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의 엔진은 두 가지의 상반된 속성을 가지고 있다. 한 가지는 차가움이고, 나머지 하나는 뜨거움이다. 이렇게 두 가지의 상반된 속성을 갖는 이유는 금속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증기기관으로부터 시작된 엔진의 역사이래, 인류는 항상 금속으로 엔진을 만들어 왔다. 최근에는 재료역학의 발달로 인해, 금속 외의 다른 합성 재료를 사용하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지만, 여전히 지구상의 모든 엔진의 주류는 금속이다. 강철과 알루미늄 등의 금속은 엔진이 잠에서 깨어난 시점부터 가동 시간 내내 발생하는 고열과 마찰 등의 모든 부담을 감당할 수 있으며, 대량생산에도 적합하기 때문이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차가우면서도 뜨거운 자동차의 심장, 엔진의 세계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 본 기사에서 다룰 수많은 자동차의 엔진들 중 그 서른 아홉 번째 이야기는 현재 페라리의 고성능 스포츠카들을 비롯하여 마세라티, 알파 로메오 등에도 사용되고 있는 V형 8기통 터보 엔진에 대한 이야기다. 이 엔진은 ‘F154’로 불린다.
터보차저로 무장한 21세기형 페라리 V8
2013년부터 생산이 시작된 페라리 F154는 1987년 등장한 페라리의 전설적인 슈퍼카, ‘F40’ 이래 페라리가 26년 만에 내놓은 양산형 V8 터보 엔진이다. 2010년대 들어 날로 강화되어 가고 있었던 배출가스 총량 등의 환경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나타난 ‘다운사이징’ 경향과도 맞닿아 있는 엔진이기도 하다.
F154는 사실 하나의 엔진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엔진을 기반으로 여러 변형들이 존재하는 ‘제품군’ 내지는 ‘계열’에 가까운 개념이라 할 수 있다. F154 계열의 엔진들은 다양한 변형이 존재하며 이 변형들은 페라리를 비롯하여 마세라티와 알파로메오 일부 차종에도 사용되고 있다.
F154 계열의 엔진들은 공통적으로 90도의 뱅크각(실린더와 실린더 사이의 각도)와 86.5mm의 실린더 보어(내경)를 갖는다. 실린더 헤드와 블록은 모두 알루미늄으로 제작된다. 실린더 헤드는 실린더 당 4밸브에 DOHC(Double Overhead Cam) 방식을 취하며 캠 구동은 타이밍 체인으로 이루어진다. 연료의 공급은 직접분사 방식을 채용하고 있으며 가변밸브타이밍 기구를 채용하고 있다. 배기량은 V8 사양 기준으로 약 3.8~3.9리터(3,797~3,902cc)의 배기량을 갖는다.
또한 F154는 기본적으로 터보차저를 사용하는 과급엔진으로서 개발되었다. 터보차저는 병렬 트윈스크롤식 터보차저로, 일본 IHI(Ishikawajima-Harima Heavy Inderstries)에서 공급한다. 트윈스크롤 터보차저는, 하나의 터빈을 가지면서 서로 다른 크기를 가진 두 개의 배기가스 유입 경로가 설치된 형태의 터보차저로, 배기가스의 부족에 따른 터보 랙(Turbo Lag) 현상을 억제하면서도 두 개의 터빈을 사용하는 시퀀셜 방식에 비해 중량과 비용 면에서 유리하다.
페라리 F154는 마세라티에 공급되는 사양과 페라리가 직접 사용하는 사양이 서로 다르다. 마세라티 사양의 F154는 통상적인 웨트 섬프(Wet-Sump) 윤활 방식과 크로스플레인(Crossplane) 크랭크샤프트를 사용한다. 웨트 섬프는 가장 일반적인 윤활 방식으로 엔진 하부의 오일 팬에 엔진오일이 고여 있고 이를 크랭크 등을 이용해 차 올려서 실린더 내부를 윤활한다. 크로스플레인 크랭크샤프트는 축을 중심으로 크랭크가 +자형으로 배치된 크랭크샤프트를 말한다. 진동 억제에 유리하여 통상적인 자동차용 V형 엔진들에 가장 널리 사용되는 방식이다.
페라리에서 사용하는 F154는 마세라티 사양과는 피스톤 스트로크(행정 길이)가 다르다. 마세라티 사양의 F154 AM의 스트로크는 80.8mm인데 반해, 페라리가 사용하는 F154 계열 엔진들의 스트로크는 82.0~83.0mm이다. 엔진 윤활은 웨트 섬프가 아닌 드라이 섬프(Dry-Sump)방식을 사용한다. 드라이 섬프는 경주용 자동차에서 주로 사용되는 방식으로, 엔진 하부의 오일 팬에 엔진오일이 고여 있는 웨트 섬프와는 달리, 엔진오일을 별도의 탱크에 저장한다. 그리고 이를 오일펌프로 직접 실린더 내에 공급한다. 드라이 섬프 방식은 오일 팬이 극단적으로 작아져서 엔진을 낮게 배치할 수 있고 급격한 코너링 등의 기동상황에서도 엔진오일이 팬 한쪽에 쏠리는 현상이 없이 엔진오일의 공급량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어 경주용 자동차나일부 초고성능 자동차에 사용된다.
크랭크샤프트는 크로스플레인이 아닌, 플랫플레인(Flatplane) 크랭크샤프트를 사용한다. 플랫플레인 크랭크샤프트는 축을 중심으로 크랭크가 -자형으로 배치된 크랭크샤프트를 말한다. 플랫플레인 크랭크샤프트는 진동 상쇄에 불리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고회전과 엔진 응답성 향상에 유리하여 경주용 자동차나 일부 초고성능 자동차들에 사용된다.
페라리 F154를 가장 먼저 사용한 곳은 본가가 아닌, 마세라티였다. 페라리 F154를 품은 첫 차는 2013년에 등장한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의 6세대(현행) GTS 모델이다. 콰트로포르테 GTS의 엔진은 ‘F154 AM’이라는 코드명으로 분류된다.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 GTS에 탑재되는 F154 AM은 3.8리터(3,799cc)의 배기량으로 530마력/6,700rpm의 최고출력과 72.4kg.m/2,000rpm에 달하는 최대토크를 발휘한다. 최근에는 SUV 모델 르반떼(Levante)에도 본 엔진을 탑재한 ‘르반떼 GTS’와 ‘르반떼 트로페오(Trofeo)’가 등장했다. 르반떼 GTS의 F154 AM은 550마력, 르반떼 트로페오의 F154 AM은 590마력의 최고출력을 낼 수 있도록 만들어진다.
콰트로포르테에 이어 F154를 품은 차는 2014년에 등장한 페라리 ‘캘리포니아 T’다. 캘리포니아 T는 페라리 F40 이래 20여년 만에 등장한 터보 로드카다. 캘리포니아 T에 탑재된 ‘F154 BB’는 82.0mm의 스트로크를 가진 총배기량 3,855cc(3.8리터) 엔진으로, 560마력/7,500rpm의 최고출력과 77.0kg.m/4,750rpm에 이르는 최대토크를 발휘한다. 이 엔진은 약간의 개수를 거쳐 2017년 등장한 ‘GTC4 루쏘(Lusso) T’에 ‘F154 BD’라는 이름으로 채용되었다. GTC4 루쏘 T의 심장인 F154 BD는 610마력/7,500rpm의 최고출력과 77.5kg.m/3,000rpm에 달하는 최대토크를 발휘한다.
그리고 이 엔진은 2018년 캘리포니아 T의 후속 모델로서 등장한 포르토피노(Portofino)에도 탑재된다. 포르토피노의 F154는 기존 사양에서 또 한 차례 개량된 사양의 F154 BE다. F154 BE는 600마력/7,500rpm의 최고출력과 77.5kg.m/3,000~5,250rpm에 이르는 최대토크를 발휘한다.
하지만 페라리 F154 계통 엔진의 진정한 꽃은 따로 있다. 바로 2015년에 등장한 페라리의 퓨어 스포츠카, ‘페라리 488 GTB’에 사용되는 ‘F154 CB’야말로 페라리 F154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F154 CB는 스트로크 83.0mm 사양으로, 3,902cc(3.9리터)의 총배기량을 가져, F154 계열에서 가장 큰 배기량을 가진 엔진이다. 또한, 페라리 488 GTB의 이름은 약 488cc 정도인 이 엔진의 기통 당 배기량에서 가져왔다.
페라리 488 GTB를 통해 처음으로 선보인 F154 CB는 670마력/8,000rpm에 달하는 최고출력과 77.5kg.m/3,000rpm에 이르는 최대토크를 낸다. 이는 선대인 458 이탈리아에 탑재된 F136 FB(자연흡배기, 4.5리터 V8)엔진에 비해 1.1리터의 배기량을 줄였으면서도 최고출력은 100마력 가량, 최대토크는 약 30% 이상 치솟았다. F154 CB는 배기량 1리터 당 약 170마력을 웃도는 고성능을 자랑한다.
또한 기존 F136 계열 엔진에 비해 총배기량이 줄어들고 과급기로 성능을 보강함으로써 배기가스 배출량을 크게 줄이는 데 성공했음은 물론, 실용 연비 또한 향상되었다. 더욱 강력해진 성능과 한층 업그레이드된 친환경적 요소의 시너지에 힘입어, 페라리 F154 CB는 지난 2016년과 2017년, 세계의 우수한 엔진들을 선정하는 인터내셔널 엔진 오브 더 이어(International Engine of the Year)의 고성능 엔진 부문에서 2년 연속 올해의 엔진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또한 페라리는 올 2월 등장한 특별한 페라리 모델인 페라리 488 피스타(Pista)를 통해 새로운 버전의 F154를 내놓은 바 있다. 이 엔진은 ‘F154 CD’로, CB형에 다시금 개량을 가했다. 페라리 488 피스타의 리어 미드십에 실려 있는 F154 CD 엔진은 720마력에 달하는 최고출력을 뿜어 낸다. 또한 앞으로도 페라리 F154 엔진은 한동안 페라리를 상징하는 V8 중 하나로 자리매김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도 F154 엔진에는 독특한 변형이 하나 더 있다. ‘F154 V6’라는 코드명을 가지고 있는 이 변형은 본래 V형 8기통 엔진인 F154의 실린더 2기를 제거하여 V형 6기통 엔진으로 만든 것이다. 스트로크는 82.0mm로, 캘리포니아 T와 GTC4 루쏘 T, 포르토피노 등에 사용하는 F154 B계열과 같다. 바탕으로 한다. 총 배기량은 2,891cc(2.9리터)로 510마력/6,500rpm에 달하는 최고출력과 61.2kg.m/2,500~5,000rpm의 최대토크를 뿜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