동야독서시자율)
겨울밤 공부하며 아들 율에게 가르치다.
- 陸游(육유)
古人學問無遺力(고인학문무유력)
옛 사람은 학문함에 온 힘을 다했고
無遺力(무유력): 힘을 남가지 않는다는 말로,
곧 온 힘을 다하다는 뜻.
少壯工夫老始成(소장공부로시성)
젊어서 공부하여 늙어서야 비로소 이루었네.
少壯(소장): 젊고 기운참.
紙上得來終覺淺(지상득래종각천)
책에서 얻는 건 끝내 부족하다는 걸 깨닫거니
紙上(지상): 신문 등의 지면. 여기서는 책으로 풀이함.
淺(천): (지식, 학문 등이) 천박하다. 부족하다.
絶知此事要躬行(절지차사요궁행)
이 일을 진정 알려면 몸소 이행해야 하리.
躬行(궁행): 몸소 이행하다.
要(요): 할 것이다.
<작가 소개>
남송 시인(詩人). 자(字) 무관(務觀务观). 호 방옹(放翁).
지금의 저장성(浙江省) 사오싱시(绍興市, 소흥시)인 월주(越州) 산인(山陰, 산음) 사람이다. 북송과 남송의 교체기에 태어났으며, 남송이 중원 지역을 금(金)에 내어주고
굴욕적인 화친책을 통해 겨우 명맥을 유지해 가던 시기에 일생토록 금에 대한
항전과 실지(失地)의 회복을 주장하며 살았다.
그의 불굴의 기상과 강인한 투쟁의식은 그의 수많은 우국시를 통해 끊임없이
표출되었으며, 그 헌신성과 진정성으로 인해 오늘날까지 중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우국시인(憂國詩人)으로 추앙받고 있다. 또한 일만여 수에
달하는 시를 남기고 있는 중국 최다(最多) 시인으로서의 명성도 지니고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국가급 중국문화유산총람)
<덧붙임>
육유를 유명하게 만든 애절한 사랑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는 사랑하는 연인이었던 당완(唐琬)과 혼인을 하였는데
며느리에 대한 어머니의 구박과 강요로 이혼을 하게 되고
왕씨 여성과 재혼을 하게 된다. 당완도 재가하여 조사정(趙士程)이라는
사람의 부인이 되었다. 하지만 사랑을 이루지 못한 두 사람이 10년 뒤
우연히 만나 서로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심원(沈園)의 벽에 시(詩)로써 화답했으며
이일이 있은 지 얼마 후 당완은 죽고 말았다.
그때 심원의 담벼락에 남긴 시(詩)가 유명한 채두봉(釵頭鳳)이다.
이후에도 육유는 당완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회한을 많은 시로 남겼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두산백과)
※ 제20회 한·중(평택-일조) 서화문화교류전 출품작
[출처] 冬夜讀書示子聿|작성자 farh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