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프레데릭 바지유 - 전장에서 숨진 화가

[얄리2]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예술가들의 이야기는 늘 가슴을 아리게 합니다. 오래 사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예술적인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만큼 살았다면 사람 사는 세상이 좀 더 풍요로웠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남습니다. 병으로 일찍 세상과 작별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화가나 문학가들에게는 폐결핵이,

음악가에게는 매독이 눈에 자주 보입니다. 그런데 프랑스의 프레데릭 바지유 (Frederick Bazille /1841~1870)는

전쟁에서 전사한 경우입니다. 화가이기 전에 프랑스 국민으로 살다 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자화상    Self Portrait / 1865~1866

바지유는 많은 초상화를 남겼습니다. 고개를 외로 돌린 바지유의 눈을 보다가 그의 가슴 속에 끝없이 타오르는

불이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붓을 쥔 왼 손 등의 시퍼렇게 솟아 오른 핏줄은 마음은 따뜻했고

행동은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던 그의 성격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알제리 여인들     The Women of Algiers /180cm x 229cm / 1834 (들라크루아)

바지유는 프랑스 남부 몽펠리어의 부유한 와인 판매상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프로테스탄트였던 그의 집안은

예술가들을 후원하기도 했는데, 어느 날 예술품 수집가였던 알프레드 부뤼야스의 집에서 바지유는 그림 두 점을

보고는 미술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 작품은 들라크루아의 ‘알제리 여인’과 ‘사자 굴의 다니엘’이었습니다.

타고 난 재주와 연결되어 있는 도화선에 불이 붙은 것이죠.

비너스의 탄생   The Birth of Venus / 130cm x 225 cm / 1863 (카바넬)

  

누워 있는 누드     Reclining Nude / 70cm x 180cm / 1864

카바넬은 바지유와 같은 고향인 몽펠리어 출신입니다. 저 혼자만의 생각이지만 두 작품이 너무 비슷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고 제작 연대도 1년 정도 차이가 나서 바지유가 이미지를 차용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도 뭐 ---.

나중에 그가 사실주의적인 인상파 화가라는 평도 받게 되는데 초기 그의 작품은 확실히 사실주의적인 느낌이

강합니다.

그림 공부를 하겠다는 바지유에게 부모는 한 가지 조건을 내 겁니다. 그림공부와 함께 의학 공부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화가의 길은 안 된다고 하지 않은 그의 부모님도 대단합니다. 18살부터 시작된 바지유의

의학 공부는 1862년 파리로 자리를 옮겨 계속됩니다. 의학 공부를 하는 한편 바지유는 스위스 출신의 화가

샤를 글레이어의 화실에 입학합니다. 글레이어는 화실의 학생들에게 빛의 변화에 따라 변하는 야외에서 그림

그릴 것을 독려했기 때문에 그의 화실은 인상파 화가들의 요람 같았습니다.

핑크 드레스   The Pink Dress / 1864

여름 저녁 풍경을 앞두고 앉은 여인의 옆 선이 드레스의 무늬로 흘러 내려 부드럽습니다. 그늘 속 여인이 바라

보는 건너편은 정적에 쌓여 있습니다. 뜨거움이 서서히 사라지는 저녁, 미풍이라도 살짝 불었으면 좋을 시간

입니다. 바지유의 풍경 묘사는 명징합니다. 그리고 그 풍경에 인물이 배치됩니다. 때문에 인물들은 대개 조각

같은 모습이거나 선명한 윤곽선을 가지고 있는데 바지유 작품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바지유는 화실에서 르노와르, 모네 그리고 영국 출신의 시슬리를 만나게 됩니다. 뜻이 맞은 네 젊은이는 곧

친구가 되고 다른 학생들과는 ‘따로’ 놉니다. 그들은 자주 퐁텐블루 숲으로 그림을 그리러 나갔습니다.

어느 곳에도 바지유가 파리에서 의학 공부를 열심히 했다는 자료가 없는 것을 보면 애초 그는 의학 공부에

관심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보다 더 똑똑한 부모는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간이 야전 병원       The Improvised Field Hospital / 1865

침대에 누워 있는 사람은 모네입니다. 퐁텐블로 숲으로 그림을 그리러 나갔다가 다리를 다친 모네가 샤이의

여관에 누워 있는 모습을 묘사한 것입니다. 다친 다리 부분이 붉게 되었는데 그 위에 물통에서 찬물이 떨어져

상처 부위를 식히고 있습니다. 물론 물이 떨어지는 장치는 바지유의 솜씨입니다. 누워 있는 모네나 그 모습을

그리는 바지유나 유쾌합니다.

‘움직이지마, 좀’  

‘너는 아픈 나를 그리고 싶냐?’

옥신각신 하는 두 젊은이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합니다.

바지유가 파리로 이사 온 다음 해, 부활절 기간을 네 명의 젊은이는 퐁텐블루 숲에서 야외 풍경을 그리며

보냅니다. 숲 속으로 퍼져 갔을 젊은이들의 웃음소리와 붓이 캔버스 위를 달리는 사각거리는 소리 그리고

새소리가 눈 앞에 그려집니다. 싱그러운 젊음이죠. 그리고 그 해 글레이어의 화실이 문을 닫습니다.

그물을 든 어부     Fisherman with a Net /134cm x 83cm / c.1868

화면 전체에 아주 건강한 생명력이 넘칩니다.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렸지만 남자는 힐끗 우리를 쳐다보고

있습니다. 그물을 막 던지려고 하다가 들킨 듯한 모습인데 눈빛에서는 당혹스런 모습이 느껴집니다. 그림 속

사내를 보던 아내가 엉덩이를 한 번 때려 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아줌마라서 용서하기로 했습니다. 아주 멋있는

히프를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 작품은 출품 당시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당시 상황에서 말이 없었다면

오히려 이상하겠지요. 풍경화에 사람을 얹어 놓은 느낌이 나는데 바지유 작품에서 볼 수 있는 묘사 방법입니다.

바지유는 결혼을 하지 않고 세상을 떠났는데 그와 친하게 지낸 여인의 이름이라고는 같은 인상파 화가 베르뜨

모리조가 전부입니다. 그래서 바지유가 게이였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남자 친구들과 함께 지내면 동성연애자가

되는 건가요? 진실을 알 수는 없지만 사람들 생각하는 것이 ----- 그렇습니다.

마을 풍경      View of the Village /130cm x 89cm / 1868

그림 속 풍경은 방금 맑은 물에 잘 씻어 널어 놓은 듯 깨끗합니다. 햇빛을 받아 빛나고 있는 건물과 나무

그늘 속 여인의 모습은 앞서 본 작품 ‘핑크 드레스’와 같은 느낌입니다. 바지유는 같이 작업을 한 르노와르와

모네와의 영향도 받았지만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마네였습니다. 모네가 마네를 존경하듯이 바지유도

마네를 존경했는데 그의 자유롭고 강렬한 붓터치는 마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1864년 의사 시험을 보고 그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세느강이 바다에 닿는 항구도시 옹플뢰르에서 마네와 함께

여름을 보냅니다. 옹플뢰르는 인상파 화가들이 즐겨 찾는 도시였는데 날씨의 변화에 따라 변화하는 시가지와

강의 모습이 그들을 매료시켰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화장    La Toilette (The Toilette) /132cm x 127cm /1870

외출 준비를 하는 것이겠지요. 아주 도발적인 느낌이 드는 이 작품은 1870년 살롱전에 출품되었지만 거절을

당합니다. 구성이나 주제는 고전적이었지만 중앙에 앉은 눈부신 여인의 몸과 자세가 심사위원들의 가슴과

머리를 두드렸겠지요. 이해할 수 있습니다. 흑인 여인과 붉은색 벽지로 인해 여인의 몸에서는 분가루가 묻어

날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1864년 가을 의사 시험에 낙방한 바지유는 본격적으로 미술에 전념합니다. 집안에서도 허락을 했는데 자식을

이기는 부모는 프랑스에도 없는 모양입니다. 금전적으로 풍요로웠던 바지유는 가난한 친구들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의 화실에는 모네가 머물기도 했고 르노와르가 머물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데

필요한 재료들도 같이 사용을 하게 했다니까 통도 크고 가슴도 따뜻했던 바지유였습니다.

  

콩다인 9번가에 있는 화가의 화실      The Artists Studio -9 Rue de la Condamine /1870

바지유의 화실에 모인 친구들입니다. 이젤 앞에 선 사람은 마네입니다. 그리고 모네가 그의 뒤에서 담배를 물고

있습니다. 왼쪽 계단에서 아래를 바라보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람은 소설가 에밀 졸라이고 테이블에 앉아서

졸라를 쳐다 보고 있는 사람은 르노와르입니다. 오른쪽 피아노 앞에 앉은 사람은 ---- 누구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젤 오른쪽, 마네와 이야기를 나누는 키 큰 남자가 바지유인데 나중에 마네가 이 작품에 직접 그려 넣은 것

입니다. 그림이자 당시의 기록이죠. 제가 이 그림에 붙인 제목은 ‘젊은 날의 초상’이었습니다.

파리에 인접한 베티놀스에 있던 바지유의 화실은 꽤 넓었습니다. 때문에 그의 화실은 인상파 화가들의 ‘소굴’

같이 되었는데 피사로, 세잔 그리고 때때로 쿠르베도 화실을 방문하곤 했습니다.

인상파의 초기 이름이 베티놀스파 (Batignolles School)였는데, 여기에서 기인한 것이죠.

가족 친목회   The Family Reunion / 1867

야외 인물화 분야의 선구적인 사례가 되는 이 작품의 모델들은 바지유의 실제 가족들과 친구들입니다. 모임에

참석한 기념사진 같죠? 인물의 정교한 묘사와 풍부한 색이 어우러진 이 작품은 사실주의적 인상파 스타일의

특징을 모두 갖추고 있는 작품으로도 평가를 받습니다. 단체 사진을 찍을 때 딴 곳을 보는 사람들이 꼭 있는데

이 그림에도 있군요. 멋있어 보입니다. 기회가 오면 저도 꼭 다른 곳을 보고 찍혀봐야겠습니다.

1866년 살롱에 작품 두 점을 출품했는데 생선을 묘사한 정물화만이 당선되었습니다. 이어 1869년, 바지유에게

어느 정도 성공을 안겨주었고 그의 최고 걸작이라고 불리는 ‘가족 친목회’가 다시 살롱전에 입선되었습니다.

이 해 같이 출품한 모네의 작품은 낙방했습니다. 바지유는 자신의 당선이 그다지 기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실수’로 모네의 작품을 제치고 자신이 당선되었다고 말하는 바지유는 마음씨도 그만이었던 것 같습니다.

정원의 여인    The Woman in the Garden /1866-1867 (모네)

바지유가 모네를 돕기 위해 구입한 작품입니다. 햇빛과 그늘 그리고 그림자와 반사가 절묘하게 묘사된 작품이죠.

마네와 르노와르의 이야기를 쓰고 싶은 마음이 불뚝 솟아 오르지만 스스로 달래봅니다.

‘너 아니어도 많아—‘

실제로 모네에 대한 바지유의 우정은 대단했습니다. 모네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하자 그는 모네의 작품을

할부로 구입해 주었습니다. 또 인상파 화가들은 카페 게르브와 (Café Guerbois)에 자주 모여서 열정적인 토론을

벌이곤 했는데 술값을 낸 사람은 주로 바지유였습니다. 카유보트와 함께 그는 인상파 화가들의 든든한 경제적

후원자였습니다. 돈을 제대로 쓸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한 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올랭피아   Olympia /130cm x 190cm / 1863 (마네)

  

모란을 든 아프리카 여인     African woman with Peonies

바지유가 가장 존경했던 사람은 마네와 쿠르베였습니다. ‘모란을 든 아프리카 여인’은 마네의 ‘올랭피아’에 대한

바지유의 헌사입니다. 마네의 ‘올랭피아’가 수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었고 지탄을 받았지만 바지유는 존경하는

마네의 작품을 다시 화폭에 옮겼습니다. 이 작품은 마네의 ‘올랭피아’ 중에서 꽃을 든 흑인 여인을 하나의

주제로 삼아 그린 것입니다. 붓도 보통 사용하는 것 보다 훨씬 두꺼운 것을 사용했는데 마네의 강한 붓터치에

대한 존경의 표시였습니다.

1870년 보불전쟁이 발발하고 한 달 뒤 바지유는 주아브 보병연대에 자원 입대합니다. 보불 전쟁 당시 파리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피신하거나 영국으로 탈출한 화가들이 많았는데 바지유의 피는 뜨거웠던 모양입니다.

훈련이 끝나고 첫 전투에 나간 곳은 본라롤랑 이라는 곳이었습니다. 전투 중 지휘관이 부상을 당하자 바지유가

그 역할을 대신 맡게 되었습니다. 바지유는 독일군을 급습할 계획을 세우고 부대를 이끌었지만 기습은 실패하고

날아 온 2발의 총알에 맞아 숨을 거둡니다. 참 허망한 상황입니다. 며칠 뒤 전쟁터를 찾은 바지유의 아버지가

그의 시신을 거두어 고향 몽펠리어에 안장합니다. 바지유의 나이 29세였습니다.

여름 한 때 (목욕하는 사람들)     Summer Scene (Bathers) / 1869

앞서 잠깐 바지유가 혹시 게이가 아니었을까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는데 이 작품을 보면 그런 상상도

할 수 있겠다 싶습니다. 그림 속 인물들은 부드러움부터 격렬함까지 남자가 가지고 있는 모든 속성을 다 보여

주고 있습니다. 더구나 아주 근사한 몸매의 소유자들입니다. 물과 숲 그리고 햇빛은 고전주의 작가들이

숲 속의 님프들의 모습을 묘사할 때 자주 사용하던 배경이죠. 그 자리에 남자들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저도

예전에는 저 남자들 중의 한 명 같았 ----- 겠지요.

바지유는 이 작품을 그리기 위해 그의 화실 안에 나무를 옮겨오고 물 웅덩이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대단한

스케일입니다.

점쟁이    The Fortune Teller / 61cm x 46cm / 1869

많은 사람들은 바지유가 오래 살았다면 초기 인상파의 가장 뛰어난 화가 중의 한 명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 하지만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아주 헛된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조국을 위해 전장으로 떠나 다시 돌아오지 못했지만 그의 그림과 친구들 사이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는 남아

저를 숙연케 합니다.

바지유 선생님, 지금 계신 곳은 전쟁이 없죠? 그렇죠?

[발칙한 상상]

귀중한 정보 감사합니다.
그림이 정말 강렬하네요. 인물이 강조되면서 뒤의 배경 또한 선명합니다.
특히 '마을풍경'이라는 그림은 여인의 초상도 아름답고 강렬하지만 뒤의 배경도 알프레드 시슬리가 머물던 모레-쉬르-누앙처럼 평화롭고 아름답습니다.
저는 그림은 잘 모르지만 아침부터 눈 호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