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연 개인전 - 늙은 호박이 깨우쳐 주는 세상의 아름다움[2010. 11. 9 - 11. 14 대백프라자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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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종연 개인전
늙은 호박이 깨우쳐 주는 세상의 아름다움

임종연의 작품은 차갑고도 명석하게 보인다. 어디 한 군데도 모호한 구석이 없이 선명하다.
어느 면에서는 확대된 사진보다도 더 명료하다는 인상이다.
그 이미지가 너무도 선명한 나머지 바로 눈앞에 놓인 실물을 보고 있다는 착각에
손으로 만져보고 싶은 충동을 느낄 정도이다.

글 : 신항섭(미술평론가)

[2010. 11. 9 - 11. 14 대백프라자갤러리]

[대백프라자갤러리] 대구시 중구 대봉동 214 대백프라자10F  T.053-420-8015

홈페이지로 가기  http://www,debecgallery.com

극사실적인 그림은 현실적인 공간과 회화적인 공간의 차이를 불분명하게 만든다. 그러기에 그림을 보면서 현실세계로 착각하기 일쑤이다. 특히 사진에 필적하는 극렬한 사실묘사를 강조하는 최근의 극사실적인 그림의 경우 더욱 그렇다. 임종연의 작품은 차갑고도 명석하게 보인다. 어디 한 군데도 모호한 구석이 없이 선명하다. 어느 면에서는 확대된 사진보다도 더 명료하다는 인상이다. 그 이미지가 너무도 선명한 나머지 바로 눈앞에 놓인 실물을 보고 있다는 착각에 손으로 만져보고 싶은 충동을 느낄 정도이다. 맷돌호박이라고 불리는 둥글납작한 늙은 호박을 소재로 하는 그의 작업은 그림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면 실제의 호박으로 착각하기 십상이다. 무엇보다도 실제에 육박하는 사실적인 묘사력이 시선을 압도한다. 그는 단순한 재현적인 그림으로서의 일반성을 탈피함과 동시에 자신의 존재성을 부여하기 위해 몇 가지 조형적인 해석을 모색한다. 주관적인 해석에 의한 회화적인 사상 및 철학을 담으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디서 보더라도 ‘임종연의 그림’이라는 명확한 인상을 심어주고자 한다. 호박을 하나 둘 또는 그 이상을 겹쳐 쌓아올리거나 나란히 횡렬로 늘어놓는 식으로 변화를 줌으로써 작품마다 개별성을 부여한다. 또한 나무상자라는 소재를 이용하여 그 안에 호박을 넣기도 한다. 이렇듯이 구성에 변화를 줌으로써 작품마다 개별성을 획득하게 된다. 그런가 하면 늙은 호박을 공중에 띄우기도 한다. 어느 작품은 구름을 배경으로 높이 떠 있고, 어느 작품은 바닥 바로 위에 떠 있어서 그림자를 보여주기도 한다. 또한 나무상자 안에 들어 있는 늙은 호박은 상자에 담겨 있는 상태가 아니라 상자 안에 떠 있는 상태가 된다. 특히 상자 안에 떠 있는 호박의 이미지의 경우 상자의 크기를 캔버스에 꽉 채움으로써 현실의 상자로 착각하게 된다. 이는 보다 더 철저히 실제를 가장한, 눈속임을 위한 조형적인 장치이다.

이로써 알 수 있듯이 바닥에 놓여 있는 정적인 소재를 묘사하는 정물화와는 사뭇 다른 존재방식이다. 이와 같은 소재의 존재방식은 초현실적인 조형어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초현실 회화에 익숙한 탓인지 전혀 생뚱하다거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적인 공간에서 탈출하여 초현실적인 공간으로 진입함으로써 보다 자유롭고 광활한 조형적인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호박이 공간에 떠 있는 무중력 상태의 초현실적인 공간은 우리로 하여금 의식의 해방을 맛보게 한다. 질량을 지닌 호박이 공중에 떠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우주공간을 자유롭게 유영하고 픈 인간의 욕망을 해소시켜 주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대리체험으로써 답답한 현실로부터 벗어나 정신 및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맛보게 한다. 한마디로 공중부양 또는 비상이라는 초현실적인 능력을 꿈꾸는 인간의 잠재적인 욕망을 자극하는 셈이다. 비록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일지언정 그림을 통해서나마 대리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이르면 늙은 호박은 정물의 소재라는 좁은 의미를 벗어나게 된다. 다시 말해 늙은 호박은 고유의 존재가치, 즉 식재료로서의 가치를 뛰어넘는 순수조형의 동반자가 되는가 하면 그 자신의 회화적인 사상 및 철학을 대변하는 존재가 된다. 즉, 인격을 갖춘 늙은 호박이 되는 것이다. 이렇듯이 존재방식의 변화를 통해 늙은 호박은 돌연 인간 삶의 공간으로 진입하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가치변환의 과정을 거치면서 늙은 호박은 풍부한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혜와 슬기가 넘치는 존재가 된다. 인생의 황혼에 비유되는 노인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바가 있는 것이다. 실제로 그가 모사해 놓은 늙은 호박은 왠지 범상치 않다는 인상이다. 납작한데다가 굴곡진 형태와 잘 익었음을 증명하듯 노릇노릇한 색깔은 생의 경륜을 말해준다. 늙은 호박에서는 푸른 호박이 도저히 흉낼 수 없는 완숙한 멋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 늙은 호박은 시각적으로도 아름답다. 노경의 원숙함이 배어있는 까닭이다. 거기에는 확실히 일상적인 시각으로는 감지되지 않는 심미의 세계가 존재한다. 푸르고 싱싱한 호박보다는 볼품없어 보이는 늙은 호박에서 더 짙고 깊은 생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이 그는 일상의 평범한 시각을 뛰어넘는 탐미적인 조형어법을 구사하여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의 눈을 갖도록 유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