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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의 "기독교강요 4권 15장, 세례"를 요약한 글
(From John Calvin for Everyone) 소개
이지끼을
이 글은 John Calvin for Everyone 이라는 웹사이트에 있는 글입니다.
이 웹사트를 만든 사람은 미국 장로교 목사인 John Judson이고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이 웹사이트에 각 Chapter별로 요약해 놓았습니다.
John Judson 목사가 사용한 기독교강요는, 본문에 표시된 page number를 보면
Ford Battles 가 영어로 번역하고 John McNeill 이 편집한 기독교강요입니다.
기독교강요 4권 15장에 대한 요약은, 기독교강요 4권 15장에 따라 part 1과 part 2로 나뉘어 있는데
저는 이 중에서 part 1만 소개드립니다.
그리고 이 글에 대한 저의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강조와 밑줄, 그리고 글을 A - H 로 나눈 것은 제가 한 것입니다.)
http://www.johncalvinforeveryone.org/chapter-15-parts-1-2.html
Book 5 [4] - Chapter 15 (Parts 1-2)
BAPTISM
Part 1
A. This chapter is the first of two in which Calvin looks at baptism. Here he examines
the basic understanding of baptism and in Chapter 16 he will deal with the issues of infant
baptism and the connection between baptism and the Lord’s Supper.
A. 이 장은 칼빈이 세례에 관해 살펴본 두 장 중 첫 번째 장입니다. 여기에서 그는 세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살펴보고, 16장에서는 유아 세례 문제와 세례와 성만찬의 연관성을
다룰 것입니다.
B. Summary: Calvin begins with a simple statement about baptism. “Baptism is the sign
of initiation by which we are received into…the church, in order that, engrafted into Christ,
we may be reckoned among God’s children.” (pg. 1303), and then moves on to three
essential aspects of baptism.
B. 요약: 칼빈은 세례에 관한 간단한 설명으로 시작합니다.
"세례는 입문의 표적(sign)입니다. 그리스도께 접붙임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
우리는 이 세례를 통해 교회에 받아 들여지는 것입니다." (pg. 1303)
그런 다음 세례의 세 가지 본질적인 측면으로 넘어갑니다.
C. The first essential aspect of baptism is that it “…is a token and proof of our
cleansing” (1304). What he means by this is that in baptism our sins are forgiven.
As Calvin writes about this aspect of baptism, he balances two competing claims.
On the one hand, he claims that something does happen in baptism; that baptism is more
than merely “…a token and mark by which we confess our religion before men” (pg. 1304).
On the other hand, he wants to claim that there is no saving power in the water,
meaning in the act itself. He writes that water does not “…contain within itself the power
to cleanse, regenerate and renew; nor that here (in baptism) is the cause of salvation”
(pg. 1304).
This is so because we are cleansed through Christ’s death and resurrection, which the
water represents. Calvin therefore, desires that in baptism we see something happening
(being cleansed of sin) but at the same time not seeing magic in the action itself.
C. 세례의 첫 번째 본질적인 측면은 그것이 “…우리의 깨끗함의 표징과 증거(token and
proof)” (1304)라는 것입니다. 그가 의미하는 바는 세례로 우리의 죄가 용서된다는 것입니다.
칼빈은 세례의 이러한 측면에 관해 글을 쓰면서 두 가지 상충되는 주장의 균형을 맞춥니다.
한편으로 그는 세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주장합니다. 세례는 "...우리가 사람들
앞에서 우리의 종교를 고백하는 표징과 표시(token and mark)"(1304페이지) 이상입니다.
반면에 그는 물, 즉 행위 자체에는 구원의 힘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물이 “...그 자체 안에
정화하고, 중생하고, 재생하는 능력을 담고 있지 않고 또한 여기에(세례에) 구원의 원인이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합니다.(pg. 1304). 왜냐하면 물이 의미하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가 깨끗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칼빈은 세례를 통해 우리가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
(죄가 깨끗해지는 것)을 보지만 동시에 그 행동 자체에서 마법을 보지 않기를 원합니다.
D. Calvin continues his discussion of the cleansing power of baptism by stating that
baptism cleanses us of sin not merely for past sins, but for all sins for all time.
“But we must realize that at whatever time we are baptized, we are once and for all
washed and purged for our whole life. Therefore, as often as we fall away, we ought to
recall the memory of our baptism and fortify our mind with it, that we may always be
sure and confident of the forgiveness of sins” (pg. 1305). This does not mean that we do
not sin. What it means is that when we do sin, we can be certain that forgiveness has already
been given and that we will not lose either God’s love or our salvation.
D. 칼빈은 세례가 우리의 과거 죄뿐만 아니라 생애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한다고
말함으로써 세례의 정결케 하는 능력에 대한 논의를 계속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언제
세례를 받든지 단번에 씻겨지고 평생 동안 정결케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떨어져 나갈 때마다 세례를 기억하고 그것으로 마음을 굳건히 하여 죄 사함을
항상 확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1305쪽). 이것은 우리가 죄를 짓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 이미 용서가 주어졌음을 확신할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이나 우리의 구원을 잃지 않을 것 임을 확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E. The second essential aspect of baptism is that it shows our new life in Christ.
Calvin quotes Paul, “’we have been baptized into his death,” “buried therefore with him into
death…that we might walk in the newness of life” [Romans 6:3-4] (pg. 1307).
The image Calvin uses to describe this is that those who are baptized are like twigs grafted into
a tree, drawing nourishment from the trees roots; meaning that we are grafted into Jesus and
draw our spiritual life from him.
E. 세례의 두 번째 본질적인 측면은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새로운 삶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칼빈은 바울의 말을 인용합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그의 죽으심과
연합함으로써 그와 함께 묻혔던 것입니다.... 이는 우리로 새 생명(생명의 새로움)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 [로마서 6:3-4] (1307쪽). 칼빈이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이미지는,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나무에 접붙여져서 나무 뿌리에서 영양분을 끌어내는 나뭇가지와
같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예수님께 접붙여지고 그에게서 영적인 생명(삶)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F. The third essential aspect of baptism is that we “become sharers in all
(Christ’s) blessings” (pg. 1307). Two of these blessings are regeneration (made into
new people) and resurrection (just as Jesus was raised so too will we be).
F. 세례의 세 번째 본질적인 측면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모든 축복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1307쪽). 이 축복 중 두 가지는 중생(새 사람으로 만들어짐)과
부활(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그러할 것입니다)입니다.
G. Reflections: Baptism is one of the two sacraments of the Presbyterian Church.
And as Presbyterians we can see the influence that Calvin has had on our church
when we examine our understanding of baptism.
First, we believe baptism marks our entry into the universal church of Jesus Christ;
meaning that we baptize for the whole church and not just the Presbyterian Church.
Second, we believe that baptism is a moment when we are made new and whole;
meaning we are renewed people.
Third, we do not believe that baptism is necessary for salvation;
meaning that salvation is a gift of God and that baptism makes visible what God has
already done for us in Jesus Christ.
I hope then, that the next time you witness a baptism, you will listen as the liturgy affirms
these beliefs.
G. 묵상: 세례는 장로교의 두 가지 성례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장로교인으로서 우리가
세례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검토해 보면 칼빈이 우리 교회에 미친 영향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세례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편적인 교회에 우리가 들어가는 것을 표시한다고
믿습니다. 이는 우리가 장로교회뿐만 아니라 전체 교회를 위해 세례를 준다는 뜻입니다.
둘째, 우리는 세례가, 우리가 새롭고 온전해지는 순간임을 믿습니다.
우리가 새로워진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셋째, 우리는 구원을 위해 세례가 필요하다고 믿지 않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세례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해 이미 행하신 일을 가시화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다음 번에 세례를 목격할 때 전례가 이러한 믿음을 확언하는 것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H. Questions:
Do you have any memory of your own baptism or the baptism of a child you knew?
What stands out for you in that moment?
What do you think about the idea that in baptism we become new people?
What hope do you find in the idea that in baptism we are freed from sin…for all of time?
H. 질문:
당신 자신의 세례나 당신이 아는 어린이의 세례에 대한 기억이 있습니까?
그 순간 당신에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무엇입니까?
세례를 통해 우리가 새로운 사람이 된다는 생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세례를 통해 우리가 영원히 죄로부터 해방된다는 생각에서 어떤 희망을 찾을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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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보기에,
저자인 John Judson 목사는, 세례에 관한 글인 칼빈의 기독교강요 4권 15장을 잘 요약하였습니다.
하지만 위의 글에는 모순되는 부분이 있는데
위에 요약된 칼빈의 글을 살펴보고, 그리고 모순되는 부분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글 B를 보면
칼빈이 세례에 관한 글인 기독교강요 4. 15. 1 을
“Baptism is the sign of initiation by which we are received into…the church, in order that,
engrafted into Christ, we may be reckoned among God’s children.” (pg. 1303),
"세례는 입문의 표적(sign)입니다. 그리스도께 접붙임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
우리는 이 세례를 통해 교회에 받아 들여지는 것입니다." (pg. 1303) 라고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우리가 세례를 통해 하나님의 교회의 일원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께 접붙임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칼빈이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순서가 조금 바뀌었습니다.
세례를 통해 교회에 받아 들여지므로 예수 그리스도께 접붙임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세례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 접붙임을 받으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세례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 접붙임을 받으므로, 하나님의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 더 추가하면,
세례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 접붙임을 받으므로, 곧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의롭다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칼빈의 말에서 중요한 단어는 표적(sign)입니다.
성경의 표적(sign)은 육적인 것으로 영적인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과 관련이 있는 표적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향해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어떤 일을 하시는지 알려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칼빈은 세례가 표적이라고 말하며
하나님께서 세례를 통해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 접붙여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
또한 하나님의 교회의 일원이 되게 하신다고 말한 것입니다.
표적(sign)이 어떤 의미인지, 곧 칼빈이 표적이라는 단어를 어떤 의미로 썼는지 알지 못하면
칼빈의 이 말을 바르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칼빈은 기독교강요 4. 15. 15 에서
I would only add to the sign the substance and reality,
inasmuch as God works by external means.
하나님께서 외형적인 수단을 통해서 일하시므로
나는 그 표적(the sign)에 그 본질과 실체를 추가할 뿐입니다" 라고 말했는데
이 말에서 외형적인 수단은 표적(sign)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칼빈은
하나님께서 외형적인 수단, 곧 표적을 통해 일하실 때, 본질과 실체가 따른다고 이해했던 것입니다.
[표적(sign)에 대한 칼빈의 이해는
저의 글 (칼빈, "바로 이런 이유로 '세례를 통해' 우리가 참으로 죄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https://cafe.daum.net/1107/Y4PX/1103 ) 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글 C를 보면, 칼빈이, 세례의 첫번째 본질적인 측면으로
세례를 통해 우리의 죄가 용서된다고 말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칼빈은, 세례에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주장했는데
그것이 바로 세례로 우리의 죄가 용서된다는 것입니다.
곧, 칼빈은 세례를 통해 우리가 죄사함을 받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께서 세례를 통해 우리의 죄를 사해주신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글 D를 보면, 칼빈이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언제 세례를 받든지 단번에 씻겨지고 평생 동안 정결케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라고 말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세례를 통해 우리 전 생애의 죄가 사함을 받는다고 칼빈이 이해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곧 세례를 통해,
세례받기 전에 지은 죄 뿐만이 아니라, 세례받은 후의 죄에 대해서도 모두 죄사함 받는다고
칼빈은 이해했던 것입니다.
세례를 통해 우리 전 생애의 죄가 사함을 받는다는 이해는 매우 중요합니다.
종교개혁의 원인과 관계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글 E를 보면
"세례의 두 번째 본질적인 측면은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새로운 삶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칼빈이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이미지는,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나무에 접붙여져서 나무 뿌리에서 영양분을 끌어내는 나뭇가지와 같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예수님께 접붙여지고 그에게서 영적인 생명(삶)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칼빈이,
우리가, 세례를 통해 예수님께 접붙여져서, 곧 세례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 변화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을 설명한 것입니다.
그리고 글 F를 보면,
세례의 세 번째 본질적인 측면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모든 축복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1307쪽). 라는 말이 있는데
세례로 예수님께 접붙여지므로, 곧 세례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모든 축복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
[that we “become sharers in all (Christ’s) blessings” (4. 15. 6) ] 고 칼빈이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축복에 대하여
"이 축복 중 두 가지는 중생(새 사람으로 만들어짐)과
부활(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그러할 것입니다)입니다."라고 말했는데
우리가 세례로 그리스도께 연합하므로 중생하고,
그리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부활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부분까지, 칼빈이 세례에 대해 말한 것을 정리하면
세례로 죄사함을 받는데 세례 받기전에 지은 죄에 대한 죄사함 만이 아니라
전 생애의 죄에 대한 죄사함을 받고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께 접붙여져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중생(거듭남)하여, 새로운 삶을 살고
그리고 우리도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부활의 축복을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상과 같이 이글의 저자인 John Judson 목사는 세례에 관한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요약하고
이에 대한 묵상(Reflections)을 말하였습니다.
그 중 세번째 묵상을 보면
Third, we do not believe that baptism is necessary for salvation;
meaning that salvation is a gift of God and that baptism makes visible what God has
already done for us in Jesus Christ.
셋째, 우리는 구원을 위해 세례가 필요하다고 믿지 않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세례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해
이미 행하신 일을 가시화한다는 의미입니다. 라고 말하였는데
이 말은, John Judson 목사 자신이 앞에서 말한 것과 모순이 됩니다.
앞에서 John Judson 목사가 요약한 칼빈의 글에는
우리가 세례를 통해 구원을 얻는다는 표현은 없지만
우리가 세례를 통해 어떤 구원을 받는지
곧 세례를 통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해 어떤 일을 행하시는지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John Judson 목사는
앞에서는 세례를 통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해 어떤 일을 행하시는지
곧 우리가 세례를 통해 어떤 구원을 받는지 보여 주는 칼빈의 글을 요약하고
뒤에서는 "세례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해 이미 행하신 일을 가시화한다는
의미입니다." 곧 하나님께서 이미 행하신 일을 세례를 통해 드러내신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이미 행하신 일은 구원을 의미합니다.
곧, 세례받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미 구원하셨으니
"우리는 구원을 위해 세례가 필요하다고 믿지 않습니다." 라고 John Judson 목사는 말한 것입니다.
정리하면, John Judson 목사는
앞에서는, 세례를 통해 어떤 구원을 받는지 보여 주는 칼빈의 글을 요약하고
뒤에서는 구원을 위해 세례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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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보기에
John Judson 목사는 자신이 앞에서 요약한 칼빈의 글이
세례를 통해 우리가 어떤 구원을 받는지 설명한 글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구원은 "죄로 부터의 구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그들의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마 1:21절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그러므로 성경이 말씀하는 구원은 "죄로 부터의 구원"입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1:76-77절을 보면,
사가랴가 자신의 아들인 세례요한이 어떤 일을 할 것인지 예언하는데
눅 1:76-77절
눅 1:76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준비하여
77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개정개역) 라고 말합니다.
세례요한은 주의 길, 곧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서
죄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주의 백성에게 알려주는 일을 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그러므로 사가랴의 이 예언은
예수님께서 죄사함을 주셔서 자신의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세례요한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라고 전하며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눅 3:3절,막 1:4절)를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주셔서 자신의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셨다가 부활하신 후 40 여일간 이 땅에 계셨고
그리고 승천하셨습니다.
승천하시기 전, 대사명(The Great Commission) 을 주셨는데
이 말씀 중 "세례"를 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마 28:18-20
18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리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세례에 관해 말씀하신 것이 하나 더 있는데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막 16:16절)라는 말씀입니다.
막 16:15-16절
15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막 16:15절에 "복음을 전파하라" 는 말씀이 있으므로
16절은, (복음을) 믿음으로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서 "구원"은 "죄로 부터의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막 16:16절 예수님 말씀은
"믿음으로 세례를 받는 사람은 "죄로 부터 구원"을 얻을 것이다" 라는 예수님의 약속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10여일이 지난 날인, 오순절에
베드로는, 예수님의 명령(대사명, Great Commision, 마 28:18-20)에 따라
자신의 오순절 설교에 찔림받은 유대인들이 "형제들아 어찌할꼬"(행 2:37절)라고 물을 때,
세례를 받아 죄사함을 얻으라고,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행 2:38절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말씀에서 베드로가 말씀한 세례는 다른 세례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세례(막 16:16절, 마 28:18-20)입니다.
베드로의 말씀에는 회개, 세례, 그리고 죄사함을 받으라 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는 베드로가 말씀한 세례가 죄사함을 얻게하는 회개의 세례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세례(막 16:16절, 마 28:18-20)는
세례요한의 세례 와 같은 세례인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 (눅 3:3절,막 1:4절)입니다.
그러므로 막 16:16절은
(복음을) 믿음으로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받는 사람은 죄로 부터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막 16:16절 예수님의 말씀과 행 2:38절 베드로의 말씀을 비교하면
예수님께서 막 16:16절에서 말씀하신 구원을, 곧 죄로 부터의 구원을
베드로는 행 2:38절에서 죄사함과 성령의 선물로 표현한 것을 알 수 있는데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구원, 곧 죄로부터의 구원이 바로 죄사함과 성령의 선물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막 16:16절)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복음을) 믿음으로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받는 사람은 죄사함과 성령의 선물을 받을 것이다 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서 성령의 선물은 성령의 내주하심(중생)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막 16:16절 말씀은
(복음을) 믿음으로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받는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죄사함과 성령의 내주하심(중생)을 주시겠다는 예수님의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믿음으로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받으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죄사함을 주셔서 죄의 책임을 면제해 주시고,
성령을 주셔서 죄의 지배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구원, 죄로 부터의 구원은 죄사함과 성령의 내주하심(중생)입니다.
하지만 죄사함과 성령의 내주하심(중생) 사이에 고려해야 할 몇 단계가 있습니다.
성령의 내주하심(중생)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므로 얻게 되는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갈 4:6절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갈 4:6절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가 성령의 내주하심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내주하심이 있으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다는 말은
위의 글에서 칼빈이 말한 "예수 그리스도께 접붙임을 받는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모두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세례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갈 3:26-27절
26 여러분은 모두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27 여러분은 모두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그리스도를 옷으로 입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새번역)
26 You are all sons of God through faith in Christ Jesus,
27 for all of you who were baptized into Christ have clothed yourselves with Christ.(NIV)
갈 3: 26-27절은
여러분은, 모두 그 믿음으로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과거시제)
그리스도를 옷으로 입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현재완료시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현재시제) 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막 16:16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구원은, 곧 죄로 부터의 구원은
믿음이 있는 사람이
세례를 통해 죄사함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되어(예수님께 속하게 되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므로 성령의 내주하심(중생)을 받는 것입니다.
위에 요약된 칼빈의 기독교강요 4. 15 를 보면,
세례를 통해,
죄사함을 받는다는 말도 있고,
예수 그리스도께 접붙임을 받는다는 말도 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말도 있고
그리고 중생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칼빈은 비록 중생을 성령의 내주하심과 연관시키지는 못했지만,
세례를 통해 우리가 어떤 구원을 받는지 기독교강요를 통해 잘 설명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같이
우리가 세례를 통해 어떤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 주는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요약한
John Judson 목사는 묵상(Reflection)으로
우리는 구원을 위해 세례가 필요하다고 믿지 않습니다. 라고 말한 것입니다.
앞에서는 우리가 세례를 통해 어떤 구원을 얻는지 말하고
뒤에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세례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앞의 설명과 뒤의 결론이 모순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John Judson 목사는 자신의 생각으로 이런 모순된 말을 한 것이 아니라
칼빈의 말을 근거로 이런 말을 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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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Judson 목사는 자신의 글에서 세번째 묵상으로
Third, we do not believe that baptism is necessary for salvation;
meaning that salvation is a gift of God and that baptism makes visible what God has
already done for us in Jesus Christ.
셋째, 우리는 구원을 위해 세례가 필요하다고 믿지 않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세례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해
이미 행하신 일을 가시화한다는 의미입니다. 라고 말하였는데
"믿음으로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막 16:16절) 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그리고 세례를 받는다 라고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그리고 세례를 받는다는 말을 보면
구원받음에 세례는 상관이 없습니다.
구원은 세례없이, 또는 세례받기 전에 믿음으로만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John Judson은 "우리는 구원을 위해 세례가 필요하다고 믿지 않습니다." 라고 말한 것입니다.
세례에 대하여 이와 같은 이해를 담은 글이 칼빈의 기독교강요 4. 15. 15 입니다.
15. Baptism as confirming faith
We have a proof of this in Cornelius, the centurion, who, after he had
been previously endued with the graces of the Holy Spirit,
was baptised for the remission of sins, not seeking a fuller
forgiveness from baptism, but a surer exercise of faith;
nay, an argument for assurance from a pledge.
15. 믿음을 확증하는 세례
백부장 고넬료에게 이에 대한 증거가 있습니다.
그는 성령의 은혜를 받은 후에 죄사함을 받기 위하여 세례를 받았는데
세례를 통해 더 큰 죄사함을 구한 것이 아니라 더 확실한 믿음의 행사,
즉 서약을 통한 확신의 증가를 구했습니다
고넬료와 그의 친척과 친구들은 성령세례를 받고(행 10:45) 그리고 세례를 받았습니다.(행 10:48)
이 세례는 베드로에 의해, 베드로와 동행한 형제들이 준 세례입니다.
행 10:47-48절
47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
48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하니라
그들이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하니라
베드로에 의해 형제들이 고넬료에게 준 세례(행 10:48)는
예수님의 승천 이후 이방인들에게 처음으로 준 세례인데
이 세례는 예수님의 승천 이후 유대인들(할례자들)에게 처음으로 준 세례,
곧 행 2:38절에서 베드로가 말씀한 세례와 같은 세례입니다.
행 2:38절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말씀에서 베드로가 말씀한 세례는 다른 세례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세례(막 16:16절, 마 28:18-20)이고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 입니다.
그러므로 고넬료와 그 친척 친지들은 세례(행 10:48절)를 받아 죄사함을 얻고
성령의 선물(성령의 내주하심)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칼빈은 고넬료 등이 세례를 통해 죄사함을 받은 것이 아니라
세례받기 전에 받았던 성령세례(행 10:44)를 통해 죄사함을 받았다고 오해했습니다.
그는 성령의 은혜를 받은 후에 죄사함을 받기 위하여 세례를 받았는데
세례를 통해 더 큰 죄사함을 구한 것이 아니라 더 확실한 믿음의 행사,
즉 서약을 통한 확신의 증가를 구했습니다 라는
칼빈의 말은
고넬료가 성령세례 받은 후에 세례를 받았는데,
(죄사함을 받으려고도 아니고), 더 큰 죄사함을 받으려고도 아닌
확신의 증가를 위해 세례를 받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칼빈은 고넬료가 세례로 죄사함을 받은 것이 아니라 성령세례로 죄사함을 받았다고 오해했던 것입니다.
성령세례는 죄사함을 주는 것도 아니고, 중생케 하는 것도 아닙니다.
성령세례는 예수님께서 시작하신 Ministry 를 계속 이어 갈 수 있도록 능력을 주는 성령세례입니다.
그런데 칼빈은 고넬료가 성령세례를 통해 죄사함을 받았다고 오해했던 것입니다.
고넬료가 성령세례로 죄사함을 받았다고 오해하니까
고넬료가 세례를 통해 죄사함을 받았다고 말할 수 없게 되고
그래서 고넬료가 "확신의 증가를 위해 세례를 받았다"는 말을, 곧 성경에 없는 말을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죄사함과 성령의 내주하심)을 얻을 것이다(막16:16)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믿음으로 세례를 받는 사람은 죄사함을 받는다고 이해했던 칼빈은
고넬료가 받은 성령세례와 세례를 오해하여
(1) 믿음으로 세례를 받는 사람은 죄사함을 받는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2)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고 그리고 (확신의 증가를 위해) 세례를 받는다고 바꾼 것입니다.
그리고 칼빈은 이와 같은 자신의 오해에 맞게
바울에게 세례를 권하는 아나니아의 말(행 22:16절)을 해석하였습니다.
행 22:16절
"이제는 왜 주저하느뇨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라는
아나니아의 말은,
아나니아가 바울에게 주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죄를 씻으라 라고 말한 것입니다.
곧 세례를 통해 죄사함을 받으라고 말한 것입니다.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라는 아나니아의 말은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죄사함)을 얻을 것이요" (막16:16절) 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잘 맞습니다.
그런데, 칼빈은, 고넬료에 관한 기록에서
고넬료가 세례를 통해 죄사함을 받았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고넬료가 세례받기 전에 받은 성령세례를 통해 죄사함을 받았다고 오해하였기 때문에
It will, perhaps, be objected, Why did Ananias say to Paul that he washed away
his sins by baptism, (Acts 22:16; cf. ch 9:17-18) if sins are not washed away
by the power of baptism?
"아마도 누군가는 반대할 것입니다.
세례의 능력으로 죄가 씻겨지지 않는다면
아나니아는 왜 바울에게 세례를 통해 그의 죄를 씻으라고 말했을까? 라고 말입니다." 라고
말하면서 고넬료가 받은 세례에 대한 자신의 오해대로 아나니아의 말을 다음과 같이 해석했던 것입니다.
I answer, we are said to receive, procure, and obtain, whatever according to
the perception of our faith is exhibited to us by the Lord, whether he then attests it
for the first time, or gives additional confirmation to what he had previously attested.
내가 대답합니다.
우리는, 주께서 처음 증명하시든
아니면 이미 증명하신 것에 주께서 추가적인 확증(confirmation)을 주시든
주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을,
우리의 믿음으로 깨달은 만큼, 받고 얻고 획득한다고 합니다."
칼빈의 이 말을
믿음으로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죄사함)을 얻을 것이다 라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설명하면
예수님께서
[1] 믿음으로 세례를 받는 사람에게 죄사함을 주시든
[2]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 죄사함을 주시고, 그후 세례를 통해 추가적인 확증을 주시든
주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을
우리의 믿음으로 깨달은 만큼, 받고 얻고 획득한다는 말입니다.
칼빈은 여기서
예수님의 말씀(막 16:16절) 그대로인 [1] 의 경우도 있고
그리고 자신이 오해해서 만든 [2] 의 경우도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칼빈은,
예수님의 말씀(막 16:16절) 그대로인 [1] 의 경우를 부정한 것이 아닙니다.
곧 "믿음으로 세례를 받는 사람은 죄사함(구원)을 얻을 것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부정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막 16:16절) 그대로인 [1] 의 경우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오해로 만든 [2] 의 경우를 추가한 것입니다.
칼빈은 이어서
행 22:16절
"이제는 왜 주저하느뇨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라는
아나니아의 말을, 자신이 오해로 만든 [2]의 경우로 해석했습니다.
All then that Ananias meant to say was,
Be baptised, Paul, that you may be assured that your sins are forgiven you.
In baptism, the Lord promises forgiveness of sins: receive it, and be secure.
아나니아가 의미한 것은
'바울아 네 죄가 용서받았다는 확신을 얻기 위해 세례를 받으라
주께서 세례를 통해 죄사함을 약속하신다 그것을 받아 확신하라' 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칼빈은,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라는 아나니아의 말이
세례를 통해 죄사함을 받으라 라는 말이 아니라
Be baptised, Paul, that you may be assured that your sins are forgiven you.
바울아 네 죄가 용서받았다는 확신을 얻기 위해 세례를 받으라
이미 죄사함을 받았으니, 죄사함 받았다는 것을 확신하기 위해 세례를 받으라 라는 말이었다는 것입니다.
칼빈은 [1]의 경우가 아니라
곧, 믿음으로 세례를 받는 사람은 죄사함(구원)을 얻을 것이다 라는 예수님의 약속이 아니라
믿음이 있는 자가 죄사함(구원)을 받고
그리고 세례를 받을 때 (이미 받은 죄사함에 대하여) 예수님의 추가적인 확증을 받는 경우로,
곧 자신이 예수님 말씀의 순서를 바꾼 [2]의 경우로 아나니아의 말을 해석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칼빈은,
바울에게 세례를 권하는 아나니아의 말이
세례를 통해 죄사함을 받으라는 말이 아니라
이미 죄사함 받았음을 세례를 통해 확신하라는 말이었다고 해석한 것입니다.
그리고 칼빈은
In baptism, the Lord promises forgiveness of sins: receive it, and be secure.
(주께서 세례를 통해 죄사함을 약속하신다 그것을 받아 확신하라) 라고 덧붙였는데
In baptism, the Lord promises forgiveness of sins
(주께서 세례를 통해 죄사함을 약속하신다) 라는 말은
세례를 받을 때 예수님께서 죄사함을 약속하신다,
곧 세례를 받을 때 예수님께서 죄사함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신다는 말입니다.
칼빈은, [2]의 경우에,
주께서 죄사함을 주시고
그리고 세례를 통해 (이미 주신 죄사함에 대한) 추가적인 확증(additional confirmation)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세례를 통해 주께서 주시는 죄사함의 약속(In baptism, the Lord promises forgiveness of sins)이
세례를 통해 주께서 주시는 추가적인 확증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In baptism, the Lord promises forgiveness of sins
(주께서 세례를 통해 죄사함을 약속하신다) 라는
칼빈의 말은 얼핏보면 맞는 말 같지만, 예수님의 막 16:16절 말씀을 칼빈이 교묘하게 바꾼 말입니다.
칼빈의 이 말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통해 죄사함을 주신다는 약속을 하셨다는 말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세례를 통해 죄사함을 약속하신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칼빈의 이 말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약속대로 세례를 통해 죄사함을 주신다는 말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세례를 통해 죄사함을 약속하신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 전,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 16:15-16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곧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죄사함과 성령의 내주하심)을 얻을 것이다" 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약속을 칼빈의 이해에 따라 성령의 내주하심을 빼고 쓰면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죄사함)을 얻을 것이다"라고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후에, 이 약속에 따라서
복음을 믿는 사람이 세례를 받으면 구원(죄사함)을 받습니다.
그런데 칼빈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통해 죄사함을 약속하신다"는 말을 한 것입니다.
In baptism, the Lord promises forgiveness of sins
곧 믿는 사람이, 예수님의 막 16:16절 약속에 따라
세례를 통해 죄사함을 받는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세례를 통해 죄사함의 약속, 곧 죄사함을 주신다는 약속을 받는다 라고 칼빈이 말한 것입니다.
칼빈의 말처럼, 세례를 받을 때 죄사함의 약속, 곧 죄사함을 주신다는 예수님의 약속을 받는 것이라면
죄사함은 이 약속을 받은 이후에 받는 것이 상식입니다.
하지만 칼빈은 죄사함을 먼저 받고
그리고 세례를 통해 죄사함의 약속을 받는다 곧 죄사함을 주신다는 약속을 받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곧 칼빈은, 자신이 이해하는 고넬료의 경우와 같이, 바울이 세례받기 전에 죄사함을 받았고
세례를 통해, 죄사함의 약속을 받아 자신이 받은 그 죄사함을 확신하였다고 해석한 것입니다.
정리하면
예수님께서는
"믿음으로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죄사함)을 얻을 것이다"(막16:16절)라는 약속(1)을 하셨는데
칼빈은 예수님의 이 약속(1)을
"믿음이 있는 사람이 죄사함을 얻고, 세례를 받아 죄사함의 약속(3)을 받을 것이다"는 약속(2)로
바꾼 것입니다.
여기서, 약속(1), 약속(2), 그리고 약속(3)은 다 다릅니다.
예수님의 약속(1)을 칼빈이 약속(2)로 바꾼 것입니다.
그리고 이 약속(2)에는 또 다른 약속인 약속(3)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믿음으로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라는 예수님의 약속(1)을
칼빈이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그리고 세례를 받는다" 라는 약속(2)로 바꾼 것입니다.
예수님의 약속(1)을 보면
믿음으로 세례를 받아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약속(1)에서 세례는 구원에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칼빈이 바꾼 약속(2)에서 구원은, 세례받기 전에, 또는 세례없이, 믿음으로만 받습니다.
그러므로
칼빈이 바꾼 약속(2)에서 세례는 구원에 필수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앞 부분에서
"믿음으로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라는 예수님의 약속(1)에 대한 칼빈의 이해를 담은 글을
요약했던 John Judson 목사는
결론 부분에서
고넬료가 받은 성령세례와 세례에 대한 오해로, 칼빈이 바꾼 약속인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그리고 세례를 받는다" 라는 약속(2)에 따라
"우리는 구원을 위해 세례가 필요하다고 믿지 않습니다." 라는 모순된 말을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칼빈이, 세례에 대하여 두 가지 서로 모순된 이해(A, B)를 했던 것입니다.
칼빈은
예수님의 약속(1)에 따라 세례를 이해(A)하기도 했고
또한, 자신의 오해에 따라 세례를 이해(B)하기도 하여 예수님의 약속(1)을 약속(2)로 바꾼 것입니다.
말씀드렸듯이
예수님의 약속(1)에서, 세례는 구원에 필수적인데 반해
예수님의 약속(1)을 칼빈이 바꾼 약속인 약속(2)에서, 세례는 구원에 필수적이지 않기 때문에
세례에 대한 칼빈의 이해(A)와 (B)는 서로 모순되는 것입니다.
현재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세례에 관하여 칼빈의 이해(B)만을 따르며
칼빈의 이해(A)는 알지도 못하고, 알더라도 애써 외면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약속(1)이 아니라 칼빈이 만든 약속인 약속(2)에 따라 구원을 얻는다고 믿습니다.
곧 "믿음으로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막16:16)라는 예수님의 약속(1)에 따라
구원을 받는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그리고 세례를 받는다"라고 칼빈이 바꾼 약속(2)에 따라
구원을 받는다고 믿는 것입니다.
하지만 약속(2)는 칼빈이 고넬료가 받은 성령세례를 오해하고
그에 따라 고넬료가 받은 세례를 이해(B)하여 만든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받으려면
약속(2)가 아니라 예수님의 약속(1)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칼빈은, 막16:16절 예수님의 약속(1),
곧, "믿음으로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라는 말씀에 따라 세례를 이해(A)하여
우리가
세례로 죄사함을 받고
세례로 예수님께 접붙임을 받고
세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세례로 중생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세례를 칼빈의 이해(B)가 아니라 칼빈의 이해(A)로 이해하여
모두 구원받으시기를 바랍니다.